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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Dec 12. 2021

해외에서 그림책을 내기 위해 꼭 유학을 가야 될까?

유학의 득과 실에 대해서

미술학도로서 아무래도 유학에 대한 이야기를 뺄 수가 없다.


음악과 무용, 미술 쪽 학생들은 졸업 후에 바로 유학을 가기도 하고, 일정 기간 동안 일을 하다가 본인의 한계를 느껴 과감하게 모아놓은 돈으로 뒤늦게 만학의 길로 가기도 한다. 후자의 케이스였던 나는 "최소한 서른 즈음에는 좀 더 넓은 세계로 가서 식견을 넓혀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주섬주섬 입학원서를 찾으면서 지원했던 것 같다.


나의 유학 준비기



그렇게 굳은 결심을 하고 혼자 준비를 해보다가, 입학원서를 내기 직전까지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아서 부랴부랴 11월 달에 미술 유학원을 수소문하고 그다음 해 2월 달 정도까지 열심히 다니며 벼락치기를 했다. 사실 원서를 넣고 영어시험을 준비하는 데만도 돈이 많이 드는 만큼 유학원만큼은 너무 오래 다니지 말았으면 좋겠다. 바짝 2, 3개월간 집중을 해서 학교에서 원하는 만큼의 양을 확보할 수 있다면 유학원을 더 다니는 시간에 그 돈을 모아 토플이나 IELTS 같은 시험비에 투자하는 것이 더 낫다. 이런 영어시험은 커트라인을 넘을 때까지 계속 봐야 하기 때문에 의외로 돈이 많이 들어간다.



하지만 점수가 좀 낮더라도 다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그것이 영국의 English Pre-sessional Course! 입학일 2, 3개월 전에 (점수가 한참 미달된다면 더 추가가 된다) 해당 학교의 프리세셔널 코스를 듣고 합격을 하면 본과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주니, 아이엘츠 총점에서 0.5~1점 정도 모자란 사람들은 에세이 작법이나 발표 연습도 할 겸 들어두는 것도 좋다.



아트 포트폴리오는 가능한 선생님들에게 조언을 받아서 꾸리는 것이 좋은데, 미국의 경우엔 모르겠지만 영국은 매우 참신한 스타일이나 다양한 재료로 만든 실험 작품들을 좋아하므로 평소에 그런 작품들을 눈여겨봐 두고 스크랩해두는 것도 좋다. 유럽이나 북미의 대부분 포트폴리오의 양식은 wide A3나 A4 사이즈의 PDF 파일이므로 목차를 잘 작성해서 체계적으로 잘 꾸리는 게 좋다. 나의 경우엔 유학원을 다니면서 매일 그렸던 스케치북들 그림, 내가 이야기와 글을 창작해서 만든 그림책 아이디어 3종류의 스토리보드와 mock-up 그림들을 정리해서 매우 두꺼운 페이지로 제출했던 것 같다. 나의 경우엔 따로 영국에 보내지 않고 유학원 내에서 직접 심사받았는데, 해당 유학원이 킹스턴 대학교와 연계되어 있어서 미술대학 학장님에게 직접 인터뷰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미술 전공자로서 포트폴리오는 가뿐히 통과될 수 있었지만 늘 영어가 관건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어와 완전히 담을 쌓아온 나로서는 유학은커녕 간단한 영자신문을 빨리 읽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본과에 진학하기 전, Conditional-offer로 1년의 유예기간을 받고 본국인 영국에 가서 영어연수를 받기로 결정했다. 나의 경우엔 언어와 영국의 문화를 배우고 사람을 사귀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기에, 사설 어학원에서 대략 7개월 정도 교육을 받고 귀국하여 다시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주변에서 해외 체류 경험이 없이 바로 영국으로 건너와 본과에 진학한 친구들도 많이 있었는데, 대부분 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언어문제 때문에 잘 적응을 못한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1년의 유예기간은 시간과 돈이 충분하다면 한번 해볼 만하다고 본다. 나의 멘탈과 건강을 위해서.


포트폴리오를 위해 내가 준비했던 스케치북들.
그럼 뭘 얻을 수 있을까?



그렇게 돈과 시간과 노력을 바쳐 먼 곳에서 갖가지 고생을 하면 대체 무엇을 내가 배울 수 있을까? 그동안 특별히 정리해서 적어놓지 않았는데 이 기회를 빌어서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1. 언어의 본고장에서 배울 수 있는 영어



Ielts 시험으로 아무리 열심히 스피킹을 연습해도 시험관이 아닌 실제 원어민을 만나면 다양한 발음과 사투리 때문에 당황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런던 안에서도 왜 이렇게까지 발음이 다르지? 싶을 정도로 이곳에선 다양한 곳에서 이민 와서 사는 이민 2,3세들이 너무나 많다. 뿐만 아니라 일부 현지인들은 cockney accent라고 해서 이스트 런던, 혹은 워킹 클래스 사람들이 주로 쓰는 말투로 말하는데 아무리 귀를 쫑긋해도 못 알아듣는 단어나 표현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난 대체 초등교육까지 포함한 20년 동안 배운 게 뭐지? 싶을 정도로 이 세상에는 다양한 영어들이 살아 숨 쉰다. 또박또박 정확한 RP(received pronunciation accent) 발음만 영어시험이나 뉴스에서 듣다가 이런 발음을 들으면 이해를 못 해 당황하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다 (사실 아직도 잘 못 알아들어서 늘 Pardon? 거릴 때가 많다. 특히 시골에서는.).


같은 우리말이라도 남한말과 북한말이 다르고 억양이 다르듯이 영어도 똑같다. 더군다나 저 대서양 멀리 있는 북미의 영어가 또 다르고, 바로 옆 나라 아일랜드의 영어도 약간씩 다르다(발음이 좀 더 미국과 비슷하다). 스코틀랜드의 악센트는 정말 투박한데 그나마 유학생도 외지인들도 많은 에든버러나 글래스고 같은 대도시를 제외한 시골은 더하다. 이렇게 다양한 악센트가 혼재된 곳에서 정확하게 내 의사를 전달하려면 어떻게 정확한 발음을 해야 할지, 어떤 표현을 써야 하는지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결국 두렵더라도 직접 부딪혀봐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을 대하는 배짱을 기르고 다양한 방식의 영어를 접할 수 있다는 점이 영어권 유학의 장점이라고 본다.



2. 언어보다 중요한 문화
유럽 각지의 다양한 뮤지엄과 아트 & 일러스트레이션 전시회



미국이 아닌 영국을 선택했던 가장 큰 목적은 역시 수없이 다양한 미술관과 박물관. 영국의 대표적인 대영 박물관 The British museum과 교과서에 수없이 등장한 명화들이 즐비한 National Gallery,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한 사례로 유명한 Tate Modern, 아름다운 건물들과 다양하고 엄선된 공예품들로 유명한 V&A Museum...


그뿐만이 아니다. 현대미술 갤러리로 이름난 Saachi Gallery, 거대한 공룡 화석이 전시장을 압도하는 Natural History Museum, 런던의 모든 역사를 망라하는 Museum of London...  모든 것들이 놀랍게도 공짜라서, 늘 용돈을 쪼개느라 끼니 걱정하는 유학생들에게 더없이 좋은 주말 놀이터가 되곤 했다. 본과에서 내가 정한 주제로 리서치를 할 때에도 늘 가던 곳이 이런 다양한 박물관들이었다. 비록 많은 고대 유물들이 제국시대에 가져온 약탈품 들일 지언정, 각각의 유물들을 보려면 각각의 나라에 가야 하는 수고를 덜한다는 의미에서 미술가나 역사가들에게도 꽤나 편하게 작품들을 접할 수 있는 장소랄까? 특히 내셔널 갤러리는 다빈치의 암굴의 성모, 고흐의 해바라기,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 홀베인의 대사들 같이 한 번쯤은 봤을 기라성 같은 대가들의 작품들이 널려있는 곳이다.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미술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영국에 유학 오면 가끔 하프 텀(짧은 방학) 시간을 이용해서 친구들끼리 유럽의 다양한 곳에 다녀오기도 한다. 유로스타를 타고 갈 수 있는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주요 도시 안에는 엄청나게 다양한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고, 오후 내내 즐겁게 일정을 짜면서 오늘은 어딜 갈까 행복한 고민을 했던 기억이 생각난다. 그렇게 내가 어릴 적 교과서에서만 봐왔던 좋아하는 그림들을 바로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경험은 내게 큰 공부가 되고 훗날 큰 자산이 되었다.


런던의 자연사 박물관. 출처:Cultural Heritage Online
3. 홀로 선다는 것.


본가가 서울에 있고 학교도 서울에 있었기에 부끄럽지만 한 번도 나 혼자 홀로서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늘 가족들과 부대끼며 사는 게 자연스러웠던 일상을 벗어나 모든 걸 먼 곳에서 나 혼자 해결해야 하니, 가까운 마트는 어디인지 은행이나 상점은 어디 있는지, 믿을만한 사람은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모든 것을 내가 혼자 판단을 해야 했다. 때문에 그때야 비로소 늘 내 옆에 있었던 가족들의 소중함, 내가 편안하게 지내왔던 세이프 존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뒤늦게 알게 된 것 같다. 더군다나 처음 도착을 했을 때 말이 안 통해서 은행 창구의 직원과 대화를 하는 게 얼마나 무서웠는지... 결국 겪어내야 하는 일이지만 솔직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영국에 오는 순간 내가 한국인으로서 쌓아온 20여 년의 세월이 소거되고, 더듬거리는 말로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는 유치원생이 된 기분이다.



늘 똑같이 규격화된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예측 가능한 사람들만 보다가, 해외에서 다양한 나라에서 온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 너무나 느려 터진 행정 속도, 변화무쌍하고 대체적으로 우울한 런던의 날씨를 접하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일주일 동안 여행하는 기분으로 오는 것과, 무언가를 얻어가기 위해 스스로를 공부시키러 오는 것, 또 돈을 벌기 위해 오는 것 모두 다 다른 기분일 것이다. 그 무엇이 되었든 홀로 해외에 오면 내가 외국인이라는 신분, 철저한 타인이고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계속 껴안고 살 수밖에 없다. 그저 2년 반 남짓한 기간 동안에 내가 경험했던 것이 그럴진대, 하물며 거기에서 체류하며 오래 거주하며 사는 사람들은 어떨까?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무엇을 하든, 해외에서 고군분투하는 모든 사람들을 존경한다. 한국에서 누렸던 모든 어드밴티지를 내려놓고 새로운 환경에서 "받아들여지기 위해" 다시 자신을 단련하고 새로운 아이덴디티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수많은 불안과 실패, 피와 땀과 노력이 필요하기에.




간과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




막대한 돈과 시간
굳이 큰 노력과 돈을 들여 가야만 할 이유란?



다른 나라에서 살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누구나 선호하는 영미권 나라들은 대개 물가가 너무나 비싸다.



영국 런던의 기숙사는 아주 작은 화장실이 딸린 고시원 같은 방이 기본 80-90만 원이 넘고 부엌은 친구들과 공용으로 써야 한다. 기숙사는 그나마 싼 거고, 여길 나가서 런던 중심부에서 집을 구하려면 기본적으로 침대가 겨우 하나 들어가는 화장실 공용의 작은 방이 90만 원이 넘는다. 이미 1년 집세가 1000만 원이 넘는 데다 식비나 교통비까지 합치면 최소한 1600-2000만 원은 들어간다. 거기에 학비가 기본 15000 파운드(한화로 약 2300만 원)가 넘으니 아무리 허리띠 조르고 졸라도 비행기 값까지 최소 5000만 원 정도는 있어야 1년 동안 겨우 풀칠하고 생활을 할 수가 있다.


그래서 돈이 없으면 유학은 꿈도 못 꾼다. 다행히도 부모님의 도움 덕에 여차저차 유학을 올 수 있었던 나조차도 늘 집안 사정이 걱정돼서 안 쓰고, 안 입고, 안 먹고 최대한 집에서 요리해 먹으면서 돈을 아끼려고 노력했다. 1가구 1자녀 정책으로 비교적 부모님들의 경제적 지원을 한 몸에 받는 어린 중국 친구들과는 다르게, 나와 같은 한국 친구들이나 대만 친구들은 늘 ALDI 나 MORRISONS 같은 값싼 대형마트에 가서 한 등급 낮은 채소나 과일들로 장을 보곤 했다. 생각보다 혼자 산다는 것은 누군가와 같이 사는 것보다 더 돈이 드는 터라 어디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친구들은 늘 호주머니 걱정부터 하곤 했다.


예전과는 다르게 이젠 외국에서 대학원을 나오는 게 본국에서 큰 메리트가 되지 않는다. 그 점을 나를 비롯한 내 친구들도 모두 알고 있었고 졸업작품전이 끝나자마자 다들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많은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내 친구들 대부분이 일반 회사에 취직해서 일을 하는 것을 원했고, 나처럼 적성을 살려 순수 창작 계열의 직업을 꾸준히 이어나가는 친구들은 정말 드물다. 대개 창작은 취미로서 즐기고, 본격적인 생계를 위해선 다른 직업을 갖는 것은 대부분의 프리랜서들이 선택하는 방식이다. 예술 쪽 프리랜서는 꾸준한 돈을 안정적으로 벌기에는 너무나 들쑥날쑥하고, 우여곡절 끝에 업계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나만 하더라도 졸업을 하고 2년 차 까지도 “정말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될까” 싶을 정도로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입에 실망을 많이 했으니까.



영국에서 대학원을 나왔지만, 나는 한국에 다시 돌아오고 나서야 영국과 미국의 출판사와 원격으로 컨텍트를 해서 일을 하게 되었다. 영어도 잘할 수 있고, 영미권 출판사들이 원하는 방식의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다면 학위를 위해서 굳이 외국을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외국 출판사들과 일하는 작가들 대부분이 유학 경험이 있는 분들이시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대외적으로 유명한 그림책 어워드에 수상되어 그것을 계기로 외국과 일을 하시는 분들도 있고 여러 해외 박람회에 자신을 꾸준히 알려 인지도를 넓히는 분들도 있다. 여러 가지 길이 있다는 것을 늘 염두했으면 한다.



만약 자신의 원래 직업이 예술 쪽과 전혀 다른 분야라면, 유학 동안의 경력 단절도 생각해 봐야 한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대부분의 친구들이 미술 쪽 학부를 졸업한 친구들이었지만, 독일어 같은 전혀 다른 전공으로 일하다 온 친구도 있었다. 영국에서 일을 구할 생각이라면 모르겠지만, 한국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자신의 미술 대학원 경력을 어떤 식으로 써야 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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