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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앤 Jul 21. 2022

시간과 기억을 품은 느티나무

내 나이 정도가 되는 사람이라면 어릴 적 고향에서 속이 뻥 뚫린 커다란 나무를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름도 모른 채 술래잡기를 하며 놀던 그 커다란 나무가 대부분 느티나무다.
봄이 되면 연록의 고운 새순을 올리고,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이 되면 가지마다 짙푸른 녹음을 더해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가을엔 고운 단풍으로 계절의 깊이를 더하다가, 눈 내리는 겨울 가지 위에 흰 눈을 얹어 보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던 느티나무, 마을 한 귀퉁이에서 온갖 풍파에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사계절을 맞는 느티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어린 마음에도 가슴 한가득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우종영의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중에서


30년간 아픈 나무들을 돌봐 온 우종영 나무 의사는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에서 술래잡기를 하며 놀았던 고향 마을의 커다란 느티나무에 얽힌 어린 시절 추억들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가끔씩 잘못이라도 저지르는 날이면 싸리비로 엉덩이를 때리는 어머니를 피해 느티나무 구멍으로 몰래 숨어들었다. 느티나무 구멍 안에 있으면 마치 나무 위 오두막집에 숨어든 톰 소여가 된 것 같기도 했다. 주목나무에서 시작해 회양목에 이르기까지 열네 그루의 나무 이야기 중 유독 느티나무 이야기가 내게 와닿았던 것은 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 주었던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내 마음속에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푸르름을 안고 서 있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다. 고향 마을의 느티나무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했고, 바둑이나 장기를 두며 담소를 나누는 어르신들의 사랑방이 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일감이 담긴 소쿠리를 이고 와서 은근슬쩍 누군가의 손을 빌리려는 얄팍한 아주머니의 수고를 덜어주는 곳이 되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일손을 빌리러 온 뻔한 속내를 알면서도 살짝 눈을 흘길 뿐 싫은 말을 쏟아내지는 않았다. 평상에 앉아 달달한 믹스커피 한 잔 들이키며

"누구보고 이걸 다 하라고 한 소쿠리 씩이나 가져온겨? 이거 다하면 일당도 준당가?"

하고 섞인 농을 쳤다. 그리고는 손톱이 까매지도록 고구마순을 다듬고, 옷소매로 눈물을 닦아내며 매운 마늘을 깠다. 손과 입을 바쁘게 움직이며 떠들어대는 동네 아낙들의 수다와 웃음소리로 평상은 궁둥이 여럿 떠날 때까지 들썩거렸다.


사방으로 뻗어나간 느티나무 가지마다 내 삶의 한 축을 지탱 해준 유년 시절의 억들이 매달려 있다. 눈부시게 쏟아지는 여름 햇살에 초록빛을 발하며 반짝이는 예쁜 추억들 말이다. 마을의 느티나무는 어머니의 넉넉한 품처럼 동네 아이들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었다. 나무는 아이들이 제 몸에 올라가고 매달리고 부딪치고 발길질을 해도 묵묵히 서서 온몸으로 그 모든 것을 받아 주었다. 받아주었다고 말하지만 때론 극성스러운 말썽꾸러기 녀석들의 발길질과 칼부림이 아프기도 했을 것이다. 칼부림이란 표현이 좀 과격하지만 남자아이들은 종종 문구용 칼이나 뾰족한 도구로 나무껍질을 벗기고 글씨를 새기는 등의 몹쓸 행동을 하기도 했다. 나무에게 단 하루, 마음껏 움직이고 말할 수 있는 마법 같은 시간이 주어졌다면 그 녀석들은 천둥같은 불호령과 함께 아주 혼쭐이 났을 테다.


느티나무 아래서 아이들은 숨바꼭질을 하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했다. 꼭꼭 숨어 있는 동무들을 찾을 때마다 술래는 부리나케 뛰어가 커다란 나무줄기에 손도장을 찍었다. 우리가 찍은 손도장이 그대로 나무에 새겨졌다면 아래 줄기는 수많은 손자국들로 빼곡할 것이다. 무더운 여름이 되면 아이들은 따가운 햇살을 피해 나무 그늘 흙밭에 앉았다. 손바닥을 뒤집었다 폈다 편을 나누고 동글동글한 돌멩이로 공기 대결을 벌였다. 지금 아이들은 다섯 알로 하는 공기놀이를 주로 하지만 그때는 공깃돌 개수에 따른 공기 종류와 기술매우 다양했다. 받고 던지는 단순한 기술에서부터 떨어져 있여러 개의 공깃돌을 한 번에 쓸어 잡거나 콩콩 점프하듯 두 공깃돌을 연이어 잡는 등의 고난도 기술이 있었다. 이 모든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상대편 기선을 제압했던 '공기의 신' 세진이 언니가 생각난다.

땀에 흠뻑 젖도록 한바탕 뛰어놀고는 시원한 아이스크림 하나 빨고 평상에 누워 있으면 얼마나 평안하고 행복한지. 이곳이 바로 먼 옛날 중국의 도연명이 말한 별천지, 무릉도원이로다. 쪽쪽 빨아먹고 있는 이 쭈쭈바가 무릉도원의 탐스런 복숭아로다. 정말 그 순간만큼은 세상 그 무엇도 부럽지 않을 만큼 기쁘고 행복했다.


친정집에 갈 때마다 여전히 터줏대감처럼  마을 앞을 지키고 서있는 느티나무를 본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그 자리를 단 한 번도 떠난 적 없는 느티나무는 성장을 멈추었나 싶을 만큼 자라는 속도가 더디다. 설령 나무의 성장이 멈추었다 하더라도 내 마음속에서 만큼은 매일매일 푸른빛을 발하며 쑥쑥 자라고 있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아본다. 수많은 동그라미가 켜켜이 새겨진 나이테에는 나무의 시간과 더불어 작은 시골 마을의 흔적차곡차곡 쌓여 있을 것이다.




유년 시절의 애틋한 기억 때문인지 이따금씩 어느 시골 마을에서 덩치 큰 고목(古木)을 만날 때면 엄마 품에 안긴 듯한 따뜻함을 느낀다. 얼마 전 세종시립민속박물관에서 만난 느티나무 한 그루도 나에게 고향의 푸근함을 선물해 주었다. 세종시 전의면에 위치한 세종시립민속박물관은 폐교된 금사초등학교를 활용하여 2012년에 개관한 곳으로 민속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전시 교육하는 문화공간이다. 자그마한 시골 학교 모습을 한 민속박물관에 들어서자 덩치 큰 느티나무 한 그루가 우리 가족을 맞이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주변에도 나무들이 많이 있지만 도시에서 아름드리 느티나무를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세종시립민속박물관에 자리한 느티나무


박물관 관람은 뒷전으로 미루고 우리는 느티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간식도 먹고 수다도 떨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선선바람을 맞으며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들으니 더 이상 이를 수 없는 최대치의 행복에 다다른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선곡을 하고 베짱이처럼 한가로이 음악을 듣다 딸 둘과 남편은 그네를 타러 나갔다. 따가운 월 햇살을 가려주고 시원한 바람을 힘껏 불어넣어 주는 고마운 느티나무 덕분에 아이들은 그늘 아래서 신나게 그네를 탔다. 사진 속 느티나무는 마치 두 아이의 안위를 지켜주는 수호신처럼 보인다.


 나는 벤치에 누워 나무가 쏟아내는 따스한 초록빛과 간질이는 바람을 맞으며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책을 읽었다. 이 나무를 만나려고 내가 이 책을 집어온 것인가? 고목이 뿜어내는 영검함이 나에게 전해진 것일까? 혹시 나무와 나, 둘 사이에 텔레파시가 통한 게 아닐까? 얼토당토않은 생각들이지만 어떤 마법의 기운이 우리를 하나로 이어준 것 같아 신비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어릴 적 나무 그늘 평상에 앉아 쭈쭈바를 빨아먹으며 느꼈던 무릉도원 신선들의 기분을 이곳에서 다시 맛보게 되었다.


화려한 색채와 모양으로 치장한 볼거리가 하나도 없는 이 한적한 공간이 나무 한 그루 만으로도 이렇게 즐거워질 줄이야?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로 인해 나의 시공간이 이렇게 아름답게 반짝일 줄이야? 쉼이 필요한 나에게는 책을 볼 수 있는 한가로움을, 더위 많이 타는 신랑에게는 시원한 그늘을, 놀기 좋아하는 딸들에게는 그늘 아래서 그네 타는 재미를 선물해준 나무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전하고 박물관을 나왔다.

 

'오늘 너로 인하여 나무가 주는 여유로움과 기쁨을 알게 되었으니 두고두고 너를 기억하고 다시 또 찾아오마. 다시 보게 될 그날까지 너도 나도 건강하게 잘 지내자꾸나. 오늘 하루 참으로 고마웠다.'



* 참고 도서: 우종영의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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