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데커레이션 -3 공장내의 위계질서 선임인 봉채와의 갈등
비닐장갑을 착용하고 빵 종이를 벗겨내고 있을 때 김 관호 계장이 슬쩍 옆에 와서 내게 물어봤다. 전에는 어떤 일 하다 왔어. 군대 가기 전에 했던 일이 있었을 거 아니야. 잠시 머뭇거렸다. 그림을 그렸다, 전혀 이야기할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걸 재차 하고 싶다는 말도 꺼낼 수 없었다. 그 얘기를 했다가는 말꼬리가 길게 늘어져서 케이크와 그림이 비슷한 맥락들을 부추길 것 같았다. 그렇지. 케이크도 예술이지. 데커레이션이잖아. 그림도 예술이고. 케이크에다 잘 그리겠는데. 감각이 남다르겠어.
한참 만에야 그가 또 물어봐서 건성건성 말해줬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와서 대학 시험을 한 번 치르고 낙방한 후에 바로 군대 다녀왔습니다. 막노동 좀 하다가 구인 광고를 보고 여기 들어왔습니다.
점심 시각은 열한 시였다. 위해부서 직원들과 식사 시간이 겹치기 때문에 시각을 그렇게 정한 모양이었다. 으레 봉채와 나는 점심 시각, 한 시각 전에 재료를 타러 갔었다. 케이크를 포장하는 상자나 상품명 스티커, 케이크 둘레지, 케이크 바닥. 대충 이러한 것들이었다. 수레 두 대를 이끌고 리프트로 한 층 내리고 출하 반을 한 백여 미터쯤 지나 지하로 가는데 마지막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면 자재과였다. 자재과 직원이 알아서 챙겨주면 좋겠지만 다른 업무를 보는지 없을 때가 많았다. 여자기사 진숙이 써 준 재료 전표를 들고 일일이 물건을 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수레에 싣고 오는 길이 순탄치가 않았다. 잘못 실어서 쓰러지기라도 짜증부터 밀려왔다. 예전에 그래 왔었던 관례가 그러한 건지, 김종필 기사가 첫 신입사원을 길들이기 위한 미봉책으로 여러모로 봉채에게 잔소리했던 것인지도 몰라도 한 번 일러두고 가르친 것은 자신이 돕거나 같이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자신 일만 끝나면 그는 자신의 수레에만 실을 것만 싣고 갔다. 땀을 흘리면서 봉채가 있는 곳으로 가보면 그가 지나간 흔적만 있을 뿐, 그는 없었다. 작업장에 가보면 그는 여자들과 밥을 먹으러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 혼자 힘들게 재료 상자를 내리고 나면 힘이 빠졌다.
수습사원이라도 해볼 만하다, 생각했었다. 밖에 나가서 재료 타오는 일을 하고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만만치가 않았다.
씩씩거렸다. 봉채가 일하면서 웬만큼 맞췄다, 생각했나. 언뜻 보면 나랑 맞추어 나가는 것을 대단히 힘들어하는 표정이었다. 그의 노력에 감복하여 한번 해주기 시작하면 그도 나를 더 가르치고 시키려고 들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가르치기 좋아하고 자신이 해오던 것을 남들에게 일러두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김종필 기사도 그랬고 김관호 계장도 그랬다. 어쩌면 그들은 확실한 것을 인도하는 것을 강조하지만 자신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것조차 억지로 인식시키고 강요하고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며 즐기고 있었을 거다. 또 그렇게 변해가는 봉채를 바라보면서 무척이나 흡족했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변해가기를 그들은 바라고 있을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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