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실용

by 유조


반복해서 하게 되는 이야기가 있어.

너는 말하고자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무엇이 됐든, 그것을 끄집어내 발음하고 싶어하는 것, 표명하고 싶어하는 것, 애원하고 싶어하는 것, 변명하고 싶어하는 것. 그 무엇이 됐든.

말해! 너는 말해.

그러나 나는 너의 극점에 와 있네, 너와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그런 거리를 두고 말하는 네 목소리에는 힘이 사라져. 가장 마지막 부분을 반복하는 메아리처럼, 나는 네 말을 들으면서, 귀 기울이는 대신 사랑하고 있어. 입을 열어, 발음해, 표명해, 애원해, 계속해! ㅡ 하고 말 하는 너를.

나, 있지, 이제 말이 지겨워. 이것은 아주 오래된 일이고, 너 때문도 아니야. 오히려 너는 내 등을 떠미는 존재 ㅡ 너의 얼굴에 흩뿌린 거품의 반짝거림, 네 손가락 아래 지는 그림자를 보면 나는 한 번도 빠짐없이 울고 싶어져. 영원은 네게만 있어. 네가 눈을 감으면 나는 네 손가락에 피부처럼 도드라진 반지들을 바라봐. 일생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너와 같은 손가락들에 내 반지를 걸어두고 그걸 아끼는 일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네가 '너' 라고 말할 때 나는 그것을 '나' 로 들어. 넌 뭘 좋아해, 넌 뭘 싫어해, 지금 뭘 생각해, 물으면, 난 네 눈에서 답을 찾아. 난 너만큼 확고한 아름다움을 본 적이 없어. 난 뭘 좋아해, 난 뭘 싫어해, 난 뭘 생각해. 나, 어제는 엄마한테서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들었어. 듣고 생각했어. 그건 너무 부족하다고.

반복해서 하게 되는 말이 있어.

아직은 그만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은 오래 전의 일이야. 나는 네가 그럼에도 왜 자꾸 내 등을 떠미는지 알지 못해. 아제르바이잔, 발음해 보았니. 내가 수백 번 눈을 감았다 뜬 비행기 위에서, 난 아제르바이잔을 내려다보고 있었어. 거긴 허름한 여관의 이불 같이 구겨진 산들이 있었고, 때로 거미의 흰 털 같은 눈이 오스스한 소름처럼 뻗어 있었어. 아제르바이잔 ㅡ 생각해 보았니? 그토록 정확하고 정교하게 구겨지는 듯한 발음을.

며칠 전에도 거미에 대해 생각했어. 이것은 거미에 대한 말은 아니지만, 거미로 말할 수 있는 것들은 많아. 하얀 스튜디오에 드리워지는, 벽에 금을 가게 하는, 거미 다리의 그림자에 대해서 생각했어. 머리가 떨어진 조각상과, 비닐이 씌워진 마네킹들. 나, 있지, 머리 있는 조각상보단 머리 떨어진 조각상을 편안하게 느껴. 내가 가진 불행이나 불운으로는 '날 보는 시선이 안 느껴져서 좋아' 라고 말할 수 없어. 그건 너무 부족해. 그러나 그게 이유가 아니래도 좋아 ㅡ 네 눈을 보면 난 답을 알 수 있어. 언제나.

'이 극에 나오는 인물들은 다 자폐적인 것 같아요.' 나 사실 그 말을 나한테 주고 싶었거든. 그러니까 네가,

애원하는 동안, 표명하는 동안, 간절하는 동안, 사랑하는 동안, 발음하는 동안 ... 네가 나한테 그 말을 해주지 않아서, 난 그 말을 나한테 꼭 주고 싶었거든. 네가 발음을 터뜨리는 동안 나는 발음하는 법을 외우고 있어. 아제르바이잔 ... 수십 번을 그 비행기 안으로 다시 찾아가면서, 수십 번을 내가 지나친 거미의 하얀 등을 재생하면서. 반복해서.

나, 실은,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어 ㅡ 왜 자꾸 내 등을 떠미는 거야? 이토록 정확하고 정교하게.

봐, 내 언어는 자폐적이야. 습성이 그래. 언젠가 너와 함께 봤던 영화에서, 손가락을 차례로 구부리며, 길고 부스럭거리는 옷자락을 끌며 방 안에서 원을 그리며 돌던, 기억해? 습성이 그렇다고. 그리스까지 찾아가서 내가 보고 온 것은 머리가 떨어진 조각상과 고대의 극장 ... 떨어져나간 시간의 안도와 계단 꼭대기에서의 안전한 상상이 전부. 그러니 꿰뚫어줘, 비난해줘, 날카롭게, 변명하지 말아줘. 모든 위대한 사람들이 그랬다고 말하지 말아줘. 올리브 나무의 반짝거림, 그 지지 않는 열기처럼 관통해서 말해줘. 습성이 그렇다고, 난 원을 그리며 움직이기 때문에 너는 벌써 몇 번째 내 눈을 마주보았다고, 거기 이미 답이 있다고, 아주 오래된 일이라고.

반복해서 말해지는 것들이 있어.

사랑해.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네가 사실은 너무 좋아. 너를 보면 인간의 근육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돼. 찡그리는 미간의 형형색색, 가방을 잠그고 겉옷을 걸치는 순서. 너의 버릇들이 보여주는 모든 움직임과 시선. 너는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아. 가끔 너는 잘못된 것도 사랑하고, 가장 멀리 있는 것도, 무례할 정도로 가까이 있는 것도 사랑해. 모든 위대한 인간들이 그러했듯이. 너는 그 중에 제일 아름다운 인간이야.

그래서 네가, 나를 자꾸 조금씩만 더 걷게 하기 때문에. 내가 나를 바라보는 각진 화면을 알아채고, 그 너머에 있는 것이 다름 아닌 나라는 것을 알아채고, 내가 나를 연인처럼 보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내고, 그러고 나서 너의 사랑에 비참을 느낄 때. 아직은 헤어질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을 철회하려고 할 때.

그 중에 늘 제일 아름다운 네가, 너무나 정확하고 정교하게 내 눈을 보는 대신 내 등을 밀어. 조금만 더 가라고.

나, 실은 궁금해. 네 얼굴에 흩뿌려진 반짝이는 물기가 어디에서 왔는지. 네 구불한 머리의 곡선과 네 입꼬리의 곡선에 가능한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아무것도 없는 맨손가락으로 따라 그리고 싶어. 지치지 않는 목소리를 알고 싶어. 그리고 말하고 싶어, 그것들을, 그리고 오직 그것들만을.

일생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너에게서 배운 아름다움을 말하는 일 말고는 없어. 언어의 실용은 그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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