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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n 21. 2024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

내가 나를 믿어주지 못한다면 아무도 나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Was mich nicht umbringt macht mich staerker.”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


니체가 그의 저서 <돌아오는 자, 즉 아무도 없음>에서 한 말이다.


4월 말 한국에서의 온 안 좋은 소식, 그리고 5월로 이어진 실망, 그리고 5월 부부의 날 있었던 폭탄까지 이르러 버티고 버티던 멘탈이 무너지며 6월 초부터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아등바등 버티며 버티던 팽팽하던 줄이 끊어질 듯 아슬아슬 데롱거리는 느낌에 다른 무언가를 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그리고 어제 그 줄은 두둑 하는 소리를 내며 끊어질 듯 비명을 내 안에서 내기 시작했다.


니체가 위의 저서에서 언급했던 언급의 행간을 더듬어보면, 결국 인생에서 마주치게 되는 수많은 어려움과  실패 그리고 그로 인한 좌절, 슬픔들이 나를 파괴하지 못하게 하고 그것을 견디고 넘어간다면 그 결과 그 경험이 주는 교훈과 성장을 통해 나는 훨씬 더 강해질 것이라는 뜻이다.


사실 니체는 생전에 그의 사상이나 생각을 인정받지 못했다.

결국 그가 죽고 난 뒤 사람들은 그의 철학으로 인해 20세기 철학의 반석을 다졌다고 인정했다.


어머니는 늘 내가 힘겨워할 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사람이 죽으면 다 끝인 건데. 죽고 사는 일 아니면, 다 괜찮다. 이겨낼 수 있어."


틀린 말씀이 아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아침 출근길에 나섰다가 자신의 실수나 잘못도 아닌데 차에 치여 죽는 사람을 본다.

어제까지 방송에서 반짝반짝 빛나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혼자서 힘겹게 유서를 쓰고 유명을 달리한 스타들을 본다.


니체도 어머니도 그저 단순히 힘겨운 사람들을 위로하려고 없는 말을 꺼낸 것이 아님을 다시 깨닫는다.


작게는 내 손톱아래 박힌 가시가, 크게는 사업의 실패가, 혹은 사랑하는 이가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 아픔 등이 우리 삶을 뒤흔들고 쓰러뜨리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자빠뜨리려고 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지받지 못하는 것, 그간 아무 조건 없이 모두 쏟아부었음에도 그 진심과 노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 어쩌면 그간 자신의 인생이 모두 폄하된다는 심한 상실감을 느낄 수도 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체는 자신의 삶을 통해, 그리고 자신이 겪은 고통들을 곱씹으며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한 글자 한 글자 자신의 저서에 피처럼 토해냈다. 최소한,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며 그렇게 느꼈다.


타조나 꿩처럼 위기의 순간에, 절체절명의 두려움에 자신의 머리를 풀섶에 박아버리고 모든 현실을 외면하고 싶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상실감에 그저 간단하게 자기 목숨을 내던져 이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수도 있다.

금문교에서 자살한 사람들의 1558켤레의 신발

하지만, 그 고통들을 이겨내고 살아낸 사람들은 결코 그들이 그때 죽었어야 한다고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죽겠다고 몸을 내던졌다가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이들은 그때 그렇게 목숨을 버리지 않았던 것을 다행이라 여긴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한다면 내가 나 자신을 믿어주고 지지하지 않는다면,

그 어느 누구도 나를 믿고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니체가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죽은 뒤에라도 자신의 가치를 세상이 알아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그는 그저 하루하루를 자신을 믿고 자신이 고통에 무릎 꿇지 않고 묵묵히 앞으로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도록 버텨냈을 뿐이다.


언제나 힘겨운 일은 생기기 마련이다.

마냥 행복한 나날은 없다.

그것을 내 삶의 거름으로 쓸 것인지 내가 거름이 될 것인지는 결국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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