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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n 10. 2021

대만에 사는 악녀 - 9

성별평등위원회 조사위원회의 두 번째 조사 - 1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37

                                               - 2017년 6월 21일

                          외교대학교 행정대루 5층 회의실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조사위원 세 사람과 경상도 통역 여자, 그리고 성평회의 담당 여직원을 위한 도시락이 준비되어 있고, 그들이 박 교수가 온 것을 확인하고 저녁식사를 시작하는 기괴한 패턴은 어제와 똑같았다. 박 교수를 위한 도시락은 고사하고, 어제와 비슷하게 조사가 진행될 것이니 저녁을 먹고 천천히 와도 된다는 식의 배려는 눈곱만치도 기대할 수도 없었다. 어제와 똑같은 빈 창고 같은 공간에서 1시간여를 기다린 끝에 다시 도시락 음식 냄새가 진동하는 회의실로 들어섰다. 다들 차와 음료로 입가심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처음부터 작정을 했는지 페미니즘 강사가 어제 제대로 자기는 질문조차도 하지 못했다면서 질문의 포문을 열었다.

  “교수님께서 여학생에게 조교는 학교에서 교수의 아내와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매번 확인하듯 물었고 그렇다고 대답하자 매우 만족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맞습니까?”

  “아닙니다.”

  “뭐 상관없습니다. 계속 묻지요. 연구실에서 밥을 먹으러 식당을 가면서 선생님과 이렇게 같이 걸어가는 것이 불편하냐고 물었고,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이유는 몰랐지만 그 여학생은 굉장히 불편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번은 ‘교수님이 너를 만지는 게 싫으냐?’라고 물었고 ‘내가 건드릴 때마다 너는 너무 깜짝 놀랐고, 니가 나를 변태 아저씨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나는 마음이 상했다.’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내가 그 부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뭔가 잘했다고 등을 두들겨주거나 할 때 손이 몸에 닿는 것만으로도 그 학생이 소스라치게 민감하게 해서, ‘아, 이런 게 싫으면 내가 건드리지 않으마.’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런 적이 없습니까?”

  “없습니다.”

  “터치하는 것만으로도 놀라는 것은 알고 계셨던 거네요?”

  “그 학생이 10년 전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해서 그 이유에 대해 그저 짐작할 뿐이었습니다.”

  “또 한 번은 ‘그렇게 싫다면서 왜 연구실에 계속 오니? 긴장해서 얼굴을 붉어지는 것을 보니 선생님 좋아서 그러니?’라고 말하신 적 있나요?”

  “아니요. 오히려 학생이 뜬금없이 저에게 ‘어느 날에는 선생님이 싫고, 어느 날은 너무 좋고 매번 달라요. 그래도 오면 올수록 선생님이 좋아져요.’라며 자신이 기복이 심한 사람임을 인정하는 말을 한 적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왜 그렇게 느끼냐고 물었더니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애증이지요.’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

  “어느 날은, ‘내가 너무 힘든데 너의 허벅지에 머리를 대고 쉬어도 되겠니?’라고 했다던데...”

  “그런 일 없습니다.”

  “그 여학생은, 선생님이 어떤 행동을 할지 몰랐고 무서웠기 때문에 선생님이 왜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그렇게 물었는지 몰랐다고 합니다. 선생님의 지시와 유도에 따라서 사랑한다고 얘기했을 뿐이라고 합니다. 교수님이 지시했고 선생님이 시켰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그 말이 거짓이라는 증거, 세 가지를 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는 CCTV를 확보했습니다. 내 연구실에서 나오면 바로 앞에 엘리베이터가 있고, 엘리베이터에는 CCTV가 있습니다. 만약 그녀의 거짓말이 사실이라면, 연구실에서 성희롱에 해당하는 행위가 있고 난 뒤 아무렇지도 않게 둘이서 엘리베이터에 함께 타고 내려오는 모습은 상식에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상식적으로 24살이나 먹은 명문대학의 여학생이 선생님이 유도와 지시에 의해서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는 거짓말을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셋째로, 어제 라인 대화 증거를 통해 그 학생이 나를 무서워하기는커녕 만만하게 보고 함부로 행동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충분히 증명했다고 봅니다.”

  대답을 하는 도중에 cctv 화면 얘기가 나오자 성평회 여자 직원이 노트북을 tv에 연결하며 영상 같은 것을 보여주기 위해 준비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학생에게 애칭 같은 것을 지어줬나요?

  “아니요.”

  “‘가슴이 작으니까 너는 마음도 작나 보다.’라고 하셨나요?”

  “교수가 학생에게 무슨 그런 말을 합니까?”

  “터치하려고 할 때 움찔거리니까 ‘변태 아저씨로 보냐?’라고 했습니까?”

  “책을 잡으려고 하거나 몸이 닿지도 않았는데 심하게 소스라치는 할리우드 액션 같은 행동을 하길래, ‘내가 뭘 어떻게 했는데 그런 식으로 반응하냐며 물은 적은 있습니다.”

  “손바닥을 만지고 바람을 불어넣었고 손을 빼려고 했는데, 교수님이, ‘학생의 손바닥에 땀을 없애주려고 한 것이 변태 아저씨냐?’라고 한 사실이 있습니까?”

  “그런 적 없습니다.”

  화면에 cctv 영상이 잡혀 나오기 시작했다.

  “이건 교수 사택, 5월 25일 학생들이 놀러 왔던 당시의 화면입니다.”

  다시 직원이 파일을 닫고 다른 사진을 조정해서 보여줬다.

  5월 25일 1시 반에 연구실을 나서는 화면이 나오기 시작했다. 조사위원 세 사람도 숨을 죽이며 화면을 응시했다.  

  “여학생은 당신을 보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보고 있는데요.

  “나는 옆에 없습니다. 가방을 챙겨서 조금 늦게 나왔습니다. 그런데 학생이 혼자서 바로 타고 가지 않고 다시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나를 위해 열어주고 있습니다.”

  “학생이 교수를 기다리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조사위원의 합창 같은 변호에 박 교수는 어이가 없었지만 다부지게 입술을 물고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만약 당신들 말이 맞다면 두 가지가 달라야 합니다. 첫 번째는 그 학생과의 관계에서 아무런 일이 없었다면 당신들 설명처럼 교수를 위해 기다려주고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려고 문을 다시 잡고 있는 행위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겠죠. 그런데 지금까지 당신들의 설명에 따르자면 그 학생은 거의 감금 수준으로 밤늦게까지 억지로 잡혀 있어서 너무 무섭고 성희롱에 해당하는 너무 이상한 일을 당했다고 하는데 교수에게 유도당해서 사랑한다고 아무 감정도 없는데 얘기를 했다는 그 상황인데 그 위기의 순간에서 벗어나서 돌아가는 상황에 기다렸다가 교수의 얼굴을 대면서까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까? 그게 정상입니까? 나는 그것을 정상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이건 지극히 정상적입니다.”

  남자 위원장이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식으로 피식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어깨를 으쓱 들어 보였다.

  “우린 어제 라인 대화 내용으로 이미 확인한 바 있습니다. 그녀가 예의 있는 학생이었습니까?”

  “상황은 매번 변합니다. 그때그때 다른 거죠.”

  듣기에 거북할 정도로 궁색한 변명을 남자 위원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이것은 아주 정상적인 상황입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이고 아무 이상이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라고 박 교수는 생각했다. 화면이 5층에서 1층으로 내려와 어둠 속의 복도에서 다시 현관문을 나서며 박 교수가 학생이 맨 가방 쪽을 손으로 대주며 밖으로 안내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 새를 놓칠세라 여권운동가 여자 교수가 치고 나왔다.

  “어! 당신이 학생의 등을 손으로 대줬습니다.”

  “정확히 말합시다. 가방에 손을 대고 문을 열어주고 예의를 갖춰 안내한 거 아닙니까?”

  “으음, 내가 보기에는 아까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여학생이 지극히 무서워하는 표정으로 보였습니다.”

  이제는 신이 들리기 시작한 무당처럼 여권운동가 교수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 화면만 있는 것이 아니니, 평상시에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던 화면과 새벽의 화면을 비교해봅시다. 그러면 정말로 무서워서 떨고 있는지 그 차이를 발견할 수 있겠지요. 당신들은 지금 이 학생의 표정이나 얼굴을 처음 봤으니 비교의 데이터가 없을 거 아닙니까?”

  “어떤 화면을 보자는 겁니까?”

  자기의 논리를 막아서는 것이 거슬린다는 듯 여교수가 다시 물었다.

  “일반적으로 움직이는 표정은 모두 똑같지 않습니까?”

  “아니죠. 비교의 데이터가 있어야 변화의 여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그래서 다양한 cctv 영상을 확보 요청했습니다. 아무 일 없을 때의 표정과 5월 25일 새벽 표정과 비교하면 그녀가 무서워하는 것인지 아니면 평상시 표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거 아닙니까?”

  “굉장히 긴장한 표정이었습니다.”

  자신의 논리가 행여 논리 정연하게 비교 데이터까지 말하는 박 교수에 의해 깨지기라도 할까 봐 그녀는 주문을 외우듯이 계속해서 중얼거리며 변죽을 울렸다. 화면을 찾고 있던 중에 진우접과 박 교수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밝게 웃으며 대화하는 화면이 나왔다.

  “보세요. 진우접도 농담을 하면서 밝게 웃고 있지 않습니까?”

  화면에는 밝은 형광색으로 염색된 그녀의 긴 머리 끝을 교수가 만지며 뭐라고 말하자 웃는 여학생의 모습이 보였다.

  “먼저 여학생의 머리를 만지셨지요?”

  “네.”

  “즐겁게 대화를 나눈 것까지는 이해가 가는데, 학생의 머리를 만지는 게 필요했습니까?”

  “필요에 의해서 만지고 합니까? 이렇게 특이한 색으로 염색을 강하게 하면 머리끝이 다 상할 텐데 라고 말하면서 만진 겁니다.”

  “터치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페미니즘 강사가 행여 뒤질세라 한 마디 냉큼 끼어들었다.

  “머리끝을 만지며 얘기하고 있는데 이 학생의 웃고 있는 반응은 문제가 없다는 거 아닙니까?”

  화면에 나오는 그대로의 증거를 설명하며 박 교수가 반박했다.

  “허허허.”

  마치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식으로 남자 위원장이 허탈하게 웃었다.

  “아! 그리고 아까 퀴즈를 하면서 진우접 학생의 무릎에 답을 써주느라 정신이 없었을 텐데 어떻게 츠리엔 학생의 눈이 홱 뒤집히는 것까지 보셨나요?”

  실제 교수급들이 나누는 질의응답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정도의 수준까지 내려간 페미니즘 강사의 질문은 박 교수의 진을 빼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넌더리 내는 박 교수의 모습이 오히려 모든 것을 승복하고 포기하는 것이라고 느끼며 신이 나서 질문의 속도를 높였다.

  “어떤 자세로 누가 어디에 앉아 있었고, 어떤 상황이었는지 그림을 그려가며 재현해봐 주실 수 있을까요?”

  늙은이나 할 일없는 아줌마들이 보는 예능프로에서 아주 간단한 내용까지도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하는 장면이 박 교수의 뇌리를 스쳤다. 짜증이 스멀거리며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쓰나미처럼 그치지 않고 몰아치고 또 몰아쳤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상세하고 자세히 그림을 그리고 어떤 자세였으며 거실의 커다란 유리창문을 통해 반사된 츠리엔의 모습이 명확하게 보였다는 것을 설명해 보이고 지친 듯 자리에 돌아와 있는 박 교수에게 다시 cctv 화면이 들어왔다. 성평회 여직원이 버튼을 누르며 정리하다가 화면이 나왔는데, 마치 자신들에게 불리한 상황인 나온 것인 양 그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자, 이 화면을 통해 파티가 끝나고 나오는 그들의 표정을 봅시다.”

  “아까 겁내 한다는 표정과 이 파티에서 나오면서 보이는 평상시 표정이 다릅니까?”

  하나의 영상만 있는 줄 알고 불안해 보인다고 말했던 여권운동과 여교수가 입을 닫았다. 비교의 대상이 여러 개가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더군다나 바로 다음날 교수의 집에 가서 그 가족들과 웃고 떠들며 엘리베이터에 타고 나오는 모습이라니 뭐라고 딱히 반박해야 할지 몰랐다. 흥분한 박 교수는 언성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었다.

  “심지어 내가 얘기하고 있는데 저렇게 웃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만약 곤란하거나 정말 싫었다면 이렇게 웃으면서 그랬을까요?”

  박 교수의 아이들과 함께 식사하고 나서 중간에 음료수를 사러 나오는 장면에서 아이들과 웃고 떠드는 모습이 나오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페미니즘 강사가 이리저리 눈치를 보다가 황급하게 시비를 걸 듯 대답했다.

  “엘리베이터 안에 교수님이 없으니까 그랬겠지요.”

  “그런 억지가 어디 있습니까?”

  말도 안 되는 억지에 정면으로 쳐다보며 소리를 지르듯 외치자, 페미니즘 강사가 입술을 꽉 다물었다. 감정적으로 이들을 누르기만 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박 교수였다. 다시 감정을 다스리고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자기 집에 누군가를 초대해서 자기가 직접 만든 요리를 해주는 것은 굉장히 특별한 관계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겁니다. 성희롱 때문에 서로 불편한 관계였다면 엘리베이터의 화면에서 본 것처럼 그런 표정과 행동을 할 수 없었다고 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내내 성희롱을 당했다던 두 달간 관계에 대해서는 이미 라인 대화로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파티의 날짜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 날 우리 집에서 학생들과 헤어진 이후 저는 츠리엔을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의심을 해봐야 하지 않습니까? 긴 연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의심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왜 지금 그들이 이런 일을 벌였는지를 시점을 살펴봐야 합니다.”

  그의 설명에 딱히 뭐라고 반박할만한 논거가 없던 세 위원들은 가만히 숨죽이며 반격의 기미를 살폈다. 그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박 교수의 합리적 추리가 새롭게 시작됐다.


- 10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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