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은 간결하게 다가오고 질감은 매끄러운 / 쇼팽 그리고 올라퍼 아르날즈
한 번 더 새로워진 음악을 듣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갓 완성되어 나왔을 당시 새것이었던 창작물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전의 반열에 들기도 한다. 명작이 사랑받기를 멈추지 않으면,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에 계속 재생되고 재창작된다. 막스 리히터가 ‘리콤포즈’한 비발디의 사계가 그렇고 내가 좋아하는 밴드 이날치가 만드는 퓨전 국악이 그렇다. 19세기 낭만주의 음악가 쇼팽을 잘 모르지만 쇼팽을 사랑했던 드러머 출신의 작곡가 올라퍼 아르날즈가 재해석한 음악을 듣고 싶었던 이유는 여기 있었다. 드러머 출신 작곡가에 클래식 음악이라니 또 어떤 멋진 융합이 나왔을까.
아이슬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작곡가 올라퍼 아르날즈는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알리스 사라 오트와 협업하여 2015년 ‘쇼팽 프로젝트’라는 음반을 선보였다. 이 음반은 영국 클래식 차트 1위를 석권했고 클래식의 외연을 확장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필자가 올라퍼 아르날즈의 '쇼팽 프로젝트'를 처음 알고 감상하게 된 공연은 2024년 4월 24일 서울 아트센터 도암홀에서 열린 <쇼팽 그리고 올라퍼 아르날즈>였다. 본 공연은 고전인 오리지널 쇼팽 음악과 아르날즈의 ‘쇼팽 프로젝트’ 대표곡들, 봄의 정취를 담은 또 다른 곡들을 함께 선보였다.
[Program]
레스피기
모음곡 '새' 中 전주곡 & 3악장 '암탉'
I. Preludio
III. La Gallina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제1번
II. Romance – Larghetto
III. Rondo - Vivace
- Intermission -
딜리어스
봄의 첫 뻐꾸기 소리를 들으며
쇼팽 & 아르날즈
Chopin - Prelude No. 15 'Raindrop'
Arnalds - Verses
Chopin - Nocturne No.20(+Bridge Music)
Arnalds - Written in Stone
Chopin - Ballade No.2
Arnalds - Reminiscence(+Bridge Music)
<쇼팽 그리고 올라퍼 아르날즈>의 연주는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이 맡았다.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의 예술감독이자 <쇼팽 그리고 올라퍼 아르날즈> 공연의 지휘자인 아드리엘 김에 따르면 이 공연은 아르날즈의 음악을 그대로 수행하는 데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의 재해석을 가미해 진행되었다. 그러니 서울 아트센터에서 연주된 음악은 아르날즈가 쇼팽을,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이 다시 아르날즈를 소화해 선보인 것이다. 마치 어떤 나라의 음식 조리법이 이웃 나라에 퍼졌을 때, 이웃 나라의 가정집마다 들어가는 재료가 조금씩 달라져 미세한 규모의 변화를 겪는 것처럼. 사람이 만들어내고 향유하는 문화는 바로 이런 점이 흥미롭다. 원 출처에 대한 존중을 잊지 않은 채로-이것이 가장 바르고 이상적인 전제다- 너른 지역으로 퍼져나가면서 끊임없이 융합과 탈락의 재창조를 거치며 생명력을 계속해서 얻는 부분이 말이다.
이 공연에서 또 하나 짚고 넘어갈 점은 올라퍼 아르날즈의 ‘쇼팽 프로젝트’가 장르로 따지면 ‘미니멀리즘 음악’이라는 데에 있다. 미술 용어로 미니멀리즘 아트는 익숙했지만 미니멀리즘 음악은 낯설었는데, 공연 감상 후 관련 글들을 읽어 보니 ‘음과 화성을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반복’을 많이 한다는 특징이 있다.
미니멀리즘 음악은 의도적으로 리듬이나 선율, 화성 등을 단순화시킨 작곡의 한 스타일을 말한다. 이 음악은 ‘최소한의 요소로 만들어진 음악’이라 부를 수 있으며, 그 이름을 빌려온 미니멀리즘 미술과의 연관성을 통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 보통 미니멀리즘 미술은 장식적인 것이 빠져 있고 기하학적인 특징이 강조되며 표현적 테크닉이 회피된 것이라 묘사되는데, 이는 미니멀리즘 음악을 설명하는 말로도 설득력이 있다.
미니멀리즘 음악은 몇몇 ‘미니멀리즘 음악의 테크닉’을 사용하는 음악으로도 정의할 수 있다. 이를테면 미니멀리즘 음악은 반복을 자주 활용하여 화성적으로 정체되어 있는 음악이다. 또한 이 음악은 저속 지속음(drone)이나 지속적인 비트 혹은 맥박처럼 일정한 리듬으로 흐르는 펄스(pulse)를 갖는다.
(…)
미니멀리즘 음악을 듣는 청자는 음악 속에 등장하는 매우 미세한 변화에 집중하게 되며, 이런 변화를 감지하는 것이 작품의 주요 이벤트가 된다.
-김호경, <미니멀리즘 음악의 세계>(월간 객석) 中
1960년대 초기 미니멀리즘 음악은 당시 서구 음악의 두 가지 계보(음렬음악과 불확정성 음악)에 저항하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니멀리즘 음악 역시 시간이 지나며 더 많은 음악가의 다양한 시도가 적용되며 장르 자체의 기성화와 다변화를 겪었다. 현재 미니멀리즘 음악은 처음의 전위적이고 저항적인 성격을 지나 ‘전 세계 콘서트홀과 오페라하우스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영화음악과 광고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발견된다.’(김호경, <미니멀리즘 음악의 세계>) 필자 역시 막스 리히터의 음악이 미니멀리즘 음악인지 잘 몰랐던 채로 그의 음반을 사서 음악을 즐기고 있었으며, 심지어 <헝거 게임>과 <루퍼>의 영화 ost로 이미 올라퍼 아르날즈의 음악을 들어본 적 있음에 놀랐다. 문화예술을 감상할 때, 장르의 분류를 꿰고 있어야만 잘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한 작품이 한 가지 장르의 흐름에만 기대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새삼 이름표를 모른 채로 향유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집중해 감상하면 ‘작풍’은 고스란히 느껴지게 마련인지, 연주를 들으며 이미지화한 몇몇 지점들이 미니멀리즘 음악의 특징을 가리키고 있음을 지휘자 아드리엘 김의 해설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첫 번째로 확인한 것은 음악에 반복이 많았고 그 반복 때문에 미세한 차이에 집중하게 된다는 점이다. 특히 1부 음악을 듣는 동안 컴퓨터 화면 보호기 영상에 나올 것 같은 이미지가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어떤 파동의울림을 감지해 시각적으로 표기한 것 같은 그런 이미지였다. 동일한 색감으로 된 파동 이미지가 커졌다 작아지는 반복했고, 나중에는 그 파동의 크기 변화에 집중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1부와 2부 중에서 2부의 음악이 더 와닿았고 음악이 ‘몸에 붙는다’고 느꼈다. 감상 중에 더 자세한 이미지가 연상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2부의 음악에서는 깊은 숲을 혼자 걷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2부 해설에서 지휘자는 미니멀리즘 음악의 특징을 간단히 소개해 주었는데, 그중 하나가 ‘심연을 건드는 느낌’이었다. 내가 음악에서 본 풍경이 그의 설명과 맞아떨어질 때의 신기함이란. 마지막으로 앵콜곡 쇼팽의 ‘강아지 왈츠’를 들었을 때, 본 공연 음악의 ‘미니멀함’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미니멀리즘 음악을 듣다가 앵콜곡을 들으니 그것이 훨씬 ‘리치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스타인웨이 그랜드피아노보다도 라이브홀 펍에 놓인 오래 된 피아노에서 나는 소리를 더 아름답게 느낀다는 올라퍼 아르날즈가 많고 많은 클래식 음악가 중에서도 쇼팽을 택하여 그의 음악을 재해석한 데에는 사실 매우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다. 어릴 적 할머니댁에 가면 늘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쇼팽의 음악이었다고. 해설을 들으며 나는 아르날즈의 그런 향수 어린 선택이 왠지 마음에 들었다. 예술사의 위치에서 존경을 느껴서건, 개인적인 향수가 작용해서건 무언가 오래되고 잘 만들어진 것을 계속 닦아서 혹은 다르게 조합해서 세상에 내놓은 일을 보는 건 기분 좋은 충격을 준다. 거기에 그날 공연은 새로운 해석에 대해 받은 충격을 아르날즈 유년의 그리움으로 좀 더 포근하게 마무리할 수 있으니 그 점이 좋았다.
흔히 정전(正傳)으로 여겨지는 고전에 대한 새로운 시도, 기성음악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되었지만 사랑 받는 만큼 기성화가 이뤄진 미니멀리즘 음악이 여전히 보유하고 있는 근본적인 특징, 그리고 재해석 및 재창작의 대상을 선택할 때 작용하는 창작자 개인의 맥락 등 여러 맥락이 존재하지만 그것들이 화려한 수사 없이 간결하고 깔끔하게 전해지던 그런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