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의 기억
엄마의 김밥 말기는 공식적으로는 소풍날 새벽 다섯 시에 시작되었다. 내 눈으로 보진 않았지만, 엄마는 전날 밤 아홉 시 뉴스가 끝나기 전에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며 선언하듯 말했다.
“내일은 다섯 시에 일어난다!”하고.
드라마도 보지 않고 자러 들어가는데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일 시작하는 사람처럼
두 손으로 앞자락을 힘차게 두드리며
탁탁-!
그 소리에 시간을 멈추어 가로질러 볼까.
엄마가 TV 앞에 앉아 시금치를 다듬기 전으로.
싱크대 위를 훔친 행주를 널기 전,
쌀을 씻고 불리기 전,
속 재료들 찬통에 담아 냉장고에 착착 들어 앉히기 전,
선홍색 고기에 간장을 쪼르르 흘려 넣기 전,
자작자작 우엉 향기 퍼지는 동안
사각 탁, 사각 탁, 당근 채를 썰기 전,
탱, 탁! 퉁-. 씻은 양푼, 채반, 도마 얹어지는 소리.
한 번 더 이어질 부엌일에 쏴아- 쏴, 설거지 소리 거세어지기 전에.
여느 날처럼 조용조용 우리 식구 저녁 먹는 한 켠에
장바구니 불룩하게 채운 재료들
그거 사러 엄마 나서던 시간.
그건 몇 시?
시간을 날아가
엄마의 시간을 볼 수 있다면
그건 도대체 몇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