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요. 5/1 노동절은 휴일인데 저는 연구실에 가야 하나요?(가기 싫어서 묻는 거 아니고 혹시 모르니까 묻는 거예요.)
오늘 얼굴 보고 얘기하자.
메일 준비 다 되었는데...
보내줄까 와서 직접 같이 볼래?
교수님. 말씀 아직 안 드려서 죄송한데 오늘 오후수업 끝난 후에 집에 돌아가요.
그래서 오늘 연구실에 못 가요.
아 알았어.
시간 좀 짧아서 될지 모르겠지만 오후 5시 15분쯤에 연구실에 갈게요.
근데 저는 6시 전에 학교에서 떠나야 해요.
차표 이미 사놔서요.
그렇게 바쁘면 집에 바로 가도록 해.
그리고... 월요일은 혹시 모르는 게 내가 안 올지 모른다는 거야?
일요일에 돌아오는 거면....
월요일에 보고....
연구실 오는 거 아니면 월요일까지 집에 있을 거면 그렇게 하도록 해.
아니요. 바로 안 가도 돼요.
저녁에 연구실에 갈 거예요.
조교 일 빨리 끝내고 싶어서요.
그럼 내가 미안해지잖아.
ㅋㅋ그럼 저는 월요일에 좀 쉴게요.
좋지 않은 일은 빨리 끝내는 게 좋잖아요.
월요일까지 집에 있고 싶구나?
네
그래 그럼 이따 와.
네.
교수님이 늘 잘해주시는 거 내내 고맙게 생각해요.감사합니다.
입술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하세요.
진심입니다.ㅋㅋㅋ
그럴 리가요..
그럼 말고요. 농담이었어요.ㅋㅋㅋ
아. 그리고요.
월요일 오후에 학교에도착할 거니까 언어교환 쉬지 않겠습니다.
나 보기는 싫고 자기 공부는 하신다는 거군요. 음...
하하하. 죄송합니다~
“권력관계가 성립이 되고 성적 때문에 자기가 싫은 게 있어도 자기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따랐다는 식의 얘기가 되려면 이 자료에서처럼 자기가 조교 일을 해야 하는데 먼저 쉬겠다고 당당하게 말하지는 못하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이 대화하는 태도를 봐도 교수를 어려워하면서 말을 꺼내기도 어려워하는 그런 관계로 보이십니까?”
“도대체 츠리엔 학생과 무슨 관계입니까?”
남자 조사위원이 갑자기 정색을 하며 물었다.
“교수와 학생의 관계이고,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제 업무 조교였던 학생입니다.”
“돈도 안주잖아요.”
“그건 학과에서 줘야 하는데 안 준 거지요.”
“월급을 주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이 학생이 올지 말지에 대해 말할 수가 있지요?”
“그게 도대체 무슨 얘기입니까?”
앞서 수차례 했던 이야기였다. 그들이 정말로 못 알아듣고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알고서도 자신의 진을 빼기 위해 괴롭히고 있는 것인지 박 교수는 그 진의를 알 수가 없어 더 기운이 빠졌다.
실제로 대학원생 주문정의 돌발적인 행동으로 조교가 공석이 되었고, 그날 저녁에 언어교환을 하기 위해 찾아왔던 츠리엔이 영문과 시절에 이미 교수의 업무 조교 알바를 한 적이 있다고 말하면서 극적으로 업무 조교에 츠리엔이 임명된 것까지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문제는 츠리엔이 학과 행정조교에게 박 교수의 업무 조교로 일한다는 것을 말했고, 그 이후 메일이나 메시지에 ‘조교’라고 부르며 업무를 본 기록도 남아 있으니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4월 말이 되어서 조교의 업무일을 사인하고 금액이 월별로 지급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문제가 생긴 거였다. 처음에 업무 조교의 아르바이트비를 지급하는 문제에 대해서 박 교수가 학과의 홍 조교에게 문의하자 학과 조교는 정식으로 서류상 업무 조교로 츠리엔을 등재하지 않아서 못준다고 했다. 다시 그녀의 태도에 불쾌감을 느낌 박 교수는 다시 학과 조교를 직접 찾아가 뭐가 문제냐고 따졌다. 그러자 그녀에게서 공식적인 이메일이 아래와 같이 도착했다.
4월 27일 도착한 메일의 전문
선생님, 안녕하세요
한글 편지로는 제대로 제 표현을 할 수가 없어 중국어로 설명해 드리는 부분, 이해해 주십시오.
우선 주운정 학우는 3월 20일부로 업무 조교를 할 수 없다고 교수님께 사직을 청했다고 하면서 학과 사무실에 와서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 학생이 자신을 대신해서 오는 학생이 대리로 알바 비용을 수령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세무 및 법령에 관한 문제 때문에 대신 수령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하다고 설명해주었고, 덧붙여 대학원생과 학부원의 수당은 다르다는 점을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당일에 주문정 학생에게 교수님에게 가서 제대로 설명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3월 24일에 츠리엔 학생이 교수님의 업무 조교를 맡게 되었다고 학과 사무실에 왔습니다. 당시에 저는 분명히 그녀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등록기한이 지났기 때문에 규정에 따라 수당을 지급할 수 없습니다."
츠리엔 학생은 그러한 부분을 모두 고려한 후에도 자신은 업무 조교로 근무하기를 원한다는 의사를 표시하였습니다.
또 별도로 때때로 교수님의 업무 조교라고 자칭하는 여러 학생들이 학과 사무실에 문의전화를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많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교수님을 돕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본 학과의 경비 지급 방식은 기타 학과의 경비와는 많이 다릅니다.
학과에는 행정조교가 저 한 명뿐이고 업무량이 너무 많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교수님을 도와드렸습니다만, 제가 소홀한 부분이 있었다면, 대단히 죄송합니다.
양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메일을 받고 나서 박 교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한 것인지 차분히 생각했다. 그래서 먼저 당사자인 주운정에게 연락을 했다. 진위여부를 파악하고 나서 항의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주문정은 의외로 쉽게 실토를 하고 말았다. 사실 행정조교와 그 난리를 치기 전에 4월 25일 라인으로 업무 조교 관련 서류를 챙겨달라고 물었을 때부터 이상한 낌새가 있었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제가 서류 뽑으려고 확인해봤는데 학교 시스템에 아예 등록되지 않았어요.
아마도 확인하는 과정에서 제가 놓친 거 있었나 봐요.
그래서 제가 지금 아예 조교 자격이 아닌 상태예요. 다른 방법도 없다고 하네요.
과 사무실에 물어봤는데 대신 돈 받는 게 불법이라고 해서 더는 말을 못 꺼냈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네가 혹시 조교 그만둔다고 나 이외에 과 사무실에 가서 얘기한 적이 있니?
그렇게 답이 없던 그녀는 다음날이 되어서야 하루만의 고민을 끝내고 진실을 실토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우선 제가 실수로 일이 이렇게 되게 만든 것에 대해서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사실 제가 그때 사무실에 여쭤 보았는데불법이라고 해서 교수님께 학교 이메일로 못할 것 같다고 편지 써서 보내드렸습니다.
그런데 답장이 없어서 화나실 줄 알고 그냥 그러고 말았습니다.그런데 어제 교수님께서물어보시기에 다시 확인을 해봤는데 이메일이 아예 안 보내진 상태였어요.
계속 모르고 있었다가 다시 알게 됐어요.
어제는 너무 무서워서 어떻게 다시 설명을 해야 될지 몰라서 그런 척을 했어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제 이 문제로 학과장이랑도 얘기를 했는데...
아마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구나.
폐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행정조교의 메일에서처럼 ‘주운정’이라는 대학원생은 3월 20일 그만두겠다고 도망치던 당시에 행정조교에게 설명을 들었는데 박 교수에게 설명을 하면 자신이 그만두는 것이 제대로 정리나 인수인계도 하지 않고 그런 행동이 자신에게 악영향을 끼칠까 봐 그냥 될 대로 돼라 행동했고, 결국 일이 터지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직접 연락을 취하거나 박 교수의 연구실을 찾아와 사과를 하는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대만 20대 학생들의 무너진 상식과 예의범절이라는 점에 대해 박 교수는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잘못이 있다 손 치더라도 행정조교의 변명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너무 많았다. 첫째, 세무와 법령 어쩌고 들먹인 것이 가장 거슬렸다. 실제로 다른 학생이 근무를 했다는 것을 행정조교가 알고 있으면서도 그러면 그냥 무상으로 일을 한다고 한다는 것 자체가 법령 위반인 것이다. 대만은 근로기준법에 대해 상당히 민감해서 조금만 고용관계에 문제가 있어도 아르바이트생도 국가에 신고하고 고발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고 들은 터였다. 둘째, 실제로 업무를 맡던 조교가 다치거나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업무를 계속 진행할 수 없는 경우가 분명히 있을 터인데 처음 등록한 기간이 지났기 때문에 다른 학생을 쓸 수 없다고 말하는 것도 상식적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박 교수는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 끝에 장문의 항의 이메일을 썼고, 한국어로 썼다가 아무래도 중국어로 번역해서 보내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해서 업무 조교와 함께 상의해서 이메일을 작성해 행정조교에게 보내면서 학과장에게도 CC의 형태로 첨부해 보냈다. 그 내용의 전문은 아래와 같다.
4월 28일에 학과 행정조교와 학과장에게 보낸 이메일의 전문
메일 잘 받아보았습니다.
사실관계 확인부터 잘못된 부분이 있어 바로잡고자 합니다.
주운정 학생이 3월 20일경에 일방적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생겼다며 업무 조교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나는 분명히 “내가 막 이 곳에 와서 업무 조교가 반드시 필요하니,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던가 다른 학생이 업무 조교 일을 할 때, 비용을 받을 수 있도록 약속을 하라”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홍 조교가 기술한 내용처럼 21일 주문정 학생에게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습니다. 어제 주문정 학생이 자신이 메일을 보내려고 했는데 메일을 보내지 못하였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 메시지만 받았을 뿐입니다.
츠리엔 학생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한 결과, 3/24일에 비용은 지불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어 바로잡습니다.
츠리엔 학생은 자신이 업무 조교라고 밝힌 적도 없고, 업무 조교를 지금 바꿀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만 했고, “기간이 이미 지났다.”는 말만 들었을 뿐, 비용에 대한 지급 부분은 들은 사실이 없다고 합니다.
이번 건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주문정 학생이 처음부터 자신이 지원하여 업무 조교를 하겠다고 했다가 무책임하게 그만두고 제대로 보고도 하지 않은 것이 그 시발점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학생들에게 법적인 책임이나 도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운정 학생의 잘못된 행동과는 별도로, 최근 컴퓨터 설치 건과 관련하여 보냈던 이메일 등을 보건대, 홍 조교가 이미 정식 업무 조교로 츠리엔 학생이 근무하고 있음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원래 신청 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근무수당 지급을 거부하는 것은 현행 대만 노동법에도 위배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대만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학과의 업무 조교 운용방식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만, 학생이 교수를 도와주는 근무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중에라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현재 다른 교수들의 업무 조교를 하고 있는 학생들이 비용을 지급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츠리엔 학생만이 주문정 학생의 잘못으로 인해 손해를 입는다면 담당 교수로서 유감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4/24 홍 조교에게 직접 내가 이 문제에 대해 물었을 때, “대학원생을 위한 예산은 있지만, 학부생을 위한 예산은 없다.”라던가 “대학원생을 쓴다면 누구를 쓰실 것인가” 등의 발언은 더욱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대학원생을 위한 예산이 있다면 주문정 학생이 그만두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에게 대학원생으로 교체하라고 공지해줬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특히, 급여 지급과 같이 돈과 관련된 민감한 문제는, 무책임하게 그만두겠다는 학생에게 고지할 것이 아니라 교수인 나에게 직접 알려줬어야만 하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홍 조교가 메일에 적은 바와 같이, 학교 전체에서 하는 것도 아니고 학과 차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제도라면 당연히 학생이 불필요한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외람된 부탁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을 원만하게 처리했으면 합니다.
저는 이번 학기에 막 와서 정식 업무 조교가 필요하고 주문정 학생의 생각 없는 행동 때문에 업무 조교가 없이 지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학생들은 비용을 받고 있는데 나를 도와주겠다고 일하는 츠리엔 학생만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도 문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융통성 있는 행정처리로 특정 학생이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선처해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 이메일을 끝으로 학과 행정조교는 물론 학과장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다고 하는 일언반구의 반응이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이제 막 부임했는데 자신들의 업무가 잘못 처리되어 있다고 따박따박 중국어로 지적하는 박 교수의 존재가 마뜩지 않은 그 자체였을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만 했다. 박 교수가 부임 이후 단 한 번도 식사자리조차 마련하지 않는 학과장의 태도가 그것을 반증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한 달이 채 지나기 전에 이 사건이 터졌으니 그들에게는 손대지 않고 코를 풀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기도 했을 터였다.
“심지어 행정조교의 이메일에 의하면 츠리엔 학생은 3월 24일 업무 조교를 자청할 때부터 급여가 지급되지 않는다는 설명을 들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돈은 안 받았어도 상관없다고 하며 제 조교를 자발적으로 하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정말 그런 이메일이 있어요?”
남자 위원장이 물었다. 괜한 사실을 눈치 없이 묻는다는 싸인이었던 것인지 눈을 찔끔 감아 보였지만 눈치 없는 여권운동가 여교수는 재차 확인까지 나섰다.
“그런 이메일이 있다면 나중에 우리한테도 증거로 제출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얘기는 학과에서는 원래 돈을 줘야 하는데 그들이 안 준 것이고, 나는 학과에 지속적으로 츠리엔 학생이 근무를 했고 그녀가 내 업무 조교라는 것을 알았다면 당연히 급여를 지급해줘야 한다고까지 항의 메일을 보냈다는 겁니다.”
“그런 이메일을 보낸 증거가 있나요?”
다시 남자 위원장이 묻자 페미니즘 강사가 아예 포기한다는 식으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는 아마도 그것이 박 교수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증거라는 것을 이미 이해한 듯했다.
“결국 이 얘기를 할 때는 돈을 받는 것으로 알았다는 거군요. 알겠습니다.”
여권운동가 여교수가 나름대로 다시 정리를 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제 정신을 다시 차린 것인지 이 공격을 위해 기다렸던 것인지 남자 위원장이 자신이 준비하고 있던 회심의 일타를 날렸다.
“그럼 이제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당신이 돈을 학과에서 지급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녀에게 일을 시켜서는 안 되는 겁니다.”
“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지?’
중국어를 잘못 알아들은 것인가 싶었다. 박 교수의 이런 뒤틀린 심사를 잘못 해석하고 핵심을 찔렀다고 느꼈는지 페미니즘 강사가 한껏 목소리를 높이며 다시 지적했다.
“4월 28일에 돈이 안 나오는 걸 알았다는 거죠?”
“돈을 지급하지 않으려고 학과에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길래 츠리엔 학생과 상의하고 진상을 파악한 후에 이메일을 통해 정식으로 항의한 것입니다.”
대답을 하면서도 박 교수는 왜 이들은 계속 이런 말도 안 되는 공격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 사안이 성희롱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지?’
“그리고 그렇게 상의하는 과정에서 츠리엔 학생은 저에게 ‘저는 처음부터 돈 때문에 교수님을 도와드린다고 한 게 아니에요. 저는 교수님에게 보고 배우는 것이 많아서 굳이 월급을 받지 않더라도 계속 돕겠습니다.’라고 자신의 뜻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돈이 안 나오는 걸 3월 말에 이미 알았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계속해서 그들의 말과는 달리 박 교수의 뇌리에는 동일한 의문이 메아리처럼 튀어나왔다.
‘그런데 이게 도대체 본 건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이지?’
“몇 시간 근무를 했는지 매달 말에 사인을 해줘야 한다고 해서 업무를 3월 24일에 시작했으니 4월 말에 싸인과 월급 지급 문제에 대해서 알게 된 것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것에 대해 4월 28일에 항의한 메일이 있습니다.”
“그 증거를 우리에게 제공해주겠습니까?”
다시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새로운 사실처럼 반복하는 그들의 이해도가 징글징글하게 느껴졌다.
“그럼 원래 얘기로 좀 돌아옵시다.”
머릿속의 메아리를 견딜 수 없어 박 교수가 직접 화제를 본 사안에 맞추자고 제안하고 나섰다.
“나는 학과에서 돈도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하에 이 학생에게 도움을 받으니까 매번 나를 무시하는 학생에 대해서도 웬만하면 참다가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아질 때 즈음이면 뜬금없이 ‘저를 늘 생각해주시는 것에 감사해요’라고 말해서 나를 비아냥거리는 이 학생의 태도에 대해 버릇없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한국 문화에서는 라인 대화에서 교수에게 학생이 ‘ㅋㅋ’이나 ‘ㅎㅎ’를 표시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 정도로 버릇없이 격의 없는 언행을 보인 학생이 권력관계에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교수의 말을 들었다거나 어쩔 수 없이 끌려 다녔다는 식의 주장은 말도 안 된다는 증거로 라인 대화를 제출한 것입니다.”
“호호호. ‘ㅋㅋ’이나 ‘ㅎㅎ’가 선생님이 화를 내는 것이 무서워서 분위기를 좋게 하려고 한 거 아닐까요?”
페미니즘 강사가 특유의 돼지코를 실룩거리며 비웃듯 제대로 박 교수를 비꼬아댔다.
“그런 학생이 교수에 대한 태도가 마치 후배나 친구에게 대하는 것처럼 버릇없이 구는 것이 정상이란 말입니까?”
박 교수의 갑작스러운 감정적인 대응에 놀랐는지 페미니즘 강사가 갑자기 피식 웃으며 얼버무렸다.
“우리야 한국어를 모르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여기 통역하시는 분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잘못되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직접 다시 물어보세요.”
“어찌 되었든 교수로서 선생님께서 따끔하게 혼내고 다시는 못 오게 했으면 될 거 아닙니까!”
페미니즘 강사는 아예 손사래까지 쳐가며 했던 궤변을 다시 반복하여 늘어놓았다. 이미 3대 1의 싸움이라 지치고 힘겨운 쪽은 박 교수였다.
“배 선생님은 지금 박 교수님과 이 학생 사이의 대화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합니까? ‘ㅋㅋ’이라던가 ‘ㅎㅎ’라던가 하는 이런 표현이 절대 한국적인 문화에서는 사제간에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게 정말 그런 건가요? 괜찮은 거 아닌가요?”
남자 위원장이 에둘러 길게 우회적인 표현을 써가면서 경상도 통역에게 물었다.
“안 되는 거지요. 적합하지 않습니다.‘
경상도 여자의 단호한 대답이 바로 튀어나왔다. 그녀의 단호한 대답에 에둘러 길게 물어본 남자 위원장이 뻘쭘해진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한국의 예의로 보면 맞지 않다는 거지요?”
“네.”
“타이완식으로 본다면 충분히 가까운 사이라면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배 선생님도 우리나라 분과 결혼하시고 이미 10년 이상 여기서...”
“실제로 보자면 절대 안 되는 거지요. 어떻게 보더라도.”
남자 위원장의 의도를 아는지 모르는지 경상도 여자 통역의 대답은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남자 위원장은 계속해서 자신의 의도를 알아주지 못하고 싸인을 읽어주지 못하는 통역이 답답했다.
“한국 문화로 보자면 그렇다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는 건 당신도 타이완에서 십수 년 살았지 않습니다. 타이완의 문화로 보자면 충분히 가까운 사이라면 타이완이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미 이 학생은 정도를 지나쳤습니다.”
경상도 통역 여자는 이미 한 방면으로 계속 달리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하지만 한국과 타이완의 문화는 다르지 않습니까?”
그러자 이번엔 경상도 통역이 좀 더 적극적인 태도로 자신의 느낌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학생의 한국어 이해정도와 수준을 가늠해봤을 때, 그 질문에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이 학생의 한국어 이해정도나 한국어 구사 능력을 봤을 때 타이완 식의 문화를 제대로 번역하지 못해서 그렇다는 선생님의 해석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원래는 영문과 출신이고 한국어과로 옮긴 지 얼마 안 되어 이제 2학년밖에 안되었으니까 제대로 이해 못하고 모국어인 중국어와 문화를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그럴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아니요. 이 학생의 한국어 구사능력을 보건대 한국어를 어디서 어떻게 공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놀랄 정도로 상당히 높은 수준입니다. 그리고 저도 다른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지만 이 학생의 한국어 이해정도는 이것이 충분히 예의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을 정도의 수준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면 질문을 조금 바꿔보겠습니다. 학생과 교수의 대화로 보기에는 괜찮은가요?”
자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했는지 남자 위원장은 공격의 포커스를 살짝 틀기로 했다.
“교수님도 학생에게 굉장히 친밀하게 대하고 있습니다.”
“교수님도 보수적이지는 않다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교수로서 이 학생을 잘라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조금 이상합니다.”
남자 위원장이 그 말을 꺼내면서 슬쩍 페미니즘 강사를 쳐다봤다. 페미니즘 강사가 계속해서 공격했던 논리의 궤로 돌아왔음을 보내는 일종의 신호였다. 그 신호를 눈치 빠른 페미니즘 강사가 놓칠 리가 없었다.
“수업에서는 엄청나게 엄격한 사람이라면서요? 아까 그래서 학생들이 첫 강의가 끝났을 뿐인데도 페이스북에 욕설까지 하고 그랬었잖아요.”
“나는 수업에서는 엄격하려고 노력합니다. 본래 마음이 여리고 착해서 학생들에게 엄청나게 희생적이고, 열성적이며, 바보스러울 정도로 내 개인 시간과 돈을 할애하여 학생들을 지도했습니다. 그저 당신들의 이해처럼 엄격하고 무섭기만 한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겁니다.”
심각하게 대답하는 박 교수의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제야 반격의 물꼬를 틀 수 있다고 여겼는지 페미니즘 강사가 박차고 나왔다.
“학생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진지하게 대하지 못했다는 거군요.”
그녀의 의도가 빤히 느껴져서 더 화를 낼 기운도 나지 않아 한숨만 나왔지만 박 교수는 자신의 생각을 담담하게 끄집어냈다.
“나는 여기 온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곳에 익숙하지도 못하고 문화도 잘 모르지만 내가 알고 있던 것은, 내가 정말 노력하고 진심으로 학생들에게 친밀하게 대하면 나에 대해 좀 더 빨리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을 뿐입니다. 중국어를 하나도 못하는 이제 초등학생인 내 아이들과 아내가 주말에도 놀러 가지 못하고 연구실에서 공부하고 그렇게 학생들의 언어 연습 대상으로 사용하게 한 결정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조사위원들도 갑자기 엄숙해진 박 교수의 말투에 약간은 숙연해졌다.
“그런데 지금 이런 꼴을 당하고 나니 저는 지금 정말 후회합니다. 아내가 수차례 곁에서 말했던 것처럼 차라리 학생들과 거리를 두고 연구실에 학생들을 부르지 않고 다른 교수들처럼 오피스 아우어 외에는 연구실에 나오지도 않고 내 공부만 하고 가족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이기적인 교수였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라고 말입니다.”
“한국에서 교수들은 교수님처럼 학생들과 이렇게 친밀하게 지냅니까?”
페미니즘 강사가 대놓고 시비를 걸듯이 물었다.
“네. 모두는 아니어도 학생들에게 열정적인 교수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하는 건 한국에서의 문화에 부적합한 거 아닙니까?”
“어떤 면에서 그렇다는 거지요?”
“교수와 학생과의 사이가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정확히 뭐가 그러면 안 된다는 건지 예를 하나 들어주시겠습니까?”
한 마디도 지지 않고 통역 없이 바로바로 중국어로 조목조목 따지는 박 교수의 모습에, 페미니즘 강사가 자신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자 짜증을 내며 책상을 탁 쳤다.
“나는 한국어를 모르니까 뭐라고 할 수 없지요.”
분위기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경상도 통역 여자가 그제야 나서면서 끼어들었다.
“바이 선생님의 말은, ‘너는 이런 식으로 굴면 안 된다.’라고 따끔하게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는 경상도 통역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아예 이전에 박 교수가 했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그는 한국어로 대답했다.
“내가 몇 번이나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내가 얼마나 더 무섭고 살벌하게 애를 족쳤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이 여학생이 자살한 여자 소설가를 얘기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던 고등학교 교사도 죽었다고 하면서 별별 이상한 분위기를 만들어서 나는 그 학생이 점점 두려웠습니다.”
“왜 교수님은 더 엄격하게 그 학생을 따끔하게 지적하지 않았는가요?”
페미니즘 강사는 결코 자신의 궤변을 인정하기 싫은 듯 끝까지 일관성 있게 밀어붙였다. 그녀가 똑같은 논리를 반복할 때마다 박 교수의 뇌리에는 반복적인 신호로 들렸다.
‘그런데 내가 학생을 따끔하게 혼내지 않은 것이 과연 성희롱이라는 말인가?’
“내가 최대한 그 학생을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은 이제 2주만 있으면 긴 여름 방학이 시작하고 두 달 반이나 되는 기간이니까 내가 한국에 가던 다른 나라에서 방학을 지내고 올 계획도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멀어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학생의 이런 버릇없는 행동에 대해 당신의 아내는 뭐라고 합니까?”
그들은 마치 박 교수가 자신들의 조롱을 이겨내지 못하고 책상을 뒤집어엎는 기행이라도 보이기를 바라는 듯이 이런저런 공격을 그치지 않았다.
“다른 질문을 하죠. 왜 5월 24일에 학생에게 와서 공부할 거냐고 물어보신 거죠?”
통역하는 경상도 여자까지 그의 흐름에 찬동해서 이야기의 본질을 흐리는데 한 몫하기 시작했다.
“지금 리우 선생님의 말씀은 대만에서는 아내가 연구실에 오지 않는데 와서 나랑 공부할래라고는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차피 아이들이 있었고, 아이들과 언어 교환하는 여학생도 오기로 한 터였다고 이미 설명드렸는데요.”
남자 위원장이 그의 대답을 비아냥거리며 지적했다.
“이 라인상의 대화를 봐서는 당신의 아이들이 연구실에 함께 있다는 말이 없습니다.”
불과 몇 분 전에 무차별로 공격할 때는 정작 성희롱을 계속해서 당했다는 여학생이 자발적으로 연구실에 오겠냐고 따지며 물었을 때, ‘당신의 아이들도 연구실에 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던 남자 위원장이 스스로 말을 바꾸는 모순을 저지른 것이다.
다시 말해, 이제 와서 라인 대화만 보면, 당신의 아내만 안 온다고 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안 온다고 읽힐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그가 인정한 셈이다. ‘그렇다면 그는 자가당착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라고 박 교수는 생각하곤 고개를 갸웃했다. 즉, 이 여학생은 교수밖에 없다는 상황임을 알고도 자발적으로 연구실에 가서 공부하고 싶다고 대답한 것이고 저녁도 먹지 않고 일부러 저녁까지 함께 먹으려고 일찍 연구실에 왔다는 것을 인정하는 질문인 셈이었다. 별로 복잡하지 않은 이런 수읽기마저도 제대로 하면서 이 싸움에 임하는 쪽은 박 교수 일방인 듯해 보였다.
“그렇다면 뭐 하러 그 학생에게 오라고 부른 겁니까?”
세 사람이 동시에 신이 나서 외치는 것만 보더라도 그들은 아직 자신들의 모순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발견할만한 능력이 없는 듯해 보였다.
“그건 다른 거 아닙니까?”
계속 경상도 통역은 물색도 없이 한 박자 늦은 통역으로 박 교수의 신경을 거스르기 일쑤였다.
“왜 그러면 와서 공부할 거냐고 물었냐는 뜻입니다.”
“알아들었습니다. 아까도 누차 얘기했지만 나는 당연히 그 학생이 원래 아내와 공부해야 하는데 아내가 못 온다고 약속을 어긴 것이니까 오겠다고 하면 나라도 공부를 대신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이 날 1시 반 새벽까지 있는 것은 업무 조교로서 항상 있는 일이어서 괜찮은 것이었나요?”
질문하는 남자 위원장의 숨은 의도를 생각할 틈도 없이 박 교수는 곧이곧대로 업무 조교의 업무시간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닙니다. 월요일 오전에 3시간만 조교의 업무시간으로 정한 시간입니다. 그런데 점점 그 월요일 오전 근무시간에 연구실에 와서는 제 일을 돕거나 일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자기감정에 대해 묻거나 저의 감정에 대해 캐묻기 시작하며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한 즈음이 바로 그때 즈음이었습니다. 그날은 그렇게 8시 반 조금 넘어서 아이들의 언어교환이 끝나고 아이들에게 ‘아빠는 다시 돌아와서 할 일이 있으니 너희들을 데려다주고 다시 연구실에 와야겠다.’라고 했고, 그랬더니 츠리엔 학생이, ‘저도 물어볼 게 더 있는데, 남아 있을게요.’라고 했고, 그 학생만 혼자서 연구실에 남겨뒀다가 컴퓨터를 함부로 볼 수도 있고 하는 위험이 있어서 그러면 같이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오자고 해서 다녀온 겁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요?”
“뭘 물어본다고 하더니 결국 자기감정에 대해서 돌려서 말하기 시작했고, 제 감정에 대해서 묻고 이리저리 시간을 허비하면서 새벽 1시 반까지 논쟁 아닌 논쟁을 한 것이었습니다.”
“호오, 교수님이 그런 것이 아니라 그녀가 주동적으로 남겠다고 했다는 거지요?”
페미니즘 강사가 그럴 리 없다는 특유의 콧방귀를 뀌며 되물었다.
“네.”
당당한 박 교수의 태도가 거슬렸던 탓인지 바로 따지듯 물었다.
“그걸 증명할 증인이 있습니까?”
남자 위원장의 질문에 페미니즘 강사가 황급히 그의 질문을 지우듯이 다음 질문을 쏟아냈다. 증인이라면 박 교수가 누차 말했던 목사의 딸이 있지 않았던가. 바로 조사 직전까지 그녀가 그 자리에 같이 있었다는 것을 잊고 떠드는 남자 위원장의 실수를 빨리 커버해서 지워야만 한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교수님이라면 그렇게 늦은 시간이니까 빨리 보냈어야 맞지 않나요?”
“내가 왜 그렇게까지 늦게까지 얘기했는지 다시 차근차근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5월에 들어서면서 최근 3주 동안 매주 월요일 오전 3시간을 근무하러 와서도 그 학생은 계속해서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나를 괴롭히면서 물었고, 나는 아무래도 이 학생의 농간에 장단을 맞춰줄 것이 아니라 확실하고 따끔하게 끝장을 봐서 다시는 이런 질문이나 간 보기를 하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날 다소 시간이 늦어지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논쟁 아닌 논쟁을 하고 그렇게 끝을 본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의 주장을 정리하면, ‘첫째, 교수님은 여학생을 만진 적이 없다. 둘째, 여학생이 교수님을 좋아했다. 셋째, 여학생이 지금 교수님에 대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입니다.’ 맞습니까?”
시계를 힐끔거리며 보던 남자 위원장이 12시가 다 되어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야기를 정리하겠다는 의향을 표시했다.
“심지어 그 여학생은 자기에 대한 비밀을 말해준다고 하면서 10여 년 전쯤에 성폭행을 당해서 자기는 그런 것 자체가 무섭다고 해서 신체 접촉 자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해서 건드리지도 않았습니다.”
“그게 이 건과 무슨 상관입니까?”
마치 합창이라도 하는 것처럼 세 사람 모두가 동시에 발끈하면서 외쳤다.
“그녀가 그런 자신의 치욕에 해당하는 비밀까지 말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하나이고, 그런 유사한 일에 끔찍한 경험이 있다고 미리 말했기 때문에 나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일방적으로 교수님의 강의가 정지된 것에 대해서 알고 있지요?”
뭔가 여학생에게 불리할만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황급히 다른 화제로 바꾸는 수법이 재등장했다. 하지만 일방적인 강의 배제에 대해서도 박 교수는 할 말이 많았다.
“그 건에 대해서도 대만 변호사에게도 물어봤지만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문제가 되는 한두 명의 학생 때문에 모든 학생이 원래 강의하던 교수의 강의와 시험을 정상적으로 진행하지 못하는 손해를 입는 것이 더 문제가 되는 것 아닙니까? 한두 학생들이 난리를 쳤다는 이유만으로 저를 가해자로 판정하고 몰아서 이미 수업을 할 수 없게 하는 것은 문제가 되는 것 아닙니까?”
“훗! 학생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교수님의 수업을 정지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묻는 거 아닙니까? 왜 겨우 몇 학생 때문에 그런 일을 벌여야만 합니까?”
“그건 이른바 선생님이 점수를 내는 권리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남자 위원장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슬쩍 뒤에 얹는 것처럼 재빨리 대사를 뱉듯 말했다.
“게다가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또 피해자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 무책임한 발언이 어디 있습니까?”
박 교수의 일성에 움찔하긴 했지만 얼른 화제를 바꿔 다시 공격의 채비에 나섰다.
“일을 하지는 않지만 지금 대학에서 월급은 받고 있지 않습니까?”
“돈이 문제입니까? 내가 범인 취급을 받고 지금 그 몇 푼 안 되는 돈을 받는 게 중요합니까?”
박 교수의 강경한 반응에 다소 누그러진 표정으로 남자 위원장이 달래듯이 말했다.
“만약에 해당 여학생들이 교수님을 무고한 것이라면 우리가 학생들을 처리할 겁니다.”
“하지만 이미 내 명예는 걸레가 되어버리고 말았지 않습니까? 당신들의 위원회 이름 자체가 ‘성평등 위원회’ 아닙니까? ‘성평등’이라는 여성이나 학생도 보호받아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미 교수이고 남자인 나만이 이런 식으로 명예가 걸레가 되는 것은 성평등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학교에서 처리한 조치는 지금 수업을 강제로 정지한 것 말고는 없습니다.”
얄미울 정도로 자신들을 불법적인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식의 발뺌이 이어졌다.
“조사과정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필수적으로 이런 것 자체가 당신이 감수해야 할 몫입니다.”
약 올리는 것처럼 페미니즘 강사가 또 끼어들며 박 교수의 속을 후벼 팠다.
“우리 타이완 사람들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합시다. 내일 다시 6시까지 나오도록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