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63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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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다녀보면, 그 나라마다 ‘소울 푸드(soul food)’라는 것이 있다고들 합니다. 잡학상식이긴 하지만, 본래 영어에서 ‘소울 푸드(soul food)’란, ‘미국 요리의 일종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고유 식문화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서는 ‘전통적으로 미국 남부 흑인들과 관련된 음식’으로 명확하게 정의를 내리고 있죠.
네. 맞습니다. 여러분들이 이제껏 알고 있던 ‘소울 푸드(soul food)’라는 의미, ‘영혼을 흔들 만큼 인상적이며 어릴 때의 추억이나 삶의 애환 등을 훑는 음식’은 일본과 한국에서만 통하는 콩글리시입니다. 서양인들에게 여러분이 알고 있는 의미로 사용했다가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하기 십상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어찌 되었든 한국어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대다수의 분들에게 있어 ‘소울 푸드(soul food)’는 ‘마음을 움직이는 추억의 음식’ 정도로 해석될 테니 그 의미로 이해하기로 하고 이야기를 이어 나가볼까요?
이제까지 60여 편의 에피소드를 통해 한국인의 특징을 분석하면서 음식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적지 않게 나온 것을 보면서 느낄 수 있다시피, 한국인들은 정말로 음식에 진심인 민족이지요. 그래서 한국인들에게 소울 푸드를 어느 하나로 설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밥, 김치찌개, 된장찌개, 그리고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로 이 음식, 라면이 소울푸드라고 설명할 때 그건 소울푸드가 아니라고 부정할만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 음식 요리법은 오래전부터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제로 일부 요리들의 레시피는 몇 세대에 걸쳐 전해지기도 하고, 심지어 수백 년이 넘은 것들도 있지만 실상 대부분의 요리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라 인스턴트 라면일 것입니다. ‘라면을 한국음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가질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분명히 라면은 라멘이라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일본의 인스턴트 라면에서 시작된 것이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한류가 세계를 강타하고 20세기의 문화시장을 음식문화에까지 파급시키며 세계의 문화 판도를 뒤흔들기 시작한 요 몇 년즈음부터 한국의 라면이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시작했다는 것은 과연 일본 라멘의 짝퉁이라고 단정 지어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요?
라멘의 문화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본의 라멘이 생라멘과 인스턴트 라멘으로 나뉘고 일본의 인스턴트 라면이 한국의 라면과 겉보기에서부터 국물맛이나 기본적인 면의 맛까지 모든 것이 전혀 다른 것임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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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인스턴트 라면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극심한 식량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에서 대만계 일본인인 안도 모모후쿠가 발명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미군 구호품으로 밀가루가 많이 있었기에 이를 이용한 새로운 식품을 고안하였던 것인데요. 밀가루로 국수를 만들어 기름에 튀겨 국수 안의 수분이 증발되고 이후 뜨거운 물에 들어가게 되면 본래의 상태로 풀어져 먹기 좋은 상태가 되는 방식을 개발한 것이죠. 최초의 즉석 라면은 1958년 8월 25일에 현재 닛신식품의 전신인 산시쇼쿠산에서 생산한 치킨라멘이었습니다. 초기 라면은 양념이 면에 더해진 형태였으나 이후 1962년에 수프를 분말로 만들고 따로 첨부한 형태의 봉지면이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라면이 한국에 처음 도입된 것은 1963년 9월 15일(삼양라면의 첫 출시일)이라고 공식적인(?) 기록에 전하고 있습니다.
당시 라면의 가격은 10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국수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음식이라고 불릴만한 것도 아닌 것이라며, 생소하여 판매가 부진했지만, 무료 시식회에서 그 새로운 맛이 국민들에게 인정받으며 곧 서민들의 음식으로 환영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정부의 혼분식 장려정책도 라면이 널리 보급되는 데 큰 원동력이 되었죠. 1960년대 정부는 쌀 부족문제 해결을 위해 혼식(잡곡밥)과 분식(밀가루 음식)을 강제하는 정책을 실시했기 때문이었는데요.
1969년에는 한 해 동안 무려 천오백만 봉지가 팔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970년에 들어서는 즉석 짜장면, 칼국수, 냉면 등의 다양한 라면의 응용제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요. 1982년 11월 17일 육개장 사발면의 출시를 시작으로 용기에 직접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컵라면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는데 이후 짬뽕라면, 비빔라면, 라볶이, 쌀라면 등 다양한 종류의 라면이 컵라면 시장을 주도하였습니다.
여행자나 피시방 손님들은 바로 먹을 수 있는 컵라면을 선호하지만, 시간이 좀 더 걸리는 봉지라면이 훨씬 더 인기가 많습니다. 봉지라면은 자기 기호에 맞게 요리해 먹을 수 있기 때문인데요. 파나 콩나물, 계란을 넣은 라면, 치즈가 뜨끈한 국물에 녹아내린 치즈라면 등 기호에 따라 다양하게 끓여 먹을 수 있는 것이죠. 라면에 멸치, 우유, 심지어 그 비싼 전복을 넣어 라면을 끓여 먹는 사람들도 이상할 것이 없는 나라가 바로 한국입니다. 인스턴트 라면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식 생라멘집이 아니라 한국의 분식점에서 혹은 아예 라면집을 표방하면서도 인스턴트 라면을 요리로 내놓는 식당들이 적지 않죠.
앞서 매운맛에 진심인 한국인을 설명하면서 살펴보았던 바와 같이, 한국 라면은 대부분 매운맛을 사실상 표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국민 라면으로 등극해 버린 농심의 신라면 또한 매울 ‘신(辛)’자를 쓰고 있으며, 많은 세계의 유튜버 채널들이 매운맛을 도전하기 위해 한국의 브랜드 라면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매운맛이 한국 라면의 표준이 된 사연은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 국민의 입맛에 맞게 라면을 맵게 할 순 없나?’라며 직접 삼양식품에 전화한 일화로부터라는 일설도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2018년부터 한국에서는 라면 포장지에 매운맛의 정도가 단계별로 표시되는 제도가 시행되었습니다. 인스턴트 라면의 분말 수프(액상수프)를 시험해 매운 성분 (mg/kg, ppm)의 함량이 80 미만인 경우 ‘1단계(순한 맛)’, 80∼179일 경우 ‘2단계(보통 매운맛)’, 180∼279일 경우 ‘3단계(매운맛)’, 280 이상일 경우 ‘4단계(매우 매운맛)’로 구분해서 소비자들의 놀라움을 경감시켜 주고 취향을 확인하도록 해준 것이죠.
한국의 라면이 갖는 특징이라면, 매운맛도 매운맛이겠지만, 무엇보다 매운맛이 담겨있는 국물에 있습니다. 한국의 특징을 보여주는 국밥의 문화와 같이 한국인들은 라면 국물을 마시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국물에 밥을 말아 국밥처럼 먹는, 국물에 진심인 면을 보이죠. 중국인들이 훠궈 등의 음식을 먹으면서 국물을 먹지 않고 건더기만 먹는 것이나 일본인들이 샤브샤브를 먹으면서 국물을 먹지 않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면모를 보입니다.(한국인이 국물에 진심인 이유에 대해서는 뒤에 따로 논하기로 하죠.)
그리고 역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라면은, 제대로 진수성찬을 먹지 못하고, 밥을 먹지 못할 때, 저렴한 가격의 음식으로 끼니를 대용했던 못살던 과거를 떠올리게 합니다. 없이 살던 그 옛날, 혼자서 끼니를 때우던, 혹은 가족이 모두가 둘러앉아 키득거리며 국물 한 사발을 더 얹어주고 밥까지 말아먹던 그 추억의 음식인 셈이죠. 무엇보다 일본의 라멘에는 없는, 한국인들에게 라면은 김치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는 점도 라면이 라멘이 아닌 한국의 소울푸드임을 증명합니다. 이 글의 시작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한국인에게 라면은 소울 푸드라는 말에 어찌 보면 딱 어울리는 음식이기도 한 것이죠.
세계라면협회(WINA, World Instant Noodles Association)에 따르면 2022년 글로벌 라면 소비량은 1212억 개로, 2021년 1181억 8000만 개보다 30억 2000만 개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중 우리나라의 라면 소비량은 39억 5000만 개로 전년대비 1억 6000만 개(4.2%) 늘었습니다. 한국은 글로벌 라면소비 8 위국에 해당하고 연간 라면 소비량이 2022년보다 4개 늘어난 77개로 조사되었다고 합니다.
세계에 나가서 찍어오는 음식 예능에서도 라면은 한국의 음식으로 통용됩니다. 이제 한국 라면의 인기는 한반도를 넘어 세계로 퍼지고 있는 것이죠. 특히 러시아와 중국에서도 한국 라면이 자국의 라면보다 훨씬 비싸게 잘 팔리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한국 드라마 팬들이 드라마 속에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배우가 라면을 먹는 모습을 보고 직접 맛본 후 라면에 푹 빠져버린 경우도 많구요.
건강한 웰빙 푸드가 아닌 인스턴트 라면이 한국인의 소울푸드로 불릴만한 이유를 이제 조금은 공감하실 수 있을까요? 오늘 점심엔 라면이 또 땡기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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