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조(OMEN) – 1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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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100% 실화에 근거한 이야기임을 밝혀둡니다.
큰 지진이나 그로 인한 여진 같은 형태가 대형 쓰나미로 내륙을 삼키러 다가오기 전에는 ‘전조(前兆)’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 대학교수에게 명함을 건네주기는 했지만, 대개 그렇게 일주일에 명함 한 통을 다 뿌려도 돌아오는 연락은 10분의 1에 불과했고, 그중에서도 킬 당하지 않을 만한 기사거리로 살아남는 것은 다시 그중의 10분의 1에 불과했다.
그래서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하루살이처럼 기사를 쫓아다니고 다시 그걸 정리하고 정리한 걸 검사 맡고 그 검사 내용 여부에 따라 보강취재를 하고 그 와중에 마와리 역할을 또 제대로 안테나 세우고 해야 하고, 틈틈이 경찰들과 관계를 긴밀하게 맺겠다고 친한 척 형님 형님 하면서 술도 마시고 하는 생활이 연속이었기에 명함을 받았다 하더라도 내가 그에게 다시 연락했을 가능성은 사실 희박했다.
그런데, 그날 녹초가 되어 경찰서의 기자 숙직실에 기어들어오다시피 하여 막 충혈된 눈에 세수를 하고 잘 것인가 말 것인가를 아주 잠시 고민하는 그 사이에 핸드폰에 이메일과 메시지 도착 메시지가 동시에 떴다.
메일 보냈으니 확인하고 체크한 뒤 피드백 콜 바랍니다.
짧지만 대번에 오늘 낮에 만났던 그 대학교수임을 바로 알아차릴 만큼 일반인스럽지 않은 독특한 어투였다.
메일에는 간략한 인사말과 함께, 온라인 카페 링크가 적혀 있었다.
바로 들어가니, 카페지기에게 허가를 받아야 하는 비공개 카페로 되어 있었다. 하긴 개인 사건 기록을 정리했다면 그걸 공개 카페로 하는 것이 더 이상하긴 했을 것이다. 승인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보내고 세수를 하고 몸을 쓰러뜨리며 핸드폰을 잡는데 바로 카페지기의 승인이 와 있었다.
온라인 카페는 간략하고 명료하게 카테고리를 나눠 <사건 일지>라는 카테고리에 일지의 형태로 경과에 대한 사실을 기록한 것과 대화 녹취와 통화 녹취라는 <증거 자료실>의 카테고리로 나뉘어 있었다.
카페 회원을 보니, 아까 만나 통성명을 했던 김 교수가 카페지기였는데, 그 밑에 ‘발검 무적’이라는 다른 회원이 한 명도 보였다.
‘누구지? 교수 부인인가?’
일단 세수를 해서 그랬는지 온라인 카페에 일목요연하게 그간의 사실을 정리한 것이 신기해서 그랬던 것인지 몰랐지만, 정신이 반짝 들어 간략하게 카페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그가 2018년 3월 말에 2년간의 전세계약을 하고, 교환교수 일정을 마치고 2019년에 돌아와 2020년 3월 말 계약 만료를 마치고 만나기 전에 그가 기록했던 일지를 보며, 낮에 잠시 들었던 괴팍하달까 사이비 냄새가 나는 그 목사가 뭔가 사고를 칠 것이라는 전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때 온라인 채팅으로 발검 무적이라는 아이디가 내게 채팅을 요청해왔다. 이미 김 교수가 들어와 3인의 채팅룸이 마련되었다. 내가 카페에 온라인 중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채팅 요청을 해온 것이니 거절하고 끊어버리기도 뭐해서 일단 채팅을 수락했다.
권 기자 : 안녕하세요.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 교수 : 네. 바로 체크하러 들어와 주어 고맙습니다.
발검 무적: 안녕하세요. 죄송하지만 아직 면식도 없는데 단도직입적으로 뭐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권 기자 : 실례지만, 누구신지...
김 교수 : 아, 소개를 한다는 걸 깜박했네요. 제 선생님이십니다. 해외 대학에 계셔서 이 사건과 관련해서 제가 법률적 자문도 받고 이 카페를 통해서 소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료 정리를 하라고 일러주신 분이시기도 합니다.
권 기자 : 아, 네. 그런데 물어보시고 싶은 거라도...?
발검 무적 : 이 건을 취재할 의향으로 정말 자료를 공유해달라고 한 게 맞습니까?
그의 말처럼 단도직입적으로 갑자기 훅 들어온 칼이 배에 박혀 숨이 턱 막히면서 온 몸이 경직되는 듯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권 기자 : 아, 아직 사건에 대해서 명확하게 다 파악하지도 못한 터라서요.
발검 무적 : 갑작스럽게 결례일 수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해를 구하고 묻겠습니다. 한 가지만 약속해줄 수 있겠습니까?
권 기자 : 네? 무슨 말씀이신지...
발검 무적 : 수습기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권 기자 : 네. 맞습니다.
발검 무적 : 당연히 사건에 대해서 파악하고 나서 그것도 선배 기자에게 컨펌받고 데스크까지 거쳐야 할 일이니 지금 확신할 수 없다는 건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김 교수에게 억울한 일이 있다면 취재를 통해서 밝혀드리겠다고 말했다 들었습니다.
권 기자 : 그건 맞습니다. 저도 수습이긴 하지만, 기자이니까요.
그가 딱히 불손한 것은 아니었지만 묘하게 자존심을 건드리는 듯한 말투에 나도 모르게 발끈한 반응이 튀어나왔다.
발검 무적 : 킬 되어도 좋습니다. 최소한 이 사건에 대한 진실을 기자로서 피의자 취재를 포함하여 진실을 밝혀줄 수 있겠습니까?
권 기자 : 네? 그건 기자로서 당연히 할 일입니다. 굳이 그렇게 약속까지 안 하셔도....
발검 무적 : 그렇게 말하면서 언제든 꺼리가 안된다고 생각하면 버리는 기레기들이 많은 세상이니 진정한 기자가 되겠다는 아직 때 묻지 않은 수습기자라면 그 약속을 해줄 수 있을 거라 믿고 묻는 겁니다.
권 기자 : 좋습니다. 기사를 꼭 내겠다는 약속은 못하더라도, 제가 기사거리가 될지 말지에 대해 당연히 진위여부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니 그것은 약속드리겠습니다.
발검 무적 : 감사합니다. 그 약속, 믿고 있겠습니다.
김 교수 :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선생님도 들어가시고, 권 기자도 일단 천천히 사건을 파악해보고 이야기 나누지요. 사건 일지도 있지만, 오늘 제출했던 고소장도 다시 정리해서 업로드해두었습니다.
권 기자 : 네. 알겠습니다.
경황없이 훅 들어왔던 채팅은 내 양심에 쑥 꽂혀 있던 칼이 뽑히듯 창이 닫히며 사라져 버렸다. 뭔가 찜찜한 생각은 들었지만, 잠이 확 다 달아다는 바람에 숙직실의 퀴퀴한 어둠 속에서 찬찬히 김 교수의 일지를 하나씩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았던 그의 일지는 대부분 전세를 살던 기간에 있던 해프닝이 위주였다.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교회가 없고 신도들을 집안에 들이려는 목적이 빤했던 사이비 목사의 언행은 여전히 저주의 기도를 또 언급하며 겁박을 했고, 김 교수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그를 제압하고 억눌렀다.
본래 김 교수의 별장은 태양광 전력설비가 갖춰져 있었고, 한국전력으로부터 송주법으로 인한 전기세 감면 혜택을 받고 있어, 김 교수가 사용하던 시기에는 전기세를 단 한 번도 낸 적이 없을 정도로 적립해둔 전기량이 많았다.
그래서 목사가 이사를 오고 난 후, 전기요금 고지서를 보면 그간 김 교수가 적립했던 전력량을 모두 사용하고 여름에도 에어컨을 얼마나 썼음에도 최대 사용량이 많았던 여름을 기준으로 비용이 한 달에 10만 원을 넘지 않았다.
증거 자료실에 올린 김 교수의 전기 고지서에 의하면 적립되어 목사가 내지 않고 절감한 비용은 무려 2년간 무려 200여만 원이 넘었다.
그런데, 지하수를 사용하던 집에서 갑자기 물이 나오지 않는다며 목사가 A/S를 불러서 그것을 수리했는데, 50여만 원이 나온 것을 당시 해외에 있던 김 교수에게 내라며 청구했던 것이다. 김 교수는 차분히 전기세 부분에 대한 설명을 했고, 목사가 그간 적립해둔 비용을 사용한 것이 당시 기준으로 이미 100만 원이 넘으니 목사가 사용하다가 문제가 생긴 지하수 파이프 교체 비용을 청구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랬더니 또 발끈한 목사가 ‘내가 당신의 가족들에게 어떤 기도를 하게 될 줄 알고 나에게 이렇게 함부로 구는 거냐?’라고 이미 써먹은 레퍼토리로 김 교수에게 협박을 한 것이었다.
물론 김 교수는 정 그렇다면 한국전력 측에 고지서를 재 청구하여 목사가 그간 사용하였으나 적립금으로 대체했던 것을 다시 청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고, 목사는 자신이 100만 원 넘게 토해내고 앞으로도 전기요금 감면 혜택을 못 받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바로 꼬리를 내리는 정도의 해프닝이었다.
그 와중에 두 사람 간의 녹취한 통화 내용을 들어보면, 목사가 모든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집안의 CCTV를 껐지만, 실제로 마을에서 공동사업으로 CCTV를 집 앞 골목에 설치하면서 골목 끝에 있던 김 교수의 별장에 드나들었던 교인들의 정황이 모두 그 보안 CCTV에 찍혔다는 지적이 오갔고, 그것에 꼬리를 밟혔다고 생각한 목사가 더욱 흥분해서 다시 자신이 하는 저주의 기도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느냐는 돼먹지도 않은 협박을 하는 것으로 이어졌었다.
사실 김 교수는 이미 그가 집에 교인들을 불러들여 예배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증거를 확보했지만, 그저 원만하게 집을 내보내는 것으로 할 생각이었다.
문제는 목사가 재계약을 하지 않고 집을 이사하겠다고 했을 때, 김 교수의 아내가 별장을 더 이상 살릴 의미가 없다며 다시 전세를 주려고 했는데, 입도선매로 집을 보러 왔던 사람들에게 이상한 말이 나오면서 부동산 업자들이 전화를 걸어 이상하다는 말을 건네면서 시작되었다.
“집에서 이상한 옛날 나프탈렌 냄새가 진동을 하구요. 물이 샌 부분이 있는데, 그걸 닦거나 손질하질 않아서 집이 다 상해 가고, 프랑스 원목 주방 가구들이 누가 싸운 것처럼 발로 찾는지 깨져있고, 특히, 사진에는 정원수가 관리가 잘 되어 있었는데, 갈색으로 죽은 잎들이 눈처럼 소복하게 그대로 쌓여있고, 전혀 관리 안된 집 티가 너무 많이 나요. 특히 바깥쪽을 보는 소나무는 쓰러졌는지 칭칭 동여매여 있고, 하여간 전원주택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살아보고 싶은 사람들이 찾는 건데, 상태가 그러니까 다들 뜨악해하며 도망갔어요.”
해외에서 그런 말을 들은 집주인 입장에서는 도대체 집의 상태가 어떻게 되었는지 의문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목사는 통화 내내 굉장히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보이며 도저히 그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집안 여기저기를 사진 찍어서 보내오는 정성을 보였다.
증거 자료실에 올라와있던 사진을 보면, 목사가 보낸 사진의 상태도 상태였지만,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오는 사진이 있었다. 집안 사진을 찍어 보낸다고 한 것 같은데, 그가 찍은 사진에, 버젓이 거실에 화이트보드에 그날의 말씀이라는 교리를 적어놓고 그 옆에 키보드로 찬송가를 연주할 수 있게 준비해놓고, 목사의 연단이 버젓이 큼직하게 거실의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사진을 보낸 것이었다.
끝까지 자신은 집안에 교인들을 불러들여 예배 행위 같은 것을 하지 않았다고 했던 자가 자신이 그 사진을 버젓이 보낸 것을 보면 그리 똑똑한 사람은 아닐 거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다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런데, 정작 김 교수가 2019년말에 한국으로 돌아와 2020년 3월 말 전세 계약이 끝나갈 즈음 양쪽 모두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의향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묘한 기분 나쁜 전조가 글 속에서 스멀거리면서 올라오는 것 같았다.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 없이 메시지를 통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목사가 이사를 할 것이니 전세 보증금을 달라고 요구하였고, 김 교수 역시 집이 전체적으로 상한 곳이 없는지 확인하고 절차에 맞춰 그렇게 하기로 약속을 한 대화까지 일지와 카톡 증거 자료를 통해 읽어 내려갔다.
집의 손상을 체크하겠다고 만났던 계약 종료 석 달전의 김 교수 내외의 별장 방문에서부터는 피식 터져 나왔던 내 웃음기가 싹 사그라질 정도로 심각한 전조가 느껴졌다. 부동산 업자들의 설명대로 집안은 거의 파쇄된 상태였다.
자료실에 업로드된 사진만 보더라도 이탈리아산 벽난로의 두꺼운 방화 유리가 깨져 있는 것은 기본이었고, 프랑스 원목이라는 주방 가구들은 강아지가 뜯어먹은 것처럼 손잡이 부분은 다 뜯겨 있었고, 대리석 아일랜드 식탁은 정말로 한쪽 부분의 나무가 깨진 듯 삐뚤어져 있었다.
제삼자인 내가 봐도 어이가 없었던 것은 정말로 정원의 소나무들 위에 소나무 갈잎이 모두 눈처럼 엄청나게 그대로 쌓여 있었던 것이었다. 정원수 관리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두 해가 지났으면 죽은 소나무 잎들이 그 위에 쌓여 나무에 부담을 준다는 것은 나무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알만한 것이었는데, 그가 처음 집을 세 달러고 했을 때의 약속과는 한참이나 먼 황폐해진 비싼 소나무들이 무거운 갈색 외투를 하나같이 입고 있다.
가장 피크였던 것은 그중의 한 소나무가 완전히 뿌리째 쓰러져있는데, 균형을 잡겠다며 목사가 그 비싼 오래된 소나무를 한쪽을 톱질로 잘라버린 것이었다. 목사는 태연히 그렇게 말했다.
“한쪽으로 쓰러지니까 그 반을 자르면 좀 쓰러지지 않을까 싶어서 내가 잘랐습니다.”
그제서야 나는 김 교수가 보낸 이메일 주소를 확인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첫인상서부터 만만치는 않았던 인물이긴 했지만, 아까 온라인상에서 만난 선생님이라는 발검 무적도 그렇고 혹시나 싶은 생각에 김 교수의 이메일을 봤다. 대학교수에게는 명함이 의미가 없다. 하지만 때론 그들이 속해 있는 조직의 이메일 도메인은 그들의 아이덴티티를 명확하게 밝혀주곤 한다.
“이런, 씨이!”
나도 모르게 그의 이메일 도메인을 보고 그 두 교수에 대한 의문이 풀린 것과 동시에 도끼로 찍힌 듯 발등이 아려왔다.
나는 그들에게 당당히 ‘나는 기레기가 아니니 진실을 밝히겠다’고 공언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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