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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떠는 옌 Jul 21. 2024

어느 연어의 여정

남겨진 5%를 채우러 더 넓은 바다로. 


어느 연어의 여정

연어는 민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다양한 천적과 싸우며 생존 기술을 익히고 성장한다. 어느 정도 성장한 연어는 바다로 향할 때가 되었음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이때부터 연어의 여정이 시작된다. 민물에서 바다로 가는 과정에서 연어는 염분 농도가 다른 생활환경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특히, 민물과 바다가 만나는 기수 지역에 도착해 잠시 머물며 염분 농도 변화에 적응하는 동안 연어는 다양한 신체 변화를 겪으며 바다 생활에 적응할 준비를 한다. 그렇기에 민물과 바다 그 사이의 '기수 지역'은 연어에게 고통스럽고도 도전적인 과정이지만, 바다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단계이다. 하지만, 그 고통과 시련의 시간을 견뎌낸 연어는 결국 광활한 바다에 도착하게 된다. 바다에 도착한 연어는 드넓은 바닷속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더 크게 성장하며 성숙해진다. 그렇게 바다에서의 삶은 연어에게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제공해 준다.


초등 시절, 어린이 책으로 접했던 연어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는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의 나에게 큰 영감이 됐다. 이런 연어의 여정이 나의 여정과 닮았단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일생에서 한 번쯤 연어와 같은 여정을 겪는 것은 아닐까. 아니 당연히 겪지 않을까? 누구에게나 넓은 세상으로 나가 볼 수 있는 때(Timing)인 '청춘'이란 시간이 존재하니까. 


그러니, 주변의 누군가 그 청춘을 마비된 채로 보내고 있다면 강인한 연어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함께 기수 지역에서 벗어나 더 넓은 바다로 향할 수 있도록.




충전 95%

어느덧 출국 일주일 전, 마지막 투병일기를 작성하던 때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직 내 왼쪽 안면 얼굴도 완치되지 않았고 아직도 조금만 거친 하루를 보내면 체력이 동나는 내 모습에 앞서 작성해 온 내 회복지수에 맞춰 '충전 100%'라고 제목을 지어도 될지 고민하게 됐다. 그렇다고 익숙한 '2%'라는 수를 사용하며 부족하다 쓰기엔 또 그렇게 금방 나을 상태도 아니었다. 


심사숙고 끝에 다음과 같이 마지막 일기의 서문을 열었다. "출국 D-3, 인생에서 겪어 보지 못했던 몸의 아픔과 긴 역경을 이겨 나가는 과정을 기록하고자 시작했던 이 일기는 5%를 남기고 끝을 내려한다." 앞으로 내가 채워나가야 할 부분 5%를 남겨서 도전이나 시련 등 들이닥칠 여러 사건과 가능성을 열어두고자 했다. 제목을 작성하고 나니, 출국 전부터 많은 걸 느끼고 생각하게 해주는 5%였다.


출국일이 다가올수록 주변에서 물었다. 무섭진 않냐고. 가서 어떻게 지낼 예정이냐고. 처음 나가는 해외인데 간도 크다고. 그때마다 겉으론 안 무섭다고, 기대된다고 애써 말했지만. 여태 살면서 영어 한 문장도 제대로 내뱉어보지 못한 나라서 걱정되고, 사실 무지하게 무섭고, 절대 새로운 파라다이스가 펼쳐질 거란 기대는 눈곱만치도 하지 않았다. 이런 나도 나지만, 외동딸 이렇게까지 멀리 보내본 적 없으신 우리 아버지는 얼마나 더 마음 조리고 계실지 걱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기수 지역에서 바다로 넘어가는 그 경계선이 얼마나 두려운지. 그렇기에 나는 파라다이스를 꿈꿀 시간도 생각도 없었다.


그렇게 결국 D-0. 정신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지 못하고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나의 바람은 딱 하나였다. 그냥, 먼 타지에서 힘들다 보면 이보다 더 못한 일을 겪게 되면 이때의 내가 우습길 바랐다. 20대 마비된 시간 이후의 나는 '마비'가 뭔지 몰랐던 때완 다르길. 성장통을 충분히 느낀 후에야 제대로 마비된 20대를 펼칠 수 있길.


마치 넓은 바다로 나가 성장하고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얻는 연어처럼.




한국 나이 24살. 대학교 4학년. 나는 왼쪽 안면이 마비됐다. 얼굴이 마비되는 동시에 나의 20대 시간도 마비가 되는 듯했다. 직접 생각해 봤던 내 인생의 루트에는 끝도 모르는 이 투병생활이 예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범하게 대학생활을 하고, 4학년 땐 평범한 취준생이 되는 것이 내가 계획했던 나의 20대 초중반 모습이었다. 역시 평범하기 가장 어렵다더니. 평범이 어려운 덕분에 나는 더 특별했을지도 모른다.


투병생활 동안 꾸준히 과거서부터 현재까지의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며 느낀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심심했다는 것. 사실 나는 이미 마비된 시간 속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야 지각했을 뿐이었다. 세상이 어떻게든 발악하면서까지 내게 알려줬다. 


"네 청춘을 그렇게 쓰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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