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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는 잡아야 하지만, 내 집값은 잡으면 안 되는 이유

by Forest Writer


만약에 김치찌개 하나에 10만원, 파스타 하나에 50만원, 커피 한잔에 80만원, 기름값 리터당 200만원, 티셔츠 한벌에 100만원, 버스기본요금 3만원, 겨울철 난방 가스비 한 달에 300만원 나오는 세상이 되면 어떻게 될까? 내 월급은 그대로 인 채로 말이다.


당장에 길거리에 시위가 나고 난리가 날 것이다. 물가 안 잡고 대체 뭐 하냐고. 이렇게 어떻게 사냐고. 정부를 성토하고 당장 생필품 가격 낮추라고 연일 정책을 쏟아내고 사회적인 노력이 요구될 것이다.


그런데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은 왜 계속 올라야 하는 걸까? 아파트 한 채에 100억, 이런 말들이 심심찮게 나온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모두들 느끼는 바가 있는 건, 1억도 정말 큰돈이라는 것이다. 1억 모으기 정말 쉽지 않다. 5억? 10억? 평생 만져보지도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런데 아파트 가격 지금 너무 싸다, 앞으로 국평 100억은 가야 한다고 난리다.




사실 사람들이 집값이 오르길 바라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샀기 때문이다. 내가 샀으니 내가 팔 때 더 비싸게 팔아야 내가 돈을 벌기 때문이다. 출산율이니 뭐니 나라가 망하든 말든, 청년들이 비싼 물가에 힘들어하든 말든, 내가 돈 벌어야 하니깐. 그러니깐 계속 부동산 부양책을 써야 하는 거다. 물가는 잡아야 하지만, 내 집값은 방어해야 한다.


그럼 부동산 가격을 낮추는 정상화 정책은 집 가진 사람들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걸까? 여기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집을 거주의 대상으로 볼 것인지, 투자상품으로 볼 것인지 각각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일단 집을 거주의 대상으로 본다고 하자. 집은 물건이다. 돈 주고 샀고, 그다음부터는 중고가격 생각 안 하고 그냥 사용만 한다. 지난주에 양복 한 벌 샀는데, 날마다 같은 양복 제품의 시세를 확인하는 사람은 없다. 양복을 입으려고 사는 게 아니라 되팔려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면 집값이 오르던 내리던 아무 상관이 없다. 그냥 돈 주고 구매해서 사용하는 거니깐. 이사를 가야 한다고? 집값이 떨어지면 다른 집들도 떨어지니 내 집을 싸게 파는 만큼 다른 집도 싸게 산다. 집값이 오르면 다른 집들도 같이 오르니 비싸게 파는 만큼 비싸게 산다. 어떻게든 결론은 같다.


만약 집을 투자상품으로 본다고 하자. 그러면 투자는 온전히 본인 100% 책임이다. 내가 지난주에 주식 샀는데, 정부에서 금리 올려서 주가 떨어졌으니 주식 환불해 줘, 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A종목 주식 샀는데, 정부에서 B종목 분야를 집중육성한다고? 그러면 A주식 반품할래 B주식으로 바꿔줘, 이런 사람도 없다.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및 부동산 안정화 정책은 (어떤 포지션이든) 투자자들을 고려하지 않을뿐더러, 고려해서도 안된다.


결국 집값 올라야 한다, 앞으로 100억 가야 한다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들은 실수요자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냥 싸게 사서 비싸게 되팔려는 투기꾼들일뿐이다. 일반 국민들의 투자 상황에 대해서도 정부는 관여하지 않는 판에, 투기꾼들 투자 포지션을 전혀 신경 써야 할 이유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집값은 물가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집값은 자산이라고, 물가가 아니라고. 그런데 월세, 임대료는 물가다. 요즘 사회 초년생들, 대학생들 코딱지 만한 원룸 월세가 80,90만원씩 한다. 주거비가 너무 비싸서 알바에 내몰리는데, 그것마저도 최저시급이다. 주거비 낮추려고 청년주택 지으려고 하면 동네 주민들이 반대하고 드러눕고 난리가 난다. 온 나라가 합심해서 청년들을 학대하고 있다.


집값이 떨어지면 월세가 오른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웃긴 말이다. 물건을 빌려 쓰는 비용은 물건 가격에 비례한다. 이건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당연히 비싼 물건을 빌리는 비용이 비싸다. 싼 물건을 빌리는 비용이 싸다. 벤츠보다 모닝의 렌탈비가 더 싸다. 집값이 높아지면 집을 빌려 쓰는 비용도 높아지고, 집값이 낮아지면 집을 빌려 쓰는 비용도 낮아진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의 결혼 문화가 이런 집값 문제를 불러왔는지도 모른다. 결혼할 때 왜 꼭 집을 사야 할까? 2030 나이에는 돈이 없는 게 당연한데, 굳이 30,40년 대출을 받아가며 빚내서 집을 사게 되고, 대출금을 일해서 갚는 게 아니라 집을 (나중에 비싸게) 팔면서 다음 매수자를 통해 갚을 생각을 하기 때문에 집값 방어에 그렇게 집착하게 된다. 슬픈 현실이다.




집값은 당연히 물가다. 집값이 너무 비싸서 청년들이 희망이 없다. 결혼, 출산은커녕, 연애도 못한다. 비싼 물가에 사람들이 힘들든 말든 나만 돈 벌고 나만 잘 살면 아이러니하게도 모두가 불행해진다. 사회 전체가 소멸하기 때문이다. 늘 강조하지만, 부동산 가격의 결정주체는 (무주택)매수자들이다. 매수자들이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야 나중에 내 집을 비싸게 사줄 수 있다. 이렇게 미래 세대를 가난하게 만든다면, 결국 내 부동산 가치도 하락할 수밖에 없다.


출산율 0.7명대의 세상, 앞으로 아이들이 적게 태어나면 (기존의 인구 부양을 위해) 그만큼 1인당 연금과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 호주머니까지 벌써부터 숟가락을 들이미는 것이다. 그 아이들이 과연 존경스러운 마음으로 기존 세대들을 부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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