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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앤 Aug 07. 2022

나의 동주

2017년,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기리며

8월 15일, 광복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라의 독립을 염원하며 형무소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던 윤동주 시인을 기억하며 홀로 간직하고 있었던 이 글을 세상 밖으로 꺼내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의 <서시>


 꿈 많던 여고 시절, 나는 윤동주 시인과 그의 시를 참 많이 좋아했다. 그가 쓴 수많은 시 가운데서도 <서시>는 입으로 소리 내가며 열심히 외울 정도로 애정했다. 하지만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학창 시절 피어올랐던 풍부한 감성도 서서히 메말라갔다. 어느새 나는 대학생, 직장인, 그리고 누군가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바쁜 일상에 지쳐가는 동안 윤동주 시인의 시집도 빛바랜 사진처럼 조금씩 잊혀갔다. 그리고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윤동주 시인을 주인공으로 한 이준익 감독의 <동주>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는 그렇게 오랜 시간 내 가슴 한편에 잠자고 있던 윤동주 시인을 불러들였고, 그의 시는 다시금 내 마음을 흔들었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구석에 꽂혀있던 빛바랜 윤동주 시인의 시집을 꺼내 들었다. 여고 시절 부모님께서 주신 용돈을 모아 샀던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시집. 시집을 넘겨보니 첫 페이지에 ‘2000년 6월 25일 일요일, 이 시집을 샀다. 기분이 참 좋다’라고 적어 놓은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 당시 매달 2~3만 원 정도의 용돈을 받아썼던 나에게 만원 가까이 되는 책 한 권을 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용돈을 모아 직접 산 책들은 애착이 많이 갔다. 책 한 권씩 살 때마다 면지에 구입 날짜와 간단한 느낌 정도를 함께 적어둘 정도로 직접 산 책들은 소중했다. 물론 지금은 책 한 권 한 권에 그런 정성과 낭만을 쏟지 않는다.


 떨어지는 낙엽만 보고도 울고 웃는다는 여고생 시절. 그때 만난 윤동주의 수많은 시들을 일기장 안에서, 마음 안에서 수없이 쓰고 읊었다. 국어 교과서에 나온 윤동주 시인의 학사모 쓴 흑백사진을 네모나게 오려 일기장에 붙여 놓기도 했다. 요즘 아이들이 아하는 아이돌 가수의 포카(포토 카드)를 열심히 모으듯이 말이다. 십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시 한 편 한편 찬찬히 읽어 내려가니 깊게 잠들어있던 그때의 감성이 다시금 되살아나는 것 같다.


 윤동주 시인을 좋아하는 애틋한 마음과 달리 그의 고단했던  삶은 가슴 한편을 아리게 한다. 만주 북간도에서 태어난 그는 기독교인인 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는 1941년 서울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간다. 학업 도중 귀향하려던 시점에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한다. 그러나 복역 중 건강이 악화되어 1945년 2월에 생을 마친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옥중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정기적으로 맞은 결과이며 이는 일제의 생채 실험이었다는 주장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그토록 염원하던 독립을 6개월 남기고 28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둔 윤동주 시인. 차가운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시인의 마지막 모습에 눈시울이 뜨겁다. 영화가 끝나고 마지막 자막이 올라간 한 참 뒤에도 마음 한 구석이 먹먹하고 쉽게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눈물을 머금은 두 눈은 한동안 텔레비전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흑백 화면 속에 비친 시인의 얼굴을 한참 동안 들여다본다. 그의 얼굴에서 맑은 영혼을 가진 어린아이의 모습과 강인한 품을 가진 시인의 모습을 다. 그가 쓴 수많은 시 안에서 어둡고 암울했던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청년의 고뇌와 조국의 광복을 염원하던 시인의 간절함전해진다.


 총칼을 메고 앞장서서 독립을 위해 싸우지 않았지만 자신만의 방법으로 민족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윤동주 시인. 하지만 그는 끊임없이 부끄러움을 얘기했고 또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쉽게 써지는 것 또한 부끄러워했다. 그렇게 그는 부끄러운 모습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작은 울림을 주고 있다.


 2017년은 윤동주 시인(1917~1945)이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시를 사랑하던 시인의 순수한 열정나라 사랑하는 마음은 100년이라는 물리적 시간을 넘어 우리 가슴속에 잔잔한 등불처럼 밝게 비칠 것이다. 차가운 감옥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다 쓸쓸히 숨을 거둔 청년 윤동주. 그의 죽음에 대한 진상이 언젠가 반드시 밝혀지길 소망하며 윤동주 시인의 <쉽게 쓰여진 시>를 찬찬히 읊어본다.


쉽게 쓰여진 시  -윤동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다시 찾아온 나의 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사랑한 시인 동주.

는 날카롭게 심장을 뚫고 전해진 첫 키스의 떨림처럼 내게 다가온 나의 첫 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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