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직장인의 독서모임 생존기 EP 01.
2019년 9월, 어느 가을날이었다.
9시부터 6시까지 이어지는 평범한 직장인인 나의, 삶은 평탄하고, 무난하고 단조로웠다. 워라밸이 보장된 회사 덕분에 저녁 6시면 꼬박꼬박 퇴근할 수 있었다. 퇴근 후에는 달리기를 하거나, 책을 읽으며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평탄하고 단조롭고 무난한 일상은 특별히 불만은 없었는데 어쩐지 허전했다.
평화로운 일상이 좋았다. 하지만 뭔가 심심했다. 그러던 중 누군가 독서 모임을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권했다. 큰 기대 없이 ‘독서 모임’을 검색하다가 ‘트레바리’라는 이름의 플랫폼을 알게 되었다. 책을 읽고,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커뮤니티였다. 그런데 그 활동에 비용이 붙는다. 책을 읽는데 돈을 낸다고? 최소 25만 원에서 많게는 40만 원. 책을 읽는 일에 돈을 낸다는 건 낯선 개념이었다.
잠시 망설였다. 꼭 돈을 내면서까지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야 하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눈길이 가던 클럽이 ‘마감’되었다는 문구를 봤을 때,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정원이 16명이었는데 이미 다 찼다. 16명이 각자 25만 원을 내고 책을 읽는다고? 그 순간부터 자꾸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트레바리 플랫폼에 대한 호기심이 들었다.
소심하게 지켜보다가 처음부터 많은 회비를 지불하는 것은 부담스러워 북쉐어링 1회 이벤트를 참여했다. 일회성의 이벤트를 참여해 보고 모임의 분위기를 결정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회원도 참여 가능한 일회성 모임이라 분위기를 가볍게 체험해 보고 결정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인맥을 돌아보면 대부분의 관계는 학연, 지연, 혈연 안에서만 맺어져 있었다. 학교와 직장을 제외하면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본 적이 없었다. 그 흔한 대외활동도 별로 해본 적 없어서 낯선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 가는 건 언제나 조금 낯설고 어렵게 느껴졌다.
물론 나는 내성적인 사람은 아니다. 외향적인 편이지만, 이상하게도 늘 만나던 사람만 만나고, 새로운 네트워크에는 좀처럼 마음을 열지 못하는 편이었다. 흔한 동호회 하나 경험해 본 적 없을 만큼, 관계의 폭은 좁았다. 그래서인지 북쉐어링 이벤트에 가기로 한 날,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았다.
너무 가기가 싫었다. ㅠ_ㅠ
아 가지 말까…
하지만 가야만 했다. 왜냐면, 돈을 낸 것이 아까웠기 때문이다! 돈을 내니까 생각보다 가게 되더라는 것이 트레바리의 좋은 장치 중 하나였다.
용기를 내어 트레바리 북쉐어링 이벤트를 가기로 마음을 먹고, 어떤 책을 가져갈지 고민했다. 북쉐어링 이벤트라고 하니, 아끼지 않는 책을 내야 할까, 정말 좋아하는 책을 내야 할까 망설여졌다. 내가 아끼지 않는 책을 누군가 열심히 사랑해 주는 것도 좋겠지만, 아무래도 내가 좋아하는 책을 널리 알리는 편이 더 기분이 좋은 일이겠다 싶어 매일 침대 맡에서 조물조물 만지작 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라는 책을 가져갔다.
용기를 내어 트레바리 북쉐어링 이벤트를 가기로 마음을 먹고, 어떤 책을 가져갈지 고민했다. 북쉐어링 이벤트라고 하니, 아끼지 않는 책을 내야 할까, 정말 좋아하는 책을 내야 할까 망설여졌다. 내가 아끼지 않는 책을 누군가 열심히 사랑해 주는 것도 좋겠지만, 아무래도 내가 좋아하는 책을 널리 알리는 편이 더 기분이 좋은 일이겠다 싶어 매일 침대 맡에서 조물조물 만지작 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이라는 책을 가져갔다.
이 책을 왜 읽으면 좋은지 짤막한 편지도 적어 갔다.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은 사실 선뜻 추천은 하지 않는 책이다.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이름 없는 여성들에게 쓴 ‘여성과 픽션’에 대한 대학 강연록으로 ‘여자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결국 약간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책인데 어떠한 줄거리가 있는 책이 아니라 쉽게 재미를 못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고 이상한 전율(?)을 느꼈으며 그녀를 천재라고 생각했다. 아마 이러한 생각은 내가 작가 이상의 날개를 읽었을 때 동일한 감정을 느꼈는데 그 이야기는 나중에.. (그 이야기는 기회가 되면 나중에 적어야지, 천재 작가 대결 이상 vs 버지니아울프 콘텐츠를 다루고 싶다. ㅎㅎ) (그리고 나는 이 책을 결국 똑같은 것으로 다시 샀다. 이음문고 버전으로!) 그래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누군가가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다.
용기를 내어 트레바리 북쉐어링 이벤트를 가기로 마음을 먹고, 어떤 책을 가져갈지 고민했다. 북쉐어링 이벤트라고 하니, 아끼지 않는 책을 내야 할까, 정말 좋아하는 책을 내야 할까 망설여졌다. 내가 아끼지 않는 책을 누군가 열심히 사랑해 주는 것도 좋겠지만, 아무래도 내가 좋아하는 책을 널리 알리는 편이 더 기분이 좋은 일이겠다 싶어 매일 침대 맡에서 조물조물 만지작 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라는 책을 가져갔다.
처음엔 너무 어색했다.
한 사람씩 책을 소개하며, 왜 이 책을 가져왔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어색했던 분위기가 조금씩 풀렸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나와 같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금세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과의 이야기가 이렇게 즐거울줄 몰랐다.
특히 한 분은 트레바리에서 ‘파트너‘(모임을 이끄는 리더)를 하고 계셔서 그런지 굉장히 적극적이고 친절하게 분위기를 이끌어 주셨는데, 북쉐어링 이벤트가 끝난 뒤 “맥주 한 잔 하러 갈래요?”라는 제안을 해 주셨다. 같은 테이블에 있던 6~7명 모두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흔쾌히 좋다고 했고, 그렇게 함께한 시간은 아직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벤트에 참여했던 대부분은 이미 트레바리 독서 모임에 속해 있었고, 나와 또 한 분만 아직 모임을 시작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랬더니 파트너 한 분이 “그럼 모의 트레바리를 한 번 경험해보면 어때요?“라며 자연스럽게 다음 만남을 제안해 주었다.
모의 트레바리를 해보자는 제안은 생각보다 재미있게 느껴졌고, 나는 망설임 없이 수긍했다. 그날 함께한 사람들과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을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첫 책이 정해졌다. 우리가 처음 함께 읽은 책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였다. 트레바리 독서 모임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이 하나 있다며,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바로, 독후감을 써야만 모임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해진 일정 내에 독후감을 제출하지 않으면, 아무리 참석하고 싶어도 모임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독후감이라..
어릴 땐 자주 썼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는 책을 읽고 좋은 문장을 옮겨 적는 정도였지, ‘독후감’이라 부를 만한 글을 써본 기억은 거의 없었다.
대학생 때 한두 번 의식적으로 써보려 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막상 쓰려고 하면 막막했고, 감상을 정리하는 일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곤 했다.
트레바리 독서 모임 참여 절차는 다음과 같이 이뤄진다.
1) 책을 선정한다.
2) 선정한 책을 기한 내 읽는다.
3) 기한 내 독후감을 쓴다.
4) 모임에 참석한다.
트레바리 모임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세 번째였다. 바로, 독후감을 써야만 모임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이 모임은 단순히 유료라고 해서 회비만 내면 끝이 아니라, 독후감을 제출해야만 참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허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당시에는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졌지만, 지금까지 트레바리 모임에서 6년간 멤버로, 그리고 파트너로 함께한 경험을 돌이켜보면 이 허들은 참 잘 만든 장치라고 생각된다.
1. 기한 내에 독후감을 제출해야 하므로, 책을 읽은 척만 하고 참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덕분에 모임 시간에는 책을 깊이 읽은 사람들끼리 밀도 있는 토론이 가능하다.
2. 독후감을 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내 생각을 정리하게 된다. 책을 통해 들여다본 주제에 대해 내 삶을 비춰보게 되고, 생각을 언어로 정리하면서 나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3. 그리고 누군가의 독후감을 읽는 일은, 그 사람의 마음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같은 책을 읽었는데 전혀 다른 포인트를 발견하기도 하고, 나와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을 마주할 수 있다. 그 순간 독후감은 다시 나만의 책이 된다. 독후감은 어쩌면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일이다.
독후감을 쓰면 좋은 점은 무엇이 있을까.
독후감은 나의 시간을 붙잡고, 그때의 나를 반영한다. 그리고 더불어 나의 세계를 넓혀준다.
지나간 독후감을 보면 그때 당시 내가 머물던 고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저 책을 통해 지나가는 생각의 파편을 놓칠 수 있지만 한 번쯤 독후감으로 정리를 해두면 생각의 파편이 텍스트로 남아 나의 생각을 보존하고 단단히 눌러둘 수 있다.
독후감은 나를 위한 기록 중에서도 가장 삶 가까이에 닿아 있는 기록이다. 특히 어떤 매개체 없이 우리는 어떤 세계로 영원히 건너가지 못하는데, 그 세계는 책을 통해 확장이 가능해진다.
우리가 하는 생각은 야속하게도 늘 익숙함의 세계, 늘 건너던 곳만 건너게 되는데 책은 내가 도달하지 못했던 세계로 건너갈 기회를 던져준다.
그렇게 책을 통해 다른 세계로 건너가 문을 열고 나면 독후감은 그 낯선 세계 안에서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어떤 생각을 품었는지를 꽉 붙잡아 두는 역할을 한다. 읽는 동안 스쳐 지나간 감정과 질문들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선명해지고, 그 기록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나의 단단한 세계가 된다.
독후감을 쓰는 가장 좋은 이유는 창작의 고통과 기쁨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소비로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스스로 창작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출근하면서 쇼츠를 보고 무언가를 구매하고 소비하는데, 시간은 많이 내어주면서도,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 생산을 하는 순간은 매우 짧다. 나를 보기만 해도 거의 없는 편이다. (셀카를 찍는 정도?)
그나마 일기를 쓰는 정도인데, 대부분 시간의 나열이나 목록의 나열이기 때문에 어떤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심도 깊게 생각하거나, 나와 연관된 생각을 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하지만 책을 통해 독후감을 쓰는 것은 ‘나를 위한 ‘ 생산이 가능하다.
돈, 사랑, 일 , 건강, 우정까지 우리가 매일 일상에서 만나는 주제를 책을 통해 한 번 더 깊게 생각하고 독후감을 통해 나의 생각을 창작하게 한다. 이렇게 일련의 독후감을 통한 창작의 기쁨과 고통은 실로 유의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시작한 독후감을 쓰고 책으로 밀도 깊은 대화를 나누는 일은 매우 즐거웠다.
다정하고 친절한 트레바리 인연으로 우연히, 나는 그 후로 트레바리 모임을 정식으로 등록하고 가입하게 되었다.
그 다음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