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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떠는 옌 Jun 03. 2024

벌써 일 년(의 반)

6월의 첫날, 나는 웃음보단 한숨을 지었다.


투병생활 3개월 차, 보통의 안면마비 환자들보다 조금 더디지만 조금씩 호전은 되고 있었다. 처졌던 왼쪽 눈과 입꼬리는 점차 원래의 자리를 찾아갔고, 볼은 이전보다 탄력 있게 온 듯했다.


무표정일 땐 안면마비 환자인지 아무도 모를 정도로 호전됐다. 왼쪽 눈썹과 콧구멍, 입꼬리, 눈 밑 애교살은 힘주면 살짝씩 움직일 기미를 보이는 정도.


그러나, 여전히 웃을 때 활짝 찢어지는 오른쪽 입술에 비해 왼쪽 입술은 아주 살짝 끔뻑거리는 티가 났다. 일상에서는 가끔 근육이 자잘한 경련을 일으키곤 했다. 그리고 여전히 말을 빠르게 내뱉으면 발음이 세기도 했다. 


또 다른 신기 현상이 있다면, 새로운 보조개를 얻었다는 것. 근육이 불규칙하게 풀려서인지 얼굴 움직임에 따라 독특한 곳에 주름이 지곤 했다.




가장 안타까운 현실은 대상포진 바이러스에 기인한 이상한 합병증들도 동반하게 됐다는 점. 바이러스 세포 때문인지 왼쪽 눈가나 광대를 누르면 통증이 남아 있었다. 이 때문인지 입에 바람을 넣으면 자연스레 불어나는 오른쪽 볼에 비해 왼쪽 볼은 크게 불어나지 않고 통증만 느껴지곤 했다. 


거기에 자꾸만 왼쪽 귀에서 들리는 이상한 이명. 피곤하거나 체력이 떨어지면 다음날 아침, ‘툭’하고 부어버리는 왼쪽 편도. 왼쪽 사방 곳곳이 아프지 못해 안달이었다.


태어나고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병원을 많이 자주 다녀 본 적이 있던가. 이번 투병생활 덕분에 신경과, 한의원, 내과, 이비인후과, 정형외과 등 한국에서 있는 다닐 수 있는 병원은 다 다녀본 것 같다. 


출국 준비 때문에 여분의 약을 처방받기 위함도 있었다. 캐나다까지 가서 아프면 안 되니까.




한의원 선생님께서도 걱정을 많이 해주셨다. 춥고 우울한 나라까지 가서 더 병들면 어쩌냐며. 꼭 겨울이 되면 왼쪽 얼굴부터 감싸고, 날씨에 영향을 받아 우울하게 지내지 말라고. 우울도 병이라고 치료 마지막날까지 따뜻하게 걱정해 주셨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그렇게 일 년의 반을 보냈다.

벌써 한 해의 반이 지나가고 있다.




시간이 빠르게 지날수록 투병일기는 차곡히 쌓여갔다. 매주 안면마비의 호전상태를 배터리 용량에 비유해 제목을 쓰곤 했는데. 3개월이 지나 거즌 열 두 페이지 넘게 일기를 작성했을 당시, 나는 잠시 일기 쓰는 것을 중단했다. 매주 아주 조금씩 퍼센티지(보통 3~5%, 컨디션이 좋을 땐 7~10)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숫자가 50을 넘어섰기 때문. 


내가 감히 50% 이상 호전됐다 평가해도 되는 걸까. 


나는 내 상태에 의문이 들었다.

나름 시간이 꽤 지났다고 느꼈건만, 투병의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흐르고 있다고 얼굴이 말해주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길 기다려야 한다고. ‘시간’이 약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회복된다고.




하지만, 잔인하게도 나의 ‘20대’라는 시간만큼은 무차별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벌써’ 일 년의 반이 지났고, ‘벌써’ 6월이며, ‘벌써’ 한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직’ 나는 아프다. 

‘아직’ 나는 제대로 웃지 못한다. 

‘아직’ 나는 나를 책망한다.


이런 의문의 꼬리 때문일까. 

출국이 한 달 채 남지 않은 6월, 새로운 환경을 맞이할 준비와 본래 있던 곳을 정리할 시간까지도 모두 충분케 느껴지지 않았다. 웃음으로 충만해도 모자랄 시기에, 나는 제대로 웃지도 못한 채 그 시간을 흘러 보내야 했다.


나의 학교생활은 휴학으로, 한국에서의 일상은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로, 나의 웃음은 안면마비로 모두 마비됐지만, 


어떻게 나의 20대까지도 멈추고 나를 기다리게 만들 수 있을지. 모든 게 의문투성이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도 6월 1일. 이 책이 흘러가는 수순도 작년 ‘6월’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행히 올해와 작년 모두 한 해의 반을 ‘벌써’ 지났다고 표현했다. 아쉬움을 잔뜩 묻힌 채.


그 아쉬움 뒤에 가려지지 않은 조급함과 욕심이 6월의 첫날에 웃음보단 한숨을 짓게 만들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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