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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st Writer Mar 20. 2023

갭투자는 빚투다

임대인은 채무자고 임차인은 채권자다


한창 증시와 부동산이 가파르게 상승했던 2021년은 우리에게 여러모로 큰 의미를 남겼다. 자산 가치 폭등으로 증시와 부동산은 불타올랐고 사람들은 환호했다. 이 기세를 몰아서 레버리지 만땅에 빚투로 올라타는 개인투자자들에게 여러 전문가들은 위험성의 경고를 했지만, 사실 듣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제 드디어 돈 좀 벌려는데 이런 분위기에 꼭 초치는 말을 해야겠냐고.


2년이 지난 지금, 불타기에 뛰어들었던 사람들 대부분은 상승분을 모조리 반납하고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오거나, 물려있거나, 심지어는 자산 가격이 추락했다. 현재 우리나라 증시/부동산 기록에 뻔히 나와있는 결론이다. 그때 당시 분위기에 이쯤 벌었으니 이제 손 털어야지, 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은, 아, 더 넣을걸... 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개미투자자들에겐 꿈만 같은 2년이었을까.


빚내서 투자하기, 빚투는 시간제한이 있고, 그 안에 평가액을 달성하지 못하면 청산당하는 구조이다. 그럼 평가액은 어떻게 도달할 수 있을까? 그건 투자자의 마음이 아니라 시장이 '평가'한다. 그럼 시장의 큰손들이 그것을 순순히 허락할까?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는 결론이다. 






현재 2023년,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례 없는 출산율 0.78의 위엄을 자랑하는 소멸 국가가 되고 있다. 서울 길거리를 걸으면 아이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문제에 대해서 물론 여러 가지 분석이 있지만, 사실 가장 큰 건 바로 부동산 가격이다. 집이 있어야 애들 낳고 기르지. 캠핑카에 텐트를 치고 아이들을 기를 순 없다. 아파트 가격이 10억인데, 연봉 3천만원 하는 사람이 아이를 과연 낳을까? 출산율의 원인 역시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동산 가격에 정말 열심이다. 자기가 산 가격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같은 아파트의 다른 호실이 거래되는 것을 참지 못한다. 가격 방어를 위해 부동산에 협박까지 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미친 집값으로 미래 세대가 아이를 낳지 않는 건 알바 아니고, 내 집 가격은 떨어지면 안 된다는 논리이다. 


그럼 미래 세대 수가 줄어드니 국민연금 개혁해야겠네? 지금보다 더 내세요, 늦게 받으세요, 앞으로 어른들을 부양해 줄 아이들이 없어요,라고 하면 그것도 반대한다. 


안 그래도 적은 인구수의 미래 세대들에게 좋은 것만 물려줘도 부족한 판에, 원자력 폐기물, 기후 재앙, 국민연금 폭탄, 그리고 어마어마한 부동산 버블 폭탄을 강제로 떠넘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태어나고 싶겠니?)






현재의 미친 부동산 가격은 왜 이렇게까지 미치게 되었을까? 과연 공급이 부족해서 그럴까? 주변에 하루가 멀다 하고 신축/재개발을 하고 있는 아파트 단지들을 보면 그것도 아닌듯하다.


사실 본질적으로 집값 폭등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갭투자'에 있다. 세입자의 전세금을 레버리지(차입)로 활용해서 부동산 거래를 하는 것이다. 쉽게 생각하면 어떤 투자자가 부동산을 구매하는 데 있어서, 자기 자본과 세입자 전세금을 합친 금액으로 매수를 하는 것이다. 당연히 자기 자본이 적게 들어가니 높은 호가를 쉽게 따라갈 수 있게 되고, 그것을 아는 판매자는 일단 전세금을 바닥에 깔아놓고 흥정을 시작한다. (그거 어차피 네 돈 아니잖아?)


그래서 주위에 보면 전세를 사는 사람은 그 집에 몇십년째 그대로 살고 있는데, 집주인만 계속 바뀌는 곳이 있다. 결론적으로는 물리적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등기부등본 혼자서 바쁘다. 갭투자 거래가 계속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 전체로 보면 부동산 거래 세금 더 걷어서 좋은 건가?)





어떤 건설업자가 집을 지었다. 다 지었으니 이제 팔아야지? 2억에 팔고 싶네. 사람을 모집한다. 그런데 가격이 비싸니 선뜻 구매자가 없다. 원래라면 이 상태에선 판매자가 팔길 원하는 가격(호가)을 낮춰야 팔리는 게 인지상정이다. 당근 거래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호가를 낮추지 않고도 집을 2억에 팔 수 있는 마법이 바로 갭투자에 있다. 신규로 집을 구매하려는 사람이 전세 세입자를 데리고 와서 거래를 하는 것. 자기 자본 3천만원과 전세금 1억 7천만원을 합쳐서 집을 매수한다. 세입자의 계약 기간이 끝나면 집주인이 된 갭투자자는 1억 7천만원을 돌려줘야 하지만, 돈이 없네? 그러면 다른 세입자 1억 7천만원 전세를 들이면 된다. 간단하쥬?


갭투자자가 집을 팔고 싶을 땐 어떻게 할까? 부동산에 이렇게 광고하면 된다. "자본금 5천만원으로 집을 구매하세요." 그러면 갭투자자는 3천만원에 집을 사서, 5천만원에 파는 것으로 2천만원의 차익을 챙기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집을 5천만원에 사는 사람은 사실 5천만원으로 집을 사는 게 아니다. 이 부분이 엄청나게 중요하다. 초기에 전세를 받은 1억 7천만원의 채무를 그대로 넘겨받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2억 2천만원에 집을 사는 것과 같다. 당장에 들어가는 돈이 아니기 때문에 그저 실감이 나지 않을 뿐이다.


웃긴 일이다. 처음엔 2억도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2억 2천에 거래가 되고 있다. 집값이 이런 방식으로 계속 올라서, 지금 서울 아파트 가격이 10억이 되었다. 그 사이사이 차익은 갭투자자들의 몫이다.


그럼 궁금한 점이 하나 생긴다. 이러다 언젠가 갭투자자가 신규 전세 세입자를 못 찾으면 어떻게 되나요? 만기가 찾아온 기존 세입자의 전세금... 어떻게 돌려주죠? 뭘 어떻게 되기는. XX 되는 거지. 지금 2023년에 한창 일어나고 있는 일이니,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갭투자의 멸망은 이렇듯 전세 세입자를 못 찾을 때 일어난다. 전세를 항상 구할 수 있다는 자만심이 들 때가 바로 가장 위험할 때이다. 전세자금대출 금리가 올라가면 곧바로 참교육이 시작된다. 전세 제도는 필수불가결한 갭투자의 선행조건이다.


도대체 왜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전세금이 '빚'이라는 생각조차 안 해봤기 때문이다. 전세금은 그 본질적 특성상 개인 간의 금융 거래, 사채인데도 '무이자'를 만족하는 특이한 성격을 갖는다. 돈을 빌리는데 이자가 발생하지 않으면 시간제한을 받지 않는다. 즉,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원금만 갚으면 되기 때문에 빚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 전세금은 빚이다. 임대인은 채무자고, 임차인은 채권자다. 전세금이 결코 공짜 돈이 아니라는 말이다. 갭투자 거래는 기본적으로 전세금을 깔고 시작하기 때문에 빚을 계속 돌려막게 된다. 게다가 사람의 본능은 어차피 나중에 돌려줘야 할 전세금마저도 높게 받고 싶은 게 있기 때문에 (그 돈으로 투자를 한다던가), 전세가격 자체도 계속 올라간다. 안 그래도 빚 돌려막기에, 빚 자체도 계속 커진다. 전세로 들어오는 세입자조차도 그것을 빚내서 오기 때문이다. (너 저렴하게 전세금 대출받아서 가지고 올 수 있잖아?)


임대인은 자기 자본 소량과, 전세금이라는 '사적인 빚'을 내서 집을 구매한다. 그런데 임차인이 가지고 오는 전세금도 빚이다. 한마디로 빚과 빚이 만나 부동산 가격이 형성된 것이다. 그 빚이 계속 돌려막기를 거치면서 점점 커진다. 나중에 그 빚을 감당 못하면 결국 다같이 멸망이다. 진짜 코미디가 따로 없다.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지만, 결국에 갭투자는 빚투다. 그런데 빚투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데 있어서 갭투자에 대한 얘기는 거의 없다. "빚내서 주식하지 마세요. 코인하지 마세요" 이런 말은 있어도 "빚내서 갭투자 하지 마세요" 이런 말은 거의 못 들어 봤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부동산 자본의 힘은 탄탄하다.






일반적으로 돈을 빌리면 이자가 발생한다. (그 비율을 금리라고 한다) 그런데 전세금은 특이하게도 '무이자' 빚이다. 왜 기존의 자본시장에서 이러한 무이자 대출이 거의 없을까? 바로 갭투자를 보면 답이 나온다.


빚을 내는데 이자가 발생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빚을 무서워하지 않게 된다. 빚을 무서워하지 않으면 계약 그 자체도 무서워하지 않게 되고, 결국 자본 거래의 신뢰가 깨진다. 


전세금을 돌려받을 거란 신뢰가 무너지는 것, 그것이 바로 무이자 대출의 가장 큰 폐해다.



임차인들 증언을 종합하면 A씨는 이들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비수도권에 위치한 한 개발사업에 수천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투자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주택 임차인들의 전세보증금도 사업비로 투자했지만 사업이 부진하면서 문제가 시작된 것이다. A씨가 더 이상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그가 소유한 주택들이 차례로 경매에 넘어갔고, B씨가 살고 있는 주택도 이를 피해 갈 수 없었다.

-아시아경제 '전세사기 실태추적' 기사 중에서



https://brunch.co.kr/@forest-writer/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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