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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ymoon Nov 12. 2024

Born to die

우리는 죽기 위해 태어난 존재니까

죽기 위해 태어난 존재재


'Cause you and I, we were born to die
(우리는 죽기 위해 태어났으니까)


내가 정말 좋아하는 가수 중 한 명인 라나 델 레이의 노래 가사다.


<Lust for Life>에 있는 첫 번째 수록곡인 Love라는 노래로 처음 좋아하게 되었지만,

라나 델 레이에게 깊이 빠지게 한 노래는 이 노래였다.




나는 이 'Born to die'라는 말을 굉장히 좋아했다.

거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나는 개인적인 굴곡이 꽤 긴 편이었다.

나는 23년을 살았는데, 그중 16살부터 지금까지를 나는 굴곡이라고 이른다.

그 기간 중 내가 원하는 모든 것들이 좌절되어 왔다.

그리고 남들은 다 한다는 것도 난 해낼 수 없었다.


이때 쌓은 능력들이 평생을 좌우한다는데,

나는 어떠한 능력도 쌓지 못했다.

그것이 평생을 좌우한다면, 난 이미 망한 인생이었던 것이다.


청춘이 좋다는 말도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늙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왜 원하지 않는데 늙을 때까지 살아야 하지?

그냥 그전에 죽어버리면 안 될까?

그러면 최소한 요절이라는 수식어는 얻을 수 있잖아.

근데 나이 들어 죽으면 그런 수식어도 없잖아.

모든 게 좌절되어 왔기에 불행했고,

앞으로 많은 것이 좌절될 텐데.

그러면 더 나는 나락으로 빠질 텐데.


거기까지 생각하니

나는 어느 것도 제대로 해낼 수 없었다.


살아내려면 해내야 하는데,

그 살아내기 위해 하는 행위 중

단 하나라도 도저히 해낼 수 없었다.

할 수 없는데 살아내야 하니 너무 불안했다.


낮에는 살아내야 한다는 불안에 시달렸고,

밤에는 낮에 머리에 절여진 불안이 만든 환각에 시달려야 했다.

환각은 숨을 죄여올 아니라,

귀에 섬뜩한 소리를 흩뿌린 데다

을씨년스러운 기운으로 변해 내 등골을 훑었다.


간혹 환각이란 모습으로 나오던 불안은

진정한 본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그 모습은 칼의 모습과도 같았다.

내 머리로 오래 연마해 낸 아주 날카로운 칼.

가끔은 그 칼이 날 짓누르고, 긁는 듯 섬뜩하기만 하다가도,

심장을 뿌리째 뽑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멋모르고 현세에 나왔다는 죄로

밤낮을 쫓기는 듯 살아야 한다는 것이,

무조건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 폭력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들은 가사는 너무 인상적이었다.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죽기 위해 태어났다는 말.


죽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리고 죽기 위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마지노선으로 잡아놓은 나이가 30살이었다.

그 결심을 한 것이 스물하나의 말미였고,

그 생각을 1년 정도 하고 살았나...

죽기 위해 8년을 무엇을 하고 살까 고민했던 내가

지금은 살기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고 있다.



난 그래서 지금도 좌우명이 뭐냐고 물으면

"Born to die"라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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