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험이 단단히 들었다
앞뒤 돌아보지 않고 교회 일에 빠져 있던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이었다.
서서히 집회에 빠지고 주일 예배 참석도 소홀히 하기 시작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는 말씀이 있다. 그런데 교회에 다니게 되면서부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맘이 상하고, 나의 휴식 시간도 없고, 일에 찌들어 살아야 하니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았다.
하나님 말씀에, '하라, 하지 말라'하는 것은 무척 많고 어차피 내가 다 지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 날, 산 위에 올라갔다.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성냥갑 같은 많은 집들이 보였다.
그 집 안에는 별의별 일이 일어나고 있겠지만 산 위에서 내려다보니 거기서 거기일 것 같았다.
그렇다면 죄가 약간 있는 자나 많은 자나 별 반 차이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천국이 마냥 행복하기만 한 곳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충성하면 천국에서 상을 받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렇다면 천국은 계급 사회란 말인가?
그 천국은 또다시 큰 상을 받은 자와 아무 상도 받지 않은 자들이 부끄러워하거나 부러워하는 모습으로 영원히 지내는 곳이란 말인가? 그 점이 궁금했지만 누구 하나 속 시원하게 답을 해주지 않았다.
나는 교회에 나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방황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나의 방황은 꽤 길었다.
교회 일보다는 학교에서 원어 연극 연습하는 것을 우선시했고 친구들이랑 여행 가는 것을 더 좋아했다.
교회에 덜 나가게 되었지만 학교 공부를 더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혼란스러운 나날들이었다.
방황이었다.
그리고 이유 없이 하나님을 원망하며 지내는 나날들이었다.
반항아였다.
성경 로마서의,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라는 사도 바울의 탄식이 바로 내 것이었다.
교회에서는 나와 같이 의심이 많고 딴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시험이 들었다.'라고 했었다.
그것도 모르고 내가 충성하고 봉사하는 모습만 보고 목회자 아내로 적격이라 여겼던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이들이, 목사 후보생을 나의 결혼 상대자로 소개해주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소개해준 그 사람과는 절교해 버릴 정도로 목회자의 아내, '사모'가 되는 일이 싫었다.
교회 일에 신물이 나서 그랬을 수도 있었겠지만 시골 교회에서 보았던 일이 떠올라서 더 그랬다.
교회를 담당 사역하던 신학생이 학교에 갔을 때, 그의 사모가 갓난아이를 업고 수요 예배를 인도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측은해 보였다.
교회에서는 생활비도 제대로 주지 않아서 궁핍한 생활을 하던 것을 남몰래 지켜본 적이 있었다.
차라리 결혼을 안 하면 말지, 목회자 아내는 되지 말아야지, 그렇게 맘 속으로 다짐해오고 있었다.
그 길은 멸시와 천대를 감당해야 하고 가난을 탓하지 않을 수 있는 자만이 가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험이 든 상태로 신앙생활을 한 지 6년쯤 지났다.
스스로,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 밤중에 신작로에서 두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반항하지 않고 살겠습니다."라고 회개했다.
그리고 마음을 다 잡고 결혼(목회자가 아닌 것이 제1 조건)을 했고 방황과 반항을 접었다.
결혼하여 남편과 함께 주일을 성수하는 크리스천으로 생활했다.
[계속...]
[사진 출처: 픽사 베이]