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직장인의 독서모임 생존기 EP06.
트레바리에서 ‘파트너’라는 이름은 곧 독서모임의 운영자를 뜻한다. 파트너는 모임을 진행하고 방향을 제시하고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역할을 맡는다. 진행 이외에도 책을 선정하는 일부터 발제문을 쓰는 것, 러닝 번개를 기획하는 것까지 챙겨야 할 일이 적지 않다. 클럽마다 파트너의 성향에 따라 운영 방식은 다르지만, 나의 경우 처음에는 멤버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대부분의 일을 스스로 도맡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는 방식으로는 독서 모임이 오래가기 힘들다는 사실을. 시간 자체는 기꺼이 쓸 수 있었다. 문제는 ‘퀄리티’였다. 내가 알고 있는 러닝 코스는 한정적이라 점점 단조로워졌고, 발제문 역시 내가 궁금해하는 영역 안에서만 맴돌다 보니 늘 비슷한 질문만 반복되었다.
그래서 조금씩 멤버들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러닝 번개 코스 추천부터, 나중에는 발제문까지 함께 준비했다. 놀랍게도 그 순간부터 모임은 완전히 달라졌다.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다양한 러닝 코스 아이디어가 쏟아졌고, 자신감 있게 모임을 이끌어주는 멤버들이 등장했다. 덕분에 멤버들끼리도 자연스럽게 더 가까워졌고, 독서 모임은 이전보다 훨씬 활기를 띠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운영자인 내가 해야 할 일은 모든 것을 직접 챙기는 것이 아니라, 판을 깔아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 위에서 멤버들이 자유롭게 뛰고, 예기치 못한 즐거움과 기쁨을 서로 나누는 것. 그 과정에서 오히려 내가 더 많은 다정함을 돌려받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멤버들의 가능성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 이 멤버는 러닝 코스를 짜는 데 탁월하구나.”
“이 멤버는 모임의 분위기를 환하게 만드는구나.”
각자의 재능이 재료가 되어 함께 모였을 때 모임의 색깔은 선명해졌다.
나는 결국 길의 표지판만 제시할 뿐이었다. 멤버들은 그 길 위에서 서로에게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더 큰 연대가 되었다.
독서 모임을 운영하며 멤버의 힘과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은 뒤, 나는 자연스럽게 좋은 멤버를 더 만나고 싶다는 열망으로 그득해졌다. 트레바리 안에서 다른 클럽을 놀러 가게 되면, 달리기를 즐기는 멤버가 있는지 먼저 눈여겨보았고, 우리 모임을 소개하며 조심스레 스카우트를 하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멤버들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그들 또한 멤버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했기에, 스스로 우리 커뮤니티를 전파해 주었다. 그렇게 입소문은 점점 번져갔고, 어느새 우리 모임은 좋은 사람들로 차곡차곡 채워졌다. 뿐만 아니라 독서 모임을 하면서도 멤버들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발제문, 번개 제안 등 다양한 역할을 나눠 주면서 ‘같이’를 시도했다.
특히 고마운 것은 대부분의 멤버들이 나보다 모든 것을 훨씬 잘했다는 점이다. 덕분에 나는 오히려 많은 도움을 받았고, 묻고 배우며 의지했다. 한 번은 이런 메시지를 받은 적도 있다.
“늘 잘하는 것만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파트너님은 달리기 실력이 부족해도 러닝 모임을 자신 있게 리딩하는 파트너를 보면서 깨달았어요. 부족해도 함께라면 잘할 수 있구나, 그걸 보면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좋은 모임이 되려면 좋은 사람이 필요하다.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힌트였다. 그리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모든 걸 잘할 필요가 없다. 열 가지 재능을 모두 지니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의 탁월함을 받아들이고, 서로에게서 조금씩 의지하고 마음을 나누고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모임이 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건 대단한 기술이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를 다정하고 섬세하게 관찰하고 조용히 지켜보는 마음이었다. 멤버 한 사람 한 사람을 조용히 지켜보고, 그들이 ‘같이’ 할 수 있도록 작은 판을 마련해 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신규 멤버가 들어오면 나는 일부러 귀찮게 굴었다. 이것저것 묻고, 이야기를 꺼내 보게 하고, 괜히 사소한 농담을 던졌다. 그렇게 시간을 쌓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가능성이 드러났다.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함께 도울 수 있는지 보였다. 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같이’를 제안할 수 있었다.
나는 매우 활발한 사람이지만, 활발함과는 다르게 20대에는 혼자 하는 즐거움을 택하는 쪽에 더 가까웠다. 혼자가 익숙했다. 책을 읽고, 여행을 가고, 운동을 하는 것까지도 대부분 혼자였다. 마음 깊은 곳에는 늘 “인생은 결국 혼자야”라는 생각이 시니컬하게 깔려 있었다. 하지만 30대 초반, 트레바리에 발을 들이면서 처음으로 ‘같이’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같이’ 혹은 ‘함께’라는 단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일은 어렵고, 믿음을 건네는 일은 더 두려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나라는 사람 자체는 인생은 혼자로는 버티기 힘들다는 것을, 누군가를 믿으면 그 순간 예상치 못한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을. 그 가능성을 믿고 기쁨을 흠뻑 받아들이는 일을 매우 즐거워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트레바리 모임은 ‘함께’의 기쁨을 눈덩이처럼 더 크게 만들어주었다. 낯선 사람들이 한 달에 한 번 모여 약속을 지키고, 책을 읽고, 함께 달리기를 하는 경험. 그 속에서 나는 낯선 사람에게 다정함을 건네면, 결국 돌아오는 건 다정한 감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전의 나는 상처받기 싫어 아무도 믿지 않았다. 다가오는 사람에게만 겨우 손을 내밀었고, 그 손이 떨어지면 “역시 인생은 혼자야”라며 스스로를 닫아버리곤 했다. 하지만 트레바리를 경험하며 여러 번 다정함의 감동을 여러 번 선물처럼 받고 나서, 나는 생각이 달라졌다. 상처받더라도 누군가를 믿고 달려가는 쪽을 택하는 사람이 되기로 한 것이다. ‘함께’의 기쁨을 아는 내가 되기로 한 것이다.
‘같이’의 힘은 이렇게나 즐겁고 생기가 넘쳤다. 마음의 흠씬 크게 상처가 나도, 생채기를 감수하면서도 가끔은 무모하게 돌진할 수 있는 용기, 그 용기의 절반을 나는 늘 모임 속에서 충전했다.
연대. 함께한다는 것의 힘과 믿음을 품은 뒤로, 나는 주저하지 않고 낯선 멤버들에게 다정함을 건네기 시작했다. 내가 한 발 다가가면, 그들 역시 조금씩 다가와 주었다. 그렇게 나는 다정한 관찰을 멈추지 않고 모임의 윤기를 내면서 책으로 세상이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만 품고 있었다.
내가 조금 더 다가가면, 한 발 더 다가와 주는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믿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