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태초와 케이아스,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태초와 케이아스,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1.

파리의 샤를 드골 공항에서 떠오른 비행기가 어느 사이엔가 인도양의 하늘 위를 지나고 있다. 좁은 탁자 위에 메모장을 펼쳐 놓고 검은색 펜의 족적을 남기는 사이에 몇 번은 깜빡 졸았던 것 같다. 비행기의 실내에 갇혀 있으면 빛과 어둠만으로는 낮과 밤을 구분할 수 없게 되니 깨어 있는 것과 자는 것의 경계 또한 허물어지는 것 같다.


늘어지는 글의 모든 문장은 늘 첫 문장인 듯 새롭기만 하다. 사피엔스의 선천적 본능은 현명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현명함에는 길고 깊은 사색이 따라야 하고, 사색은 글의 수다로 이어지기 십상이라는 것을, 글쟁이의 후천적 본능은 깨치고 있다. 오랜 시간을 머릿속에서 떠돌아다니던 것들을 긁어 모아, 모서리 네모난 퍼즐판에 첫 조각을 얹듯이 조심스럽게 첫걸음을 디딘다.


어떠한 연유인 건, 어떤 식이었건,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이 지금의 이곳에 있게 된 아주 아주 먼 옛적의 그날부터, 비와 바람과 구름, 햇빛과 물과 불과 흙은 원래부터 스스로가 그러했던 것처럼, 당연히 이 세상에 있어 왔을 것이다.


그리고 까마득한 시간이 지나간 아주 먼 후일에, 문득 또는 어떤 계기로 출현하게 된 일단의 개체 떼가, 이전부터 있어온 것들에 대해 무한한 경외심을 가졌고, 헤아릴 길 없는 그 거대함을 ‘자연(Nature, Mother Nature, 自然)', '스스로가 스스로에 의해 그러한 것들‘이란 신비롭고 신성한 이름으로 묶어서 부르기 시작하였던 것 같다.


2.

인간의 인지능력으로 그려낼 수 있는 세상의 시작을 ‘인간의 태초’로 본다면 ‘태초의 혼돈(Chaos)’은, 후일 이름 붙이기에 아주 능숙해질 선택된 한 개체의 출현을 예비하기 위한 재료의 준비 시기인 ‘원시 태초’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얘기되고 있는 태초란 것은 바로 이 원시 태초를 일컫는 것이다.


인간의 태초를 준비하기 위해 걸린 시간을 숫자로는 가늠하기 어렵다. 그것은 숫자로 나타낼 수 있는 시간은 ‘인간의 시간’ 일뿐이고, 원시 태초 이후 인간의 태초까지의 시간은 ‘자연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걸린 자연의 시간을 인간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수억 년이거나 수 십 억년일 수도 있지만, 창조주의 시간으로는 단 며칠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언젠가부터, 신에 의해서 건 진화의 과정에 따른 것이 건, 원시 태초에서 시작된 재료의 혼돈이 정리되어 가는 곳 어딘가에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는 아주 특별한 개체들이 떼를 지어 살아가기 시작하였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사피엔스적인 특성은 그들과 다른 일반 개체들을 구분하는 분명하고도 뚜렷한 식별자가 되었다.


● Homo Sapiens Sapiens(H. S. Sapiens)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우리라는 인간(Human), 즉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 S. Sapiens)는 인류학(anthropology)과 고생물학(paleontology)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아종(subspecies)으로, 호모 사피엔스 종 중에서 현재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인류(현생 인류)를 일컫는 용어이다.

전통적으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는 용어는 고생물학자와 인류학자에 의해 호모 사피엔스의 보다 고귀한 구성원들로부터 현대 인류를 분리하기 위해 사용되어 왔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지금으로부터 약 16만 년에서 9만 년 전에, 인류가 중동과 유럽, 그리고 나중에 아시아, 호주와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아프리카에서 진화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어쨌든 본질론으로 보자면, 언젠가부터 인간이라 부르고 있는 그들 무리의 본질은,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에 있고, 그들 중 후일 철학자라 불리는 더욱 선택된 자들이 디딘 ‘현명하게 제대로 생각하기’의 걸음은 ‘인간답게 생각하기’라는 길고도 먼 여정에 선명한 족적을 새겨 넣었다.


그렇게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에겐 ‘인간의 태초’에서 부터 철학이 함께 했고, 재료의 혼돈에서부터 예비되었던 그들의 출현은 케이아스를 ‘생각하기의 종점이자 발상지’로 인지하게 되었다.

결국 생각하기의 궁극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 케이아스이기에 인간의 주관은 불안정하기 마련이고 늘 내적인 혼란스러움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현생 인류에게 있어 혼돈과 혼란스러움은 자연스러운, 그래서 어쩔 수 없는 본능적인 현상일 뿐인 것이다.


인간은 운명적으로 케이아스의 짙은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불안정함 속에서 불완전하게 이 땅에 나타났으니 부족함과 불안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려는 고집을 내려놓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인 것이다. 이것은, 인간에게 내재된, 인간의 태초 이전에 있었다는 원시 태초의 혼돈에 그 맥이 닿아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keyword
이전 18화인간에게 부여된 태초의 능력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