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밤, 불빛을 찾아 잠자리에 든다
머뭇하는 사이 해는 저물고
어둠은 삶의 흔적들을
흑백의 실루엣 속에 가둔다
검은 밤은 모든 것을 가라앉힌다
그 어둠을 아는 것이
삶을 알아가는 첫걸음이다
달빛마저 가려진
짙은 어둠 속에서
여정을 스스로 벗어난다
쉬어갈 때라는 것을 알기에
발꿈치를 치켜세워
먼 불빛이나마 찾으려 한다
이윽고 불빛 하나
가물거리는 그곳을 찾는다
길이 없어 보이는 길이지만
끝이 정해진 여정이라
발걸음 느긋해진다
돌아보면 늘 긴 여정에
빠른 걸음걸이에 익숙해져 있었다
비로소 불빛 아래에 몸을 누인다
천장 없는 헛간에서 맞이하는
평온한 잠자리가 이물스럽다
누군가 검은 물감을 풀어놓고 있는 듯
어둠은 점점 깊어가고
먼 하늘 한 구석에서
별 하나 말갛게 나타나더니
달빛에 걸려 희미해진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한낱 떠돌이 나그네의
길 걷기 같은 것일 수 있다
곤했던 여정을 돌이켜보다가
별빛과 달빛을 이불 삼아
꿈 없는 깊은 잠에 든다
밤의 빛들은
서로 자신들의 삶에 대해 얘기한다
누군가 불쑥 끼어든다
살아왔다는 것만으로는
삶을 말하기에는 충분치 않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