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그렇지만 미국 또한 그냥 커피와 아메리카노 커피를 구분하여 판매하는 커피가게들이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Coffee, 즉 그냥 커피는 미리 그라인딩 해둔 커피 원두에 뜨거운 물을 부어 여과필터를 통해 한꺼번에 많은 양을 걸러 내린 후 일정 온도가 유지되는 보온용기에 저장해두었다가 한 잔씩 판매하는 커피를 말한다.
또한 카페 아메리카노라고도 불리는 아메리카노 커피는 주문이 들어온 시점에 바로 추출한 에스프레소 커피를 뜨거운 물로 희석시켜 판매하는 커피이다. 따라서 아메리카노 커피는 판매시점에 행위가 이루어지는 PoS(Point on Sales) 방식 또는 CoD(Coffee on Demand)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그냥 커피와 아메리카노 커피는 내리는 방식과 음료로 거듭나는 시점에서 크게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어원에서 보자면 카페 아메리카노 또는 아메리카노 커피가 "미국 사람처럼 마시는 커피"를 말하는 것이니 에스프레소 커피를 희석시키는 이 방식의 커피가 미국인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커피일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뉴욕에서 살다 보면 아메리카노 커피를 가장 미국적인 커피라는 말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가장 미국적인 서민문화라 할 수 있는 델리나 다이너에서는 그냥 커피만을 취급하고 있을 뿐이다. 그곳에서는 한꺼번에 미리 내려 저장해둔 뜨겁고 진하고 쓰고 검은 커피를 종이컵이나 낡은 잔에 부어주는 것을 커피라고 부르고 있다.
델리나 다이너의 커피 맛은 지역이나 가게 주인의 손맛에 따라 다르지만 마치 예전 대학가 커피가게에서 마시던 쌉쌀한 쓴 맛이 느껴진다. 사실 그 커피에서 느껴지는 어떤 아련함에는 '그것이 가장 서민적'이라는 그 시절의 돌아올 수 없는 감상이 깊이 관여되어 있는 것 같다.
어쨌든 미국인처럼 마시는 커피를 아메리카노 커피라고 한다면 델리나 다이너에서 마실 수 있는 검고 쓴 커피가 진정한 아메리카노 커피라고 할 수 있게 된다. 에스프레소 커피에 뜨거운 물을 부어 희석시키는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 커피를 미국인 누구나가 즐기는 미국식 커피라고 여기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
이런저런 사유로 유럽에 가게 된 미국인들이 에스프레소 커피의 너무 진한 맛이 주는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또한 에스프레소 커피의 양이 너무 적기 때문에 뜨거운 물을 가득 채워 델리나 다이너에서 마시던 커피의 맛과 양을 비슷하게 만든 것이 카페 아메리카노 즉, 아메리카노 커피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스타벅스라는 곳이 아니라면 커피를 메인 아이템으로 취급하는 커피전문점을 찾아보기 힘든 곳이 뉴욕이다. 그 이유에는 비싼 임대료와 인건비, 판매단가 대비 낮은 고객 회전율이 한몫을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빵집이나 델리, 던킨도너츠나 맥도널드와 같이 가벼운 먹을거리를 판매하는 뉴욕의 가게라면 커피는 반드시 취급하는 기본 아이템이다. 이런 곳에서 취급하는 커피는 그저 편하고 손쉬운 음료일 뿐이라서 맛이나 향, 로스팅된 정도나 느낌을 따지는 것은 그저 사치스러운 기호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여러 해 뉴욕의 거리를 돌아다녀보니 미국식 커피에 담긴 미국인들의 커피 문화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것 같다.
지금껏 뉴욕 거리의 델리 커피에서부터 카뮈와 샤르트르가 까닥이던 파리 소르본의 바자르 커피와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의 카페 플로리안 커피까지 특별히 맛 가림 없이 커피를 즐겨오고 있다. 그러고 보니 누군가에겐 기호음료인 커피가 나와 같은 이에겐 본능이라 해도 좋겠다.
생각해보면 한국 시골 장날 좌판에서 100원 동전 몇 닢에 받아 쥔 커피와 남대문시장 리어카의 커피, 시나몬 막대기 담긴 베트남 커피와 향내며 맛 독특한 루왁커피, 동남아의 화이트 커피와 작은 냄비에 커피 원두가루를 넣어 끓여 낸 걸쭉한 커피, 뜨거운 커피에 버터 덩어리를 녹인 동구권의 커피, 삼십 촉 백열등 아래에서 손 때 묻은 알코올 사이폰에서 끓어오르던 젊은 날의 커피까지 지금까지 마셔왔던 모든 커피는 제각각의 맛과 향, 분위기와 느낌으로 자신만의 지문을 여기저기 구석구석마다 남겨두고 있다.
뉴욕을 살아가면서도 별반 달라진 커피 입맛은 아니지만 스타벅스에서 손에 쥔 카페 아메리카노 스몰 사이즈 한 잔조차 다 비우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아직 미국식 아메리카노 커피에 길들여지지 못한 것 같다. 그런데도 매번 다시 스타벅스를 찾고 있는 것은 뉴욕에서의 커피는, 맛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버릇으로 마시는 음료수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그냥 커피이건 아메리카노 커피이건 미국식 커피란 굵은 몸집에 청바지와 면 티셔츠 걸친 아메리칸에게 어울리는 쓴맛의 음료이다. 가장 매력 없는 것이 가장 무난한 것인 걸 보면 뉴욕에서나 서울에서나 인간이 살아가는 것에는 큰 다름없나 보다.
by Dr. Franz KO(고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