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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Aug 19. 2021

옥살이에 부도나서 거지로 마흔일곱이 되어서야

인스턴트 라면이라는 것을 개발해내다!

1910년 타이완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부모를 모두 여의게 되면서 직물업을 하던 조부모 밑에서 자랐다.

사업수완이 뛰어났던 그는 스무 살에 타이베이에 메리야스 가게를 열었고, 22살이 되던 1932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1934년, 리츠메이칸 문학부 경제과를 수료한 후 면 가게를 차렸지만, 전후 상황이라 돈을 벌기는커녕 빚만 잔뜩 지게 되었다. 하지만, 섬유 도매업, 무역업 등 여러 가지 사업을 하면서 큰돈을 벌게 되고 일본 여자와 결혼도 하게 된다.


안도 모모후쿠(安藤 百福) 또는 원래 타이완 이름으로는 우바이푸(吳百福)라는, 일본을 대표하는 라면으로 유명한 닛신식품의 설립자이자 회장의 이야기이다.


실제로 그는 2차 세계대전 전쟁통에, 물자를 빼돌렸다는 혐의로 옥살이를 하게 되었고, 그 후 사업을 하면서 탈세혐의로 또 2년 동안이나 감방 생활을 하게 되면서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고 알거지가 되는 시련을 겪는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았고 타고난 근면성과 사업 수완을 바탕으로 다시 한번 금융업을 통하여 재기에 성공한다.

젊은 시절의 안도 회장

  하지만, 47세 되던 해에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던 신용협동조합이 부도가 나면서 살고 있던 집 하나만 남기고선 다시 빈털터리가 되고 만다.

  그는 자신을 키워줬던 할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리며 절망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마라. 머리를 잘 쓰면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연구해라. 그럼 언젠가 반드시 성공할 날이 올 거야.”


당시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먹을 것이 극도로 부족한 실정이었다. 그 역시 식량 부족으로 인한 배고픔을 직접 겪은 입장에서, 향후 식품산업이야말로 장래가 밝은 산업이라는 생각을 하고는 지속적으로 사업 아이디어를 고심하게 된다.

당시에는 쌀이 부족하여 값싼 밀가루로 만든 빵이나 국수가 주된 식량이었는데, 일본인들에게 배를 채우기에는 그나마 빵보다 국수가 나았다. 하지만 국수는 빵처럼 언제나 어디서나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그래서 늘 길거리 포장마차에는 국수를 먹으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 날 안도는 포장마차에서 값싼 국수를 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다가 ‘좀 더 빠르고 간편하게 국수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언제 어디서나 싸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국수를 만들기로 마음먹고 그동안의 관심을 토대로 연구를 시작한다.


그렇게 오사카 이케다 시에 있던, 자신의 집 뒤뜰에 연구실이라고 차리고 그는 라면 개발에 착수하게 된다.

사실 당시 일본에서는 미국의 원조 농산물인 밀가루를 이용한 새로운 대체 식품을 개발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래서, 1953년에는 '즉석 굴곡면'이 특허로 나왔고, 1955년에는 ‘즉석 중화면’이 시판되었으나 너무 잘 부서진다는 단점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얻지 못했다. 즉, 성공하진 못했지만 나름대로 인스턴트 라면에 대한 시도는 꾸준히 있어왔다. 아무도 성공하진 못했던 것이다.

그역시 연구에 착수하고 나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 도전과 좌절을 반복하며 라면을 만들기에 적합한 반죽을 만드는 데 성공하고, 기계로 면을 대량 생산하여 원가를 낮출 수 있는 방법까지도 개발하게 된다.

그러나, 한 가지 결정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젖은 반죽으로 만든 면이 부패하지 않도록 오랫동안 보관하고, 조리할 때는 다시 쉽게 풀어지도록 하는 것을 도저히 해결할 수가 없었다. 면을 삶아서 말려보기도 하고, 햇볕에 건조하여 끓여보기도 하는 등 여러 방법을 시도했지만 그는 실패만 거듭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찾은 선술집에서 튀김을 튀기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기름으로 면을 튀겨서 건조하는 방법을 시도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연구실로 달려간다.


그리고 마침내 ‘순간 유열 건조법’이라는 독특한 방법을 발견하게 된다. 

젖은 면을 끓는 기름에 넣어서 튀기면, 면 내부의 수분이 증발하면서 면 표면의 미세한 구멍에 물이 스며들면서 본래 면의 모습을 되찾게 될 뿐만 아니라, 면이 익는 시간도 단축할 수 있다는 원리였다.


지금 우리가 먹는 라면의 꼬불꼬불한 면은 부피를 줄이기 위한 것도 있지만, 빠른 시간 내에 많은 기름을 흡수해 잘 튀겨지고, 조리시간도 단축된다는 점이 적용된 결과이다.     

이 간단한 원리가 그 간의 고민을 한방에 해결해주었고, 여기에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닭고기 맛으로 국물을 준비하여,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치킨 라면’이 탄생하게 된다.

마침내 1958년 8월 25일 ‘끓는 물에 2분’이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닛신식품의 ‘치킨 라면’이 시장에 선을 보이게 된다.

지금처럼 분말수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면 속에 수프까지 들어있는 라면이었는데, 판매가 시작되기가 무섭게 일본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히트상품으로 떠오른다.


이 치킨 라면은 일본인들에게 ‘마법의 음식’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고, 값싸고 영양가 높은 대용식으로 순식간에 전국적으로 퍼지게 된다.     


라면 개발에 성공한 안도 회장은 자신의 남은 인생을 모두 라면에 걸기로 결심한다.

1961년에는 치킨 라면에 카레를 가미한 ‘치킨 카레 라면’을 개발하여 또 한 번 큰 히트를 기록하였고, 1963년에는 인스턴트 볶음면인 ‘닛신 야끼소바’를 내놓았고, 또 5년 후 1968년에는 또 다른 인스턴트 라면인 ‘테마에잇쵸’를 출시하는 등 라면의 종류를 다양화시키기 시작했다.

지금도 인기있는 테마에잇쵸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후 ‘번거롭게 끓이지 않고 물만 부으면 되는 라면은 없을까?’라는 고민을 시작했고, 마침내 1971년, 뜨거운 물만 부으면 되는 ‘컵라면’을 개발하면서 라면의 새로운 역사를 열게 되고 그 자신은 ‘라면왕’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

컵라면의 개발은, 서양인들이 라면을 컵 안에 넣고, 포크로 부숴먹는 것을 보고서는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1971년 세계 최초로 개발되어 출시된 컵라면

이후 닛신 제품에서 개발되어 나온 라면 제품만 이제까지 3000여 종에 달한다고 한다.

2005년 우주선 디스커버리 호의 우주 비행사가 우주 정거장에서 먹었던 ‘스페이스 라면'까지, 2001년부터 연구 끝에 4년 만에 성공하여 라면의 우주 시대를 주도하고자 했다.


면이 익는 온도를 70도로 낮추고, 우주에서 국물이 공중으로 튀지 않도록 점도를 높인 제품으로 '인간은 어딜 가든 어떤 환경에서도 먹지 않고는 버티지 못한다. 우주에서도 마찬가지다.‘라며 무려 91세의 나이에 개발한 것이다.          

그렇게 연구에 매진하던 그는 2007년 심장마비로, 향년 96세에 사망하였다.

사실, 일본 식민지 치하의 대한민국 사람이 일본에 귀화하여 일본을 거둬먹이겠다고 라면을 개발했다면 그는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급의 비난을 받으며 진작에 암살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을 은혜의 나라라며 받들고 있는, 우리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나라 아닌 타이완이므로 그 부분은 논하지 않기로 하자.(사실 이런 이유로 안도 회장을 이 시리즈에 담지 않을까도 생각했었다.)


누군가 그랬다,

사업을 크게 한다고 하면 감옥에 가는 일쯤이야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최근, 감옥을 제집 드나들듯 들락거리는 대기업 총수들을 보면서 한심스럽다는 생각을 넘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기업 총수가 되었든 중소기업 사장이든, 파산을 하거나 감옥을 들낙거리는 일이 좋을 리 없다.

감옥에 들어가는 것은 여러 모로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 것이다.

그 안에서 밖에서 누리던 그 무엇을 누릴 수 있을 것이며, 무엇보다 그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파산도 그렇다.

전에도 한번 언급한 바 있지만, 기업 운영은 결코 게임이 아니다.

파산을 게임오버처럼 생각하고 동전을 집어넣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닌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는 사업에 모든 것을 걸고 노력한 것이 아닌 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나이 마흔일곱이 되어 모든 것을 잃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자신이 일궜던 사업을 모두 말아먹고 나서 그것도 자신이 하지 않았던 사업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이라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말도 안되는 일을 그는 해낸 것이다.


게다가 무엇보다 안도 회장은 전형적인 장사꾼이었다.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았고, 그것을 개발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올인했다.

실패를 워낙 많이 해서 이루 셀 수 없을 정도였지만, 그는 결국에는 성공했다.

성공에서 안주하지 않고 그는 계속해서 더 위로 위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자 했다.

한국의 삼양식품에서 라면의 기술을 팔라고 했을 때도 그는 단호히 거절했다.

그 기술은 자신의 피와 땀으로 만든 것이라 어느 누구에게도 돈 받고 팔 수 없겠다고 거절한 것이다.

당신이 열심히 노력하여 일군 사업이 모두 날아가버리고

당신의 나이 마흔일곱이라면

당신은 당신이 손도 대보지 못한 새로운 사업을 하겠다고 뛰어들겠는가?

아니, 그런 사람을 정상으로 볼 수 있겠는가?

한계는, 늘 다른 사람들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마라.


당신이 한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당신에게는 더 이상 한계란 없다.

그저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 끝이 아니다.

당신에게 한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당신에게는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

그리고 그 길 역시 당신이 당신을 위해 미리 만들어 둔 것임을 잊지 마라.


당신이 새롭게 게 될 길을 응원한다.

당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어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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