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인생에 한 번쯤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이 있다. 그 스포트라이트는 유난히도 찬란해서 주인공을 빛나는 존재로 만들어주지만, 그 빛만큼이나 그림자는 깊고 어두워서 한 치 앞도 못 보게 만들곤 한다.
스포트라이트가 앞으로의 나날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반면 그림자 속 미래는 그저 뿌연 안개 속을 지나는 것처럼 암담하게 느껴지게 하는데, 최근 나의 지인의 오랜 꿈을 이룬 소식을 들었을 때가 그랬다. 나는 그녀의 소식이 그녀의 인생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친 순간이라고 느꼈다. 그녀의 소식에 참 많이 기뻤고, 축하했지만, 스포트라이트 속 주인공을 바라보며, 느껴지는 부러움이 나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웠다. 기쁜 마음으로 축하를 하면 할수록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녀가 더욱 빛나 보였고, 나의 그림자는 점점 짙어져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그저 반복되는 삶, 반복되는 업무를 하며 점점 소모되어가는 내 처지가 더 비참하게 느껴져 집에 가는 길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그림자 속 내 미래가 영원히 암흑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녀와 나는 회사 동기로 만났다.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의 설렘도 같이했고, 회사생활을 하며 각자가 느껴온 희로애락을 나누며 지내왔다. 종종 함께 여행도 다녔고, 취미생활도 같이했으며, 고민거리도 함께 나눴다. 우리의 고민은 항상 ‘어떻게 살아야 할까’였다. 회사에서의 연차가 쌓일수록, 직급이 높아질수록 그에 비례한 권태로움을 느꼈다. 그래서 각자가 각자의 삶에서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서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
드러내지 않은 서로의 노력이 스포트라이트와 그림자로 명암이 뚜렷하게 갈렸다. 그녀가 드러내지 않은 노력의 날들에는 스포트라이트가, 나에게는 그림자가 졌다. 그녀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녀가 부단히 노력했을 것임을 안다.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의 무수한 실패의 과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이랬다면 달라졌을까?’라는 의미 없는 가정들을 세우기 시작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녀를 보며, 과정은 생략된 채 성과만 찬란히 빛나 보여 부러웠고, 나의 무수한 불합격과 실패가 재조명되고 있었다. 그녀의 삶의 변화가 부러웠고, 나의 변화 없는 삶에 괴로웠다.
하루 이틀은 그림자 속에서 울적했다. 그림자 속에서 내 실패를 조명하며 현실의 비참함을 느꼈다. 그 시간 동안은 온전히 내 부정적인 기분을 받아들였다. ‘내가 지금 울적하구나, 비참하구나.’ 느끼며 날것의 내 감정을 충분히 바라보니, 이제는 이 비참함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자는 마음이 들었다. 한순간에 인생에 변화가 있길 바라는 요행도 내려놓고, 누군가의 스포트라이트에 나의 그림자를 느끼는 일도 내려놓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이 상황에 핀 조명 위치를 바꿀 수 있는 것은 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니까.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내 인생이 어떻게 변할지, 기대하던 일이 또다시 좌절될지 한 치 앞도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나에게도 스포트라이트가 비칠 것이라는 작은 희망이 다시금 주저앉지 않고 묵묵히 걸어갈 힘을 주었다. 결국, 내 인생을 멋지게 가꾸어 나가야 할 사람도 나이고, 비참함을 느낄 때마다 괜찮다고 다독여줘야 할 사람도 나이며, 상상했던 삶과 전혀 다른 삶일지라도 그럼에도 다시, 내 삶을 살아내야 할 사람도 나니까. 꿈꾸던 삶을 사는 사람의 인생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꿈꾸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묵묵히 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니 스포트라이트에 드리워진 내 그림자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그녀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 좀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울적한 날이 있겠지만, 어딘가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그녀를 상상하며, 울적함보다는 자극을 느낄 것이다.
누구나 인생에 한 번쯤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이다. 그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전까지는 그림자 속에 있겠지만, 그 그림자 속에서 우리가 할 일은 암담함에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점점 스포트라이트 조명이 나에게 오고 있음을, 언젠가는 저 핀 조명이 나를 향할 것임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누군가의 스포트라이트를 보며 한순간에 이룬 찬란함이라고 생각하며 조급함을 느끼기보다는 시간이 조금 걸릴지라도 언젠가는 나도 이뤄낼 것이라고 생각하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 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내 삶을 멋지게 바꿀 사람은 결국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