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수양은 바로 드러나지 않지만, 감출 수 없다.

수려한 외모, 화려한 말솜씨는 필요조건이 아닌 충분조건이다.

by 발검무적
子曰: “不有祝鮀之佞, 而有宋朝之美, 難乎免於今之世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祝官인 타(鮀)의 말재주와 宋나라의 朝와 같은 미모를 갖고 있지 않으면, 지금 세상에서 환난을 면하기 어렵다.”
축타(祝鮀)

이 장에서 등장하는 인물은 축타(祝鮀)와 송조(宋朝)라는 인물이다. 축타(祝鮀)는 위나라 대부로 위 나라 사직의 제사를 맡았던 ‘타(鮀)’라는 사람으로, <좌전(左傳)>에서는 ‘타(佗)’로 기록되어 있고, 사(史)라는 직함과 자(字)인 ‘자어(子魚)’ 혹은, ‘사어(史魚)’로 언급되기도 하고, 어떤 기록에서는 ‘사추(史鰌)’로 언급되기도 하는데, 이름과 자(字)에 모두 물고기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아 관련된 이야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자는 노정공(魯定公) 14년에 실권자인 계환자(季桓子)와 뜻이 맞지 않아 노(魯)에서 쫓겨나서 위(衛)로 가서, 10여 년간 위, 송, 진, 채, 초 등을 떠돌다가 다시 위로 간 뒤, 노애공(魯哀公)이 즉위하고, 계환자가 죽고 그의 아들인 계강자가 계승하고서, 계강자의 재(宰)가 된 염구의 건의에 따라 다시 노(魯)로 돌아오게 된다.

위영공(衛靈公)

돌아온 뒤, 계강자에게 위영공의 무도함을 이야기하니, 계강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위영공이 망하지 않는지’를 물으니, 공자는 ‘중숙어가 외교를 담당하고, 축타가 종묘의 일을 챙기며, 왕손가가 군대를 잘 장악하니 위영공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이 내용은 뒤에 배울 ‘헌문(憲問)편’ 19장에서 다시 자세히 공부하기로 한다.


<좌전(左傳)> 정공 4년(定公四年)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말재주가 뛰어나 소릉(昭陵)에서 제후들이 회합할 때 채(蔡)나라를 위(衛) 나라보다 위에 두려고 하자, 위나라의 시조 강숙(康叔)을 내세우며 논쟁을 벌여 위나라를 상위에 둘 수 있도록 하는 데 성공한 인물이다.

또, 공자가 사어(史魚)의 곧음과 거백옥(遽伯玉)의 군자 다움을 칭송하는 내용이, 뒤에 공부하게 될 ‘위령공(衛靈公) 편’ 7장에 소개되기도 한다. 이때 위영공(衛靈公)이 정사(政事)에는 관심이 없고 무도(無道)한 시절이었으나, 부인인 남자(南子)의 정치력으로 주요 관직에 현자들을 등용하였기에 위영공(衛靈公)이 나라를 잃지 않을 수 있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여 설명하고 있다.

본문에서 언급된 ‘축타지녕(祝鮀之佞)’은 축타(祝鮀)의 뛰어난 언변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평소에 공자가 군자의 필요 없는 능력이라고 강조했던 ‘佞(녕, 말재주)’을 어떤 의미에서 재주라고 표현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축타의 언변이 어떻게 유명세를 타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을 명확하게 알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위나라 영공 29년(B.C. 506년)에 진(晉), 송(宋), 위(衛), 노(魯), 채(蔡), 정(鄭) 등 19개 나라의 제후들이 모여 초(楚) 나라를 치는 것에 대해 상의한 소릉(召陵)의 회합에 대한 내용이 바로 그 이야기로, <좌전(左傳)> 정공 4년(定公四年)에 나오는데, 대략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위나라는 회합에서 의견의 일치가 어려울 것이니, 언변이 우수한 축타(祝鮀)로 하여금 영공(靈公)의 회합 참석을 수행하게 한다. 가는 도중에 회맹에서 희생(犧牲)의 피를 마시는 행사인 ‘삽혈(歃血)’의 순서가 채(蔡) 나라가 위(衛) 나라보다 먼저 정해진 사실을 알게 되는데, 담당 관리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채(蔡)의 시조인 채숙이 위(衛)의 시조인 강숙의 형이기 때문에 앞에 배정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축타는 뛰어난 언변을 발휘하여, 위강숙은 주무왕과 같은 어머니이며, 위와 채가 성립된 역사적 배경과 현시점의 상황과 명분을 들어 설명하여 삽혈의 순서를 바로잡아 자신의 군주를 자연스럽게 상석으로 높인다. 이 사건을 계기로 축타는 영공(靈公)의 신임을 받게 된다.

宋朝之美를 표방한 중국 드라마

두 번째 언급된 인물은 송조(宋朝)이다. 송(宋)의 공자(公子)이며, 이름이 조(朝)이다. 위 영공 12년(522.BC)에 제표, 복궁희, 저사포, 공자조(公子朝)가 반란을 일으켜 영공의 형인 집(縶)을 죽이고 영공은 피난했던 사건도 있었고, 13년에 영공이 돌아오자, 공자 조(朝)는 송나라에 구원을 요청해 난을 일으킨 무리들을 안심시킨 일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공자 조(朝)가 바로 이 장에서 언급된 송조(宋朝)이며, 영공의 부인(夫人)인 남자(南子)의 이복오빠라는 설도 있기는 하다.

남자(南子)

그는 이 장에서 언급되어 ‘송조지미(宋朝之美)’라는 단어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미모 말고는 내세울 것이 없는 자이다. 위(衛)나라 대부이면서 뛰어난 외모로, 위양 공(衛襄公)의 부인인 선강(宣姜), 위영공(衛靈公)의 부인인 남자(南子)와 사통(私通)하였으며, 그런 사적인 관계를 기반으로 위(衛) 대부(大夫)의 권력을 유지했다고 하는 설도 있는 인물로 잘 생긴 인물의 대명사로 언급되는 것 외에는 특이점이라고는 없는 자이다.

주자는 이 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는 쇠미한 세상에서는 아첨을 좋아하고 미모를 좋아하여, 이것이 아니면 환난을 면하기 어렵다고 말씀한 것이니, 세상을 서글퍼하신 것이다.”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말재주가 나오면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하더라도 공자에게 말재주는 안 좋은 의미로만 낙인찍힌 재주 되시겠다. 그러하니, 두 등장인물의 재주나 미모는 내세워 칭찬해줄 만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어, 그런 것이 있어야만 출세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들을 갖추고 있어야만 겨우 환난을 면할 수 있을 지경까지 떨어졌음을 강조한다. 처음 읽는 자들도 단계를 이해하도록 설정한 말하기는 이제 경탄하기도 지겨울 정도의 다양함을 구사하는 경지에 이르렀음을 깨닫게 된다.


현대의 해석 중 몇몇 책에서, 여기서 축타가 욕먹지 않은 인물이라는 착각에, 말재주를 칭찬하거나 인정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엉뚱한 작자들이 있는데, 전에도 말했지만, 함부로 책에 되는대로 내뱉어 폐품을 늘리는 짓을 하지 말라고 강권한다.


공자에게 있어 말재주, 말재간이 긍정적인 평가로 사용된 예는 결단코 찾아볼 수 없다. 여기서는 이러니까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저기서는 저러니까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성인은 이따위로 개념을 설정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좀 이해하고 학자 행세를 하더라도 하라고 누차 일러둔다.

심지어 이렇게 오역하는 자들은 송조의 미(美)마저도 외모적 아름다움을 넘어, 인격적 갖춤의 미덕(美德)일 ‘수도’있다는 궤변을 질질 흘려댄다. 고전에서 송조가 인격적으로 훌륭하다고 언급한 어떤 책도 본 적이 없다.


그는 이복 남매 설이 있는 영공의 부인이 된 남자(南子)와 사통하고, 난을 일으켜 영공의 형을 살해한 인물이다. 그런 인물의 미모가 인격적인 평가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는 글이 적힌 책을 접한다면 얼른 그 책을 변기에 넣고 물을 내릴 것을 강추한다.

그 오해의 시작에, 공자가 축타(祝鮀)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과 특히, 두 문장 사이에 ‘而’가 있어 이것을 가지고 어떻게든 말을 만들려고 한 것인데, 의도를 침소봉대(針小棒大)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했다는 고상한 설명으로 그냥 꾹 참고 넘어간다.

다시 본 장으로 돌아와 보자.

단순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는지 말세로구나.’라고 하지 않고 굳이 콕 집어, 말재주와 미모가 없이 환난을 면하기 어렵다고 한 것은, 외재적인 것을 의미하는 범주에 넣으면서 당시 세태에서 인기 있었던 자들, 한 자리를 차지했던 자들이 어떤 것으로 능력을 인정받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겉보기에 그럴싸해 보이는 외모와 말재주는 그 사람의 내면을 평가하는데 한참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으로 높이 평가되는 상황은 이전 장에서 공부했던 위로는 그들을 높이 등용했던 리더들의 안목과 리더십이 없음을 비평함과 동시에, 백성들로 대변되는 민중들이 그런 껍데기에 혹하여 그들을 우러르고 있음을 한탄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만약, 위에서 그런 이들을 중용하지 않고 제대로 인격적으로 완성된 이들을 등용하면 그것을 보고 따르는 백성들도 자연스럽게 교화될 텐데,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음을 위아래 모두 한꺼번에 지적하며 세상의 환난을 지적한 설명에 다름 아니다.


지난주 공부하면서 1분 30초짜리 방송사고를 낸 것을 논평한 바 있다. 혹자는 말한다. 그가 말을 잘 못하고 어눌하고 그런 것 때문에 너무 평가절하되는 것이 아니냐고.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더군다나 아직 그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라면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의문이다. 그리고 반대로 변호사 때부터 스트리트 파이터로 욕설부터 말싸움에는 이골이 난 사람이라 말만 익숙한 이가 아니냐고 <논어>까지 들먹이며 그를 비난하는 사람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이 장을 제대로 이해하는 키워드라서 위에 다 설명했지만, 당신이 놓치고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앞서 축타(祝鮀)에 대해서 왜 공자가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지 않았는지 내가 설명하지 않고 넘어갔다.


눈치챘는가?

그런데 말재간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은 그대로 인정되고 있는 상태이다. 그렇다면 그 모순된 듯해 보이는 상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장의 핵심은 외모나 겉으로 파악되는 말재간이 하등에 의미가 없다는 것이지, 인격수양에 노력했던 자가 언변에 뛰어나다고 하여 그를 비난할 것은 아니라는 이면성을 갖추고 있다.

주윤발의 영화 <공자>에서 비중있게 다뤄진 남자(南子)

무도(無道)하고 심지어 잘못된 마누라에게 휘둘렸던 위영공(衛靈公)이 왜 망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설명할 때, 제대로 군주를 보필하는 인물들이 있다고 하면서 축타(祝鮀)를 언급한 것은 말재주‘’ 있는 인물이 아니라, 말재주‘까지’ 갖춘 인물이었기에 그러한 평가가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모두 다 완벽하고 너무도 훌륭해서 모든 이들을 감복시키는 사람이라면 지금 나라를 이렇게 두 쪽으로 가르게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선거는 훌륭한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입후보한 인물 중에서 가장 나은 인물을 뽑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 상황이 박빙으로 간다는 사실이, 나에게 오늘 이 장에서 공자가 했던 탄식을 나오게 만든다.


아무리 내세울 후보가 없다고 하더라도 한때 시류에 편승하여 인기를 끌었다며 검찰총장직을 했던 법비가 감히 ‘정의’를 입에 물고 튀어나오질 않나, 그 와중에 똑같은 코스프레 하며 감사원장직을 했던 자가 며느리들 앞에 세워 애국가를 부르며 튀어나오질 않나, 세상이 도대체 얼마나 나락으로 떨어졌길래, 입에 걸레를 물려도 시원찮은 이런 작자들이 버젓이 이 나라를 이끌겠다며 등 떠밀려 얼굴마담으로 나온단 말인가?

하다못해 립싱크로 대충 때우고 반반한 얼굴과 쭉쭉 뻗는 춤사위로 대강 먹고살던 아이돌 그룹들도 이젠 내실을 갖춰야 한다며 피나는 훈련과 수양을 시키는 마당에, 나라를 이끄는 일이 그리 가볍게 꼭두각시나 하면 딱일 자들이 얼굴마담으로 나설 자리냔 말이다.

개인적으로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싫어하면서, 세상 이야기를 함에 있어 요즘 가장 많이 회자되는 대선 이야기를 불가피하게 언급하지 않을 수 없어하면서도 내내 불유쾌하다.


누차 언급한 바 있지만,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유, 그리고 지금 이미 썩을 대로 썩어 곪아 문 들어진 여야를 막론한 정치판을 언급하고자 함이 아니다.


청와대에 누가 들어가는가와 상관없이 자기들 세계라고 자신들이 구축한 대로 이익을 추구하는 공무원 집단, 국민에게 받은 권력이 아니라 국민을 겁박하는 권력이라고 칼춤을 내내 춰왔던 검찰, 해외 연수를 통해 미국 유명 로스쿨 졸업장 나랏돈으로 받겠다고 줄 서서 꼬기를 흔들었던 법원의 판사들, 선생들을 대표하는 집단이랍시고 교원단체가 이익단체가 되어 자기네들 표와 이익을 거래하는 선생이라는 작자들, 변변찮은 학력과 배경을 가지고 어쩌다가 노조 어쩌고 간부가 되어 이익을 딜하다가 간이 배 밖으로 나와 국회의원까지 된 자들, 소위 대학의 총학생회 회장은 당연히 정치인이 된다는 식으로 386을 달고 나와 어느 사이엔가 대표적인 썩은 대들보로 공부 지지리도 못하는지 자식들 스펙 만들어주려는 국회의원, 교수들이 이 사회를 좀 먹는 것을 막고, 개선하자고 하는 것 아니냔 말이다.


국회의원, 검사, 판사까지는 시선이 잘 안 닿는다면, 9급, 7급 공무원, 해외에 가면 마주치는 그 발에 채이는 영사라고 하는 것들에서 주재원이랍시고 해외에 나가 더블페이의 혜택을 오롯이 누리려는 찌질한 당신의 언니, 동생, 친구들이 하는 꼴을 보란 말이다.

당신이 바뀌는 것이 당신이 투표를 통해 청와대 주인을 누구로 뽑는가 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기본적인 일이다. 당신이 제대로 바뀌고 나면 어차피 청와대의 주인을 누구로 뽑을지에 대해서도 지금보다 훨씬 더 명확하고 또렷한 시야로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덤이기 때문이다.


바꿔나가자. 잘못된 건 인정하고 반성하고, 고쳐나가자.


법비들이 지들만 알면서 활용하는 그 아는 자들을 위한 법 말고, 사람의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어보잔 말이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사는 당신들이 돈 말고, 당신의 자녀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라고 깨닫게 되는 날이 빨리 오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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