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직장인의 독서모임 생존기 EP 08.
책을 읽는 일에도 습관이 있다. 책을 좋아하지만, 손길이 자주 닿는 책이 있고, 끝끝내 피하는 책이 있다. 나 또한 책을 읽으면서 편식이 심한 편이라, 늘 아쉬움을 느꼈다. 그래서 독서모임을 하는 동안은 나 먼저, 편식 없는 균형 독서를 하고 싶었다. 읽기 편한 책만 고르면 마음은 가벼워지지만, 생각은 단조로워진다. 그래서 독서모임에서는 조금 다른 방식을 시도하고 싶었다. 단순히 ‘읽었다’는 기록을 남기는 독서가 아니라, 낯선 책을 만나고 불편한 주제와 마주하면서 끝내는 깊이 있게 꼭꼭 골고루 씹어먹는 균형 있는 독서를 경험하도록 누군가를 돕고 싶었다.
낯선 장르의 책을 읽게 되면 지루하고 힘들다. 낯선 책을 읽게 되면 속도는 더디고,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낯선 독서는 오래 남는다. 불편해서 붙잡았던 문장이 시간이 지나도 떠오르고, 어렵게 읽었던 책일수록 대화 속에서 더 많은 질문을 끌어낸다. 혼자라면 쉽게 회피했을 책이지만, 모임 안에서는 함께 읽을 수밖에 없고, 바로 그 불편함과 억지스러움이 결국 우리를 한 뼘 더 자라게 한다.
그래서 나는 독서모임 안에서만큼은 모두가 스스로의 편식을 잠시 내려놓고, 조금 더 단단한 독서를 해보기를 바라고 바랐다.
그 바람이 결국 책을 고르는 방식, 즉 독서모임 내에서 책 선정하며 읽기의 시스템을 만드는 일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운영을 단순하게 정했다. 내가 모든 회차의 책을 추천하면 분명 편향이 있을 테니, 멤버들의 추천과 투표로 책을 정했다. 그런데 투표라는 방식은 예상치 못한 함정을 만들었다. ‘이 책은 꼭 읽어야지’라는 의지가 아니라, ‘이 책은 읽지 말아야겠다’는 배제의 마음이 투표에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중간쯤 인기가 모이는 책들이 선정되곤 했고, “이 책 누가 뽑았어요?”라고 물으면 “사실 저는 이 책 읽고 싶지 않아서 그냥 다른 책을 골랐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투표만으로는 좋은 책을 고를 수 없었다.
그 뒤로는 방식을 바꿨다. 멤버들의 책 추천은 받되, 내가 먼저 책을 읽어보거나 목차와 리뷰를 꼼꼼히 확인했다. 단순히 읽어보고 싶은 책이 아니라, 토론에 적합한 책인지를 기준 삼아 후보군을 선별했다. 그중에서 다시 투표를 진행했더니 훨씬 안정적인 결과가 나왔다. 책 선정에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서, 우리 독서 모임만의 책 커리큘럼 시스템을 만들게 된 것도 그때부터다.
원래 처음에는 비문학-문학- 비문학- 문학으로 단순하게 운영을 했지만, 점차 자리를 잡아가면서 멤버들한테 반응이 좋았던 책의 장르로 큰 틀을 나누고 첫 번째는 파트너가 고른 책, 두 번째는 비문학, 세 번째는 고전문학, 네 번째는 북씨(영화+책 프로그램). 네 가지를 운영의 기본 틀로 잡았다.
특히 현대문학이 아닌 고전문학을 독서모임의 커리큘럼의 선택한 이유는 무엇보다 스토리텔러로서 고전문학이 큰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힘은 대단하다. 이야기는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모든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렇다면 100년 동안 누군가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은 이야기의 매력은 어떨까? 수백 년 동안,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고 시간을 차근차근 견뎌온 이야기의 힘은 거칠고 단단하다.
시대마다 새로운 독자들이 같은 문장을 다시 읽고, 그 속에서 또 다른 의미를 길어낸다. 한 번 쓰인 이야기가 끝끝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단단해지는 이유는 그 안에 많은 이들이 공감할만한 인생의 고민이 담겨있거나 인생의 지혜가 선물처럼 담겨있기 때문이다.
시간을 견뎌온 이야기, 고전문학은 우리에게 질문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은 어느 시대에서도 낡지 않는 질문이다.
우리는 매일 겨우 살아낸다. 삶을 버티고 살아낸다는 측면에서 과거, 현재, 미래가 모여 서로를 지탱한다. 고전문학은 과거의 책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유효한 현재의 책이다. 세상은 변했지만 인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고통받고, 희망을 품는 방식은 여전히 똑같다. 고전 문학의 이야기는 친근하다. 오래된 문장의 옷을 입었을 뿐, 그 속의 감정은 과거의 그들과, 오늘의 우리가 선처럼 만나 맞닿아 있다.
고전문학 중 싯다르타는 늘 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소설 중 하나다. 독서모임에서 싯다르타를 읽고 8시간을 토론을 했는데, 그때의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싯다르타에서 자아와 탈자아 번뇌, 비움, 평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인생을 이해한다. 인생의 기쁨과 슬픔은 크게 다르지 않으며 번뇌와 깨달음, 집착과 놓아버림, 그 각각의 장면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삶을 책에 나온 어떤 장면들에서 비추어 보게 된다. 신기하게도 수십 년 전에 적혀온 문장 안에서도 공감을 느끼며 결국 닿는 곳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고민의 모양은 어쩌면 늘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전 문학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싯다르타 고전문학을 읽다가 싯다르타의 고뇌하는 모습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바로 그 지점에서 고전은 시대를 넘어 여전히 살아 있는 현재의 이야기가 된다.
고전문학은 낯설지만 불편한 매력이 있다.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온 만큼 실패 없는 선택이 된다.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동안 읽혀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가치는 이미 증명된 셈이다. 다만 고전문학은 쉽게 손이 가는 책은 아니기 때문에 혼자서는 늘 ‘언젠가 읽어야지’ 하면서도 미루기 쉬운 책이다. 그래서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을 때 기쁨과 성취감은 배가 된다. 마침내 고전 한 권을 완독 했다는 성취감, 그리고 함께 나눈 대화가 오래 남는다.
혼자라면 끝내 펼치지 않았을 책을 억지로라도 읽게 되고, 완독 했을 때의 성취감은 오래간다. 그렇게 혼자라면 읽지 않았을 고전 문학을 한 권, 두 권, 세 권쯤 계속 완독 나면 더 이상 고전 문학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고전 문학을 완독 하는 경험이 계속해서 쌓이게 되면 고전 문학을 더 이상 ‘불편한 책’으로 해석하지 않게 된다. 그저 ‘지금의 책’으로 다시 받아들이게 된다. 고전 문학은 결국 시간이 남겨둔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