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트위스트: 해외취업이야기
처음 유학을 떠난 도시는 겨울이면 영하 30도로 떨어지는 겨울왕국이었다. 중국 장춘은 길림성의 성도로써 9월이면 내리기 시작한 눈이 5월까지도 계속된다. 한국을 떠나 그곳에서 제2의 삶을 터전을 마련했다.
학점을 따기 위해 한국에서 이수했던 중국어 수업은 정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난 귀머거리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나가는 행인들의 눈빛마저 낯설고 무섭게 느껴졌다. 모든 게 어렵게만 느껴졌던 중국에서 내가 믿을 수 있는 곳은 함께 유학 온 동기들이 전부였다.
장춘에 도착한 첫날, 동기들과 함께 기숙사 근처 위치한 대형마트로 장을 보러 갔다. 처음 보는 마트 풍경에 온 신경을 집중하다 주변을 돌아보니 동기들이 사라졌다.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이러다 장기매매를 당하는 것은 아닐지 공포심에 사로잡힌 그 순간, 마트의 방송에서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Quan Zhao Xian (츄엔짜오씨엔)”
사건이 있었던 이후로, 나는 생존 본능이 발휘되어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오전이면 학교 수업에 매진했고 오후에는 현지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해 지역 시장에 매일 같이 출근했다. 상인들과 짧은 대화를 통해서 새롭게 배우는 단어와 문장들은 모두 받아 적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더듬거리던 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자연스러워졌고 언어뿐만 아니라 문화에 대한 이해도 조금씩 깊어져갔다.
그렇게 적응하는데 다 써버린 한 학기가 지나고 겨울 방학이 왔다. 태어나 한 번 봤던 눈을 장춘에서 원 없이 구경했다. 외식을 하러 나갈 때면 아무리 단단히 채비를 해도 눈썹이 얼어 서리가 끼는 경험도 해보고, 몇 번의 슬라이딩 끝에 빙판길을 걷는 법도 체득했다.
첫 겨울방학을 맞이하고 나와 동기들은 중국 여행을 계획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갖지 못할 인생의 기회라 생각되었다.
중국에서 경제가 가장 발달한 도시 ‘상해’를 시작으로 주변의 장쑤 성의 도시 (소주, 항주, 남경)을 거쳐, 윈난 성(곤명, 대리, 리강)을 찍고 산동성(친구 집)을 방문했다 다시 상해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총 45일이 소요됐고 그 기간 난 인생에서 다시는 갖지 못할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
상해에선 화려한 도시의 야경과 다양한 국제적 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다. 잠시 머물었던 유스호스텔에서 이탈리아 친구를 만나 펜팔이 되었다. 물의 도시 소주와 항주에서는 조금 더 고즈넉한 풍경을 마주했다.
소수민족이 많은 윈난 성에선 완전히 다른 경험을 했다. 바다만큼 큰 청해호에서 처음 만난 한국인 관광객들과 야영 캠핑을 했다. 리쟝의 옥룡설산에서 중국의 유명한 장이머우 감독의 공연을 보며 자연의 웅장함을 느꼈다.
산동성의 친구 집에선 가족의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중국의 춘절(한국의 설날과 동일함)을 기념하여 직접 빚어주신 만두를 먹으며 춘절 프로그램을 보기도 했으며, 산동성 방언을 들으며 중국어에 대한 식견을 높일 수 있었다.
생전 부모님의 품을 떠나 본 적 없던 내가 언어도 문화도 다른 그곳에서 혼자 여행을 한다는 것은 매우 도전적인 사건이었다. 이 여행을 통해 나는 단순히 관광지를 돌아보는 것을 넘어, 각 지역의 독특한 문화와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여행 중 마주한 예기치 못한 상황 속에서 중국어를 사용하며 실력도 더욱 향상됐다.
45일간의 중국 횡단 여행은 단순한 여행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이 경험을 통해 난 한층 더 성장하고 넓은 시야를 갖게 될 수 있었다.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만난 사건들이 전화위복 되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인연으로 이어졌고 그 순간들은 내게 인생을 살아가는 유연함을 조금은 가르쳐 주었다.
Experience is not what happens to a man; it’s what a man does with what happens to him.
경험이란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당신에게 일어난 것을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것이다.
-Aldous Huxley(올더스 헉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