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족해지다! 책과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평범한 직장인의 독서모임 생존기 Ep 03.

by 키키의 기분타운


Chapter 1. 조금 더 뾰족해질 수는 없을까?


“혹시 영화 보는 거 좋아하세요?”

“아니요. -_-”

“그럼 여행 가는 건요?”

“가끔 가요.”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은요?”

“대부분 다 잘 먹어요.”


나는 뾰족한 취향이 없다. 누군가가 제안하지 않으면, 스스로 영화를 보러 가거나, 여행을 떠나거나, 맛집을 찾아다니는 일은 거의 없다. 내가 그런 일을 한다면, 아마도 그건 ‘함께하는 누군가’가 있어서일 것이다. 한 때 열심히 평양냉면 맛집을 순회 다니기도, 멋진 카페를 순회 다니기도 했지만, 나의 가장 큰 단점은 꾸준하지 않다는 점이다.

혼자일 때 쉬는 날이 생기면 책을 읽거나 멍하니 시간을 보내거나 글을 쓴다. 읽고 쓰는 것은 내가 가장 편안하게, 오래 할 수 있는 영역 중 하나다. 그렇다고 남들보다 훨씬 많이 읽거나, 깊게 읽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 나는 뾰족한 취향이 없고 뾰족하게 잘하는 것도 없다. 재테크에 능하거나, 무언가를 수집하거나, 영화를 깊게 파고드는 취향도 없다.


하지만 유일하게 꾸준히, 그리고 자신 있게 하는 일이 하나 있다면, 책에 대해 실컷 수다 떠는 것이다. 이 일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누구보다 책의 장벽을 허물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책 이야기를 하면 나는 볼이 약간쯤 상기되고, 눈동자가 커지며 마음이 간질간질하다. 그리고 책 이야기를 꼭 무겁게 하지 않아도, 적절한 해학과 유머를 곁들이며 하는 일에 자신 있다.


책의 세계로 문을 열어 들어가면, 어떤 문장에 대해 그 문장이 왜 좋은지 한참을 이야기할 수 있고, 그 감정을 그대로 누군가에게 건네줄 수 있다. 책에 대한 장벽을 허물고 수다를 떠는일,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며, 자신 있는 일이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책을 조금 더 가깝게 느끼게 도와줄 수 있는 일을 좋아한다.


그런데 트레바리 독서모임에 나와보니 대부분 모든 사람들이 책에 대한 수다를 나누는 일을 대부분 잘하셨다. 독서 모임을 운영하는 트레바리 파트너라면 누구나 가진 공통 장점이었다. 그렇다면, 독서모임을 운영하는 트레바리 파트너들 사이에서 나는 무엇으로 차별화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들었다.


‘나의 탁월함은 다정함’ 이라기에는 추상적이었다. 무언가 직관적이고 뾰족한 게 필요했다.


조금 더 뾰족해질 수는 없을까?


책에 대한 수다를 잘 떠는 사람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 안에서도 한 번 더 걸러진, 나만의 ‘뾰족한 영역’은 무엇일지 고민하게 된다.


내가 책 말고 두 번째로 좋아하는 게 있다면 뭘까? 그렇게 ’ 서브 좋아함’에 대한 플랜 B를 고민하게 된다.


Chapter2. 달리기, 나를 넘어서는 어떤 것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더 잘하고 싶어서 욕심나는 것이 있다. 내게는 달리기가 그렇다.


이상하게 잘하지는 않지만 달리기가 좋다. 나는 분명 잘 못해내면 금방 싫증이 나는 편인데 달리기는 질리지 않는다.


나는 운동 신경이 없는 편이다. 내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의 결핍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나의 결핍, 내게 없는 것은 운동 신경이었다.


운동 신경이 없어서 그런지 자주 넘어지고, 무언가를 배워도 매일 잘 해내지를 못해서 운동을 배워도 오래 배우지 못했다.

하지만 달리기는 달랐다. 달리기는 특별히 운동 신경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그저 튼튼한 두 발만 있으면 잘 달릴 수 있었다.


달리기는 언제나 나를 기다려주었다. 내가 조금 못 달려도 늘 목표한 지점까지 달리면 나를 칭찬해 주는 기분이 들었다.


구기 종목처럼 득점을 몇 점을 따거나, 골을 몇 번 성공시켰느냐가 아니었다. 달리기에는 이기고 지는 것은 없었다.


그저 목표한 거리까지 도착했는지, 완주했는지, 나와의 약속을 지켰는지가 중요했다.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승패와 관계없이 조바심 내지 않고 성장하는 나를 기다려주는 운동 같았다.


Chapter3. 하루키 덕분에 시작한 달리기


처음 달리기 시작했던 이유는 하루키 덕분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그가 일주일에 60km를 달리고, 매일 꾸준히 글을 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꾸준히 달린다고 이야기했다. 달리기는 대단한 것이라고, 달리기 덕분에 이렇게 멋진 소설가가 되었다고 전혀 말하지 않았지만, 그 책을 읽고 나서는 어쩐지 그가 세계에서 존경받는 소설가가 된 이유는 달리기 덕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달리기가 필살기이자 노하우처럼 보였다.

나도 꾸준히 잘 달리면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멋진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즐거운 착각에 빠졌다.



하루키를 따라 처음 달리기를 했던 날은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그날은 마음이 괴롭고 시끄러워 슬픔이 가득한 날이었다. 내게는 슬픔이 자주 찾아왔다. 그때마다 책을 읽거나 누워서 잠을 실컷 자거나 그냥 울어버렸는데 하루키가 달리기를 하며 하루의 컨디션을 유지한다는 비법이 힌트처럼 떠올랐다.


그날의 여름밤은 매미가 시끄럽게 울고 공기가 습했다. 더운 여름 냄새가 가득히 퍼진 공원 벤치에는 열대야로 잠을 못 이룬 사람들이 꽤 많았다. 나는 벤치에 앉아 운동화 끈을 질끈 맸다. 운동화도 전문 러닝화도 아니었고 집에서 자주 신던 운동화였던 것 같다.


뛰어볼까? 헉헉..


걷는 것은 쉬웠는데 막상 5분 이상 쉬지 않고 달리는 것도 어려웠다. 5분 이상 달리자마자 얼굴이 상기되고 땀을 뻘뻘 흘렸다. 심장은 쿵쾅대기 시작했다. 쿵쾅대는 심장 소리가 싫지 않았다. 오랜만에 심장이 빠르게 뛰는 기분이 살아있는 것처럼 생동감 있고 좋았다. 공원 몇 바퀴쯤 돌며 뛰고 나니 다리는 후들거렸다. 티셔츠가 흠뻑 젖었다. 땀을 뻘뻘 흘리고 끈적거리는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왔는데 이상하게 상쾌하고 개운했다.

그 후로 나는 사랑에 빠진 어떤 사람처럼 아무 생각 없이 일을 마치고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런데이라는 어플을 쓰면서 조금 더 오래 달리는 방법을 터득했다. 런데이 어플을 하게 되면 인증 도장을 주었는데 인증 도장을 받는 성취감이 좋았다.


그렇게 달리는 거리를 늘리면서 나는 어느덧 러너가 되었다.


매일매일 달리는 거리가 늘어날 때마다 나를 넘어서는 것 같았다. ‘오늘도 해냈다.’라는 생각이 자주 반복될수록, 빠르게 달리는 것보다 오래 달릴수록 나를 넘어선다는 생경함이 더욱 커졌다.


나는 책을 읽고 달리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내가 책을 읽고 달리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누군가도 매일 꾸준히 책을 읽고 달리기를 하면서 자신의 일상을 유지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책과 달리기를 함께 하는 독서 모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달리기’는 나의 뾰족함을 도와줬다.


Chapter 4. 책과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의 모임 [무경계-러닝]


서울에는 정말 많은 러닝 크루가 있다. 나도 몇 번 참여해 보았지만, 나와는 잘 맞지 않았다. 어색했다.


주변에 달리는 친구가 없어서 혼자 러닝 크루 세션에 나가면, 생각보다 처음 온 사람을 세심하게 챙겨주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이미 그들끼리 친한 무리가 형성되어 있어 뻘쭘하고 민망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책을 읽고 난 뒤 달리기를 시작하면 조금은 낫지 않을까? 서로 책을 읽고 토론하며 생각을 나눈 뒤, 어느 정도 친분과 안면이 있는 상태에서 달리기 번개를 한다면 훨씬 덜 민망하지 않을까? 그렇게 한 달에 한 번은 책을 읽고, 번개 모임에서는 함께 달리는 것을 규칙으로 정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각자가 참여할 수 있는 개인 러닝 챌린지도 설정했다.


달리기 번개 인증샷

그저 같이 모여 책 읽고 달리기 번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달리기 하고 실력이 잘 성장할 수 있게끔 챌린지를 도모하는 것이었다.


하루키가 매주 꾸준히 달린 것처럼 함께 모인 멤버들이 매일매일 성장했으면 좋겠는 마음에 챌린지를 함께하고 카카오톡 대화방에 인증하는 것으로 커뮤니티를 설계했다.


그러니까 무경계-러닝 클럽 모임은 다음과 같다.


1) 매월 한 달에 한번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다. (트레바리 모임 참여 기준이자 강제성)


2) 매월 한 달에 한번 달리기를 한다. (별도의 규칙 설정)


3) 매월 러닝 챌린지를 설정해, 챌린지 설정한 목표를 실행할 때마다 카카오톡방에 인증을 하고 다음 달에 챌린지 목표를 달성했는지 회고한다. (별도의 규칙 설정)


매월 25만 원의 회비를 내고, ( 비용 허들)

1) 독후감을 써야 모임에 참여가능하다는 강제성을 띄운 데다 2) 달리기 번개 3) 개인 러닝 챌린지 설정이라는 두 가지의 규칙을 세우면 취미 활동에 규칙과 강제성이 늘어나는데 이렇게 허들을 많이 설정해도 괜찮을까?


개인 챌린지 단톡방 인증

사실 지켜야 할 약속과 허들이 많은 셈이라, 돈을 내고 독후감을 쓰고 달리기까지 허들로 설정했을 때 사람들이 부담스럽게 느끼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시도해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내가 커뮤니티를 운영하기에는 모호함보다 분명함과 뾰족함이 필요했다. 그래야 잘 다듬고 수정하고 교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커뮤니티의 목표가 분명해지니 해야 할 것들이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 트레바리에는 책과 러닝을 하는 커뮤니티는 없었기 때문에 직접 기획한 커뮤니티의 룰을 트레바리 크루님께 공유하고 새로운 클럽을 만들었다.


누구보다 분명한 기준이 있고, 특정한 누군가를 위한 커뮤니티의 시작이 즐거웠다.

확실하고 뾰족해지니 제법 다음 스텝이 확실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나와 좋아하는 것이 같은 사람들을 만난다는 사실이 설레기 시작했다.


마침내 [무경계-러닝] 클럽의 첫 멤버 모집을 시작하게 된다.


그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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