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대화여서이기도 했지만 세 조사위원은 그 대화 내용을 얼른 읽자마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표정이 굳어졌다. 박 교수가 마음이 급해져 설명을 재촉해나갔다.
“자, 아까 여러분들이 나에게 설명했던 것처럼 이미 이 여학생은 3월 말부터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학생에게 내가 연구실에 올 건지 말 건지를 예의를 갖춰 묻습니다. 내가 먼저 당신들에게 묻겠습니다. 집사람도 오지 않는다고 말하고 양해를 구하고 미안하니까 그래도 와서 공부한다면 도와주겠다고 하니, 이 여학생은 오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당신들이 말한 합리적인 상황입니까?”
“언어 교환을 하러 온 건가요?”
여권운동가 교수가 목을 쭉 빼며 뜬금없이 물었다.
“아니, 그건 됐고, 이 학생은 몇 시에 왔나요?”
“잘 물어봐주셨습니다. 6시에 왔습니다. 통상 언어교환은 저녁을 서로 먹고 나서 6시 반에서 7시에 시작을 합니다. 그런데 그날은 비도 왔는데 6시 전에 연구실에 찾아와서는 자기는 아직 밥도 안 먹었다고 하더군요. 대개 밥을 안 먹고 오는 경우는 어김없이 제가 저녁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같이 나가서 사주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아마도 연구실에 아무도 없이 저 혼자 있을 것을 기대하고 온 것 같았습니다.”
“연구실에는 아이들도 있었던 거지요? 아내만 없었던 거죠?”
뭔가 변호해야 한다는 느낌을 받은 듯 페미니즘 강사가 재확인을 했다.
“아이들이 있으니까 오는 건 정상이죠.”
그녀가 뜬금없이 훅 들어오며 당연하다는 식으로 변호하려는 그 찰나를 박 교수는 허락하지 않았다.
“아니지요. 아이들과 공부하기로 약속했던 학생은 역사학과의 진영 후라는 학생입니다. 츠리엔 학생은 아내와만 언어교환을 합니다. 그래서 아내가 오지 않는다고 했을 때 아이들이 당연히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도 않고 당연히 아내가 오지 않아 언어교환을 못하게 되는 것이 미안해서 그래도 온다고 하면 공부를 도와주겠다는 생각에 물어본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성희롱을 계속 당해왔다고 한 여학생이 연구실에 온다고 하는 것이 당신들이 이제까지 말한 합리입니까?”
“합리적이지요.”
세 사람은 절대 밀리지 않겠다는 다짐이라고 한 듯이 입을 맞춰 합리적인 행동이라고 우겨댔다.
“당신의 아이들이 오니까 언어 교환하려고 왔나 보죠.”
“그 학생이 우리 아이들이 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오는지 안 오는지 묻는 부분도 라인 대화에는 없는데요?”
세 조사위원들은 박 교수의 허를 찌르는 질문에 아무런 답변 없이 그저 눈 앞의 서류들만 뒤적여보였다.
“성희롱을 했다면 학생이 오기 싫은 것이 당연하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이 주동적으로 오겠다고 한 것은 좀 이상한 행동 아닌가요?”
그런데 내내 뭐라고 대꾸를 해야 할지 고민하던 여권운동가 여교수가 돌연 나섰다.
“이 학생은 자신이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있기 때문에 자기 성적이 걸려 있기 때문에 안 갈 수가 없지 않나요?”
갑자기 버럭 박 교수가 소리를 지르며 따졌다.
“그럼 아까 증거를 통해서 봤던 막 하는 행동들은 이미 권력관계 따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지 않았나요? 당신 말이 맞다면 지금 이 학생이 남학생을 통해 이야기를 퍼트리고 국회의원을 이용해서 기자회견을 하고 일을 크게 터트리는 것은 이해가 갑니까? 그 사이에 무슨 몹쓸 사건이라도 터졌나요? 지금은 왜 이렇게 일을 터뜨렸죠? 만약 이게 무고라는 것이 밝혀지면 학생은 퇴학당하고 처벌을 받아야 하는 중대한 사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위험을 무릅쓰고까지 사건을 터트릴만한 계기가 있다는 말입니까?”
“성적이 걸려있으니까 교수를 어려워하고 겁낼 수 있는 거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구시렁거리듯 페미니즘 강사가 코를 실룩거리며 중얼거렸다.
“좋습니다. 그렇게 우기고 싶다면 조금 더 들어가 보도록 하죠. 5월 24일 새벽 1시 반까지 그런 일이 있었다고 칩시다. 그다음 날인 5월 25일 오후 6시 반에 우리 집에서 아내가 자기 시험이 끝났으니 학생들을 불러 한국 요리라도 만들어 먹인다고 초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이 자기도 오고 싶다며 찾아왔습니다. 그 학생은 원래 초대받은 학생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25일 오후에 2학년 회화 수업이 있었고, 당일 새벽까지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츠리엔 학생의 성향을 생각했을 때 만약 그날 다른 여학생들이 우리 집에 초대를 받았다는 사실을 그녀가 알게 되면 분명히 무슨 짓을 저지를까 봐 걱정되어 저는 일단 수업 쉬는 시간 중에 연구실에 와서 공부를 하던 임오문과 츠리엔에게 우리 집에 오겠냐고 물었습니다.”
중간에 박 교수의 말을 막으며 남자 위원장이 여유 있는 어투로 누르듯이 물었다.
“츠리엔 학생에게 5월 25일에 왜 당신의 집에 갔는지에 대해 우리도 물었습니다. 츠리엔 학생은 이렇게 답하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협박하면서 ‘너 그냥 올래, 아니면 맞고서 끌려서 갈래?’라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두 사람의 주장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 거짓말을 증명해줄 증인이 있습니다.”
박 교수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날 파티에 왔던 정병영이라는 여학생과 단 우선이라는 남학생이 있습니다.”
5월 25일 오후 수업 당시, 2시간짜리 수업 중에 50분 수업을 하고 10분을 쉴 때였다. 박 교수는 고민 끝에 일단 초대한다는 말을 꺼낸 다음에 오겠다는 학생이 너무 많으니 오지 말라고 하는 것으로 분위기를 이끌겠다고 생각하고 말을 하기로 결심했다. 아내가 츠리엔이 집까지 오는 것에 대해 싫어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늘 그렇듯이 임우문과 츠리엔이 앞뒤로 붙어 앉아 있었다. 그 앞쪽으로 무안제가 앉아 있었고, 안 자리 옆으로 남학생이 앉아 있었다.
“우문! 츠리엔! 오늘 우리 집에서 집사람이 한국요리를 해서 조촐하게 시험 끝난 걸 축하하기로 했는데... 이미 3명의 학생이 오기로 했거든. 근데 우리 집이 대학교수 사택이잖아. 그래서 식탁이 4인용인데 의자도 부족하고 그릇이니 식기류도 우리가 한국 살림이 아니라서 우리 식구 4명에 벌써 3명이 오기로 해서 총 7명이나 되는데 너희도 혹시 오고 싶니?”
“네? 한국요리 파티를 하는 거예요?”
츠리엔이 눈을 반짝거리며 화색을 띄고 물었다.
“응. 그런데, 대만에 와서 처음 다른 사람들을 우리 집에 초대하는 거라, 제대로 준비도 안되고 그래서 너희는 꼭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나 다음에 와도 괜찮아. 너무 사람이 많아서 붐비고 그러는 것보다 다음에 오는 것도 괜찮아.”
뭔가 우문의 눈치를 보던 자련이 말문을 열었다.
“우문이가 가면 저도 갈래요.”
아마도 자신이 먼저 가겠다고 하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한 태도였다. 새벽에 이미 경험했던 터라 박 교수는 그러려니 하고 우문을 쳐다보았다. 그저 멀뚱 거리며 쳐다보던 우문이 별일 아니라는 듯이 어눌한 한국어로 답했다.
“저는 오늘 약속이 있어서 못 갈 것 같아요.”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츠리엔도 오늘 우문이가 못 간다고 하니까 다음에 오면 되겠네.”
그러자 자련이 예상치 못했다는 듯한 우문의 답변에 당혹스러운 얼굴로 아랫입술을 물었다.
“그러면 저는 갈게요. 어차피 오늘 여러 학생들이 오잖아요. 사람들이 많이 있을 때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가고 싶어요.”
“응?”
바로 태도를 바꾸는 그녀의 모습이 이번에는 박 교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러면 곤란할 텐데.... 어쩌지?’
그렇다고 싫은 내색을 하고 오지 못하게 하면 대번에 그녀가 눈치채고 이상한 짓을 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는 이내 포기하고 ‘그럼 이따 6시까지 연구대루 1층에서 만나자.’라고 말했다.
*
“두 사람의 설명이 완전히 다릅니다.”
남자 위원장이 말소리에 그날의 기억이 모두 한꺼번에 퍼뜩 떠올랐던 박 교수였다.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다른 학생들이 있는 자리에서 물었습니다. 만약 정말로 츠리엔 학생의 주장이 맞다면 그것을 들었던 다른 여학생들도 위화감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다른 학생들도 모두 옆에서 듣고 있는데 버젓이 ‘너 맞고 끌려갈래?’라고 협박을 했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지 않습니까? 상식적으로 들리십니까? 바로 옆에서 들었던 임우문과 우안티도 증인이 될 수 있겠지요?”
“임우문 학생은 거기에 대해서 자기는 집중하지도 않았고 교수님이 뭐라고 얘기하셨는지 잘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뭐 금요일에 다시 그 학생을 불러서 물어보던가 하죠.”
뭔가 눈빛으로 사인을 하는 것처럼 페미니즘 강사가 눈을 찡긋거리며 이야기의 진전을 막았다.
“우리 가족이 금요일에 짜오시 온천으로 가족여행을 갔습니다. 그래서 미안해서 나는 학생들에게 다음 기회에 기회가 된다면 놀러 오라고까지 말한 기억이 있습니다. ”
“연구실에서 이 아이의 연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셨나요?”
5월 25일의 파티에 자발적으로 온 학생에 대한 이야기가 진전되는 것에 부담을 느꼈는지 갑작스럽고 뜬금없이 여권운동가 교수가 박 교수의 설명을 끊어버리듯 물었다.
“대답 대신에 이 자료를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당황하지도 않고 이제 익숙해진 듯 박 교수가 그들이 원하는 대로 그 질문에 답변 대신 번역한 라인 대화 기록을 하나 내밀었다.
“이 장면은 단체 라인방입니다. 내 수업의 단체 라인방에 질문을 낸 것입니다. 질문의 내용은 ‘대만인들이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올려주세요.’였습니다. 그랬더니 여러 학생들이 궁금한 부분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보시는 것과 같이 츠리엔 학생이 모두가 보는 단체방에서 한국어로 이렇게 길게 뜬금없이 글을 올려두었습니다.”
4月 16日 단체 채팅방에 올린 글
한국 드라마에서 어떤 장면이 있어요. 한 아이가 매우 나쁘고 끔찍한 일을 겪은 후에 자기 엄마에게 달려가요. 그 엄마가 아이를 안고 달래면서 “미안해, 미안해”라고 반복하며 말해요. 엄마가 아이에게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왜 미안하다고 해요? 대만에서 같은 경우에서도 엄마가 미안하다고 안 해요. 그리고 이 장면에서 미안하다는 대사를 들을 때마다 저는 눈물을 참을 수 없고 슬픈 마음이 더 커지다는 제 심리적인 감정도 궁금해요.
“이게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요?”
남자 위원장이 이상할 것이 뭐가 있냐는 식으로 근본적인 방어체계를 치고 나왔다.
“자기가 잘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질문을 올리라고 했더니 뜬금없이 자기의 심리적인 상태에 대해 묻는 게 말이 됩니까?”
“이런 식으로 자기감정을 묻는 것하고 남녀 감정이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요?”
틈을 놓치지 않고 여권운동가 교수가 남자 위원장의 편을 들며 박 교수를 비아냥거렸다.
박 교수가 화가 치밀어 다시 울컥하며 언성이 높아졌다.
“이런 방식으로 이 여학생은 나에게 매번 똑같이 ‘제가 교수님을 좋아하는데 저의 이런 감정은 어떤 것일까요?’라는 식의 질문을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페미니즘 강사가 치고 들어와 물었다.
“나는 그녀의 의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분이 매우 안 좋았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말을 돌려서, ‘내가 너를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의 내 감정에 따라서 네가 나를 좋아하고 말고가 바뀌는 거야? 니가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그 사람의 감정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물어보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니야.’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얘기하는 당신들의 대화를 들은 누군가가 있습니까?”
흥미 있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여권운동가 여교수가 턱을 고이며 물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 학생은 주변의 다른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절대 그런 행동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그런 학생의 행동에 대해 아내가 불쾌해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혹여 그런 식의 대화들이 나오면 아내가 보고 기분 나쁠까 봐 라인 대화를 지운 것이 있습니다.”
“지운 내용 중에 중요한 부분이라도 있나요?”
마치 증거라도 인멸하지 않았냐는 식으로 공격하듯 페미니즘 강사가 또 치고 들어왔다.
“어차피 그 학생과의 대화이기 때문에 그 학생도 모든 자료를 가지고 있으니 참고하시지요. 예를 들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원래 여러 과제를 라인을 통해서 냈습니다. 그리고 보충 리포트라는 형태로 수시로 낼 수 있도록 한 과제도 있었습니다. 이 과제는 반드시 해야 하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하도 성적 때문에 걱정하길래 냈던 건데요. 츠리엔 학생과 늘 붙어 다니던 2학년의 임 오문이라는 학생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숙제에 대해 물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선생님 숙제가 너희들에게 부담되니?’라고 묻자, ‘저는 좋아하고 괜찮은데 자련 언니는 숙제를 싫어해요.’라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다음 날 저녁에 라인 대화에서 우연히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5月 9日 대화 중에서
내 숙제는 다 했니?아직이요
나는 너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아.교수님 술 드셨어요?
무슨 소리야 갑자기?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중국어 조심하세요.
응?
그런 말은 사랑하는 사람들이나 부부 사이에 애교로 쓰는 말이에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스트레스받으라고 보충 리포트를 낸 게 아니라고 말하는 게 왜 사랑하는 사이나 부부가 말하는 거야?하여간 그런 거예요.
니가 오버하는 거잖아? 내가 중문과 교수들한테 물어본다.너는 내가 너에게 특별대우를 해준다고 오버한 거구나?뭘 오버를 해요?
그러면 니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설명해봐.모르겠어요. 그냥 그렇게 들렸나 봐요.
알려줘요.
손바닥에 불 화자가 맞으면 나도 보여줄게요,알려줘요.
여기 무슨 뜻이에요?
삼국지에서 주유가 제갈량에게 물어봤던 내용의 패러디입니다.
이제 이해가 됩니까?
赤壁이라는 이야기네요.
자네의 머리가 너무 빨랐어요. 이번엔...
덕분에 의도하지 않은 해프닝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가끔 이렇게 허당 짓을 해야 교수님도 웃죠...
그럼 교수님 IQ 얼마나 나왔어요?요즘 이게 궁금합니다.
왜 그게 궁금한데요?
뭐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아진답니까? 티 나게...
보통 사람 아닌 것 확실합니다.
중요한가요?
“장난스러운 대화이기는 했지만 츠리엔 학생이 자신이 평상시에 계속 저에게 좋아한다고 이리저리 표현하고 계속 저의 감정을 묻고 하는 행동을 보이다가 불현듯 제가 자신을 특별 대우한다는 식의 착각에 빠져 실수를 해서 그녀의 마음이 들켰다고 생각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황급히 대화를 돌리고 다른 말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납니다.”
“그게 왜 그 여학생이 교수님을 좋아하는 마음이 들켰다는 거죠?”
페미니즘 강사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지만 옆에 있던 남자 위원장이 눈을 찔끔하며 주의를 주는 찰나의 순간이 박 교수의 시선에 잡혔다. 이미 남자 위원장도 어떤 느낌의 대화가 오갔는지를 이해한 듯했다.
“그래서 나중에 정말 그 여학생의 말처럼 다른 중문과 교수들이나 중문과 학생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내가 너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아.’라고 하는 말이 남녀관계나 부부 사이에서만 쓰는 애교에 해당하는 말이냐고요. 심지어 이번에 고발한 학생 중의 하나인 중문과 4학년생이던 왕운함에게 말하자 왕운함이, ‘누가 그런 말을 해요? 그건 그 학생이 아마도 교수님을 좋아하기 때문에 오버한 걸 거예요.’라고 대답해줬습니다. 다른 중문과 교수도 마찬가지였고요.”
“끄응.”
남자 위원장의 앓는 듯한 숨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그 여학생이 ‘단 우선’이라는 남학생에 대해서도 그와 비슷한 식으로 돌려서 저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요?”
“‘저는 우선이가 부러워요. 병선이는 남학생이라 늘 교수님과 있어도 이상하다고 의심받지도 않고 같이 늘 같이 밥 먹고 다녀도 아무런 문제가 없잖아요.’라고 말해서 의아하면서도 섬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걸 직접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거군요.”
페미니즘 강사가 다시 비아냥거리며 튕기듯 말했다.
“아니요. 츠리엔 학생이라고 밝히지는 않았지만 제가 단 우선 학생에게 심각하게 얘기를 한 적도 있습니다. ‘어떤 여학생이 너를 빗대어 그런 말까지 하며 좋아한다고 돌려서 말하는데 내가 정말 곤란하다.’라고 말이죠.”
“그렇지만 그런 대화 내용은 당신이 모두 지웠다면서요?”
“제가 지웠다고 그 학생의 라인에서도 지워지지는 않지요. 요청하겠습니다. 5월 9일의 대화 전문을 확보해주시기 바랍니다.”
증거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얘기하려던 의도가 이상하게 빗나가버리자 페미니즘 강사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말이 다르잖아요?”
“둘의 말이 뭐가 다르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라인의 대화 기록은 그대로 남아 있는 거 아닙니까?”
“자자, 별로 중요한 거 아닌 것 같으니까 넘어갑시다.”
남자 위원장이 노골적으로 이야기의 끝을 얼버무렸다.
“그럼, 구체적으로 감정 표현이 나오는 부분에 대해서도 라인 대화 증거가 있으니 살펴보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