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접의 맥락 2
무거운 카메라는 던져두고 대충 핸드폰만 들고 동네를 산책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산책은 비단이를 위한 외출이거나 새를 본다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는데, 그런 목적을 내려놓으니 가볍고 단순한 산책이 됐다. 비단이 없이 혼자 동네를 돌아다니는 게 어색하고 서글펐지만, 한편으론 이런 가벼운 산책이 마음에 들었다.
비단이가 떠난 지 2년쯤 되자 나를 감싸고 있던 무거운 느낌이 어쩐지 가볍게 느껴졌다. 인터넷의 우스운 짤을 찾아 남편과 공유하며 까부는 일상이 좀 더 자연스러워졌고, 비단이 생각에 혼자 눈물 짜는 날이 줄어들게 됐다. 이런 변화를 민감하게 관찰하고 내 마음을 들여다본 후, 나는 비단이에 관한 메모와 그림을 그만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마주해야 할 건 슬픔이 아니라 오랫동안 풀지 못한 나 자신의 문제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비단이에 대한 애도는 충분하니까, 더 이상 슬픔을 핑계로 이런저런 잡 감정을 섞지 않기로 한 것이다.
우리 집 현관 옆의 작은 창 바깥쪽에는 야생 새들이 종종 드나들고 있다. 2016년쯤부터 창틀에 해바라기씨를 조금씩 놓고 있는데 어쩌다 그걸 알게 된 새들이 오며 가며 먹는다. 그런데 비단이가 떠난 후 나는 전보다 성실히 창틀에 해바라기씨를 놓고 있었다. 혹시 잊어버린 날은 깜짝 놀라 얼른 먹이를 놓으며 미안해하기도 했다. 먹이를 주는 행동으로 비단이에 대한 상실감을 채우려는 듯이 말이다.
내가 창틀에 먹이를 놓고 있는 걸 아는 남편은 어느 날 좋은 생각났다는 듯이, 먹이 먹으러 오는 새들을 촬영해 보자고 했다. 재밌는 생각이긴 한데, 혹시 새들이 밥 먹으러 오는데 방해되는 게 아닐까 싶어 고민이 됐다. 하지만 새들의 모습은 나도 보고 싶기에 일단은 촬영을 시도해 봤다. 촬영 장비는 얼마 전 새 핸드폰을 장만하며 생긴 구형 스마트폰. 평소처럼 해바라기씨를 창틀에 놓고 창문을 살짝 연후, 그 틈으로 촬영 버튼을 누른 핸드폰을 끼워 놓았다. 조급함으로 삼십 분도 안돼 핸드폰을 확인했다. 오! 몇 마리의 새가 다녀간 모습이 찍혔다. 다행히 새들은 핸드폰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해상도와 프레임을 올리고 창문 사이에 끼운 핸드폰의 각도를 조정해서 다시 촬영했다.
영상에 담긴 새들의 모습은 바로 눈앞에 있는 듯 가까웠는데, 그전에 카메라의 줌 기능으로 당겨 찍는 것과는 다른 생동감이 느껴졌다. 뭐지 이거? 너무 신기하고 재밌다! 남편과 나는 신나서 스마트폰의 여러 기능을 이용해 마구 찍어 댔다. 밖에 나가서 새를 보는 것에 시큰둥해지긴 했으나 여전히 새를 좋아했기 때문에 이건 매우 흥분되는 경험이었다. 마치 새를 처음 좋아하던 시절처럼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그렇게 촬영한 영상을 보며 밥 먹고 설거지하고, 일부는 간단하게 편집해서 새로 만든 유튜브 채널에 올리기도 했다.
찍은 영상이 늘어나자, 나는 약간의 부지럼을 떨었다. 영상에서 간직하고 싶은 부분을 따로 저장해 놓았고, 허술한 기억력을 대신할 작은 수첩에 그날그날 창틀에 온 새들에 대해 간단히 적어 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