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직장인의 독서모임 생존기 EP 04.
첫 모임은 생각보다 빠르게 마감됐다. 신규 오픈이었고, 일주일도 안 돼 마감. 두 번째 시즌은 12시간 만에, 하루도 채 지나기 전에 끝났다.
그리고 시즌이 진행될 때마다 마감되는 속도는 점차 줄었다. 몇 시간, 3분, 어떤 때는 1분 안에 마감되는 그야말로 독서모임을 티켓팅해야 가입이 가능한 트레바리 인기 독서 클럽이 되었다.(지금은 나는 모임을 운영하지 않고 다른 파트너 분이 운영을 해주신다.)
트레바리에는 300-400개의 모임이 운영된다고 한다. 모임이 워낙 많기 때문에 멤버 모객이 되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중에서도 빠른 시간 안에 마감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의 니즈가 정확하게 반영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트레바리는 일정 회비를 내고 독후감을 작성해야만 모임에 참여할 수 있다는, 꽤 큰 허들이 있다.
여기에 우리 클럽은 책을 읽고 달리기까지 해야 하니 강제성과 규칙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과연 이 클럽이 잘 될지 처음기획했을 당시 의문이었다. 하지만 높은 허들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독서와 러닝이 결합된 이 조합을 오히려 좋아해 주었다. 명확하게 기준을 제시하니 커뮤니티는 더욱 생명력을 지닐 수 있었다. 오히려 규칙과 강제성이 모임의 매력과 오리지널리티를 더해줘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책과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심플하고 선명한 기준이 [무경계-러닝] 클럽을 더욱 단단하고 또렷하게 만들었다. 결국, 분명한 기준과 뚜렷한 취향이 있는, 특정한 누군가를 향한 커뮤니티는 잘 될 것이다라는 가설은 대성공이었다.
시즌을 열 때마다 빠른 마감은 물론, 멤버 연장률 80%, 첫 모임 이후 환불·이탈률 0% 등 좋은 성과를 기록했고 [ 무경계-러닝] 클럽은 트레바리 안에서도 단단하게 인기 있는 핫한 클럽으로 안착되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모임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매뉴얼의 기본을 지켰다는 점이다. 기본을 지켰다는 것은 곧 출석을 의미한다. 트레바리 독서모임 파트너의 매뉴얼은 정말 잘 되어 있다. 월 1회 정규 모임, 월 1회 번개를 파트너가 리딩하면 되는데, 이 두 번을 리드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멤버들의 참석률이 중요하다. 멤버들의 정규 모임 참석률과 번개 참석률이 모두 좋으면 대부분의 모임은 잘 된다. 트레바리에서 멤버로도 활동해 봤지만, 번개를 하지 않는 파트너가 꽤 많은 편이다. 하지만 번개는 생각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는 트레바리에서 [무경계-러닝] 클럽을 파트너로 5년 동안 운영하는 동안, 중간에 다리를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하필 그날이 트레바리 러닝 번개가 있는 날이었다. 깁스를 한 채로 택시를 타고 모임에 나갔고, 멤버들의 도움으로 달리기 리딩을 부탁했다. 또 5년여 동안 결혼식 등 빠질 이유가 많았지만, 한 번도 모임을 빠지지 않았고 대타 파트너를 세운 적도 없었다. (*지금은 개인 사정으로 모임을 운영하지 않는다. 다른 파트너분께서 대신해주고 계신다.)
트레바리 독서 모임을 운영하면서 개인적으로 특수대학원도 병행했는데, 특수대학원 입학 면접시험이 있던 날에도 마찬가지였다. 모임에 참여할 수 있도록 면접 시간을 이전 시간대로 조정했다.
내가 남들보다 열심히 지킨 것이 있다면, 1) 함께 책을 읽고, 2) 번개를 꾸준히 진행하려고 노력했다. 번개는 빠진 적도 있었지만 정규 독서 모임 운영만큼은 4년여 동안 개인 사정이 있었음에도 100% 출석을 했다. 당연히 100% 출석해야 하는 것 아냐?라고 생각할 순 있지만 생각보다 본업이 있는 상태에서 한 달에 1번 정규모임을 진행하고, 번개를 진행하는 것은 품이 많이 드는 편이다.
독서 모임을 운영하는 파트너가 어떤 일이 있어도 성실히 나온다는 것은 멤버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물론 파트너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멤버들이 얼마나 따라와 주느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뒤에서 설명할 예정), 기본을 지키고 성실함과 책임감을 보여주는 것은 모임 운영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약속을 지키는 것, 개근의 성실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것이 모임의 가장 본질이기 때문이다. 본질에 집중하는 모임은 분명 잘 된다. 한 달에 한 번 책을 읽고 달리기를 하는 기본, 그 본질에만 집중했을 뿐인데 모임은 저절로 잘 굴러갔다. 모임의 비법은, 성실함이 곧 전략이었다.
나는 성실함의 힘을 믿는다. 특히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성실함으로 똘똘 뭉친 이들이 많다. 그래서 모임을 운영하는 파트너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꿋꿋하게 운영을 이어가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믿고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성실함은 내가 만든 세계다.
매일 같은 것을 꾸준히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매일 글을 쓴다고 했을 때, 그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하지 않아야 하고, 무엇을 덜어내야 한다.
꾸준히 하는 것을 무엇으로 채울지는 나의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기에 성실함은 잘 만들어진 나의 세계인 것이다.
아침에 달리기를 좋은 컨디션으로 하기 위해서는, 전날 밤에는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한다. 저녁에 달리기를 하기 위해서는 저녁 약속을 잡지 않아야 하며, 누워서 넷플릭스를 보는 대신 누군가의 문장을 읽기 위해 책을 펼치는 선택을 하는 것 이 모든 꾸준함은 나의 선택으로 이뤄진다. 말하자면, 나의 세계를 스스로 채워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나는 성실함, 기본을 반드시 지키고 싶었다. 다리가 부러졌던 그날에도 달리기 모임에 나가 멤버들과 함께했고, 나 자신의 컨디션 보다 멤버들과의 약속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 단 한 번도 독서 모임을 결석한 적이 없었다.
대타 파트너를 쓸 수 있었지만 한 번도 모임의 공백을 다른 사람으로 메운 적도 없었다. 누군가가 나의 자리를 대신한 적이 없다.
4년 동안 매주 주말을 공백 없이 채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나는 나의 세계만큼이나 다른 사람의 세계도 소중하다고 생각했기에 꿋꿋이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책 읽기와 달리기를 꾸준히 하며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는 누군가를 향한 커뮤니티의 시간 속에서 흠뻑 기쁨을 마주했고, 그 시간에 온 마음을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