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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영 Jul 22. 2021

 인어, 퇴사하다[브런치 X저작권 위원회]

A양은 바닷속에 가라앉은 기분이었다.

인어공주를 재해석한 (브런치 X저작권위원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명작 글 부문) 응모작입니다.



퇴근하는 길에 버스를 기다리던 A양은 무표정하게 핸드폰만을 보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누른 인스타 속에는 모두들 행복한 표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스크롤을 내리자 수많은 셀카, 여행 게시물들이 해시태그과 함께 쏟아져 나왔다. A양은 갤러리 속 며칠 전에 손을 떨며 계산했던 코스 요리 사진을 골라 한참 동안 보정을 한 뒤 가벼운 이모티콘 하나와 함께 게시물을 올렸다.


11분 후 도착.


A양은 다시 핸드폰을 바라본다. 카카오톡을 들어가 가벼운 대답 몇 마디를 나누다가 부장으로부터 온 - 아마 추가 업무에 대한 것이다- 카톡을 확인하지 않고 그냥 화면을 꺼버렸다. 검은 화면 속 비친 여자의 모습은 성실하고 예의 바른 사회초년생 그 자체였다. 아마 어릴 때부터 적당히 잘한다는 말을 들으며 공부를 해왔을 것이다. 부모님이 기대하는 대로 안정적인 직장을 잡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단 한 번의 일탈과 탈선은 가까이한 적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안정적인 공기업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적당히 성실히 살면서 주변으로부터 인정받으며 계속 승진하고 있을 것이다.  


때마침 도착한 버스에 올라탔다. 스쳐 지나가는 창밖에는 마음속 한켠에 품어둔 작은 소녀가 보였다. 소녀는 대단한 사람이 될 거라고 말했다. 자신은 평범한 다른 어른들과 다르게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소리친다. 남들이 가는 뻔한 길을 일부로 돌아 도전하는 삶을 살 것이라고 외친다. A양은 고개를 내젓는다. 전부 어린 시절에, 뭣도 모르고 했던 생각들.



버스에서 내려걸었다. A양은 지금 삶에 만족했었다. 그녀는 안정적인 공기업에 다니고 있고 평범하지만 성실하게 일하고 있다. A양은 지금 삶에 만족했었다. 그녀의 삶의 가치와 이러한 안정적인 삶은 잘 맞아떨어진다.


걸음을 멈춘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정말 안정성인가?


재작년 여름 몰디브에서 처음 했던 스쿠버 다이빙이 생각났다. 처음 물속에 들어갔을 때 그녀는 너무 답답했다. 지상에서와 달리 호흡에도 신경이 쓰였고 수영을 그렇게 잘하지 못했던 터라 이동도 자유롭지 못했다. 해는 너무나 아득히 멀리 위에 있었고 그녀는 한없이 깊은 바다 한가운데에 있었다. 몇십 분 정도 지나자 그제야 조금씩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 있으니 그녀는 긴장을 풀고 구경에 집중할 수 있었다.



다시 한 걸음 내딛는다. 바닷속에 들어가면 중력도 상쇄되고 충격도 덜 느껴진다. 물이라는 매질의 성질은 상당히 안정적이다. 오죽하면 빛 역시 속력이 감소해 굴절하지 않겠는가. A양은 바닷속에 가라앉은 기분이었다. 안정적인 바닷속에 놓인 안정적인 직장, 결국 안정적인 삶. 이곳에서 물론 잘 살 수 있음을 안다. A양은 비유하자면 이곳에서 인어와 같은 위치였으니까. 이곳은 태양의 뜨거움이 만드는 여름도, 찬 바람의 얼어붙음이 만드는 겨울도 존재하지 않고 어떤 큰 충격도 어떤 빠른 변화도 존재하지 않는 바다 속이니까.


 버스 안에서 본 작은 소녀가 다시 보였다. 소녀는 A양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소녀는 다치고, 긁히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고 싶었다. 소녀는 이글거리는 태양과 얼어붙는 찬 공기를 들이마시고 싶었다. 무엇보다, 두 다리로 달리고 싶었다. 숨이 차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아도 그 두근거림을 모두 느끼고 싶었다.  



대학생 시절 A양은 입학과 동시에 하고 싶었던 모든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채워나갔다.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그녀는 풍부한 색으로 채워져 있었다. 한 번은 마음 맞는 친구들과 창업을 해보려고 하기도 했다. 또 한 번은 사진에 매료되어 그녀 자체가 피사체가 되기도, 작가가 되기도 하면서 사진과 함께 하는 낭만적인 삶을 꿈꾸기도 했었다. 배우고 싶은 공부도 정말 많았다. 그녀는 영상편집, 미디 작곡, 프로그래밍, 에세이, 디자인 등 다양한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직접 학원을 찾아가기도 하면서 하나씩 배워나갔다. 다양한 배움과 경험들은 매일을 새로운 두근거림으로 선물해주었다.


A양은 분명히 자유로움을 사랑했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는 자유를 사랑했다. 21세기는 세계를 대상으로 소통이 이루어진다. 마음만 먹으면 구할 수 있는 기회도 무궁무진하고 뻗어나갈 수 있는 인생의 갈래와 경험들도 수없이 많다. A양은 이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물론 어떠한 종류의 도전도 기존에 익숙한 곳을 떠나면 힘들 수 있다. 하나 분명한 것은 모든 건 스스로가 선택했기에, 본인이 책임 지고 계속 개척해 나간다는 점이다. 그녀는 결심했다.  

A양은 집에 도착하자 서랍 안쪽에 간직한 종이 두장을 꺼내 들었다. 종이 한 장에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적어 내려갔다. 종이가 글자로 차오르는 동안 그녀의 얼굴에는 생기가 차올랐다. 그리곤 나머지 한 장을 빠르게 작성하고 서류가방에 챙겨 넣었다.


날이 밝아 출근길에 오른 A양은, 종이 한 장 만을 사무실 책상 위에 놔두고 나왔다. 다른 한 장의 종이를 들고 우체국에 가는 그녀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더 이상은 바닷속에 있고 싶지 않다. 물론 안정적인 바다를 떠나고 육지로 가는데 많은 고통이 따를 것도 안다. 그렇지만 나도 이제 나의 두 다리로 서있고 싶다. 처음에는 서있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젠간 나도 숨이 터지도록 달릴 수 있음을 믿는다.
                                                                                   - A양의 편지 중에서 , 에리얼 작성



이미지 출처 : Pinterest by 지민유, Marilena Anastasiadou, ILikeWallpaper, HeavenRunner, Society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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