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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떠는 옌 May 29. 2024

물음표를 건네준 사람

"입이 텁텁했는데 물이 이렇게나 달콤했던가" - 하영(@as.yours)


누군가 내게 투병생활 중 가장 힘들던 것이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하루’라는 시간이 공평하게 흐른 것이라 답하고 싶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고민을 했는지 모르겠다. 하루에 공부 시간이 얼마나 확보되는지. 하루 정도는 한의원 대신 헬스장에 가도 될지. 아르바이트 시간은 맞출 수 있을지. 

더 이상 나의 ‘하루’에는 빈 공간이 없었기에 하고 싶은 일들도 그냥 넘기기 일쑤였다. 이처럼 장기투병은 선택과 집중이 유독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 기간 동안에는 나의 ‘하루’가 너무 짧았다.


가끔은. 아니, 종종 모든 걸(치료마저도) 뒤로 하고,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나를 너무 잘 알았기에 이 또한 쉽지 않았다. 

분명해야 할 일을 수행하지 못했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그때의 불안감에 기인해 더 큰 스트레스를 받을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시험기간 때는 시간 관리가 배로 힘들었다. 

감사하게도 한의원 선생님께서는 시험기간만 되면 잔병치레를 예방할 수 있는 약들을 함께 챙겨주시곤 했다. 절대 밤샘 공부하지 말고 숙면을 취하라는 당부와 걱정과 함께. 

그때는 새벽 공부하라고 해도 못했다. 체력이 받쳐주지 않았기 때문. 성에 찰 만큼 공부하지 못한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자괴감을 느끼곤 했다.


여느 심한 날에는 하루일과 수행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눈물을 쏟아내곤 했다. 

이를테면, 내 시간 하나 없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외부일정으로 가득 찬 날. 아침 8시에 근로를 갔다가 수업 두세 개를 듣고 오후에 팀프로젝트 회의나 외부활동 모임을 가진 후 6시쯤 한의원에 다녀오곤 했는데, 그러고 나면 밤 8시였다. 한의원에서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있는 편의점에서 저녁을 사 먹고 나면 8시 30분부터 자리에 앉아 과제 혹은 시험공부를 시작했고, 얼마 안 가서 시곗바늘이 10시를 가리킬 때쯤이면 지쳐 잠이 쏟아지곤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하루는 아무하고도 ‘안녕’을 묻지 못한 채 끝나기도 했다.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안녕한지 물을 틈이 없었다. 

이 얼마나 허무한가.


그렇게 고군분투하며 보낸 시험기간이 끝나고 나면. 그동안 채우지 못한 잠을 보충하고.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겨 보려 했다. 예전과 다르게 하루의 틈이 생겨도 굳이 새로운 약속을 잡지 않았다. 

친구들과 있으면 웃을 일이 많아지기 때문에. 크게 웃으면 웃을수록 자꾸 일그러지는 표정이 싫어서. 자꾸만 웃음을 참고 넣으려는 내 모습이 싫어서.


오랫동안 대화를 하지 않아 입에서 단내가 나듯,

내 웃음에도 단내가 묻은 듯했다.




다음으로 누군가 내게 투병생활 중 가장 힘이 되었던 것이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단내 나던 하루의 끝에 서슴없이 ‘물음표를 건네준 사람’이 있었다고.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안녕한지. 얼굴 상태는 회복되고 있는지. 또 다른 아픈 곳은 없는지. 밥은 잘 챙겨 먹었는지. 스트레스받은 일은 없었는지…”.


누군가의 물음이 그렇게나 큰 힘이 될 줄은 몰랐다. 그 사람이 내게 물음표를 톡 던지면 마치 버튼이 눌린 것 마냥 나도 모르게 수다쟁이가 되곤 했다. 굳이 나누지 않아도 될 이야기까지도 술술.


그 사람은 물음표를 건네는 동시에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주곤 했다. 보풀처럼 가벼운 이야기로 메마른 입을 열면 한 줄기의 샘처럼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대화를 오래 나눌 수 있는 사람. 얼굴을 마주 보지 않더라도 꾸준히 매일같이 대화를 나눌 수 있던 사람.


나는 그 사람 덕분에 ‘물음표’ 자체를 좋아하게 됐다. 

그렇게, ‘물음표’는 일생의 기점이 되었다. 누군가 내게 던진 혹은 내가 스스로에게 던진 ‘물음표’를 들고 있을 때면 혼자 있는 시간을 자연히 즐길 수 있었다. 

그 시간 동안에 나는 생각을 하고, 대화를 하고, 글을 읽고 글을 썼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에 무얼 하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이 서슴없이 건넨 ‘물음표’는 내 글의 영감이 되었고, 내가 스스로 건넨 ‘물음표’는 한 작품이 되었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도 이렇게 과감히 글을 작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물음표를 건네준 사람’에게 감사하다. 

어쩌면 그 사람의 ‘물음표’는 삭막했던 투병생활 중 하나의 단비였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투병생활 중 힘들었던 여느 ‘하루’에는 

다행히 여느 때처럼 ‘물음표를 건네준 사람’이 있었다.


PS. 물음표를 건네준 사람에게 서슴없이 보냈던 글


「물음표를 서슴없이 건네는 사람이 좋다. 필요한 요점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보풀처럼 가벼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 어떤 날은 하루종일 입을 열지 않아 입술이 딱풀에 붙은 것처럼 메마를 때가 있다. 만나지 않더라도 꾸준히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정말 아무 말도 안 해서 입이 텁텁했는데 물이 이렇게나 달콤했던가요?”」 

- <하영(@as.yours) 작가님의 게시물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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