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문장들-
‘우리 모두 처음이니까’-‘나의 남아있는 날들을 어떤 여행자로 살아갈 것인가?’
내가 좋아하는 일 중에 하나가 바로 만두를 만드는 것이다. 만두를 만드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선 넓고 둥근 볼에 신김치를 짜서 돼지고기 갈은 것과 소고기 갈은 것을 조금 섞고 삶은 당면과 숙주, 두부 으깬 것을 넣고 섞는다. 그것에 참기름과 소금 후추 등을 넣어서 만두 소를 만든다. 예전에는 밀가루로 피를 만들기도 했으나, 이제는 주로 시중에서 파는 피를 사용한다. 만두의 모양을 만드는 일에는 제법 자신이 있다. 나는 주로 반달 주름 모양과 복주머니 모양을 선호해서 그렇게 만든다. 그런데 만들다 보면 안의 내용물이 유독 잘 흘러나오는 경우가 있다. 영락없이 김치를 덜 짠 경우이다. 아무리 좋은 재료로 정성껏 만들어도 어떻게 보면 사소한 실수로 만두의 맛과 모양에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것은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관계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잘하려고 하지만 의도치 않은 실수로 인해서 조금씩 균열이 생기게 된다.
김을호 작가가 쓰고 신진호 작가가 그린 ‘우리 모두 처음이니까’라는 그림책을 읽었다. 아마도 대학이나 혹은 다른 길로 집을 떠나는 청소년기(청년기)의 아들에게 쓰는 편지글의 그림책이다. 처음 아이가 태어났을 때의 기쁨과 사랑, 사춘기, 오해와 그로 인한 관계의 어려움 그리고 극복해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 담긴 편지이다. 너무나도 일상과 가까운 글이기에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았다.
너무 사랑스럽고 예쁜 어린 아들에 대한 표현에 미소가 지어지면서도 슬쩍 마음이 아파온다.
널 보노라면 즐거워 시간 가는 줄 몰랐지만
엄마가 늦게까지 회사에서 일할 때도 있었지.
그럴 때 네가 혼자 놀고 밥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에 엄마는 마음이 아팠단다.
하지만 너는 오히려 웃으며
회사에서 지쳐 돌아온 엄마를 걱정해주었지.
너로 인해 엄마는 다시 일할 힘을 얻었단다.
-'우리 모두 처음이니까' 중-
이 글 이후로 아들의 폭풍같은 사춘기에 대해서 나온다. 그리고 서로 간의 오해와 사과 이해가 뒤따른다. 이후 엄마가 생각하는 세상의 이치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나 늘 고민하는 부분이어서 공감이 많이 간다.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잠시 여행하고 떠나는 것이지.
사실 인생의 가장 큰 진실은, 우리는 이 세상의 여행자라는 것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매 순간 순간을 더 열심히 의미 있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넌 어떤 여행자가 되고 싶니?
엄마는 네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네 마음이 진심으로 바라는 삶을 살기를 기도한단다.
아이러닉하게도 긴 시간을 통과해 온 지금의 나는, 인간의 삶이 그리 길지 않다는 사실에 슬픔을 느끼고 있다. 또한 사람과의 관계에서의 깨달음도 긴 시간이 지나야만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이 삶에서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삶이 있다는 것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렇게 원하고 사랑한 시간 들 만큼은 진정한 나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다른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겪은 후에 건강관리도 하지 못하고 지냈다. 이 여름을 보내면서 삶의 의지 같은 것이 다시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지내 보낸 의미 없는 날들이 너무 아쉽게만 느껴졌다.
오늘은 신선한 가을을 맞이하는 절기인 처서다. 아이는 오늘 여름방학을 마치고 개학을 했다. 이 가을부터 나의 삶을 다시 재정비하고 싶다. 우리는 모두 이 삶에 처음이지만 또한 마지막이기 때문에 말이다. 좋은 음식으로 조금 먹고, 운동하고, 잘 자고, 사랑하고, 읽고 쓰고, 늘 규칙적으로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사실, 박서보 화가의 그림과 같은 삶을 살고 싶은데, 너무 큰 욕심이라서 그냥 생각 정도로 끝내본다.) 그래서 다시 써 본다.
만두를 만들때 신김치를 짜는 강도에 따라서 모양과 맛이 달라지는 것처럼 우리 삶도 아주 작은 것으로 달라질 수 있다.
‘나의 남아있는 날들을 어떤 여행자로 살아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