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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Sep 27. 2021

동독 출신의 이혼녀에다가 정치가는커녕 과학자였음에도,

유럽 전체를 이끄는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다

1954년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폴란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베를린 교외 출신의 루터교회 목사였고, 어머니는 함부르크 출신의 영어교사였다. 아버지가 동독으로 발령 나면서 그녀가 갓난아기일 때 부모를 따라 동독으로 이주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동독에서 서독으로 옮겨 가던 시절에 그녀의 가족은 오히려 서독에서 동독으로 이주한 것이다.


할아버지가 통일사회당원(동독의 공산당)

이었다고는 하나, 그녀의 가족은 동독의 지배층으로 출세하기에는 별로 유리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종교에 냉담한 공산주의 사회에서 목사 가족이라는 점은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이었고, 또 외가가 서독에 있어 서독의 외가와 종종 왕래하기까지 한 것도 한 이유가 된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전까지 그녀는 종종 함부르크로 가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외가 친척들이 동독을 방문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을 아버지가 사목하는 동베를린에서 북으로 80km 떨어진 템플린(Templin)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보냈다. 목사의 아내라는 이유로 교사 출신인 그녀의 어머니는 동독의 학교(모두 국립)에서 일할 수도 없어 당시 대다수 동독 여성들과 달리 직업도 없이 가정주부로 있어야만 했다.

 

청소년기에는 대다수 동독 학생들처럼 공산당의 청년단에 가입하여 성년식을 하지 않았고, 도리어 루터교회의 견진성사를 받았다. 이 때문에 불리한 입지에 처할 수도 있었지만 성적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명문 라이프치히 대학교에 입학하여 물리학을 전공하기 시작한다. 이후에도 거듭된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의 입당 요구를 거절하고, 다른 이들을 감시해 보고하라는 슈타지의 협력 요구도 단호히 거절했다.


이런 양심적 행동 덕분에 동독 출신임에도 전혀 커리어에 손상을 받지 않고 통일 독일의 정계에 성공적으로 데뷔할 수 있었다. 동독 출신 정치가들 중 상당수가 슈타지와 어쩔 수 없이 협력했다가, 통일 이후 그 사실이 드러나면서 전 국민의 분노의 대상이 되어 사회적으로 매장당해 버린 것과 매우 대조적이라 하겠다.

카를 마르크스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였고, 1977년에 결혼하였다. 1978년에 물리학 학사 학위를 받자마자 동베를린의 베를린 독일 과학원 물리 화학 연구소에 들어가 남편과 함께 일하며 박사과정을 밟게 되나, 둘 사이 관계가 틀어져 1982년에 이혼하였다. 이혼 후에도 학위과정은 계속해 1986년 양자화학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화학 분야 최고 권위지라고 인정받는 JACS에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가던 과학자였다.

 

1986년 함부르크에 사는 외가 쪽 사촌 결혼식이 있었는데, 그녀는 번듯한 직업이 있었기 때문에 동독 당국으로부터 서독 방문을 허가받는 특권을 누렸다. 돌싱으로 살다가 통일을 맞이하였고, 통일이 되던 해에 기민당에 입당했다. 그리고 1998년 동료 화학교수인 요아힘 자우어와 재혼했다. 재혼 후에도 계속 전 남편의 성을 쓰고 있고, 박사학위 소지자이기 때문에 이름 앞에 늘 Dr.가 붙는다.(독일 문화에서는 이것이 영예이기에 존중의 의미로 반드시 사용한다.)

양자화학 분야의 박사학위 과학자이면서 독일 연방 공화국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최초의 동독 출신 총리인 앙겔라 도로테아 메르켈(Angela Dorothea Merkel)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명실공히 철의 여인 대처 이후 여성 정치인의 리더이며, 유럽연합의 지도자이자 2005년 11월부터 현재까지 독일의 제8대 총리로 무려 16년 동안이나 독일의 총리로서 독일과 유럽을 이끌어온 장본인이다.

 

헬무트 콜에게 발탁되어 1991년부터 1994년까진 독일 여성청소년부 장관을, 94년부터 1998년까진 환경, 자연보호, 원자력부 장관을 지냈다. 2000년 4월 10일부터 기민당 최초로 여성 의장을 지냈다. 원내 제2당인 사민당과 내각 구성을 협력하는 좌우 대연정을 구성하여 2005년 11월 22일부터 독일의 제8대 총리 자리에 오르게 된다.


사실, 처음 총리가 될 때부터 그녀가 가는 길은, 실패와 위기의 연속이었다. 2005년 총선에서 사민당이 의석 수를 줄였지만 기민당도 의석수가 줄어들었다. 당초 기민당의 압승이 예상되었지만, 토론회에서 그녀가 상대당인 사민당 소속 현직 총리였던 게르하르트 슈뢰더에게 판정패를 당한 데에다가, 선거 막판 부가가치세를 인상하면서도 정작 기업에 대한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공약이 논란이 되어 중산층 이하 시민들의 지지율을 대거 깎아 먹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사민당과 내각 구성을 협력하는 좌우 대연정이라는 것을 구성하며 총리자리에 오른다.(정치학의 복잡한 얘기가 될 듯하여 대연정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유럽의 정치평론가들은 ‘독일 정치가 메르켈 이후와 이전으로 나뉜다’는 평가에 대해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최근 한국에서 선거 때만 되면 나오는 그놈의 ‘중도층’을 그녀는 확실한 자신의 기반으로 삼아 16년간의 세월을 버텨냈고, 심지어 총리직에서 물러나는 현재 그녀에 대한 지지도는 80%에 육박하고 있다.

그래서인유럽의 많은 언론·전문가들은 메르켈 집권기를 ‘황금시대(goldene Zeit)’라고 부른다. 실제 유엔(UN)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 발전 해법 네트워크(SDSN)가 주관한 2020년 ‘세계 행복 보고서’에서 독일은 G7 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


그녀가 총리로 임명되던 당시 독일은, ‘유럽 환자’로까지 조롱받았지만 메르켈 집권이 끝나는 2021년 현재, 유럽 최강국으로 재도약했다. 국가 GDP는 물론 개인소득도 5만 달러에 육박해 지난 16년간 130% 성장했다. 실업률도 세계 최저 수준인 3%로 거의 완전고용 상태이다. 출산율(1.57명)도 크게 올랐고, 여성 의원 30%, 기업의 여성 임원 30% 의무화 등으로 성평등 사회의 모범으로 가고 있다. 정치 리더의 제일 중요한 덕목이 ‘실적’이라면 메르켈은 이미 그 대표적안 산증인이나 다름없다.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그녀의 16년 총리 인생에 위기는 늘 있었고, 그녀는 그것을 잘 극복해왔다. 그런 그녀에게 무슨 대단한 실패가 있었겠느냐고 반문하고 싶은가? 정치판에서 위기와 실패는 매일매일 살얼음판과 같이 깔려있다. 어려서부터 논증을 바탕으로 한 논리싸움으로 학습되어 무장된 독일문화라면 그 정치판은, 한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총성없는 전쟁터에 해당한다.

코딱지만한 한국의 광화문에서 이념이 둘로 갈려 서로 이념논쟁으로 정치 개싸움을 벌이던 것이 엊그제 일이다. 지금도 물밑에서는 그 개싸움을 벌여 자신의 존재가치를 얻어내고자 하는 족속들의 눈치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통일의 길을 밟은 독일은 양극단 정치의 최악을 경험한 나라였다. 가장 오른쪽인 나치즘과 가장 왼쪽인 공산주의를 모두 경험했다.

우리보다 먼저 통일의 길을 밟은 독일은 동독과 서독의  심각한 갈등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메르켈이 집권을 시작한 2005년, 독일은 심각한 통일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서독인은 동독인을 게으른 ‘오씨’로, 동독인은 서독인을 거만한 ‘웨씨’로 서로 비하했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한 구동독 출신이자 여성인 메르켈은 ‘카리스마가 약하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약점인 ‘무티(엄마)’의 리더십으로 내세워 최대 장점이자 무기로 만들었다.


무티 리더십의 기반이 된 것이 새 정치문화 패러다임의 창조, 다름아닌, 중도정치의 강화였다.


메르켈은 16년 재임 기간 이른바 ‘코끼리 결혼식’을 세 번이나 치른 것으로 유명하다. 중도우파인 기민·기사 연합(CDU· CSU)과 중도좌파인 사민당(SPD)과의 대연정을 이뤄내 12년간 명실상부한 중도정치의 꽃을 피웠다. 우리와 비교하자면 민주당과 국민의 힘이 공동정부를 세 번이나 구성한 셈이라고 할까.

그녀가 총리가 되기 전이던 1999년, 기민당 사무총장 시절 그녀는 자신을 정치계에 데뷔시켜준 대부격의 헬무트 콜 전 총리와 기민당이 정치 비자금 스캔들에 휩싸이자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에 이 같은 내용의 칼럼을 기고해 큰 파란을 일으켰다.


“콜 총리는 기민당에 큰 피해를 주었다. 이제 콜 시대를 끝내고 미래로 전진하자.”

 

자신을 여성부·환경부 장관으로 발탁한 콜을 비판하며 ‘친부 살인자’라는 비판까지 들었지만, 메르켈은 단호하게 기민당 혁신을 주장하며 서독 출신 남성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여성으로 첫 보수정당 대표에 올랐다. 물론 여기에는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세금을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집권 기간 내내 이전부터 살던 아파트에서 출퇴근하면서 주말에는 마트에서 카트를 끌고 장을 봤고 직접 요리도 했다. 아파트 전기세·수도세 등을 자신과 남편(대학 교수)과 나누어 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서처럼 영수증이 필요 없는 특수활동비 같은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또 그녀는 학자 출신답게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녀가 정치가로 출발하지 않았기에 그녀는 자신이 모르는 분야의 전문가를 선생님으로 모시길 꺼리지 않았다. 메르켈은 집권 기간 매주 국내외 저명학자나 전문가를 초빙해 공부했다. 정파나 나라를 따지지 않고 독일의 ‘혁신 역량’을 높일 수 있는 사람이면 가리지 않고 만났다. 공영방송에 출연해 직접 사회를 보면서 시민들과 대화하고, 매주 원고 없이 장시간 기자회견까지 자청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바이온텍(BioNTech)의 지몬 코르퍼스트 박사 등 전문가들과 논의하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우리에게도 여성 정치인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을 보라. 의사, 판사, 검사, 교수, 언론인 출신이라며 자신들의 기득권과 자신의 부와 자기 자식 챙기기에 불법과 편법을 서슴지 않는 무식하다고 하리만큼 권력욕에 눈이 시뻘겋게 되어 있을 뿐 어디 하나 본받을만한 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던가?

 

당신이라면, 만약 당신이 통일이 된 한반도에서, 북한 출신에 일찌감치 이혼녀에 정치라고는 근처에 가보지도 않은 과학만 공부한 입장에서 정치에 투신해서 16년간이나 전 국민에게 사랑받고 존경받는 정치인이 되는 것이 쉽겠는가?

 

그녀가 그렇게 되기까지 정치인 남편의 외조도, 정치적으로 대단한 시집이나 돈으로 나라를 살 정도의 재벌 친정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중도층의 총리로서 그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한 대다수 국민 중도층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냈다.

 

당신에게 정치를 권하는 거, 절대 아니다.

내가 논어 읽기 매거진이나 다른 기타 매거진에서도 누차 강조하고, 특히나 이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동기를 설명한 작가 소개의 글처럼, 정치는 정치가가 하는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정작 구성원인 우리가 바꿔야만 바뀐다. 여의도의 날도둑놈들이 바꿔주지 않는단 말이다.


당신이 당신이 속한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일단 당신의 목소리가 당신의 주변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당신이 공부해야 하는 것이며 당신이 속한 분야에서 당당하게 우위에 서야 하는 것이고 무엇보다 당신이 당신의 일과 당신에게 당당할 수 있을만한 캐리어를 쌓아야 한다.


새삼 대학원을 들어가 학위를 따야 한단 말이 아니다.

당신이 당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 올라설 수 있다면, 당신은 당신의 자리에서 당신의 정치를 할 자격을 갖추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지금 넘어졌다고 두리번거리며 눈만 마주치면 눈물을 쏟아내겠다고 그렁그렁한 눈을 뜨고 있지 말란 말이다.


사지 멀쩡하고 창창한 젊음을 가진 당신이, 아니, 나이를 먹었다면 그만한 경륜을 머리와 가슴에 장착한 당신이 왜 지금 거기에 쓰러져 이번 생은 글렀다는 헛소리를 하며 주저앉을 궁리를 한단 말인가?

다른 이들도 당신과 똑같은 입장에서 공부하고 노력하고 피땀을 흘려가며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뤘다. 당신이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제 67세의 나이로 자신은 정치적인 어떤 다른 새로운 자리도 보지 않는다며 박수받으며 떠나는 메르켈의 모습을 보며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아직 늦지 않았다.

이제까지의 실수를 모두 만회하고도 남을 충분한 기회가 당신에게는 곧 온다.

그 기회를 제대로 잡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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