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다 앞서려다가 정말 먼저 세상을 뜨는 수가 있다.

남의 공을 가로채면서 위로 오르려는 자들에 대한 경고

by 발검무적
子曰: “孟之反不伐. 奔而殿, 將入門, 策其馬曰: '非敢後也, 馬不進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맹지반(孟之反)은 공을 자랑하지 않았다. 패주하면서 군대 후미에 처져 있다가, 장차 도성문을 들어가려 할 적에 말을 채찍질하며 ‘내 감히 용감하여 뒤에 있는 것이 아니요, 말이 전진하지 못하여 뒤에 쳐졌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이 장에서는 맹지반(孟之反)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노나라 대부로 이름은 ‘측(側)’이라고 하였다. 노애공(魯哀公) 11년 봄에 제(齊) 나라가 노(魯) 나라를 침공하였는데, 이 시기는 공자가 10여 년의 망명생활을 끝내고 노(魯) 나라로 막 돌아와 있을 때 벌어진 일이다.


계강자(季康子)의 재(宰)인 염구(冉求)는 주전파였고, 맹손씨의 맹의자(孟懿子)와 숙손씨의 무숙(武叔)은 전혀 싸울 생각이 없었다. 결국 맹유자(孟孺子, 孟武伯) 설(洩)이 우사(右師)가 되어 안우(顔羽)와 병설(丙洩)의 보좌를, 염구(冉求)를 좌사(左師)로 관주보(管周父)와 번지(樊遲)의 보좌를 받게 하는 군사를 조직하고 교외에서 싸우는데, 염구의 좌사(左師)는 강을 건너 싸우나, 유자(孺子)가 지휘하는 우사(右師)는 마지못해 5일 만에 전투에 나서기는 했으나 곧 도망쳐 달아나버리게 된다.


그 과정에서, <좌전(左傳)> 애공(哀公) 11년에는 그 상황을, “맹지측이 전(殿) 즉, 대오의 후미를 맡아 늦게 들어오면서, 화살을 뽑아 말에 채찍을 가하면서 말하길, ‘말이 나아가지를 않는구나.’라고 했다. (孟之側後入以爲殿, 抽矢策其馬, 曰, 馬不進也.)”라고 기술하고 있다.

제(齊) 나라의 침공에 맞서는 노(魯) 나라 군대의 우사(右師)인 맹유자(孟孺子)는 맹의자(孟懿子)의 아들이며, 맹의자가 직접 전쟁에 나서지 않고 아들을 내보내며, 맹손씨(孟孫氏)의 집안 사람인 맹지측(孟之側)이 그를 돕게 하는데, 맹지측(孟之側)의 자(字)가 반(反)이어서 좌전에서는 ‘맹지측(孟之側)’으로, 논어의 본장에서는 ‘맹지반(孟之反)’이라고 표기한 것이다. <맹자(盟子)>에서는 ‘맹시사(孟施舍)’라고 표기되고, <장자(莊子)>의 ‘대종사(大宗師)’에서는 ‘맹자반(孟子反)’이라고 표기된 인물로 모두 이 장에 나오는 인물과 동일인물이다.

전투 중에 후퇴하는 과정에서 맹지반(孟之反)은 우사(右師) 대오의 후미(後尾)를 맡게 되었는데, 전투에서 후퇴하는 대오의 후미를 맡은 장수는, 당연히 쫓아오는 적들과 싸우면서 후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 목숨이 아까운 자들은 가장 앞에서 도망치기 마련이다.

이러한 이유로 후퇴할 때 맨 뒤에 들어오는 이에게 그 공을 인정해주는 것이 관례인데, 맹지반(孟之反)이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으려, 후미에서 전(殿)을 맡게 된 것이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말이 달리지를 않아서 불가피하게 늦어진 것뿐이라는 말로 자신의 공(功)을 숨기는 맹지반의 덕(德)과 인성(人性)을 공자가 이야기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칭찬하는 말이 하나도 없이 사건에 대한 묘사만을 하지만 그것이 칭찬이라는 것은 읽는 이로 하여금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는 소리를 들리게 한다.

사씨(謝氏)는 이 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사람이 남보다 앞서려 하지 않는 마음을 갖는다면, 인욕(人慾)이 날로 사라지고 천리(天理)가 날로 밝아져 자기를 자랑하고 남에게 뽐낼 수 있는 모든 것을 굳이 말할 것이 없다. 그러나 배움을 알지 못하는 자는 남보다 앞서려는 마음을 한시도 잊는 적이 없으니, 맹지반(孟之反)과 같은 이는 법으로 삼을 만하다.”

배우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자가 늘 남보다 앞서려는 마음에 나댄다는 말은 수천 년 전의 중국에서 나온 말이 아닌 듯 오늘날 우리가 쓰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게 들린다.

주로 자신의 공을 자랑하려 드는 이들은 배움이 짧다. 가방끈이 짧은 것이 아니라 덜 배워서 자신이 잘난 것을 자랑하지 못해서 안달이다. 그리고 그것을 셀프 마케팅이라고 시대의 흐름에 가져다 붙인다. 정말로 잘난 사람은 굳이 마케팅 같은 거 안 해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것이 낭중지추(囊中之錐)의 원리에 다름 아니다.

물론 자신을 알리는 것도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을 드러나게 하는 것과 공을 자랑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능력을 갖춰서 어떤 식으로든 알아주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하면 굳이 자신의 입으로 이것도 내가 했고, 저것도 내가 했고,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고, 떠벌일 필요가 없다. 게다가 그 능력치나 성과가 클 경우에는 굳이 감추려야 감출 수도 없다.


대개 회사나 학교에서 일은 다른 사람이 다 했는데, 떠벌이며 공을 가로채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능력이 없으면서 능력이 있으나 과묵하거나 자기 공이라고 나대지 않는 성향의 공을 자신의 공인 양 떠벌이고 나댄다.

수많은 드라마나 영화, 문학작품에서 이런 캐릭터들은 주인공을 괴롭히거나 주인공의 일을 방해하여 주인공이 누려야 할 행복을 자신이 누리려고 하는 가볍기 그지없는 캐릭터이다. 물론 개연성을 바탕으로 한, 충분히 현실에 존재하는 캐릭터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안이 한 가지가 있다.


이러한 고구마 열 개정도 입안에 구겨 넣고 사이다를 빼앗은 듯한 상황이 성립하려면, 단 한 가지 조건이 반드시 전제되어야만 한다. 멍청한 상사 혹은 우두머리가 있을 경우가 바로 그 필수조건에 해당한다. 이런 상사나 우두머리가 제대로 누구의 공인지 누가 능력이 있는지 살피지 못할 경우에 남의 공을 가로채는 캐릭터는 날개를 단 듯 승승장구한다.

이 장에서는 맹지반이 스스로 겸손하게 공을 자랑하지 않는 것으로 설명되고 말았지만, 그것은 그것이 겸손이고 배운 자로서의 당연한 행동이라는 것을 모두 읽어낸 공자가 설명했기 때문에 무게를 갖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자신이 후퇴를 성공적으로 해냈다고 하는 누군가가 나서서 떠들어대고 맹지반이 정말로 ‘말이 늦어서 뒤에 들어온 것뿐입니다.’라고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어리석은 군주가 있다면 이 장의 가르침은 산으로 갈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맹지반의 겸손도 필요하지만, 그것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리더가 필요하다.


요즘 대선을 앞두고 서로 선거를 위한 선거캠프를 어떻게 짜는지에 대한 소식으로 정치뉴스가 가득하다. 물론 일반인들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일이긴 하겠으나 그 내면을 보면, 썩 좋지 못한 관행이라는 것이 그 안에 득시글거린다.


선거캠프의 구성을 어떻게 하는가가 단순히 선거를 승리로 이끄는데 도움이 되는 사람들로 이루어져야 마땅할 것인데, 싸움을 시작하게도 전에 싸움이 승리했을 경우 그 공을 차지할 자리라고 애저녁부터 김칫국을 드링킹 하는 것들이 포진되기 시작하며 똥파리가 꼬이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리더가 인재를 꿰뚫어 보고 그룹을 이끌만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결국 사람을 적재적소에 등용하여 최대의 효과를 내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이 문제는 그것이 한 사람에 의해 단순 명료하게 결정되지 못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리더가 리더십이 없고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먼저 나대는 사람의 이야기에 휘둘리게 되면 그 배는 산 정상으로 출항하게 된다.


리더의 결정을 위해 방해가 되지 않겠다고 모두 작던크던 감투를 다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겠다고 한 쪽과 그 밥에 그 나물로 올드보이를 내세워 마치 빅텐트를 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올드보이들은 어차피 전쟁이 끝나고 공을 다투지 않을 사람들로만 배치하는 이른바 문고리들이 벌써부터 설치는 쪽이 있다.

흘러가는 모양새를 보면, 이미 전투가 어떻게 끝이 날지 빤히 보이긴 하지만, 대선이라는 전쟁은 언제나 변수를 가지고 있다. 지금처럼 진영 간의 대립과 나라를 분열시키는 것으로 자기 세를 불리는 것들이 난리를 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왜 아침부터 그런 지저분한 관행에 싸우기도 전에 전쟁에 이기면 그 공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 김칫국을 사발째 드링킹 하는 것들의 이야기를 하는지 짜증 나는가?


짜증 날 일이 아니다. 지금도 그런데, 행여 그들에게 권력이라는 것이 돌아가게 되면, 당신이 그저 짜증 나는 상황만으로 끝나지 않고, 당신의 생계를 위협받을 것이고, 당신이 자녀와 당신의 가족이 살아갈 사회가 퇴보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 장의 가르침이 단순히 배운 자의 겸손만을 의미하지 않고 제왕학에 해당하는 제대로 된 리더가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은 이 단순한 사실관계의 진술을 하는 사람이 모든 것을 읽어낼 수 있는 경지에 있는 공자이기에 무게를 갖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적어준 프롬프터가 멈춰버리면 자신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른 채 같이 멈춰버려 1분 30초를 생방송 카메라 앞에서 쭈뼛거리는 상황이, 단순한 실수나 돌발상황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당신의 위치나 가진 힘이라고는 결국 민주주의라는 허울 좋은 이름하에서는 투표권밖에 없다.


아무리 똑똑하고 많이 배우고 수양해서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 있더라도 그 사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 결국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그러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정치이다.


권력을 잡으면, 형님 동생 하는 법비들이 룸살롱에서 돈 뿌리고 노는 것처럼 적당히 그 부와 명예와 권력을 나눠갔고 그것으로 대를 이어가며 배를 불리는 것이 정치가 아니란 말이다. 그래서 공자는 정치는 정치가가 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들의 뭉쳐진 힘이 하는 것이라고 한 것이다. 대중의 힘, 사회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것이 선거이다.


당신에게는 그저 임시 공휴일 일지 모르겠으나 당신이 최소한 가짜 뉴스에 휘둘리고 유튜브의 흑색선동에 혹해하는 당신의 부모님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차근차근 설명해드리는 것부터 정치는 시작된다.

당신이 공부해서 당신의 시험을 통해 당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만큼이나 당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리더를, 당신이 타고 있는 배의 선장을 누구로 삼는가 하는 것은 결코 당신과 당신의 자녀의 미래와 무관하지 않은 일이다.


잘못된 것을 왜 잘못되었는지 공부하여 깨닫고 그것이 잘못인 줄 알았다면 바꿔나가려는 행동으로 실행하는 것이 배운 자의 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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