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의 어느 이야기
F는 소속된 조직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 언제쯤 이곳을 떠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떠날 기회만 보고 있다. 그리고 중간 중간 탈출의 기회가 온다. 그러나 기회는 잡힐 듯 말 듯 잡히지 않는다. 거기에서 오는 허무함과 좌절감, 희망고문이 반복된다. 그리고 소속감은 커녕 내적·외적 동기부여가 모두 상실한 이곳에서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는 고통은 계속된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고 있다. F의 정신상태는 위태롭다.
F는 어차피 나갈 사람이다. 이곳에서 비전, 미래,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F의 커리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힘들다.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F 처지가 더욱 힘들다. 혹자들은 얘기한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일을 하라고. 패기를 가지라고. F는 이럴 때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마음을 살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라는 것만 뼈저리게 느낀다.
F는 그들에게 단 한 가지만 묻는다.
“당신은 처음 국회에 들어온 이후 무급봉사와 입법보조원을 거쳐 정식 인턴이 되기까지 정확히 1년이 걸렸고, 이후 3년을 이 상태로 일해 보았습니까?”
그 처절하고 눈물 젖은 빵을 먹는 심정을 겪어보지 않는 자들이라면, 제발 이해해준답시고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는 어설픈 조언을 건네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차라리 아무말 하지 말고 조용히 10만 원 상품권을 달라. 그것이 나에겐 그나마 위로다. 라고 F는 생각한다.
F가 열심히 하지 않은 게 아니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4년 넘도록 인턴을 하면서 실수하고 부딪히고 여러 사수들로부터 첨삭과 충고를 받으며 바닥에서부터 업무를 익힌 사람이다.
그리고 F는 견뎠다. F는 국회에서 하는 일에 대한 비전과 목표의식도 뚜렷한 사람이다. F는 정치외교학과를 전공했다. F는 학생 때 입법과 정책입안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진로를 국회로 정했다. 그리고 국회에서 일을 하게 됐다. 국회로 처음 들어왔을 때 꿈이 이루어진 것만 같았다.
F가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왜 국회에 들어왔는가?
F는 많은 사람들이 목표의식 없이 국회에 어영부영 들어온 경우를 생각보다 많이 봤다. 그렇게 어영부영 들어온 사람들이 우연히 자리를 잡고 큰 우여곡절 없이 좋은 타이밍에 승진까지 한다. 그들은 이러한 행운을 마치 본인들의 실력인냥 착각하며 의기양양해한다. 그리고는 현실에 안주한 채 배때지만 불러간다.
F는 왜 이들의 처지보다 못한가. F가 도대체 어떤 큰 잘못을 했는가? 너무 불만이다. 구조적 불만이다.
누군가는 F의 성과와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객관적인 증빙이 부족한 것 아니냐 묻는다.
F는 생각한다. 난 이들보다 더 뛰어나다. 객관적인 자료로 입증이 가능하다. 5년 7개월 이상의 국회경력을 쌓으며 수 백장의 보도자료, 질의서, 축사, 논평, 인터뷰자료는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그러면 누군가는 또 이렇게 얘기한다. 국회는 단순한 성과와 수치만으로 일하는 곳이 아니라고. 정성과 감성이 필요하다거나 울림이 있어야 하는 둥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요구한다.
무언가 보이지 않는 울림이 필요하면 홍대로나 가보길 추천한다.
F는 생각한다. 당신은 나를 모른다. 당신이 나를 괴물로 만들고 있다. 궁지에 몰려 고양이를 문 쥐에게 너가 먼저 물었다라고 쥐를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