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이야기
익숙하기 그지없던 본가에 돌아갔지만 이제는 모든 게 바뀌어야만 했다. 아직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으나 교수님께서는 검사상의 신기능 저하와 다량의 단백뇨 때문에 엄격한 식이조절을 강조하셨다. 다이어트를 위해 단 음식을 줄이거나 저녁 식사 이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정도의 단순한 식이조절이 아니었다. 하루에 나트륨은 2000mg, 단백질은 60g 이내로 제한하는 저염식, 저단백식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주어진 규칙, 규율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불안을 느꼈던 나로서 나트륨 2000mg, 단백질 60g은 한 발자국이라도 헛디디면 떨어지는 낭떠러지, 철조망으로 뒤덮인 성벽처럼 숨을 턱턱 막히게 만들었다.
사실 나트륨 2000mg이라는 수치를 처음 들었을 때 어느 정도의 염분이 허용되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1일 권장소비량이 2000mg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여태까지는 이는 이상적인 수치에 불과했고 건강과 생존을 위해 지켜야 하는 기준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 평소에 남들보다 짜게 먹고 있었는지, 싱겁게 먹고 있었는지 스스로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다. 어디선가 "한국인은 국물로 된 음식을 많이 먹어서 나트륨 섭취량이 많다"는 말을 들은 뒤로부터 국이나 찌개를 먹을 때는 국물은 먹지 않고 건더기만 골라먹는 습관이 생긴 반면, 치킨을 너무 좋아해서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시켜먹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집을 나와 기숙사, 자취생활을 하고 있었던 터라 외식과 배달음식이 너무 삶 깊숙이 침투해있어 조리 과정에서 소금이나 양념 등의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 크게 신경을 써본 적이 없었다.
병원에서 돌아온 날부터 지독한 습관 하나가 생겼는데, 바로 음식 포장지 뒷면의 영양성분을 읽는 것이다. 여태 아무런 고민 없이 먹었던 음식에 얼마나 많은 나트륨이 들어있는지 깨달아가는 과정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본과 시절 시험기간에 밤새우면서 야식으로 즐겨 먹었던 신라면 큰 컵에는 나트륨이 자그마치 1550mg가 들어 있었다. 야식으로 컵라면을 먹으면 그날 나머지 세 끼에서 먹을 수 있는 나트륨은 고작 450mg밖에 남지 않는 것이다. 출출하면 아무 생각 없이 우걱우걱 먹다가 봉지째 입에 털어 넣기도 했던 감자칩은 한 봉지에 적게는 400mg, 많게는 600mg이 넘는 나트륨이 들어있었다. 라면이나 감자칩은 원체 짠 음식이니까 그렇다 쳐도, 저녁 식사 없다고 생각해 잼과 버터를 듬뿍 발라먹었던 식빵도 100g당 나트륨 300-500mg이 함유되어 있었다.
성경에 '빛과 소금'이라는 말처럼 소금은 이미 오래전부터 내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던 것이다. 식빵이나 국수면처럼 그 자체로는 무미하다고 여겼던 음식조차 그렇게 많은 나트륨 분자가 도사리고 있다면, 짭짤한 맛으로 즐겨 먹었던 치킨, 피자, 햄버거, 마라탕에는 얼마나 소금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인가. 상상조차 하기도 싫었다.
남들에게는 우스울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두 쪽의 신장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막심했다. '안 그래도 힘들어하고 있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매일같이 소금 덩어리를 몸 안에 넣어서 더 망가뜨리고 있었구나.' '신장이 망가진 게 그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 내 탓일 수도 있겠구나.'
본과 때 배운 내용과는 전혀 별개로 내가 이 병을 자처했다는 자책감...그리고 이제부터라도 신장에 무리를 주지 않으려면 그 '빛과 소금'의 소금을 최대한 멀리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나뿐만 아니라 부모님도 영양성분, 저염식에 관해 공부하기 바빴다. 방 안에 혼자 들어와 있으면 거실에서 두 분끼리 "~가 콩팥에 좋다고 하네," "무슨 나트륨이 이렇게 많이 들어있어," "콩팥병 환자는 칼륨이랑 인도 조심해야 한다는데 그건 또 뭐냐?" 등 끊임없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 때문에 집안 전체에 말 그대로 나트륨과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리고 퇴원 후 첫 끼로 엄마가 준비한 저염, 저단백식을 먹기 위해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