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仁은 어떤 과정을 통해 완성되는가?

평생에 단 한 번도 仁에 닿아보지도 못한 소인배들을 위한 가이드.

by 발검무적
子曰: “回也, 其心三月不違仁, 其餘則日月至焉而已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안회(顔回)는 그 마음이 3개월 동안 仁을 떠나지 않았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하루나 한 달에 한 번 仁에 이를 뿐이다.”
안회(顔回)

이 장에서는 그렇게 비교의 대상으로 나오던 공자의 최애(最愛) 원픽 안회(顔回)가 전면에 등장한다. 자(字)는 자연(子淵)이고, 노(魯) 나라 사람이었고 공자보다 30살이 적었으며, 29세에 머리카락이 모두 하얗게 백발이 되었다고 하고, 32세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문 4과(孔門四科)로 불리는 4개 영역인 덕행(德行), 언어(言語), 정사(政事), 문학(文學) 중에서 공자가 가장 비중을 높게 평가했던 덕행에 있어, 안회(顔回)와 민자건, 염백우, 중궁이 함께 언급되고 있다.

대부분의 공자의 제자들의 목표가 벼슬을 하기 위해, 당시 최고의 사학(私學)이라 할 수 있는 공문(孔門)에 들어가 제자가 된다. 그러나 안회는 처음부터 그런 목적의식 따위를 보이지 않았다. 스승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공자가 볼 때 도통 질문을 하지 않으니 어리석은가 보다 착각할 정도로 였다고 했다가 나중에 자세히 살펴보니, 이미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안회는 결코 어리석지 않았다고 탄복한 내용도 확인된다. 오로지 학문과 수양만을 원리원칙대로 이행한 조금은 꽉 막혀 보일 정도로 자신을 얽어맨 사람으로 묘사된다. 때문에 어느 누구도 감히 안회를 따라 할 수 없다는 것에는 모든 제자들이 인정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단사표음(簞食瓢飮)이라는 유유자적한 삶으로 유명했던 안회(顔回)는, 비유가 아닌, 실제로 집안이 너무도 가난해서, 공자(孔子) 문하(門下)에서 배우면서도 누추한 저잣거리에서 지내야 할 지경이었기 때문에 남들이 결코 견딜 수 없는 그 상황에서도 아무런 사심 없이 그 생활을 불편해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스승의 인정을 받았다.


똑같은 영역에 해당되어 덕행이 뛰어났다고 평가받았던 제자들 중 염옹(冉雍)은 계씨(季氏)의 재(宰)를 지냈고, 민자건은 계씨의 식읍 비(費)의 재(宰)로 초빙을 받았으나 사양하였으며, 염백우와 안연은 벼슬의 길을 걷지 않고 일찍 죽었다.

안회(顔回)가 요절하자, 그의 아버지 안로(顔路)는 공자의 수레를 팔아서 관을 싸는 곽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공자는 자신의 신분이, 뒷열이기는 하나 대부의 신분이니, 걸어 다닐 수 없어서 수레를 팔지 못한다고 하면서 안로(顔路)의 요청을 거절한다. 이것은 구차한 거절이 아니라, 실제로는 안회가 평민이어서 곽을 만들 수 없는 신분이므로 곽을 만들어 달라는 안로(顔路)의 요청이 禮에 맞지 않아 완곡한 방식으로 거절한 것이었다.


계속된 요구에 자신의 아들 백어(伯魚)가 죽었을 때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해주지만 안로(顔路)는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끼던 제자가 요절하여 가장 슬픈 것은 공자였지만, 공자는 그 상황에서도 안회를 지극히 아끼는 마음은 마음이고, 禮에 따라 장례를 치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승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다른 제자들이 안회의 장례를 禮에 맞지 않게 거하게 치르자, 공자는 禮를 따르지 않은 비난은 제자들의 몫이라며 제자들을 나무라며 입술을 다문다.

안회(顔回)가 仁에 대해 물었을 때, ‘克己復禮(극기복례)’라 대답해주고,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며, 말하지도 말고 행하지도 말라.’고 가르쳤는데, 정작 안회(顔回)를 보내는 상례(喪禮)에 다른 제자들이 예(禮)를 따르지 않아 마지막을 제자의 뜻에 맞게 보내주지 못한 것에 대한 어리석은 제자들의 행위에 대한 서운함이 드러난 대목이다.

그래서 이 장 역시, 앞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단순히 제자 안회(顔回)에 대한 높은 평가를 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안회(顔回)의 장점을 부각하되, 그것이 왜 장점일 수밖에 없는지와 그것을 통해 그 점을 갖추지 못한 이들에게 권계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먼저, 이 장에 대한 주자의 해석을 살펴보자.

“三月은 그 오래됨을 말한다. 仁은 마음의 덕이니, 마음이 仁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사욕(私慾)이 없어 그 덕을 간직한 것이다. 하루, 한 달에 이르렀다 함은 하루에 한 번 이르기도 하고, 혹은 한 달에 한 번 仁에 이르는 것이니, 그 경지에 도달하되 오래 할 수 없는 것이다.”

원문의 3개월이 진짜 90일이라고 이해하는 바보들이 있을까 봐 그 기간이 오래된 것을 말한다는 설명과 함께, 막연했던 仁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 장을 통해 보여준다. 仁은 안회가 가장 가깝게 달성할 수도 있었던 인물이라고 평가되기 때문에 이 설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다른 배우는 이들도 전혀 仁에 다다르지 못했던 것이 아니지만, 그 안에 머물지 못했다는 것이고, 안회는 오래 머물렀다는 비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다른 배우는 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 마음이 仁을 떠나지 않아 사욕(私慾)이 없었다면 仁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장의 설명도 그렇고 이전에 살펴보았을 때, 안회가 2% 부족했다고 설명한 것은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그것을 의문을 알아챈 정자(伊川)가 우리 의문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해설을 통해 던져준다.

“3개월은 하늘의 도가 조금 변하는 기간이니, 그 오래됨을 말한다. 이 경지를 지나면 성인이다. 仁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다만 터럭만큼의 사욕도 없는 것이니, 조금이라도 사욕이 있다면 仁이 아닌 것이다.”

자아, 이 경지를 ‘지나면’이라는 표현을 쓴다. ‘지나면’의 의미는 지나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문장의 뒷부분에 ‘조금이라도’라는 표현이 나와 다시 한번 아쉬움을 강조한 것이다. 이제 2%가 부족했다는 것은 확실하게 이해했으나, 그 정체에 무엇이었는지 아직은 확실하게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윤씨(尹焞)가 그 의문을 조금 자세히 풀어주는 해설을 해준다.

“이는 안자(顔子)가 성인(孔子)에 대해 한 칸을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성인이라면 완전히 한 덩어리가 되어 간단(間斷)이 없을 것이다.”

아! 나왔다. 스승 공자, 성인과 무엇이 다른지, 왜 성인의 경지에 한 칸이 부족했는지를 보여주는 데에는 구체적으로 그 안에 도달한 자와의 비교만 한 것이 없다. 성인이라면 완전한 혼연일체가 되어 한 덩어리가 되기 때문에 조금의 틈이나 간단(間斷)이 없을 것이라는 말로 비교를 확정 짓는다.


오랜 기간 마음이 仁에 들어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끔씩은 사욕에 의해 그 범주에서 벗어났다는 말이다. 다시 원문으로 돌아가면, 공자는 이미 이 말을 3개월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해주었었다.


3개월은 천도(天道)가 조금 변할 정도의 긴 기간인 것은 맞지만, 영원이 아니라는 기간을 단정한 표현이기도 한 것이다. 아주 간단한 기간만을 표현한 단어에 이렇게 중의적인 의미를 담다니, 읽다가 탄식이 나온다.

그걸 이제사 깨달았냐고 씨익 웃으며 장자(​張子)가 이 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준다.

“처음 배우는 자의 요점은 마땅히 3개월 동안 인(仁)을 떠나지 않음과 하루나 한 달에 한 번 仁에 이르는 것의 안팎과 주빈(主賓)의 구별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힘쓰고 힘쓰며 순서에 따라 그치지 말게 해야 할 것이니, 이 경지를 지나면 거의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설명은 이 장이 ​仁에 이르는 순서를 보여주고, 어떻게 수양해야 할 것인지까지 보여준 심도 깊은 가르침이 담겨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루나 한 달에 한번 仁에 ‘도달하는’ 것도 끊임없이 공부해야만 겨우 도달할 수 있는 첫 번째 단계이고, 그다음에는 안회의 수양 과정처럼 오랜 기간을 그 안에 마음을 유지하고 사욕을 없애는 작업을 하는 두 번째 단계이며, 마지막으로 이 순서대로 힘쓰고 힘써 이 경지를 넘어서고 나면, 즉, 아까 언급했던 ‘이 경지를 지나면’ 성인의 경지에 이르러 仁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것은 그렇게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주석의 마지막 문장에, ‘거의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하고 하는 것이다.

전에 仁을 설명할 때 수영에 비유하여 설명한 바 있다. 수영에서 처음 배우는 호흡부터 설명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 비유의 지평을 약간 확장하여 이 장의 최종 경지를 설명하자면, 역시 호흡으로 설명하는 것만 한 것이 없겠다 싶다.


인간은 숨을 쉬지 않으면 죽는다. 그런데, 당신은 숨을 쉬지 않으면 죽으니까 숨을 쉬어야만 사니까 숨을 쉬어야지 하면서 심호흡을 하며 사나? 어느 누구도 심호흡을 하며 숨쉬기를 인식하면서 숨을 쉬지 않는다.


그것이 없으면 죽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을 머리로도 알고 실제로도 잘 알고 있지만, 심지어 물에 빠져보면, 숨을 쉬지 못하면 죽는다고 바둥거리며 물밖로 나와 숨을 헐떡이지만, 그렇게 살아나서 익숙해지면 어느 사이엔가 숨쉬기는 또 그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일 뿐, 의도적으로 심호흡을 계속하면서 살아있음을 확인하지 않는다.

그 단계가 사욕이 전혀 없는 ‘거의 자신에게 있지 않은 단계’의 자연스러움이라고 이해하면 조금이나마 ‘期必하지 않는다’는 개념에 다가갈 수 있다.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도와야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도 어렵고, 그런 마음가짐을 갖도록 공부하고 생각이 들게 만들기까지도 어렵지만, 그것은 결국 그러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서 하는 것이고,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사람들을 돕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어버리면, 새삼 가난하고 힘든 자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가 아니라 ‘그냥’ 돕는 것이다. 그것이 이른바 성인의 단계이다.


이제 또 어느새 사랑의 열매와 자선냄비가 등장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명동에 자선냄비를 두고 종을 치는 정경이 있던 시절, 사람들은 명동거리를 지나며 자선냄비에 돈을 넣었고, 아나운서들은 사랑의 열매를 브로치처럼 달고 나왔다. 그것이 겨울이었던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겨울이 없는 사람들이 지나기가 가장 어려운 계절이기 때문이고, 연말연시라는 것이 심리적으로도 없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가장 위축되고 서러운 시기이기 때문에 더 그러했다.

그러나 없는 사람들이 춥다고 더 어렵고, 날이 따뜻하다고 형편이 풀리겠는가? 어려운 사람들은 언제도 어렵다. 본래 어렵던 사람보다 그렇지 않다고 느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삐끗하여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지 못하고 추락한 이들의 설움은 더 힘겹기 마련이다.

안회(顔回) 정도가 되어, 없으면 없는 대로 추락했다면 추락한 대로 그저 물 한 모금과 밥 한주먹 정도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면 모를까 안회의 주변 제자들이 느꼈을 넘사벽처럼 그것은 일반 사람들이 쉽게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런데 자신의 가난이, 자신이 누리지 못함이 마치 모두 나라님 탓인 양 떠드는 이들을 많이 본다. 정부가 무슨 재산을 쟁여놓고 가진 자들끼리만 나눠갖는 것처럼 사회갈등을 유발하는 이들을 본다. 물론 그들에게는 속셈이 따로 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 얄팍한 속셈따위에 속아 넘어가 더 가열차게 나라님만 욕하는 우민(愚民)들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의 문제, 혹은 국가의 위기는 대개 어느 한 사람 혹은 어느 한 계층의 잘못으로 한번에 무너져 내리지 않는다. 골고루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썩어 들어가는 작태가 심해져 더 버틸 수 없게되면 그렇게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시대가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서부터인가, 썩었다며 바꾸자고 하고 해서 물갈이를 했다고 다시 돌아보면 그렇게 썩도록 큰 역할을 했던 자들이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윤을 남기는 것으로 전설이 된 장사꾼이 더 큰돈을 나라를 부여잡고 벌겠다던 장사꾼 대통령부터 아버지의 후광을 입은 옛날을 노래 부르던 특정지역 늙은이들을 앞세워 대통령이 생각 없는 대통령에 걸쳐 그 빨간색당이 10년간 정권을 잡는 동안 여기저기 꽂아주고 키워준 공무원들은 정권이 바뀌었는데 각 조직의 실세 고위 공무원이라는 이름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청와대의 주인이 바뀌었다고 해서 짤리거나 물갈이가 되는 정치인이 아니라는 이유와 명분으로 자기 조직의 수장으로 흰머리 통역사 출신이 와도 무시하고 자신들만의 원칙을 고수하며 조직을 위한다며 후안무치하게 그 모양 그대로 갔고, 검찰과 법원의 법비들은 이전에 닦아둔 조직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자기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보호하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칼을 휘둘러댔다.

앞서 이 장에서 3개월이라고 표현하고 天道가 조금 바뀔 정도의 긴 기간이라 표현하였다. 10년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동안 5급이던 그들은 이제 2급 1급이 되어 청와대의 주인이 누가 되든 자신들의 이익과 안위를 위해 전횡하였다. 사회는 그렇게 썩고, 국가는 그렇게 무너져간다. 그런데 그것들 때문에 썩어가는 것을 알지 못하고 무작정 현 정권을 욕하고 잘못되었다고 하는 흐름을 버젓이 언론 미디어가 주도하며 우민화 정책을 활용하는 것은, 그 사정을 알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분노하다 못해 치를 떨게 만든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 수많은 우민들의 인식은, 의식은 바뀌지 않는단 말인가!


정신 차리고 눈 부릅뜨고 어떤 놈들이 이 사회를 좀 먹는지를 제대로 보란 말이다.


당신과 함께 밥 먹고 술 마시고 노래방 가서 노는 그 치들이 정말 마냥 선한 당신의 친구이고 친지이며 가족이라 생각한다면 그들의, 아니, 당신들의 그 그릇됨부터 벗어나 단 한 번이라도 仁에 도달해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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