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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이 Jun 10. 2024

사랑이란 단어를 싫어하는

나의 그녀

그녀는 "사랑해"란 말을 싫어했다. 내가 이 말을 꺼내면 급속도로 어두워졌고 말수가 적어졌다. 그녀가 생각이 많아지거나 우울해지면 말이 없어진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처음 "사랑해"란 말을 꺼냈을 때였다. 

나의 "사랑해"는 관습적이고 관성적인 사랑해였다. 으레 모든 연애가 그래왔다. 서로가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연인'이란 두 글자로 관계가 정립됐을 땐 "사랑해"란 말이 나오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그러했다. 나는 그 세 글자로 불완전한 두 사람의 초반 감정이 더욱 공고해지고 다듬어지리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항상 먼저 그 말을 뱉어왔고 선뜻 말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그녀는 내게 그 세 글자가 지닌 무게가 자신에겐 너무나 무겁다고 했다. 사랑이란 가치가 너무나 숭고하고 지고하여 선뜻 내뱉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 말을 듣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대답했다. 그저 받아들이면 된다고. 어차피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기에 연인이 되었으니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된다고. 하지만, 그녀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고집이 셌고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가족에게조차 "사랑해"란 말을 들어보지 못 한 그녀는 어느새 막연한 환상과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어느 누군가에게 그 말을 하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도 누군가 자신에게 그 말을 하면 혹여나 잃게 될 감정과 관계에 대해 미리 두려워하게 됐다. 높이 올라가면 추락의 고통이 크고, 크게 기대할수록 실망의 깊듯이 사랑이란 가치가 그녀 안에서 높아지며 불가침의 영역처럼 변해버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녀는 누구를 만나더라도 사랑해란 말을 금했다. 자신의 환상을 해치지 않길 바랐고 상대를 의심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토록 자신에게 숭고한 말을 선뜻 내뱉는 상대는 그녀에게 신뢰를 잃었다. 그녀는 평생토록 떼기도 힘든 세 글자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건 그녀의 사랑을 모욕하는 짓이었고 그녀의 진심을 한없이 가볍게 만드는 짓이었다. 

누구에게도 진정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기에 만들어진 그녀의 성은 공고했으며 끝없이 높아졌다. 그녀는 누군가 자신의 성을 깨부수어주길, 혹은 누군가 넘어주길 바랐지만 반대로 누군가 성을 오르면 끊임없이 시험했다. 또다시 상처받지 않기 위해. 또다시 실망하지 않기 위한 그녀만의 방어책이었다.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선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어느 이의 말이 생각났다.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 자신이 사랑받아도 되는 존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모든 사랑을 의심했다. 그녀의 성은 안에서부터 비어있었다. 아무리 누가 소리쳐도 메아리만 울려대는 텅 빈 성. 그게 그녀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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