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되기가 어렵지, 정치함이 뭐 어려울 게 있겠는가?

한 사람도 설득하지 못하면서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이에게.

by 발검무적
季康子問: “仲由可使從政也與?” 子曰: “由也果, 於從政乎何有?” 曰: “賜也可使從政也與?” 曰: “賜也達, 於從政乎何有?” 曰: “求也可使從政也與?” 曰: “求也藝, 於從政乎何有?”
계강자(季康子)가 물었다. “중유(仲由)는 정사에 종사하게 할 만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由는 과단성이 있으니 정사에 종사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賜(자공)는 정사에 종사하게 할 만합니까?”하고 물으니, “賜는 사리에 통달했으니 정사에 종사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하셨다. “염구(冉求)는 정사에 종사하게 할 만합니까?”하고 물으니, “求는 다재다능하니 정사에 종사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하셨다.

앞서 ‘공야장(公冶長)편’ 7장에서 맹무백이 자로(子路), 염구(冉求), 공서적(公西赤)이 仁한 지에 대해 묻자, 공자는 그들이 仁한지는 모르겠고, 각자가 잘하는 영역이 있다고 말하는 내용을 공부한 바 있다. 그런데 그것과 비슷해 보이는 이번 장이 그 장의 문답과 무엇이 다른지 비교하면 아주 재미있는 공부가 될 것이다.


뒤에 공부하게 될 ‘선진(先進) 편’의 23장에서는 계자연(季子然)이 공자에게 ‘중유와 염구가 대신이 될 수 있는가?’라고 묻는 대목이 나오는데, 공자가 ‘다른 것을 물을 줄 알았는데, 또 중유와 염구에 대해 묻는 것입니까?’라고 대답을 시작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만큼 위정자들에게 끊임없이 구체적인 이름이 거론될 정도로 중유와 염구는 나름 공문(孔門)의 제자들 중에서는 에이스 군에 속한 이들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운을 띄웠던 것처럼, 이 장은 ‘공야장편’에서 ‘仁’을 언급했던 것과 달리, ‘정치에 종사하게 할 만합니까?’라는 동일 질문을 반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같은 유의 문답인 것 같지만, 공자에게 있어서는 완전히 다른 질문이다. 그래서 앞에서는 주저하며 마지막을 항상 ‘仁한 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라고 부정적으로 대답한 것에 비해, 이 장에서는 거침없이 제자들의 특장점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사실, 이 장은 그 형태 자체만으로도 질문을 한 계강자를 후려치는 것과 동시에, 상당히 많은 기능을 포함하는 복잡한 장이다. 도대체 이 간단한 문답에 무슨 그런 숨은 뜻이 많다는 것인지 공자의 레벨에서 언어구사를 어떻게 한 것인지 숨은 의도의 정체를 밝혀보도록 하자.


첫째, 정치에 대해서 ‘만’ 묻자, 대답이 술술 나왔다. 이는 정치가 그다지 대단할 것이 없는 기술적인 것에 해당한다는 디스에 다름 아니다. 그 근거로, 사서를 읽는 자들이라면 기본으로 숙지하고 있어야 할, ‘何有(=何難之有)’라는 상투어를 써어 ‘무슨 어려울 것이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하고 있다.


둘째, 이 장을 해석한 현대의 학자들이 본 표면적인 면. 자신의 제자가 가지고 있는 특장점에 대해서 정확하게 꿰뚫어 분석하고 있으며 그것을 적재적소에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과 동시에, 어떤 사람이라도 결국 쓸만한 장점을 갖추고 있으니 그것을 찾아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초급에서 상급까지의 의미를 모두 담아내고 있다.


셋째, 정작 가장 중요한 仁에 대한 것을 묻지 않고 놓쳤으니 누구를 가져다 쓰더라도 상관이 없다는 식의 깨우침을 던져 질문자인 계강자에 대한 디스를 겸하고 있다.

주자는 이 장에 대해 세 가지 의미에 대해 주석을 달아 해설하고 있다.

“果는 결단함이 있는 것이고, 達은 사리에 통달한 것이고, 藝는 재능이 많은 것이다.”

간단하게 설명하긴 하였으나 이 부분에 대해서도 좀 더 살펴볼 여지가 있다. 예컨대 다재다능한 것과 정치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현대인들은 반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 담백하고 힘쓰기를 좋아하는 중유(仲由, 子路)와 재주가 많은 염구(冉求, 子有)는 계씨의 재가 되었고, 단목사(端沐賜, 子貢)도 계씨에게 발탁되어 외교에서 제와 오, 월을 오가며, 노의 위기를 타개하는 혁혁한 성과를 보게 된다는 점은 앞서 몇 번 자세히 설명하였으니 생략한다.

‘果’가 결단함이 있다는 의미는 큰 문제가 없다. 문제는 남은 두 가지이다. 사리에 통달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사리에 통달했다는 것은 사물의 이치와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잘 안다는 의미이니 그만큼 사람들의 문제에 있어 공평하고 공정하게 정사를 돌볼 수 있음을 의미한 것이다.


마지막이 애매한데, 현대어의 기준으로 다재다능한 것은 나쁜 의미는 아니나, 그것이 정치를 하는데 필요한 미덕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예(藝)는 예술적 능력이 맞다. 예술적 재능의 가장 기본은 노력이 아닌 천부적인 재능을 의미한다. 그것은 구체적인 현대어로 환치하여 말하면, ‘창의력’에 해당한다. 예술에서 창의력이 부재한 카피는 삼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창의력이 풍부하다는 것은, 가령 수학 문제를 푸는 데 있어 기존의 풀이를 외워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법으로 문제의 원인을 꿰뚫어 보고 해법을 내놓는 것이다. 즉, 이 방식으로 다각적인 문제의 분석을 통해 상대방의 변수나 그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예측할 수 있는 창의력의 변용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외교적인 능력에 필수적으로 연결됨은 바로 이러한 재능과 연결된다.

그래서 정자(伊川)는 다음과 같이 이 장을 정리한다.

“계강자(季康子)가 ‘세 사람의 재능이 정사에 종사할 만합니까?’라고 묻자, 夫子께서 각기 소장이 있다고 대답하셨으니, 비단 세 사람뿐만 아니라, 사람마다 각기 장점이 있으니, 그 좋은 점을 취할 수 있다면 모두 쓸 수 있는 것이다.”

이 정리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 정리만을 본 현대의 해석한 이들이 대개 위에 언급했던 정작 중요한 부분들은 놓치고 표면에 드러난 이것 하나만 이야기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전에도 말했지만, <논어>의 공자식 어법이 갖는 특징은 레벨별로 알아듣는 범위와 범주가 제각기 다르다. 깊이가 알 수 없는 수준이기에 그것이 가능한 것이고, 상대가 그것을 다 읽어내지 못하더라도 의사소통을 하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 이 어법의 소름 끼침이다.

<논어>를 문자학적으로 수치적 분석을 하게 되면 그 부분은 훨씬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공자에게 누구든 ‘仁’에 대해 물으면, 대답은 한없이 유보적이며 애매한 부정을 띠게 된다. 그러한 이유로, 그 많은 제자들에 대해 특징을 분석하고 세세한 부분까지 읽어내고 있었음은 그 제자들의 이후 활약상을 보더라도 한치의 오차가 없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늘 애매모호하게 대답하고 모르는 척하지만, 공자만큼 스승으로서 사람의 능력을 파악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묘사하는 탁월한 표현능력을 가진 사람을 나는 아직까지 보지 못하였다.

그리고 여기 한 가지 더 내가 사족을 단다면, 결국 정치를 포함하여 세상살이라는 것은 제각기 가지고 있는 자신의 장점을 발휘하여 살아가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 성적만 좋았다고 해서 인생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듯이 머리가 좋은 것이 장점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그것이 절대적 기준으로 선발의 기준이나 앞서가는 요소일 수는 없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 인생을 살아본 이들이라면 모두 하나같이 말하는 그 진실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어느 하나의 기준을 세우지 말고 다양한 가치관에 따라 다양한 인간들의 역량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이 인생살이고 정치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가르침까지 이 장의 행간은 담아내고 있다.

자연의 섭리는 그러하고, 역사의 흐름은 그것이 진리라고 말하는데 작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정말로 그 사람이 가진 장점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나가는데 편견과 차별 없이 살아가도록 하고 있는가?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 정치를 하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 토론을 통해 자신의 정견을 발표하거나 제대로 말을 못 하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이상한 버릇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정치를 하면 안 된다거나 그가 폄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정치라는 것은 자신의 의견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다툼이 있었을 때 칼을 차고 일방적으로 다른 사람을 윽박지르고 자기 멋대로 휘둘러 버릇하던 사람이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고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밀고, 논리에 의해서 긍정을 얻어내는 훈련을 전혀 하지 않은 이가 정치를, 게다가 한 나라의 수장이 되겠다고 나서는 건 문제가 좀 심각하다.


앞서 이 장에서의 가르침이 의미하는 것은 자신의 장점을 살려 적재적소에 쓰일 수 있다는 것이지, 음치에 음감이 없고 피아노를 못 치는데 피아니스트를 고집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런데도 안 맞는 옷을 입겠다고 설치고 나와 정치를 하겠다고 하면, 그거 망신당하는 것에서만 그치지 않고 누군가가 다치게 된다. 정치가 단순히 말하는 능력이나 토론하는 능력으로만 되는 것이 아닌데 왜 그런 식의 비난을 하냐고 할 수도 있겠다.


아니다. 그런 엄한 방어를 한다면 당신은 크게 아주 크게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배태한 서양의 대표적인 정치의 기본은 토론이다. 토론은 상대를 공격하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다른 상대를 내 논리로 이해할 수 있게 설득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미국은 아직도 공개 토론이 선거의 향방을 가른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고향이라는 서구에서는 어려서부터 가족에게조차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을 훈련시켜야 한다는 문화가 자리 잡아 있고, 그것은 정치인을 만들지 않더라도 세상을 살아나가는데 아주 큰 힘이 된다.


대통령이 될만한 사람이 후보에 없다고 말하는 이대남을 필두로 한 젊은 친구들을 많이 본다.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다. 정치판에 있는 것들이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에, 공직에 있는 것들까지 하는 짓들이라고는 썩어문들어져 어디 하나 괜찮은, 인정받을만한 이를 찾기가 어려운 시대가 된 것도 맞다.


그런데 비슷하게 정치권에 신물이 난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웃나라 일본의 사례를 보면, 우리가 얼마나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옷을 여미게 한다.

최근 있었던 일본의 중의원 총선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가 나왔다. 일본 국회의 과반은 233명이다.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군대를 만들겠다는 말도 안 되는 개헌도 가능한 절대 안정다수가 261명이다. 그런데 이번 총선의 결과 공명당과 자민당이 연정을 하게 될 경우, 239석을 확보하였고, 야당을 빙자한 극우정당인 유신회가 기존 11석에서 41석까지 당선 수를 4배에 가깝게 확보한 것이다. 이 극우정당이 너무도 당연하게 자민당과 손을 잡으면 300석을 넘겨버리게 된다.


물론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역대 최저 3위의 선거율을 보인 이번 선거를 통해, 우익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결과를 얻어냈다. 사실 자민당의 독주를 막아보겠다고 제1야당 입헌 민주당은 심지어 일본 공산당까지 포함하여 단일화를 이뤘다. 그래서 일본의 변화를 꿈꾸는 이들은 나름 기대를 가졌다.

그런데 결과는 참혹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진보성향의 유권자들이 두 가지 이유로 투표를 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는 앞서 언급했던 정치권에 대한 실망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야당의 최초 최대의 역사적 단일화에 기대‘만’ 한 것이다.

일본은 국가가 나서서 코로나 확진자 수를 조작하는 지경까지 나라가 거꾸로 돌아가서 세계의 비아냥을 사고 있는 지경까지 가버렸다.


자민당을 필두로 한 극우 보수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나라를 이끌던 제2차 세계대전을 벌이기 위해 진주만을 치겠다고 설치던 그 최적의 상황을 이번에 다시 마련하게 된 것이다. 일부 군국주의자들의 허튼짓으로 인해 원폭으로 나라가 박살 나고 사람이 죽어나갔다. 그 피해는 아무것도 모르던 일본의 국민들이 온몸으로 맞아야만 했다.


섬나라 쪽바리 얘기를 뜬금없이 왜 꺼내느냐고?

아까 대통령으로 찍을 사람이 없다며 정치에 넌더리가 난다고 푸념을 내뱉던 당신이 지금 우리나라 돌아가는 상황을 잘 봐라. 과연 이번 일본 총선의 상황과 무엇이 그렇게 다른지. 우리나라가 그 지경까지 추락하면 안 되지 않겠나?


<논어> 읽기를 하면서 매번 강조하지만, 어찌 되었든 대한민국이 지금 대의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한, 합법적으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당신에게는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회초리를 들지 않으면 당신의 나라가 당신의 사회가 당신의 가정이 어떤 험한 안 좋은 꼴을 당하게 될지 모른단 말이다.


눈 부릅뜨고 자기네 주머니만 챙기려는 그것들에게 이용당하지 말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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