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트총 May 07. 2023

카네이션

몇 년 전, 5월 7일에 당신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생생해요.

내일이 어버이날인데 카네이션도 사오지 않았느냐고.

다른 집 자식들은 꽃이며 선물이며, 음식까지 준비해 놓는다던데…

큰 걸 바라는 게 아니라며, 낳고 길러준 부모에게 카네이션은 기본적인 예의 아니냐며.


​서둘러 나가서 카네이션을 사왔지만

그 대가는 당신에 대한 사랑과 감사함이 아닌, 나의 죄책감과 의무감이었다는 걸 당신은 알까요.

이제는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카네이션을 사지만, 마음 한 켠에는 여전히 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그날의 짐이 남아있다는 것도요.

당신 말대로 나는 내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았어요.

그렇게라도 삶의 이유를 찾아 발버둥치지 않으면, 모순으로 가득찬 삶을 살아내지 못할 것만 같았거든요.

사실은 나도 별 볼 일 없는 인간이라는 진실을 마주하기가 두려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당신이 친 울타리를 넘고,

당신이 씌워준 우산을 뿌리치고,

가시에 찔리고 비를 맞아 상처투성이가 되어 돌아왔지요.

착하고 예쁜 딸은 못 되는지라,

기쁨을 드려야 하는 날에 슬픔을 드리고

당신이 내민 손을 외면하고 당신이 내어준 품을 벗어나

또 먼지를 뒤집어 쓰고 돌아오겠지만

그래도 당신에게 남은 날들 중에는,

나 때문에 눈물짓는 날보다 나 때문에 웃음짓는 날이 조금이라도 더 많기를요.

어쩌면 그것이 당신에게는 삶의 이유일 테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나의 지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