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지도 않고 할 수 없다고 하는 자는 하기 싫은 거다

썩어 들어가는 상처를 쳐다보며 죽지 않을 거라고 붕대를 감는 것들에게

by 발검무적
冉求曰: “非不說子之道, 力不足也.” 子曰: “力不足者中道而廢, 今女畵.”
염구(冉求)가 “저는 夫子의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힘이 부족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힘이 부족한 사람은 중도에 그만두는 것이니, 지금 너는 (스스로) 한계를 긋는 것이다.”

앞서 몇 번이나 등장했던 염구(冉求)가 다시 등장한다. <논어>에서는 대개 장마다 연결이 되지 않는 독립적인 에피소드임에 비해, 간혹 제자들 사이에 칭찬에 인색했던 엄격한 스승이 다른 제자나 인물에 대해 허여(인정)하는 것을 보거나 듣게 되면, 바로 자신과 비교하거나 자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경우가 있다.


이 장은 앞서 안회에 대한 극찬하는 것을 들은 염구(冉求)가 자신이 왜 그 경지에 오르지 못하는지에 대해 조심스럽게 자기변명을 하다가 된통 꾸지람을 듣는 내용이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표현한 것은 바로 전 장에서 안회를 언급하며 ‘그 즐거움’을 언급한 내용을 염구도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 즐거움’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힘이 부족하여 하고 싶어도 안된다고 말한 것이다. 여기서 그 유명한,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고 선을 긋다.’라는 관용어구가 탄생한다.

먼저 주자의 해설을 살펴보자.

力不足은 나아가려고 해도 불가능한 것이요, 스스로 한계를 긋는다[畫]는 것은 나아갈 수 있는 데도 나아가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畫이라고 말한 것은 마치 땅을 그어놓고 스스로 한계 짓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시도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만들어 노력하지 않는다는 말로 ‘선을 긋다’라는 표현을 한국어에서도 쓰는데, 그 유래가 바로 이 장의 표현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스승의 말을 다 알아듣고 실리적인 실무능력이 뛰어난 염구였다면 정말로 스스로의 능력을 가늠할만한 경지에 올랐으니 자신의 능력이 부족함을 알고서 말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공자는 저렇게 단칼에 죽비를 들었을까?

그 의문에 대해 호씨(胡氏)는 이렇게 설명한다.

“夫子께서 안회(顏回)가 그 즐거움을 변치 않는다고 칭찬하시니, 冉求가 그 말씀을 들었으므로 이러한 말을 한 것이다. 그러나 가령 冉求가 夫子의 道를 좋아하기를 진실로 입이 고기를 좋아하듯이 하였다면, 반드시 장차 힘을 다해 구했을 것이니, 어찌 힘이 부족함을 근심하겠는가? 한계를 긋고 나아가지 않으면 날마다 퇴보할 따름이니, 이는 冉求가 재예(才藝)에 국한된 이유이다.”

아주 신랄한 해설에 다름 아니다. 만약 염구가 살아서 이 주석을 보았더라면 쥐구멍이라도 찾았을 정도의 날이 바짝 선 살벌한 한 방이 아닐 수 없다. 스승의 가르침이자 道가, 사람들이 누구나 먹고 싶어 하는 고기 같았다면 달려들어 먹지 않았을 리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최종적으로 염구가 그렇기 때문에 덕행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재예에 국한되었다는 총평을 남긴다.

실제로 염구는 이 장에서 보였던 것 같은 태도 때문에 소극적이라고 해석하는 현대의 해설이 많이 나온 바 있다. 심지어 어떤 책에서는 공자가 워낙 소극적인 성격으로 실천을 주저하고 자존감이 낮아 자신이 할 수 없다고 여기는 염구를 위해 적극적인 실천을 강조하라고 했다는 해설이다.


그런 근거 없는 해설을 하려면 자기 이름으로 책을 내는 일은 삼천 년 뒤로 미루고 공부를 더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이들이 정말로 많아, 답답하다.


앞서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염구는 스승에게 나름 재주를 인정받은 제자였다. 특히 정치를 함에 있어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어 전 장에서 의미했던 ‘그 즐거움’의 의미를 바로 깨닫고 이 장에서처럼 지레 자신의 같잖은 변호까지 한 것이다. 소극적인 사람은 굳이 자신이 나서서 자신의 입장을 변명하거나 구구절절 변호하지 않는다.

그걸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냐구?

앞서 염구(冉求)의 일생을 공부하지 않았던가? 염구(冉求)는 공자 문하의 제자 중에서 유일하게 스승에 의해 파문을 명 받은 제자이다.

염구(冉求)는 스승의 추천을 받아 계씨(季氏)의 가신(家臣)이 된 후부터, 공자의 가르침을 저버리는 행동을 저질렀다.


그는 권력과 출세에 눈이 멀어 권문세가인 계씨(季氏)의 입맛에 맞는 행동만 했다. 그는 권력을 전횡하여 부정을 일삼고 부패에 찌든 계씨(季氏) 편에 서서 출세 가도를 달렸다. 배울 때만 소극적이고 갑자기 출세를 보니 적극적인 사람으로 인성이 변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거침이 없었다.


뒤에 배울 ‘선진 편’에 다시 나오겠지만, 공자는 철저하게 권세가인 계씨(季氏) 편에 서서 행동하는 염구(冉求)에 대해 ‘머리 숫자만 채우고 있는 신하’라고 한번 경고를 한다. 공자의 평가가 실리주의자 염구(冉求)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을 리 없다.

하지만, 출세의 맛을 본, 염구는 결코 스승의 엄중한 경고에도 멈추지 않았다. 당시 계씨(季氏)는 노(魯) 나라의 제후였던 주공(周公) 보다 더 많은 부(富)를 소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求)는 계씨(季氏)를 더욱 부유(富裕)하게 해 주려고 백성들에게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어들인다.


‘선진 편’ 나올 내용이라 그때 다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이로서 스승 공자의 분노는 임계치를 넘어버린다. 공자는 모든 제자들에게 염구를 탄핵하는 북을 치라고 말하는 것으로 그를 버린다.

스승의 도는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가 능력이 부족하여 그 경지를 이를 수 없다고 노력하지도 않고 포기한다는 변명을 입에 담은 자가, 한번 추천을 받아 높은 벼슬에 등용되자 그 위정자의 행동이 옳지 않음에도 그저 출세의 길을 위해 거침없이 스승의 도를 더럽히고 스스로의 몸을 더럽혔다는 것은 소극적인 성격으로 포장될 수도 없는 것이고, 그렇게 읽어낼 수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인생이 오롯이 그의 공부를, 수양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요 며칠간 대한민국 경찰의 개차반 민낯이 드러나는 사건들이 화제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소식은, 엄마와 딸에게 범죄 내용에 대해 묻고 있던 여경이 피의자가 칼을 들고 흥분해 들어오자, 엄마가 칼부림을 당하는 상황에서 자신만 살겠다고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왔다는 사건이다. 며칠이 지났음에도 특별한 정황이나 변명이 없고 입 다물고 재빠른 사과를 한 것을 보면, 사실관계에는 다툼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미국 여경만 터미네이터란 말인가?

아, 변명을 하긴 했다. 그 여경이 다른 경찰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비명을 지르며 내려온 것이란다. 1층에서 남자 경찰과 함께 있던 피해자의 남편은 비명소리에 달려 들어가는데 남자 경찰은 바로 따라오기는커녕 기다리고 있다가 공동현관문이 잠겨서 못 올라갔다는 변명을 했다. 아마도 그 공동현관으로 여경이 튀어나왔을 텐데 말이다. 이런 블랙 코미디가 대한민국의 경찰이 주연인 작품이다.


그런데 이 일이 심각한 이유는, 이것이 새삼스러울 일도, 특이한 뉴스거리도 아니라는데 있다.

모든 경찰들이 그런 상황에서 총을 들고 피의자를 제압하거나 피해자를 보호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이번 사건이 뉴스거리가 되어야 하고 여경이 파면을 당하는 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심각한 직무유기로 형사처벌을 받아야만 마땅하다.


그런데, 경찰 신분이 확인되어야만 댓글을 달 수 있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 경찰임을 인증한 정신 나간 현직 경찰이라는 자가, 여경을 옹호하며, “경찰이라는 직업 자체가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는 ‘직장인’이라며 법률은 총을 쓰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어 테이저건과 삼단봉만 들고서 현장 상황에서 당연히 제대로 대응 못하고 두려움이 어마어마했을 거라는 식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의 댓글을 버젓이 달았다. 그는 개인적인 견해라는 제목을 달고서는 “개인적인 문제와 조직 안의 문제가 같이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다며 끝까지 헛소리 짖어대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 논란 며칠 뒤에 경찰청장은 머리를 ‘또’ 숙여 사과를 했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현장 대응력 강화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하여 준비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사건이 벌어진 지 며칠 만에, 또 스토커에게 협박받던 피해자가 신고를 수차례 했음에도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사고 당시에는 피해자가 긴급하게 경찰에서 지급받은 위치추적 시계를 몇 번이나 눌러 신고를 했다. 하지만 위치도 제대로 잡지 못해서 한참을 헤메인 끝에 경찰은 피해자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경찰의 홍보자료에 의하면, 피해자가 사고 직전 차고 있던 위치를 알리는 시계는 이전 버전에 비해 상당 부분 기능이 개선되어 훌륭하다며 자화자찬했던 물건이었다.

위에서 살펴본 염구와 대한민국 경찰이 갖는 공통점에 대해 알 수 있겠는가?

여경이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위치를 추적하는 시계를 제대로 테스트도 하지 않고 실무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현장 책임자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이 상황에 서울경찰청장이라는 자가,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 없고 예정된 해외 출장을 떠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이런 것을 정치적 용어로 ‘총체적 난국’이라고 한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고르게 아주 골고루 빠짐없이 모두 썩어 있는 상태.


현직 경찰이라는 작자가 ‘블라인드’에 변명한 것처럼 공권력이 맘대로 총을 쏘지도 못하는 상황이라서, 혹은 일반인들이나 대다수의 경찰들은 경험해보지 못한 긴박한 대치상황에 응대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변명을 버젓이 할 수 있는 이 정신 나간 조직의 상황이 어찌 총체적 난국이 아니라 할 수 있단 말인가?


염구처럼 입만 살아서 자신들이 안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어도 못한다는 것들이 말하는 것처럼 현장 대응력 강화 TF(태스크포스) 팀이 구성되면 이 총체적 난국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가? 3년 전 대림동 여경 사건 때는 뭐가 많이 달랐단 말인가?


아니, 내가 직접 경험하고 있는 현재 서울경찰청의 감사실 시스템을 보자.

조직 내의 감사실은, 조직 내의 잘못된 것을 잡아내는 곳이다.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그런 잘못을 하는 경찰들을 걸러내고 반면교사를 삼아 그런 짓을 하지 못하게 하는 곳이다.

연전에 그 감사실의 경찰들이 애꿎은 여경의 질투로 시작된 고발에 제때 출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충주의 여경을 추궁하다가 결국 그녀를 자살하게 만들었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다시 출근한 여경에게 제때 출근하지 않았으니 ‘죄를 인정하라’며 추궁했던 감사실의 감사행태가 만연할 정도의 엄정한 감사 분위기가 경찰에 형성되어 있다면, 범죄자를 범죄가 아니라고 풀어주고, 경찰간부랍시고 지 형님 동생 하는 자가 여성을 폭행하는데 버젓이 구경만 하고 있었다면 형사처벌 대상으로 입건시켜 처리해야 한다.


학비에 군까지 면제를 받아 경찰대를 나와 신분 상승하겠다고 사법고시를 준비했던 자들부터 로스쿨 준비하고 있는 그것들을 모두 직무유기로 엄정하게 처벌해야 한다. 승진시험을 준비한답시고 업무를 태만하게 하고 나도 그래야 하니까 너도 눈감아줄게 하는 것들을 일벌백계해야만 한다.


그래서 대통령이 여경의 문제가 아니라 경찰의 기강해이고 총체적 난국이라고 직접 콕 집어 말해준 것이다. 그렇게 말해도 경찰은 바뀌지 않는다.

만 10년전인, 2012년 기사

검찰을 그렇게 비난하고 공격해서 올 초부터 가져온 수사 종결권을 쥐고서 경찰이 바뀐 것은 부서의 명칭일 뿐, 그들의 썩어빠진 정신자세는 그 어느 하나 바로잡아지지 않았다.


내가 서울경찰청 감사실에 있는 상위 책임자라는 아직 나이가 40대의 출세가도를 걷던 자에게 물었다.


“이래저래 다 잘못이 아니라고 이런 식으로 뭉개고 조직을 보호하는 게 말이 됩니까?”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시지요. 저희 감사실이 업무를 안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럼 물어봅시다. 당신이 그 자리에 부임한 이후로 경찰의 부정이 적발되어 형사 처벌된 사례가 있었습니까?”

“저어, 그건....”

“대답을 해보라구....”

“제가 오기 전까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온 이후로는 한 건도 없습니다.”

자아, 역대 대통령과 경찰청장이 부정부패로 감옥에 들어가 콩밥을 먹는 대한민국에서 그 경찰 조직 내에 만든 감사 조사계에서 문제 있는 경찰이 적발되어 단 한 명도 처벌받은 이가 없단다.


편하자고 직장인 여경 공무원을 택했다가 죽을 것 같은 위험에 비명을 지르고 도망간 여경을 욕하고 비난할 거 없다. 그녀를 가르치고 그녀와 같이 밥 먹고, 그녀의 동료, 그녀의 선배, 그녀의 상관, 그녀의 총괄 책임을 맡고 있는 간부라고 하는 것들이 다 그러한데, 어찌 지엽말단에 해당하는 그녀 한 명만 욕한단 말인가?

마약혐의 황모씨에게 뇌물 받은 현직 경찰 뇌물수수 입건

정말로, 힘이 부족해서 못한다는 변명을 믿는가?

조금이라도 뒤탈 없는 돈이 생긴다고 하면, 그들은 동료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밀고서라도 서로 먼저 이익을 챙기겠다고 달려갈 것임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원래 그 직업이라는 것은,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사명감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학교의 선생이 그러하고, 검찰의 검사들이 그러하고, 법원의 판사들이 그러하며,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가 그러하듯 사회의 모든, 자기 자리에서 '반드시' 해야 할 몫이 있단 말이다.

전염병이 무서워 환자를 보지 못하겠다는 정신 나간 의사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장의 공자의 지적처럼 그런 자는 얼른 의사를 중도에 그만둬야만 한다.

현실엔 없기에 드라마에만 존재하는 경찰

편한 돈벌이는 좋지만 위험한 일은 싫다는 심보는 인간이길 포기한 짐승들이 하는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팔에 생긴 상처로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곪아 썩어 들어가는 상처 부위를 도려내지 않으면, 사람은 결국 죽게 된다.


누가 우리 사회를 곪아 썩어 들어가게 하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어찌해야 할지 계속 두고 고민만 할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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