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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st Writer May 22. 2023

전세보증금은 당신 돈이 아닙니다

'10억' 집주인은 돈이 없다


OO 아파트 일반 청약 당첨자 A씨는 "실거주하지 않고 세입자를 받아 전세금으로 잔금을 치를 계획이었는데, 직접 들어가 살아야 하는지 잠이 오지 않는다. 솔직히 정부에서 규제(실거주 의무)를 풀어준다고 해서 청약(세안고 갭투자)을 넣은 사람이 수두룩한데 너무 억울하다." 

-실거주 의무 폐지. 뉴스 기사 중에서


[집주인] "전세보증금을 갖고 있으면서 '나중에 세입자가 나갈 때 돌려줘야지' 하는 집주인이 어디 있어요?"
[기자]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수가 있어요?"
[집주인] "아니, 못 돌려준다니까? 돈이 있어야 갚아줄 거 아니에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어떡하라고?"

-2030 울린 먹튀 집주인. 돈 다 썼고, 신고하라. 뉴스 기사 중에서



대한민국 국토가 (갭)투기꾼으로 오염되고 있다. 전세사기, 보증금미반환 사고는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고 있고, 국가차원에서 대책본부도 꾸려진 상황. 넓게 잡으면 수도권 주택의 절반이 깡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진짜 문제가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2021년은 전세가격이 사상 최고가로 체결된 해이며, 2년 만기가 올해 하반기에 수두룩하게 찾아온다. 집값이 오른다는 믿음을 갖고 세안고 갭투기를 한 사람들에게 지옥의 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는 2021년의 그 미친 가격으로 신규 전세를 들어가려는 수요가 있을 리가 없다. 즉 2년 전 전셋값이 지금의 집값보다 큰 경우가 수두룩하다. 집을 팔아도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기 힘든 것이다.






갭투자는 레버리지(차입) 투자법의 일종이다. 자기 돈으로 투자를 하기엔 (시드가) 부족하니깐 다른 사람들의 돈을 빌려서 투자에 임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사금융제도, 전세를 가져오면 무이자로 2년 동안 돈을 빌릴 수 있다. 그것도 아무 제한이나 심사, 검토 없이, '그냥' 빌려준다.


예를 들면 3억짜리 주택을 구입하고 싶다면, 자기 자본 3천만원과, 임차인의 전세보증금 2억 7천만원을 합쳐서 매수 잔금을 치른다. (전세가율 90%) 그러면 단돈 3천만원으로 집주인이 된다. 물론 2억 7천만원에 달하는 전세보증금은 2년이 지난 후에 세입자 퇴거와 함께 돌려줘야 되는 돈이다. 당장에 실감이 나지 않을 뿐.


그러다가 2년 후에 집값이 4억으로 올랐다고 가정해 보자. 새로운 매수자에겐 1억 3천만원에 집 장만하세요,라고 하면 된다. 전세 계약 승계 조건이니 채무(2억 7천만원)를 함께 넘기는 식이다. (원래라면 세입자에게 2억 7천을 줘서 계약을 해제하고, 매수인에게 4억을 받아서 집을 넘기고, 다시 세입자는 신규 매수인에게 2억 7천을 줘서 신규 계약을 해야 하지만, 귀찮으니 다 생략하고 집주인들끼리만 1억 3천을 주고받는 셈이다. 어차피 결과는 같다.) 


그러면 집값이 1억 오른 차익을 그대로 먹게 된다. 3천만원을 투자해서 1억을 번 셈이다. (수익률 333%)



하지만 하이리스크면 하이리턴이라고 했다. 갭투자가 항상 돈을 벌어다 주는 건 아니다. 만약 2년 후에 집값이 2억 5천만원이 된다고 해보자. 집을 당장 팔아도 손에 들어오는 건 2억 5천만원 밖에 없는데, 세입자에게 2억 7천만원을 줘야 한다. 원금 3천만원은 애초에 다 날아갔고, 추가로 2천만원이 손해다. (수익률 -167%) 만약에 집값이 2억이 되면 원금 날아간 것에 추가로 7천만원이 손해다. (수익률 -333%)


만약에 집값이 하락했는데, 전세 만기를 앞두고 있다면 무슨 상황일까. 당장에 집을 팔아도 전세보증금을 다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 전세가율이 100%가 넘는 상황, 우리에게 익숙한 '깡통 전세'이다. 역전세라고도 한다.





   

세상 모든 투자에 적용되는 공통의 법칙이 있다. '하이리스크-하이리턴' '로우리스크-로우리턴' 위험이 클수록 기대수익도 크다. 위험이 적을수록 기대수익이 적다. 이건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갭투자는 그중에서 초하이리스크-초하이리턴에 속한다. 바로 레버리지 투자법이기 때문이다. 레버리지 투자는 속칭 '존버'가 안된다. 덮어두고 잊어버릴 수가 없다. '청산' 기일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바로 전세 만기일이다. 때가 되면 세입자에게 돈을 돌려줘야 하는 채무이다.



하지만 전세금을 받아놓고 그걸 그대로 은행에 넣어두고 있는 사람은 잘 없다. 어디에든 재투자를 하고 있기 마련이며, 바로 자기 집에 투자하는 사람을 갭투자자라고 한다. 


다른 모르는데 투자하는 것보단 자기 집에 투자하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상은 전혀 아니다. 애초에 자기 집에 투자한다는 것은, 집을 구매할만한 돈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무늬만 집주인이지 실상은 '깡통'이다.



"전세보증금을 갖고 있으면서 '나중에 세입자가 나갈 때 돌려줘야지' 하는 집주인이 어디 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집주인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을 한다. 만기에 새로운 세입자로 전세금을 돌려막기하는 현실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러면 예전보다 전세금을 올려 받았으니, 그 받은 돈 그대로 다시 주면 되는 것 아닌가요?라고 할 수도 있다. 세상 순진한 생각이다. 전세금을 올려 받은 만큼 자기 자본 투입량을 줄인 것이니깐. 그럼 자기 자본이 늘었겠네요? 그거 주면 되는 거 아니에요? 무슨 소리. 자기 돈이니 자기가 써야지. 이렇게 된다. 한마디로 돈이 없다.





사실 세상의 어떤 투자든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다양하고, 어떤 가치관으로 살든 남이 뭐라 할 문제는 아니다. 투자에도 자유가 있고, 하이리턴을 원한다면 자기가 리스크를 짊어지면 된다.


하지만, 갭투자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러한 '하이리스크'를 자기가 지는 게 아니라, 세입자가 진다는 점이다. 분명 이상하다. 남의 돈을 빌려서 레버리지 투자를 했는데, 망하면 자기가 망하는 게 아니라 돈을 빌려준 사람이(전세 세입자) 망하게 된다. 경매에 넘어가서 이것저것 다 떼고, 남은 부스러기만 임차인에게 떨어진다. 절망이 아닐 수가 없다.



외국인들은 우리나라의 전세 제도를 참 이상하고 신기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그들의 표현대로라면 전세 제도는 '일면식도 없는 집주인의 선의만을 믿는 이상한 제도'이다. 2년 뒤에 전세금을 돌려줄지, 아니면 먹고 도망갈지 어떻게 알아?


받은 전세금으로 여기저기 투자해서 성공하면 위대한 투자자가 되고, 실패하면 나몰라, 줄돈 없어, 경매 넘기든지 알아서 해, 라고 하는 이상한 제도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투자는 그들이 하고, 리스크를 애먼 사람이 책임지고 있다. 분명 잘못되었는데, 몇십 년째 고쳐지지 않고 있다.



갭투자는 분명 레버리지 투자이고, 빚투이다. 빚내서 투자했으면 빚을 진 사람이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게 당연한데, 현실은 임차인에게 리스크를 전가하는 걸 넘어서, 빚투한 투기꾼들을 탕감해 달라는 구제책까지 요구하는 실정이다. 


확실한 건, 빚투를 이렇게 한두 번 구해주다 보면, 사회는 또 다른 빚투를 양산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아무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남의 돈으로 빚내서 사기치고 뒤통수치고 이렇게 사는 게 맞다고 가르칠 날이 올 것이다. 바로 지금, 갭투자 안 하는 (양심적인)사람들을 바보라고 하는 사람들처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따르면 인간은 본디 탐욕스럽고, 위선적이고, 이기적인 존재하고 한다. 개인의 일탈적인 욕망을 절제하기 위해선 공포가 필요하다고 전한다. 타인의 자유를 침범하는 자유를 범했을 경우에 닥치게 되는 두려움을 생각하라는 경고가 필요한 것이다. 500년이 지난 지금, 그 말이 딱 맞다. 사회는 선의로 돌아가지 않는다.


갭투기는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억지로 막지 않으면 막을 수 없다. 전세보증금의 상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예를 들어 집값(기준시가)의 절반까지만 전세금을 받도록 하며('사전적' 의미의 반전세), 그걸 넘는 신규 계약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마치 집을 사기 위해서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적용하는 것처럼, 전세금(사금융)으로 집을 매수하는 것도 엄격한 제한을 두는 것이다. 그래야 부실채권이 줄어들고, 전세보증보험도 의미가 있어진다. 답은 이렇게나 간단하다.






전세가 없어지고, 반전세로 제한이 되면, 월세가 폭등할 거라는 분석도 있다. 월세살면 돈 못 모은다고, 평생 무주택자로 살 거라고 비아냥거리곤 한다. 그렇다면 전세가 없어지면 정말로 월세가 폭등을 할까?


월세 가격은 국가가 정하는 게 아니라, 시장이 정한다. 당연히 임대인은 더 많이 받고 싶고, 임차인은 더 적게 내고 싶다. 그 둘 사이의 줄다리기, 수요-공급 법칙에 의해서 시장 가격이 정해진다.


그렇다면 전세 수요가 반전세(월세)로 옮겨왔으니, 수요가 2배가 됐네? 그럼 월세가 오르겠네,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월세 수요가 2배가 된 만큼, 월세 공급도 2배가 되었다는 점이다. 전세 제도가 없어지면 임대인들은 전세 매물을 모두 월세로 바꿔야 한다. 아니면 팔거나. (시장에 팔게 되면 그만큼 매매가격은 떨어지고, 월세 수요층이 매매로 이탈하게 될 것이다.)



전세가 없어지면 자연스레 갭투자가 사라지고 집값이 하락할 거라는 건, 초등학생도 동의할 수 있는 사실이다. 집값이 하락한다는 말은, 임대인 입장에서 신규 주택을 취득할 때 드는 필요 자금이 줄어든다는 말과 같다. 그러면 임차인을 모집하기 위해 임대인-임대인 간의 가격(월세) 경쟁에 있어서, 임차료를 낮출 여유가 전보다 더 생긴다는 말이 된다. 어차피 공실로 두면 손해이니, 어떻게든 세입자는 구해 와야 한다.


따라서 반전세 제도 하에서의 월세 가격은 청정부지로 치솟을 것이고, 미국처럼 월세 200만원의 시대가 올 거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애초에 그 나라들은 전세가 없던 곳이라서 비교 대상이 아니다. (게다가 미국은 월세도 비싸지만, 월급도 많이 준다.) 전세가 없어지면 집값이 하락하는데, 월세만 단독으로 오른다는 건 납득하기 어려운 예측이다.


전세가 없어지고, 반전세로 제한이 되면 필연적으로 (없던)월세가 생기지만, 전세대출 이자를 내는 것과 실상은 다를 게 없다. 설령 전세대출 이자보다 월세가 조금은 비용이 더 생길 수는 있으나, 전세보증보험이나 전세권 설정하는데 드는 비용과 노력도 생각해 봐야 한다. 보증금 떼이는 상황에 대비하고 사고에 대처하는 사회적 비용도 무시할 수 없는 부담이다.





전세금 미반환 문제, 깡통전세 사기는 시한폭탄과 같아서 이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고, 충분히 예측가능한 미래 범위 안에 있었다. 나는 아니겠지, 설마 무슨 일 있겠어?라는 생각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


사고는 대처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일어나지 않게 예방하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예방은 곧, 전세의 종말을 의미한다.


최근에 정부 고위 당국자가 말했듯이, 이제 전세 제도는 수명이 다했다는 점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기를. 구시대의 유물로 박물관에 전시되기를. 앞으로는 사는(buy) 집이 아닌, 사는(live) 집이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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