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데커레이션 1 -7
봉채가 쉬는 날이라 김종필 기사와 둘이 재료를 타러 갔다. 자재과에서 재료를 싣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막 화물 엘리베이터를 오르고 출하 반을 지나 리프트에 수레를 올리기 직전이었다. 김 기사는 나를 불러 세웠다. 쉬엄쉬엄해. 서두르지 말고 일하자니까. 건물 난간에서 잠시 쉬게 될 때 대화가 없어 서로 어색함만 맴돌았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가 쉬는 날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그에게 물어봤다. 대체 휴무가 언제예요? 쉬는 걸 못 봤어요. 쉬게 될 때 쉰다니까. 확실하게는 말하지 않았다.
“여기 같은 곳은 처음이야. 전에 있던 K 제과는 일요일마다 쉬고 토요일도 오전 근무야. 기본급도 평사원이 사십만 원이 넘어.”
“그런데 그렇게 좋은 회사를 그만두고 나오셨어요?”
“과장으로 근무하다 윗사람에게 아부하는 것이 싫었어. 회사를 그만두고 호프집을 차렸었어.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금방 손실만 보고 실패했지. 전에 일하던 곳은 못 가고,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데 근무 여건이 너무 안 좋아. 노조위원장이 현장에서 일하는 회사는 처음 봤으니까. 노조가 그 모양이니 사원들이 무슨 힘이 있겠어?”
“저…, 어…, 그런데 우리 노조위원장이 누구예요?”
“허허…, 큰일 났군. 노조위원장이 아직도 누군지도 모르다니? 우리 사장 이름은 몰라도 노조위원장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어야지. 왜 그 롤 케이크 부서에서 시트 배합치고, 가끔 우리 부서에 들르고 그러잖아. 박갑용 반장 말이야.”
“아하, 그 반장님…. 그렇지만 모두 그렇게 말하지 않으니까 모르고 있죠.
“맞아, 맞아. 우리가 관심이 없던 것도 사실이지만 사무실 하나 변변히 갖추지 못한 형편에서 노조위원장이 가당키나 하겠냐고. 지금은 노조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임금에서 활동비 명목으로 꼬박꼬박 떼어서 조합비는 거둬들이면서 실질적으로 와닿는 것이 있어야지 말이야. 그는 우리들의 대표가 아니야. 그저 사무실 측이 명목상 시켜놓은 거나 다름없어. 자 그 정도만 하자고. 시간 다 됐어. 나는 그 사람을 비난하려고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야. 우리들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지. 위원장도 무척 답답할 거야. 뭔가 해보려고 꽤 애쓰던 것 같긴 한데.”
앞으로도 수없이 겪어나가야 할 단편적 모습을 얼핏 엿보는 듯하였다. 그를 보고 조금은 놀라웠다.
“한때 회오리처럼 몰아치던 80년대 말, 공안정국 시대에 같이 맞물려서 불어 닥친 노사분규가 도미노처럼 일어났었잖아. 그때에도 아무런 동요 없이 그냥 넘어간 회사가 바로 이 회사야.”
그는 수레를 잡아끌며 말을 이어 나갔다.
“지금은 한참 지났지만, 그때 얼마나 시끄러웠었나? 내가 여기에 입사하기 전에 있었던 K 제과도 한때 그런 노사분규에 휘말리고 말았지. 나는 그때 과장으로 있어서 참 난감하기 그지없었어. 윗사람 눈치 살피느라 힘들었어. 그런데 내가 여기 와서 그 당시가 어쨌나 물어보니까 제대로 상황을 아는 사람도 없고, 모두가 조용했었다고만 말하더군. 아마 장기 근속자가 드물어서 그런가 봐. 아예 노조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야. 조금만 하다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러겠지. 회사도 힘들면 나가라는 식으로 신경도 안 쓰고 새로 사람을 뽑으면 그만이라는 식이더군. 한마디로 생산직 사원들보다 사무직으로 있는 사람들이 더 힘이 있고, 그 사람들을 위한 회사처럼 느껴져. 일요일에 우리는 일하지만, 그들은 쉬거든. 나는 이 회사 입사해서 그 점이 제일 못마땅하고 제일 불만 사항이야.”
그의 말을 듣기만 했다. 우리가 모두 김치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묵묵히 일만 하다 회사의 불합리한 조치가 생기면 그저 그에 대한 방편은 회사를 스스로 나오는 것뿐이지. 계속 뒤에서는 수군댈 것이고. 어느 한 사람이 꾹꾹 참아내고 삭히고 있었던 말들을 막 쏟아내고 하면 다들 손뼉 치고 좋아하잖아. 그런데 그 사람이 그 말로 인해 잡혀 들어가면 다들 쉬쉬한다니까. 사람들이 그래. 아무 일이 없듯 전에 자신이 해 오던 일로 돌아간다고. 만약에 약간이라도 해가 갈까 두려워 먼발치에서만 소리치면서 극구 부인하겠지.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나한테 엮으려고 하지 마라. 뭐 그런 식으로……. 여기 일한 지 삼 년 정도 돼 가는데 분위기가 그래. 나도 그렇지만 어느 정도 직급에 오르면 자기 몸 사리기 바쁘지."
김 기사와 같이 리프트에 수레를 밀어 넣었다. 서로 잡아끌던 수레를 복도 끝에서 멈추었다. 그는 봉채보다 노련했다. 실어 온 재료들을 차곡차곡 쌓아 놓았다. 훨씬 일이 수월했다. 그는 일이 빠르고 흐트러짐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재료들의 줄이 흐트러지면 그가 와서 내가 쌓은 것을 바로 잡아줬다. 뒤에서 어렴풋하게 따라만 하는 생각 없는 초보 일꾼이었다.
막연히 앞서 몇몇 사람들의 관행이나 주장대로 쫓아갈 따름이었다. 그저 힘이 없는 소시민에 불과하다. 다른 사람이 하는 일만 똑같이 좇아서 한다. 일을 잘하거나 못하거나 간에 절반쯤 하면서 시간만 보내다 퇴근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면 급여가 나오는 것이다. 그게 전부였다. 다른 것이 있을 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