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씨(季氏)가 민자건(閔子騫)을 費邑의 邑宰로 삼으려 하자, 閔子騫이 (使者에게) 말하였다. “나를 위해 잘 말하여다오. 만일 다시 나를 부르러 온다면, 나는 반드시 노나라를 떠나 제나라의 汶水가에 있겠다.”
민자건(閔子騫)
이 장은, 공자의 평가가 들어있지 않고, 있었던 일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구조이다. 여기서 계씨(季氏)는, 앞서 계속 언급되었던 노애공(魯哀公) 시절의 그 계강자(季康子)이다. 또,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비읍(費邑)은 계씨가 가지고 있던 성읍 중에서도 가장 막강하고 가장 골치 아픈 성읍이었다.
정공 12년, 계씨의 재가 된 자로(子路)가 비읍(費邑)의 읍성 성벽을 허물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당시 비읍(費邑)의 성주 공산불뉴(公山不狃)가 완강하게 저항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그를 쳐부순 사건이 있었는데, 공산불뉴(公山不狃)는 제나라로 도망쳤지만 결국 삼도(三都)의 무장해제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 유랑길에 들어서야만 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 장의 주인공은, 앞서 설명한 바 있던 민자건(閔子騫)이다. 이름은 민손(閔損)이고 공자보다 15살이 적었으며, 자(字)가 자건(子騫)이다. <논어>에 등장하는 공자의 제자 중 부덕한 이의 밑에서 벼슬을 할 수 없다며 사양한 제자로는 칠조개(漆彫開)와 민자건, 증삼(曾參)을 들 수 있는데, 칠조개는 ‘아직 벼슬할 실력이 안됩니다.’라고 사양하였고, 민자건은 이 장에 나오는 고사로 벼슬을 사양하고 있다.
주석에서 정자(伊川)가, “공자의 문하에 대부의 집안에 벼슬하지 않은 자는 민자와 증자 몇 사람뿐이다.”라고 한 것은 이러한 내용을 말한 것이다.
계강자가 민자건에게 자신의 가신으로 삼겠다고 사자(使者)를 보냈더니 사양하며 민자건이 다시 자신을 또 찾아 벼슬을 강권한다면 汶水(문수)로 가겠다고 강하게 거부의사를 밝힌 것이다.
문수는 齊나라 남쪽과 魯나라 북쪽 경계에 있는 강의 이름이다. 즉, 다시 한번 찾아오게 되면 ‘노나라를 떠나 제나라에 망명해 있을 것이다.’라는 의미인 것이다.
민자건은 계강자(季康子)가 노나라의 군주였던 애공을 제대로 보필하지 않고 권세를 탐하고, 세력을 늘리는 역할을 한다고 여겨, 계씨(季氏)의 식읍인 비(費)의 재(宰)가 되는 것은 자신이 배우고 익히고 지향하는 덕(德)과 맞지 않아서 그 자리를 거부한 것이다.
자로(子路)와 염구(冉求)가 계씨가의 재(宰)로 등용되어 계강자를 도와 전유를 치고, 애공 12년에 정전의 세율을 전부(田賦)로 바꾸어 계강자의 재산을 불리는 역할을 하여 공자의 빈축을 산 것과 달리, 민손(閔損)은 계강자의 초빙을 거부한 것이다. 이런 점이 공자가 민자건을 덕행과 효행분야에 있어 지극히 칭찬했던 배경에 다름 아니다.
이 이야기는 <장자(莊子)> ‘外物篇(외물편)’에서, 요임금이 허유(許由)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했을 때 허유(許由)가 도망 가버리고, 탕 임금이 무광(務光)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무광(務光)이 몹시 화를 내며 거부했다는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사씨(謝良佐)는 이 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배우는 자는 안팎의 구분을 조금만 알아도 모두 도를 즐겨 남의 권세를 잊을 수 있다. 하물며 민자(閔子)는 성인을 얻어 歸依를 삼았으니, 그 계씨의 의롭지 못한 부귀 보기를 개돼지쯤으로 여길뿐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또 따라서 그 신하 노릇함이 어찌 그의 마음이었겠는가? 성인에게 있어서는 그렇지 않은 것이 있으니, 어지러운 나라에 살면서 악인을 만남은 성인에게 있어서는 괜찮지만, 성인으로부터 이하는 강직하면 반드시 화를 취하고, 약하면 반드시 욕을 취하기 마련이니, 민자(閔子)가 어찌 일찍 보고 미리 대비하지 않겠는가? 由(자로)로 말하면, 제대로 죽음을 얻지 못하였고, 求(염구)는 계씨를 위해 더욱 재산을 증식시켜 주었는데, 이것이 어찌 그들의 본심이었겠는가? 이미 앞을 내다보고 지혜가 없고, 또 어지러움을 극복할 재능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민자(閔子)는 그 어질다 할 것이다.”
이 주석은 의미하는 바가 깊어 잘 새겨야 할 필요가 있다. 어지러운 나라에 살면서 악인, 즉, 제대로 정치하지 않는 자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을 때, 그것을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대한 비교를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인(聖人)은 이러한 상황에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수 있으나, 성인 이하의 사람들 즉 이 글을 읽고 공부할 이들에게 권계하는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강직하게 거절하면 화를 당할 수도 있고, 유약하게 제대로 거절을 하지 못하면 오히려 욕을 당하게 된다는 설명은 수천 년 전의 중국에만 해당하는 사실이 아니다.
그래서 민자건의 단호한 거절은, 항상 마음의 대비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고 높이 평가한다.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 이유를 계강자에게 스카우트되어 갔던 자로와 염구를 비교하며 설명한다. 자로와 염구도 사실은 그 스카우트에 응하여 계강자의 재산을 증식하려던 의도는 아니었는데,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그 두 사람은 앞을 미리 대비할 지혜도 없었고 어지러움을 극복할 재능도 없었다는 표현을 쓴다. 그저 명예에 혹해서 스카우트에 응해서 갔다는 말보다 오히려 더 아플 수 있는 비난에 다름 아니다. 그런 욕을 당할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 거부하였으니 민자건의 이 장에서 보인 행동이 더욱 칭찬받을만한 것이라는 설명인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공부를 하는 것이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인 자들에게 권력을 가진 위정자가 자신의 오른팔이 되어 달라는 스카우트는 아마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못해 달려갈 일인 것임에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 그 달콤한 유혹은 올바른 도로 같은 방향을 지향하고 있지 않으니 거부하겠다고 하는 의사를 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다시 한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곧 대선이고 바로 연이어 총선이 진행될 것이다. 이제까지 ‘공천’이라는 이름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 수만 있다면, 어제까지 함께했던 동지들을 배신하고 당적을 바꾸거나 본래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를 신념이라는 것을 버리는 이들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봐왔다. 선거 때마다 벽지 포스터에 버젓이 번호표를 달고 나오는 그들 중에서 그렇지 않은 자를 찾는 것이 더욱 어려운 시대가 되어 버렸다.
되나 가나 자신의 적이라고 생각하면 사퇴하라며 질그릇 깨지는 소리로 외쳐댔던 전 국회의원은 누가 어디서 나를 불러주지 않는지 두리번거리고 찾아다니며, (선거도 아니고)공천에서 간택(?)되지 못하자 악다구니를 쓰며 몸부림을 치는 꼴사나운 짓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자신을 찍는 카메라가 도는 줄도 몰랐던 것인지 알고서 더 그런 것인지 그 영상을 보던 이들에게 쓴웃음을 제대로 안겨주었다.
음주 운전은 살인이라며 방송에서 단호히 떠들었던 법비 출신 국회의원이 음주운전을 한 것이 발각되어 다음 선거를 맞이했을 때, 나는, 아니 일반 사람들은 그가 다시 바로 선거에 나와 자신을 뽑아달라고 할 뻔뻔함을 갖췄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싶었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은 어째서 그리 한 번도 틀리지 않았던지, 그는 버젓이 불리한 자신의 당적을 버리고 선거에 나와 뽑아만 주면 상대당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까지도 고려하겠다고 확성기에 대고 외쳐댔다. 그렇게 선거에 떨어지고 다시 스멀거리며 자신이 몸 담았던 당에, 같은 몸집의 법비에게 들러붙어 한 자리를 또 얻고자 나팔을 불어대고 있다.
그들이 왜 그렇게까지 권력에 매달리는지는 굳이 그들에게 직접 묻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그런데 이 장을 공부하면서 조금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아주 중요한 뭔가가 빠져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이 공부한 신념, 자신이 갈고닦고 수양한 신념이 없는 자들이 당(黨)이라는 이름의 뒤에 숨어서 그저 권력을 쥐고 그 무리 안에 있어야 승자라고 여겨 그것을 바탕으로 부귀영화를 챙기는 것이 지상 최대의 목적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도리에 맞지 않게 구는 정당의 공천을 됐다면서 거부하는 사람을 우리가 본 적이 있던가?
우리 편이 되는 순간, 무리 지어 그 공론(空論)이 공론(公論)이라며 내로남불 신공을 구사하는 이들만 보았을 뿐, 그것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거부하거나 비판하는 이들을 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을 한참 더듬어봐야 할 지경이 되었다.
그것은 정치인들에게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당신이 조직에서 능력은 없으면서 부정한 방법으로 세력을 키운 누구누구 라인의 부장과 이사를 욕하면서 그들이 널찍한 자신의 방으로 불러 당신을 라인에 발탁해줄 테니 앞으로 온몸을 불살라 충성하라고 하면, 당신이 당당하게 ‘너의 그 썩어빠진 행동들이 회사를 좀먹고 사회를 좀먹으니 내가 직접 처벌하는 것까지는 못하더라도 당신의 수족이 될 수는 없다’라는 마음으로 거절할 수 있느냔 말이다.
그래서 이 장만 읽으면 민자건이 뭐가 그렇게 대단하여 저렇게까지 오버를 하나 싶었던 것이 당신의 현실이 되면, “아! 정말로 엄청나게 대단한 일을 한 것이었구나!”라고 탄식을 내뱉게 되는 것이다.
현실이 딱 부러지게 시비를 가릴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오히려 편하고 쉽다. 하지만 현실은 항상 검은색과 흰색으로 딱 구분되어 있지 않다. 그렇게 느끼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당신의 사욕(私慾)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는 것을 연륜 내지는 경험이라고 포장한다.
앞서 살펴보았던 심도 깊은 정곡을 찌르는 주석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한 것이다. 성인이 아닌 자가 그저 강직하기만 하면 화를 당하게 된다. 그렇다고 여기 붙었다가 저기 붙었다가 약하게 굴면 욕을 당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것을 성인처럼 자연스럽게 내 갈 길이 아니면 상대의 마음을 짓밟거나 모욕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거부할 수 있다는 그 행간이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당신은 조직 내에서 부정하고 썩은 자의 스카우트에 못 이기는 척 도움을 주면서 스스로에게 ‘결국 회사를 위하는 일이고, 나만 올곧게 내 일을 하면 된다’라고 착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검찰과 법원을 봐라. 아니, 검찰이 있어왔던 이래로 지금까지의 검찰과 법원을 봐라. 올곧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고 교과서에서 말하는 정말 강직한 검사들은 애저녁에 옷을 벗었다. 아니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 조직에서 튕겨져 나왔다.
내가 굳이 법비들을 욕하고 탓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그들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우리 사회의 가이드라인이고 기준을 ‘법’이라는 이름으로 내세우고 그것을 적용하여 사람을 판단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왜 그들 조직이 ‘우리 편’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야 한단 말인가?
예컨대, ‘의원면직’이라는 조커가 바로 그 안 좋은 대표적인 예이다.
배가 고파 라면을 훔친 이들에게도 과감하게 기소하고 법대로 심판한다며 형사처벌을 내린다. 그 검사와 판사가 라면을 훔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비리를 저질렀을 때, 그들은 ‘의원면직’이라는 것을 한다. 즉, 스스로 사표를 내고 옷을 벗는 것으로 감빵에 가서 ‘game over’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한 판 더 보너스 게임으로 연명할 수 있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누가 왜 어떻게 그들에게 그런 권한을 주었단 말인가?
그들은 옷을 벗어도 전관 배지를 달고 변호사라는 동종 법조계 일을 지속할 수 있다. 그런데 ‘의원면직’이 무슨 형사처벌은 고사하고 징계도 아닌 것을 그들은 그 정도면 충분히 벌 받았다고 지들끼리 담합하고 합의한 것이다.
그들에게 법은 만인에게 공평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알고 그것을 전공하고 그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이들만의 리그인 것이다. 당연히 그 안에 당신은 없다.
다 썩어서 곧 바다에 침몰할 거라는 쪽바리 나라에서도 검사가 바로 정계에 진출하는 것을 법으로 금하고 있다. 이유는 그렇게 되면 검찰의 정치독립성이 심하게 훼손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그럴 생각이 없다.
애초부터 옷을 벗지 않아도 버젓이 당색을 다 들어내고 반 정치인 코스프레를 하는 그들이, 스타우트는 고사하고 정치에 끈을 못 대어 안달이 났는데, 그런 것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4년에 한 번 당신은, 당신의 판단에 의해 그들을 심판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고작 4년에 한 번이긴 하지만, 당신이 지금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권리를 가지고 그들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은 일단 그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