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그림책 Sora's Seashells 의 발행을 축하하며
드디어 출간!
작업을 끝낸 지 1년이 조금 넘어서, 드디어 고대하던 새 그림책이 출간되었다.
좀 더 신속하게 작업에 들어가는 한국이나 영국의 출판사와는 다르게, 주로 북미의 그림책은 출간일까지 1년 이상 기다리는 게 보통이다. 그렇게 달력에 표시만 해놓고 까먹고 있었는데, 작가님의 인스타 포스트를 통해 드디어 Pre-order를 끝내고 정식 발매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새 그림책의 제목은 "Sora's Seashells"이다.
한국인 작가로서 가장 보람있는 일
나는 주로 해외의 출판사와 일을 하지만, 운이 좋으면 한국인이 나오는 작품의 일러스트를 맡을 때가 있다. 내가 처음 작업했던 "나리가 짠 햇빛 목도리 (원제: Spin a Scarf of Sunshine)"가 그런 예시 중 하나이다. 그림 작가인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영국 출판사가 나의 문화적 배경을 잘 존중해서 캐릭터를 바꿔준 것이다. 원래는 전형적인 백인 여자아이가 주인공 캐릭터로 등장할 예정이었는데, 그림작가인 나의 인종적 배경을 받아들여서 백인에서 한국인으로 바꾸었다.
원래 받아 든 스크립트는 좀 평범해서 자칫하면 진부해 보일 수 있었는데, 캐릭터를 한국인과 영국인 혼혈로 바꾸고 나서 훨씬 이야기의 느낌이 다양하게 바뀌었다. 십 년 전부터 티비나 유튜브에서 한국어가 유창한 외국인을 만날 일이 정말 많아졌다! 그만큼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의 국제결혼도 많아져서, 이런 다양한 문화적 배경의 그림책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이 그림책은 작가와 출판사가 서로 잘 조율을 해서 그림책의 성격을 바꾼, 좋은 예시라고 본다. 현재 작업하고 있는 그림책 "Bee Garden(가제)"도 역시 한국인이 나오는 책이다!
이렇게 한국인이 나오는 그림책 작업을 작년 봄 즈음에 하나 더 끝낸 적이 있는데, 그 책이 바로 이 "Sora's Seashells (소라의 소라)"이다. 이 책은 내가 꼭 같이 일하고 싶었던 Candlewick Press에서 펴낸 책이며, 이번달부터 미국 아마존과 각종 온라인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작가님은 한국계 미국인이신 Helena Ku Rhee 씨이며, 일러스트레이터 김지혁 작가님과 내가 같이 합작을 하여 그림을 완성한, 조금은 독특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김지혁 님이 캐릭터 디자인과 스토리보드를 맡으셨고, 나는 스케치를 하고 최종 컬러링 완성을 하였다.
여기에 나오는 캐릭터 역시 한국인인데, 자신의 독특한 이름 때문에 학교에서 놀림을 받고 자신의 이름에 불만을 가진 어린 여자아이로 나온다. 미국은 다문화 국가여서 정말 다양한 문화적 배경의 생소한 이름들이 정말 많다! 아시안 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인도, 중앙아시아, 이슬람계 이름 등 한 번도 못 들어본 이름들이 많아서 어떤 건 외우기가 참 어렵다. 우리에게는 소라라는 이름이 친숙하겠지만, 'Sarah' 같은 유럽계 이름에 익숙한 백인들에게는 역시 낯설 수 있다. 이 그림책은 그런 생소한 이름을 가진 아이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책이다.
이렇게 글 작가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그림책을 만들 기회가 운 좋게 주어지기도 한다. 그림책 작가로서 여러 사람들을 그리는 게 익숙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나도 한국인이다 보니 그림작가로서 한국인을 그리는 데에 더 애착이 가곤 한다. 역시 자신의 문화만큼 익숙하고 편한 건 없으니까 말이다.
한국인이 나오면 일단 여러 장점이 있다. 작가로서 문화적 배리어가 낮아져서 더 편하고 익숙하게 그림을 그릴 수가 있다. 그리고 페이지 페이지마다 자신이 원하는 한국적인 요소를 더 많이 넣을 수가 있다! 물론 이런 소품 하나하나마다 디렉터와의 의견 조율은 필수지만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출판 프로젝트는 한국적인 것은커녕 아시아 적인 요소가 전혀 없는 일들이 사실 태반이다. 그래서 한국인이 나오면 아무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여기저기 넣을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생긴다.
덕분에 그림책에 더 개인적인 애착을 갖게 되고, 일이라는 것 이상의 헌신을 스스로 쏟아붓게 된다. 설령 출판사의 사정 때문에 적은 예산으로 작업해야 한다 할지라도,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똑같이 적은 예산으로 작업하더라도, 아무래도 한국인이 나오는 작품은 더 적은 아쉬움을 갖고 대신 더 최선을 다하게 된다. 역시 손은 안으로 굽는 걸까? 나의 경우엔 그랬다.
이뿐만 아니라, 원한다면 내 조카나 엄마의 그림처럼 내 주변 사람들의 작품을 배경에 넣을 수도 있다! 아예 가족들을 캐릭터로 만들어서 카메오로 넣는 게 가능하다. 아트 디렉터가 충분히 나의 문화적 배경을 폭넓게 존중해 주면, 나의 개인적인 기호를 책 중간중간에 넣는 게 얼마든 가능한 것이다. 이러다 보니 조카들도 그림책을 받으면 정말 좋아한다. 책이 오로지 나만의 것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기에, 책을 보면 감흥이 남다른 것이다.
덧붙여 책 서문의 Dedication (헌정사) 란에 내 가족들의 이름을 쓰는 것도 너무나 보람 있다. 헌정 메시지는 쓸 때도 있고 안 쓸 때도 있지만, 아무래도 해외에 출간되는 그림책의 헌정 메시지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적는다는 건 참 자랑스러운 일이다.
한국인이 주인공 캐릭터로 나오면, 아무래도 한국판으로 나오기가 훨씬 수월하다. 물론 한국에도 해외의 여러 그림책들이 번역돼서 출간되고, 많은 책들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역시 한국에서 자란 아이들이 쉽게 자신과 동일시할 수 있는 인물들은 역시 한국인이지 않을까?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같은 해외 민담이나 전설도 있지만, 내 마음으로 직접적으로 와닿는 건 역시 한국 전통의 민담이나 고전 설화들인 경우가 많았다.
언젠가 좋은 기회가 생겨 한국에도 번역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또 앞으로도 한국인이 나오는, 혹은 아시아 계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여러 작품들이 많이 기획되고 출간되면 더 기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