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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대리 May 11. 2022

이제는, 마주할 시간이야!

도망쳐서 온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는 거야.

297일째 서른이 독립일기 


이십 대 초반, 나는 자립의 의지가 없었다. 


문제가 생기면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스스로의 답을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답을 구하곤 했다. 왜냐하면 이 방법은 답이라고 생각하는 방법에 더 접근하기 쉬웠거니와 혹시라도 실패하게 되었을 때 스스로 자책하지 않아도 되기에,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십 대 그리고 초반의 그 시절은 정신연령이 미성년자와 성인 그 간극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실수와 잘못을 하더라도 용서받기 쉬웠고, 타인에 의존하는 것이 나름 용납이 되는 나이였다. 특히 나는 부모님이라는 큰 언덕 밑에 있었기 때문에 폭풍우가 얼마나 무서운지 햇볕이 얼마나 뜨거운지 알지 못했고, 알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개인의 인생에 찾아온 난관들을 겪으면서 자신의 답을 찾지 않고 답변을 유예 하다보면 나중에는 더 큰 문제가 생긴다. 특히 사회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 현실의 문을 열기 시작하면서 많은 것들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 자유와 함께 세금, 공과금 납부 등 여러가지 책임을 가져야할 순간이라는 뜻이다. 경제력이 생겼다는 이유로 경제적인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하기엔, 우리는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필수적인 '집'이라는 공간을 사기엔 참으로 어려운 이 좁은 반도에서 살고 있다는 점이었다. 즉 아무리 돈을 번다한들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 생각보다 너무나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통은 대부분 자식들이 취직을 할 나이가 되면 보통 부모님이 퇴직을 하시는 나이와 맞물리게 된다. 나는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가장 숨이 막혔던 것이 이 시점부터였다. 돈을 벌기 시작했으나, 진정한 자립을 할 줄 모른다는 것. 30여년을 다니신 은행에서 쓸쓸히 퇴직하시는 아버지의 뒷모습과 아직 청춘이라며 재취업을 준비하시던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더 이상 나의 문제를 부모님에게 전가시킬 수 없는, 아니 그래서는 안되는 어른이었다.  


직장 때문에 갑작스럽게 시작된 독립이었지만, 도망치고 싶었던 심리로 인해서 집을 떠나 타지에 오게 되면서 시작한 독립이라 나는 이 모든 과정이 불안했고, 좌절했으며 또 다시 도망치고 싶었다. 아 역시, 도망쳐온 곳에 낙원이란 존재하지 않는구나. 떠나오게 되더라도 그 문제들은 내가 매듭을 짓고 왔어야했구나. 어짜피 그 문제들은 또다른 얼굴들로 나를 마주하게 될테니 말이다. 


낙원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갖기엔 마주한 현실을 이제는 알고 있기에, 딱딱한 고동껍질에 숨기엔 내 몸집이 너무 커버렸기 때문에 정신적인 독립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난 10여년이 소라게 같이 숨고 도망치기 바빴다면, 이제는 마주할 시간이 되었다. 

낙원이라는 곳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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