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학생 중에서 누가 주동인물인지를 합리적으로 의심해봅시다. 세 학생 모두 2주 후면 제가 여름방학기간 동안 대만을 떠나 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습니다. 진우접은 방학이 끝나면 바로 1년간 네덜란드로 교환학생을 가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정말로 저와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면 모를까, 2번만 수업을 하고 만나고 나면 평생 나와 다시는 만나지 않을지도 모를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친구가 연휴가 지나고 이렇게 태도가 확 바뀌었는지 명확히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중문과 4학년의 왕운함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그녀는 이제 졸업합니다. 졸업하고 나서 나와는 아예 만날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만나지도 않게 될 교수에 대해서 지금 이 시점에서 이런 일을 벌였는지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나를 보게 될 학생은 단 한 학생밖에 남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희롱을 했다고 하는 그녀들의 주장만 난무한 상황에서, 내가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입니다. 오히려 그녀들이 지어낸 거짓말의 모순점을 밝혀내는 것이 저의 결백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희롱은 객관적인 기준이 있지 않고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에 의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친밀했던 학생과 좋아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던 교수에게 남자라는 이유로 공격하는데 성희롱을 이용해서는 안 되는 거고, 성평등 위원회는 그런 무고를 밝히는 것도 하나의 임무일 것입니다.”
박 교수의 논리적 추리를 들으며 세 조사위원은 딱히 어떻게 반박해야 할 지에 대한 반격의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여학생들의 거짓말에 대한 모순점을 지적한다는 부분은 증거까지 보여주며 하는 주장이었기에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고 그들은 느끼고 있었다. 그들의 이런 복잡한 심리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박 교수의 새로운 증거 제시는 그들을 더욱 곤란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어제는 너무 흥분해서 말 못 했는데 몇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어제 한 여자 배우가 비키니를 입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성희롱을 했다고 했습니다. 어제는 너무 황당하고 ‘그런 일이 없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라고만 생각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상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한국인은 정보나 사진을 검색할 때 거의 90% 이상이 ‘네이버’라는 검색엔진을 사용합니다. 어느 날인가 츠리엔이 짜증을 내면서, 저에게 ‘도대체 교수님은 어떤 여자가 이상형입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원더우먼’이라는 영화가 개봉을 해서 그 여주인공이 이스라엘 출신의 ‘갤 가돗’이라는 배우였습니다. 참 우스운 것이, 실제로 츠리엔의 평상시 리포트를 받아보고서도 느꼈던 거지만, 그녀가 얼마나 허술한 수준의 논리를 구성하는지에 대해서 저는 그녀의 교수라서 아주 알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어제 말씀했던 그 사진은 네이버에서 그 배우의 이름을 치면 검색되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구글로 검색을 하면 어제의 그 사진이 나옵니다. 대만 사람들은 정보나 사진을 검색할 때 90% 구글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오늘 연구실에서 그 사진을 검색해보고 나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렸습니다. ‘어떻게 남을 무고하면서 이렇게 허술하게 증거를 조작했을까?’하고 말입니다.”
“학생이 물어서도 안 될 것을 물었고 수업과 관련 없는 것을 물었다는 거군요?”
어떻게든 박 교수의 논리대로 증거를 제시하고 학생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식의 흐름으로 가면 안 된다고 느낀 페미니즘 강사의 마지막 필사의 저항이자 공격이었다.
“저는 비키니 사진도 아니고 프로필을 보여준 것입니다.”
“교수님은 그 여학생이 좋아하네 뭐네 해서 곤란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츠리엔이 그렇게 이상형에 대해 물었을 때 진지하게 반응하고 프로필까지 보여주면서 얘기할 필요가 있었나요? 왜 공부 얘기 안 하고 그런 것을 했습니까? 왜 잘라버리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어제부터 나에게 교수로서 자질이 없고, 교수로서의 제대로 행동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 같은데...”
화가 난 박 교수가 그녀의 말도 안 되는 트집잡기에 버럭 화를 냈다. 페미니즘 강사는 최소한 그의 감정적인 반응으로 인해 논리적인 추론의 흐름을 뒤흔들었으니 성공이라고 여기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니요.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고 그저 물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러면 안 되지 않습니까?’라는 표현을 씁니까?”
그녀가 얼토당토않은 논리로 판을 깨 놓는 것에 성공했지만 결국 다시 말꼬리가 잡힌 것을 이번에는 남자 위원장이 화제를 돌리려고 나섰다.
“저는 당신의 중국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릅니다.”
“흥~! 굉장히 잘해요. 굉장히 높은 수준이라고요. 머리도 좋아요.”
페미니즘 강사가 자신이 실수를 덮어주려는 남자 위원장의 의도도 제대로 읽지 못했는지 다시 끼어들며 비아냥거리며 떠들었다. 남자 위원장이 눈살을 찌푸리며 온갖 표정으로 그녀에게 싸인을 날렸다.
“그녀는 그저 교수님에게 물어봤을 뿐이고 결코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 위원장의 그런 식의 엄호는 박 교수의 감정을 더욱 빈정 상하게 만들었다. 어제 자신이라면 결코 아내가 오지 않는다고 했을 때, 여학생을 부르지 않았을 거라는 식으로 비아냥거리던 그의 말이 떠올라 바로 반박했다.
“당신은 어제, ‘제가 교수님이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라는 식의 말투로 내 행동을 비판했습니다. 그것이 비난하는 의도가 없었다고 부인하는 겁니까?”
“나는 그저 이상하다고 말한 것뿐입니다.”
페미니즘 강사가 실수한 것을 엄호하다가 자신에게 불똥이 튀기 시작하자, 그는 얼른 말을 얼버무리며 다시 앞에 있는 서류를 뒤지는 시늉을 해 보였다.
“내가 커밍아웃을 해야겠습니다. 내가 인정해야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박 교수의 뜬금없는 커밍아웃 선언에 세 조사위원의 동공이 흔들렸다.
“저는 소심한 성격이라 학생들과 친밀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허물없이 친구처럼 지냅니다. 예를 들면 그 증거로 라인 아이디를 공개하고 새벽이든 저녁이든 묻는 질문에 답해주는 교수는 없다는 말을 굉장히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연구실에도 언제든지 와도 약속만 하고 찾아오면 도와주겠다고 했는데 이런 교수도 대만에는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확실하게 인정해야 할 부분은, 저는 일반적인 대만의 교수와는 다른 특별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야 할 것입니다.”
‘무슨 그게 커밍아웃이라고...’
박 교수의 말을 듣던 세 조사위원은 김이 빠지는 듯한 표정으로 다시 긴장을 풀었다. 하지만 박 교수는 자신의 입장에서 정말 진심을 말해야만 한다고 느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학생들과 가깝고 학생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2학년들 때문에 내가 너무 힘들어한다고 얘기도 하고 서로 얘기하고 친구처럼 지낸 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제 나를 조롱까지는 아니더라도 비난 투로 말했습니다. 마치 그 학생들을 잘라버리지 않고 거리를 두지 않은 것이 큰 도덕적인 결함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도대체 내가 마음이 여려 버릇없는 학생에게 엄격하게 대하지 않았던 것과 성희롱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겁니까? 성희롱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실들로 나를 비난하며 마치 그것들이 밀접한 관계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나의 성격이나 학생들을 자르지 않았던 태도와 성희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거리를 두고 학생들에게 더 엄격하게 하지 않은 이유는, 내 마음이 여리고 학생들에게 함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서 맨 처음에 만났을 때나 수업에서 더 엄격한 것처럼 강조한 것뿐입니다. 왜냐하면 가까워지면 내가 얼마나 힘들어하고 약한 사람인지 학생들이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박 교수의 자기 고백 같은 커밍아웃 선언이 끝나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들도 자신이 내놓은 진심이 어느 정도의 무게인지를 감지하지 못할 정도의 바보는 아니라고 박 교수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기대는 너무도 가볍게 무너져버렸다. 남자 위원장이 피식 웃는 듯한 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다.
“학생이 교수님을 고발한 것에 대해 학교가, 교수님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겁니다. 어차피 조사가 다 끝나고 나면 진실은 우리가 판단할 겁니다. 조사과정에서 들은 것은 모두 녹취되고 기록되어 보관합니다. 그 사람이 말하는 것에 대해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문제를 제기할 뿐입니다. 누가 말한 것이 더 합리적이냐에 대한 것이 관건입니다. 아까 설명하면서 나머지 두 학생이 주동인물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하나 묻겠습니다. 그렇다면 왕운함이 왜 이 일에 가담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남자 위원장 역시 앞서 박 교수의 설명을 들으며 츠리엔과 진우접에 대한 공조관계는 의심의 여지가 너무 많다고 여겼다. 하지만 왕운함은 또 다른 객관적인 증거라고 주장하고 자신들이 판단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생각해서 회심의 일격이라고 생각해서 던진 질문이었다. 하지만 박 교수는 한 치의 생각할 틈도 없이 바로 대답을 꺼내기 시작했다.
“민감한 부분이라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모르겠는데, 진우접과 왕운함은 자신들이 동성애라고 저에게 밝혔습니다.”
“그게 선생님을 무고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까 화면을 보면 위지에 와 츠리엔은 그전부터 잘 알고 있거나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계속 머리를 만진다거나 팔짱을 끼는 등 츠리엔이 갑작스럽게 위지에에게 가까운 척을 행동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파티한 날에는 집에서 나오면서 팔짱을 끼고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남자 위원장은 본건과 상관없는 말을 하는 것이라고 제지하려고 했지만 박 교수가 손가락 하나를 들어 그의 제지를 중단시키며 말을 이었다.
“감성을 건드렸다는 겁니다. 아까 저는 이미 위지에가 ‘女T’라고 한 부분에 대해 설명을 했습니다. 츠리엔이 가서 위지에에게 달라붙은 이유가 선동하기 위해 그녀의 그러한 특징을 이용한 겁니다. ‘교수님에게 내가 성희롱을 당했다.’ 그런데 너도 결국 교수님에게 농락당한 거다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추측이 뭡니까?”
남자 위원장이 쓸데없는 궤변이 펼쳐지는 것이라고 무시하려는 의도로 다시 물었다.
“츠리엔이 이전에도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있는데...”
그러자 다시 남자 위원장이 말을 막고 말이 너무 갔다면서, 자기 질문에 대해 간략하게 답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대만에서 동성애자들은 사회운동에 상당히 관심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츠리엔은 ‘내가 교수님에게 피해를 당했다’고 하면 그 두 사람을 자신을 측은하게 피해자라고 여겨 도와줄 것이라고 확신하고 이용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위지에는 그렇다 치더라도 운한은 왜 츠리엔을 도와줍니까?”
“아까 말했던 동성애 감성이 있는 친구니까 그렇게 도와준다는 겁니다.”
“그녀를 돕는 것이랑 동성애랑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지요? 그리고 당신이 어떻게 그들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압니까?”
“그들이 나에게 알려줬으니까요.”
“당신이 지금 학생들이 직접 당신에게 알려주었다고 했습니다. 학생에게 물은 겁니까? 아니면 학생들이 먼저 주동적으로 말했습니까?”
“위지에의 경우는, ‘자기가 주동적으로 고등학교 때 저는 이런 경험이 있었습니다.’라고 말해서 알았습니다.”
대답을 하면서 문득 남자 위원장의 생각과 의도가 읽혔다.
‘처음엔 동성애가 무슨 상관이냐고 묻던 놈이, 내가 물었는지 걔들이 먼저 얘기했는지를 묻는 건 또 뭐지? 이미 모두 알고 있었다는 거야?’
남자 위원장의 허술한 정보 블로킹으로 인한 수 읽기가 시작되자 박 교수의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운한의 경우는 자신이 먼저 저에게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동성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요. 그래서 저는 ‘어? 그것은 섹스의 문제가 아니고 젠더의 문제라고 한다. 그 부분에 대해 나는 편견이 없다.’라고요.”
“학생이 먼저 교수님의 동성애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는 거지요?”
“네. 그래서, ‘왜 갑자기 그런 걸 묻니?’라고 했더니, ‘저는 원래 그런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니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보면 안 되는 거지?’라고 물었습니다.‘ 혹시 그런 성향을 물어보는 것이 대만에서는 결례니?’라고 물어보는데 그녀의 과민한 반응을 보고서 느낌이 확 왔습니다.”
“어찌 되었든 그러니까 왕운함은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직접 말하지는 않았다는 거죠?”
“네.”
“그러니까 두 사람이 츠리엔이 피해자이고 약자라고 선동당해서 동참했다는 거지요?”
“위지에는 자신이 남성 성향이라고 이미 밝혔기 때문에 심지어 자신이 마시던 차를 맛이 어떤지 맛보라고 저에게 건네주거나 2학년 학생들 때문에 힘들다고 하면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면서 저를 먼저 안아주면서 위로도 해주고 해서 나는 오히려 그 학생에 대해서는 여성이라기보다는 남학생 같은 태도에 더 고마워했습니다. 대부분 저에게 공부하러 오는 학생들은 원래 연구실에서 공부하는데,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옵니다. 그런데, 그중의 한 시간을 우리 집으로 직접 오는 학생이 두 명이 있었습니다. 그중의 한 명이 위지에였습니다. 그리고 아까 5월 25일 우리 집에도 놀러 와서 화면에 나왔던 신문방송학과의 4학년 정우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둘은 우리 가족 모두가 특별하게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박 교수가 설명하는 방식이 단순히 자신의 주장이나 감정이 아닌 실제적인 데이터와 증거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진술을 배척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고 남자 위원장은 느끼고 있었다. 그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에 대해 객관적인 사실을 근거로 제시할 경우 쉽게 배척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계획대로 그를 매도하는 것이 꽤 힘겨울지도 모른다는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위지에가 저에게 더 특별한 학생이었던 이유가 연구실에 공부하러 저를 찾아온 학생 중에서 가장 늦게 합류하기로 결정한 학생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역사학과에서 한국어과로 전과까지 하고 1년간 왜 네덜란드로 가냐’고 그랬더니 그녀가 말했습니다. ‘제가 늦게 온 이유는 제가 교수님을 관찰하는데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라고.”
여권운동가 교수가 그 뒤에 나올 얘기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듯이 바로 말을 막았다.
“그렇게까지 감동하고 교수님과 함께 공부하겠다고 했던 여학생이 왜 지금 와서 이렇게 교수님을 고발했을까요?”
“저도 그게 이해가 안 되어서 답답합니다. 그녀가 저에게 말하기를, 자신은 너무 한국어과에 실망해서 이제 한국어를 포기하고 네덜란드로 가서 역사를 공부하고 다시 역사학과 쪽으로 옮겨 가려고 했는데, 교수님처럼 실력 있고 학생들에게 열정적으로 가르쳐주려는 사람이 올 줄을 몰랐다면서 한 학기만이라도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고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런 위지에에게 츠리엔이 그녀가 생각하고 있던 저에 대한 생각과 존경을 이간질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도움을 받기 위해 선동했고 지금 보니 성공했던 것 같습니다. 츠리엔이 저를 특별히 따르는 여학생에게 이와 유사한 행동을 한 것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어제 보았던 페이스북을 쓴 ‘홍리정’이라는 학생이 츠리엔이 그런 짓을 한 사실이 있다는 것을 우리 집 파티에 왔던 남학생인 친구 단우선에게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그 학생이, 홍리정이라는 학생이 도깨비의 주인공 공유를 너무 좋아한다는 얘기를 제가 듣고, 학생들에게 공유가 대만에 팬 미팅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공유의 소속사 사장에게 연락을 취해서 홍리정 학생을 단순한 통역으로 써줄 수 없냐고 요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소속사 사장에게 그런 이 메일을 쓰는 것을 츠리엔이 보고 이상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5월 18일에 교양 수업을 야외수업으로 돌린 적이 있었는데, 제 수업을 듣지도 않는 홍리정 학생이 같이 참가해도 되냐고 저에게 물어왔었습니다. 그런데 홍리정 학생이 야외수업에 참가했던 그날, 츠리엔이 홍리정 학생에게 이상한 교수님이고 자기를 건드리고 그랬으니까 조심하라고 그랬답니다.”
“그게 위지에랑 무슨 상관이지요?”
“홍리정 학생에게 있지도 않은 짓을 알리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저에 대해 이간질을 하려던 짓과 똑같은 패턴을 보였다는 겁니다.”
박 교수는 계속 설명하면서도 정말로 이들이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알고 있는데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 이해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어쩌면 자신의 설명방식이 부족해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위지에는 女T이기 때문에 남성 역할인데, 츠리엔이 그렇게 이간질을 하고 시비를 거니까 실망감이 더 크고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 강사가 다시 흐름을 끊으려는 듯 갑자기 시비를 걸 듯 뜬금없는 질문으로 화제를 옮겼다.
“위지에 무릎에 퀴즈의 정답을 글씨로 써줄 때, 츠리엔이 눈이 뒤집힌 것처럼 질투에 휩싸인 것을 부인이 봤다는 거지요?”
“네.”
“아까 당신은 cctv 화면을 보여주면서 당신의 집에서 파티가 끝나고 즐겁게 헤어졌다고 했지요? 그런데 당신 말이 맞다면 츠리엔은 굉장히 기분이 나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까 화면에는 너무도 즐겁고 재미있게 보였잖아요? 결국 당신은 그 화면으로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는 거지요?”
페미니즘 강사는 자신이 판을 뒤집을 수 있는 핵심을 찔렀다고 회심의 미소까지 지어 보였다. 거기까지가 딱 그녀의 수준인 듯했다. 그녀는 자신이 억지로 만든 프레임으로 츠리엔이 질투에 휩싸였다면 화가 났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너무 즐거워했다고 생각했다. 2개월간 성희롱을 당했다던 그 여학생이, 전날 새벽까지 성희롱을 당했다던 여학생이 너무도 즐거워 보였다고 말한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도 그녀는 생각하지 못하고 떠들어댔다.
“아니요. 정확하게 합시다. 내가 증명하려고 하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첫째는 나에게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당했다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우리 집에 놀러 온 것이고 같이 밥 먹고, 술 먹고 늦은 시간까지 즐겁게 놀았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고요. 둘째, 츠리엔의 경우, 더더욱 바로 당일 새벽에 겁박에 의해서 연구실에 새벽까지 갇혀 있었네 어쩌네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끌려왔다고 주장해놓고 그 교수의 집에 놀러 와서 즐겁게 놀다가 갔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증명한 것입니다. 본건을 호도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츠리엔이 질투심에 돌아버렸다면 왜 화나고 씩씩대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것은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자신이 논리적으로 코너에 몰린 것을 인지하는지 못하는 것인지 페미니즘 강사는 계속해서 자신의 이야기 한 가지만을 강조했다. 그때 다시 남자 위원장이 페미니즘 강사가 코너에 몰렸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는지 방어에 나섰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이나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내가 증명하려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만약 아까 말했던 것처럼 츠리엔의 주장에 의하면 전날 1시 반부터 너무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억지로 고백을 강요당했다고 했습니다. 감정의 기복은 바뀔 수 있지만 이 사건은 굉장히 큰 일이고 사건입니다.”
박 교수의 논리가 어떤 것인지 자신이 무슨 헛소리를 했는지 느낌이 왔는지 페미니즘 강사가 그제야 강제로 그의 말을 막으려고 했다.
“아니 아니 아니...”
그러다가는 이내 할 말이 따로 생각나지 않는지 포기하고 ‘아니요 됐어요, 그냥 계속하시죠.’라고 포기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파티 당일 오후 수업의 쉬는 시간에 우리 집의 파티에 올 거냐고 물었지 않았습니까? 정상적이라면 그 당일 새벽까지 연구실에 감금되다시피 해서 겁박을 당했다고 하는 여학생이 다음날 멀쩡하게 그 사람 집에 놀러 가서 웃고 즐겼다는 것이 모순된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제시한 증거이고요.”
페미니즘 강사는 자신이 무슨 논리적인 실수를 했는지 그제야 느낌이 오기 시작했고, 어떻게든 자신이 수준 낮은 실수를 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지금의 흐름을 지우고 바꿔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나, 질문 있습니다. 당신이 방금 츠리엔과 위지에가 이상하다고 했었지요?”
“아, 잠시만요. 그걸 어떻게 알았는가가 중요합니다.”
“츠리엔이 위지에를 질투했다면 어떻게 위지에랑 츠리엔이 그렇게 사이가 좋을 수가 있지요?”
‘후우, 여태 츠리엔이 사악한 공작을 했다고 설명했는데 너는 뭘 들은 거냐?’
그녀의 무지함과 무식함에 화가 났지만, 그래도 명확하게 해 둘 필요가 있다고 박 교수는 생각했다.
“위지에에게 화가 난 게 아니라 나에게 화가 난 것이기 때문이지요.”
세 조사위원이 동시에 피식하며 박 교수의 대답을 비웃었다. 박 교수가 페미니즘 강사만이 사고의 수준이 낮아 자꾸 실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러한 그들 세 사람의 생각과 흐름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비슷한 방향을 향해 있었던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충분한 보충설명이 더 필요하다고 박 교수는 생각했다.
“정말 소름이 돋았던 것이, 저는 그제야 기억나는 일이 하나 있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츠리엔이 저에게, ‘리정이가 갑자기 선생님에게 차갑게 대하거나 관계가 안 좋지 않아요?’라고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황당해서 다시 물었습니다. ‘아니. 우리 사이좋은데?’ 그랬더니 말을 돌리면서 얼버무리더라고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홍리정 학생과 같은 방을 쓰는 학생이 연구실에 와서 공부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일주일에 한 번만 오라고 하면서 나머지 하루에 대해 제 계획표에 ‘out’이라고 써 둔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츠리엔이 그걸 보고 나서 자신이 이간질한 시기와 비슷하니 그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는 것을 알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페미니즘 강사가 다시 말을 중간에 끊어버리며 치고 들어왔다.
“자꾸 홍리정 학생에 대해 얘기하시는데 그 학생은 이 건에 있어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묻는 내용에만 대답해줘요. 내가 교수님의 말을 들은 느낌은요. 모든 여학생들이 당신을 좋아했다는 겁니다.”
“아, 물론 좋아한다는 표현은 선생님으로서 좋아한다는 걸 말씀하시는 거겠지요?”
“그건 상관없고요. 당신의 의미가 지금 서로 좋아했다가 질투해서 선생님을 고발한 거라는 거 아닙니까?”
“아니요. 동성애자들은 남성에 대한 적대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박 교수가 정색을 하며 대답하자 이번에는 다시 남자 위원장이 이제까지 이야기를 정리하겠다며 말을 막고 나섰다.
“지금 교수님의 말씀은 츠리엔이 선생님을 좋아했었는데, 선생님이 좋아해 주지 않으니까 그래서 복수를 하려고 한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왕 학생과 천 위지에는 왜 츠리엔에게 가세했는가? 그들이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츠리엔을 돕기 위해서 그렇다는 설명 아니신가요?”
마치 자신은 다른 두 사람과는 약간 다른 높이에 있다고 자부하는 듯한 눈빛으로 여권운동가 여교수가 질문을 던졌다.
“누가 누구를 배신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간단히 말하면 세 학생 중에서, 츠리엔이 주동인물이고 나머지 두 학생이 츠리엔을 도와서 교수님을 모함하고 있다는 거지요?”
“네.”
“제가 지금 5월 26일에 두 사람이 통화한 내용을 녹음한 것을 들어보겠습니다.”
여권운동가 여자 교수의 말이 떨어지자 성평회 직원이 다시 노트북으로 다가가 파일을 찾기 시작했다.
“이메일에 이전에 츠리엔이 보냈다는 중국어로 된 내용이 3월 26일에 보냈다고 주장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이 라인을 당시에 받으셨나요?”
대답을 듣기도 전에 자신이 우기던 부분이 나오자 반가웠는지 남자 위원장이 다시 업 된 목소리로 재공격에 나섰다.
“이 이메일을 받고 당신은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맞죠?”
어이가 없어서 똑같은 대답을 왜 해야 하냐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박 교수에게 신이 난 듯 남자 위원장이 어제 물어봤던 질문을 다시 던졌다.
“별명을 만든 적이 있냐고 물었는데 없다고 하셨죠.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뭘 묻고 싶어 하는지 알겠는데요. 제가 설명하죠. 5월 24일 밤부터 25일 새벽 한 시 반까지 그 학생이 자기가 저를 사랑한다고 고백할 때, 저에게 계속해서 물어봤습니다. ‘제가 교수님을 사랑하는 감정이 무엇일까요?’라면서 집요하게 물어봤습니다. 그래서 내가 계속 화를 냈습니다. ‘니가 나를 좋아하는 감정이 쭝베이(中자 컵사이즈)라면 내가 중베이 이상이라고 돼야 하는 거냐?’라고 따졌습니다. 그러자 저의 비유를 모두 알아들은 그 학생은, ‘교수님, 감정이 저와 같은 쩐주 나이냐고요.’라면서 버럭 화를 내며 다시 물었습니다. 저는 ‘왜 나에게 그런 것을 묻냐?’고 되물으며 황당해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녀는 고등학교 때 모든 전교 남학생들이 자기에게 좋아한다는 고백 했었는데 자기가 먼저 사랑한다고 누군가에게 고백하는 것이 너무 자존심이 상한다고 말했습니다.
“에에에... 그 얘기는 너무 많이 했습니다.”
유치한 코미디 프로그램의 돼지 캐릭터의 목소리처럼 페미니즘 강사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박 교수의 말을 제지했다.
“그래서 저는 절대 레드라인만은 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교수님이 이름 말고 그녀를 다른 별명으로 불렀다는 거 아닙니까?”
“아니요. 정확히 말하면 그 상황을 진지하지 않은 아무렇지도 않은 가벼운 상황으로 느껴지도록 그녀를 놀리듯이 그다음 날에 만나서 ‘쩐주’라고 불렀습니다.”
“이 여학생이 그렇게 버릇없이 말했는데도 ‘쩐주’라고 부르셨습니까?”
페미니즘 강사가 지치지 않고 동일한 공격 방식으로 고수하며 박 교수에게 시비를 걸었다.
“그래서 ‘쩐주’라고 부르면 돌발상황이 일어나지 않나요?”
“지금부터 나올 이 통화 내용에서도 나옵니다. 제가 ‘내가 너를 쩐주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 싫으냐?’라고요.”
“그러니까 주동적으로 물어보셨네요?”
끊임없이 자신이 원하는 반응을 얻어내기 위한 페미니즘 강사의 굳히기 공격이 작렬했다.
“돌발행동을 막기 위해 그랬잖습니까? ‘내가 쩐주라고 부르니까 니가 기분이 좋으냐?’라고 묻는 부분이 나옵니다.”
그러자 자신도 한 마디라도 도와야겠다고 여겼는지 가만히 지켜보던 여권운동가 여교수까지 가세하며 경상도 통역에게 유도하듯 물었다.
“‘쩐주’라는 말이 한국의 뜻에서 보배라는 뜻이 있는 거 아닙니까?”
“‘쩐주나이(버블티의 중국어)’차의 쩐주라고 했잖습니까? 그냥 부를 수 있는 겁니다.”
그녀의 질문이 유도하는 종착점이 어딘지 보였기에 박 교수는 단호하게 자르며 말했다.
“친밀한 사이라면 그렇게 부르지만 친밀하지 않으면 그러지 않겠지요.”
경상도 통역의 어중간한 대답은 조사위원들이 원하는 답이 아니었다.
“어떤 남자 교수도 여학생의 별명을 부르지 않습니다.”
그 틈에 빠질 새라 페미니즘 강사가 다시 끼어들며 입술을 다부지게 하고는 박 교수를 노려봤다.
“저는 강의 중에, 지금 3학년 듣기 수업에서도 맨 앞에 앉아서 유치한 행동을 하는 학생에게 ‘유치원생’이라는 호칭으로 가끔 부릅니다. 내가 학생들을 별명으로 부르는 것이 ‘성희롱’입니까?”
다시 박 교수가 핵심을 꼬집고 나오자 남자 위원장이 다시 바통을 받았다.
“좋습니다. 교수님의 말하는 방식이고 스타일이라 생각합시다.”
그때 스피커에서 지지직거리며 통화 녹음이라는 부분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대화의 내용은 박 교수가 기대한 ‘여보세요’로 시작하는 전체 대화가 아니었다. 그걸 인지한 순간 뭔가 이상하게 조작되었을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후, 조사위원들이 박 교수에게 제시한 통화 실제 시간은 앞에 12분과 끊겨서 다시 걸어 통화된 부분인 28분이었다. 하지만 녹음되었다고 들려준 부분은 채 4-5분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부분은 마치 겁에 질려 마지못해 대답하는 것과 같은 상황을 연출한 여학생의 대답이 위주였다.
녹취된 내용의 주 대화는 마음이 이미 와 있는데 왜 머리 얘기를 자꾸 하는 거냐고 짜증 내는 박 교수와 마음보다 머리가 먼저니 머리가 이해가 가게 되면 나중에 이야기하겠다는 여학생의 실랑이 아닌 실랑이가 전부였다.
“제 머리가 알면 말씀드릴게요.”
그 이후에 박 교수가 ‘그러면 너의 사랑고백을 받아준 것도 다시 내가 재고해야 되겠네.’라는 대사가 나와야 하는데 그 부분은 삭제되어버린 채 그대로 툭 끊어졌다. 박 교수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자기가 피해자인 양 보이기 위해 최대한 앞뒤를 잘라버리고 증거랍시고 제출한 의도가 확연했다.
“왜 이런 통화를 하신 거죠?”
‘이제 네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겠지?’ 하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띠며 남자 위원장이 칼로 폐부를 찔러 죽음을 확인하려는 듯 물었다.
“전부터 말했지만 저는 금요일 가족과 함께 짜오시 온천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건 온천 숙소에서 통화를 한 거구요. 새 학기 수업 관련해서 학과에서 온 메일 때문에 통화를 하겠다고 계속 연락을 취했었던 것은 라인 대화에 그대로 남아 있으니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제대로 그 부분을 얘기하지 못해서 연휴 중에 다시 상의하는 이메일까지 남긴 증거도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